한인들이 즐겨쓰는 말중에 각서라는 말이 있다. 귀가 따갑게 듣는 말 중 하나다. 각서를 영어로 옮기기가 쉽진 않은데 각서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계약서이다. 각서란 말을 들을땐 왠지 영어로 콘트랙트란 말을 들을 때보다 뭔가 더 비장하고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많은 한인들이 한국식의 사고방식으로 각서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할 기회가 없어서 각서가 어떤 법적 효력을 갖는지 피부로 느껴볼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간접경험을 통해본 바에 의하면 각서의 효과는 마치 '한국사회는 각서 한장이면 모든게 만사형통인가'라는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로 그 법적효과가 큰 듯하다. 대한민국도 이제 많이 세련돼 단순한 각서가 불법적인 계약조차도 유효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은 없으리라 믿는다.
예전엔 화류계 여성들이 포주들에게 써주는 각서라든지 노름빚을 못갚으면 신체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각서 심지어는 '마누라'까지 파는 각서 등등 과거 대한민국 각서에는 못담는 내용의 한계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영미법의 계약법은 계약내용이 불법적이면 일단 그 계약은 무효하다. 위에 든 예들은 아무리 각서를 천장 만장 써줘도 영미법상 계약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 채무채권 관계에서 상식밖의 내용들을 채무자들이 각서로 써주고는 채권자들이 각서를 근거로 이를 이행하는 사례가 한국에선 꽤 많았던 듯 싶다.
종업원문제를 다루다보면 많은 한인업주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종업원으로부터 일종의 각서를 받아두면 노동법에서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인고용주들이 종업원들로부터 받는 각서는 '고용주를 어떤 일이 있어도 소송하지 않겠다'에서부터 밀린 임금에 대해 안받아도 된다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없이 일해도 괜찮다는 것에 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고용주들이 좋아하는 각서가 오버타임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각서. 고용주와 종업원은 법이 정해놓은 종업원의 권리를 개별 계약서를 통해 종업원의 권리를 제약하지 못한다.
같은 선상에서 종업원 상해보험이나 실업수당 청구를 안받아도 된다는 식의 각서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일단 고용주들은 노동법에 근거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무작정 밀린 임금을 없던 것으로 한다든지 어떤일이 있었도 소송하지 않겠다든지 하는 식의 한국적 발상을 근거로 한 각서들은 휴지조각이다. 따라서 각서를 갖고 자신들이 어기고 있는 노동법에 대해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래도 가끔 법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각서란 것이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고용기간 제대로 다 챙겼다든지 고용주가 종업원에게 밀린 임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든지 하는 각서들인데 이런 각서들도 종업원이 막상 소송을 하거나 노동청에 고발해오면 결과를 뒤집을 만큼 도움이 되는 증거들은 아니다. 고용주가 강제로 서명하게 만들었다든지 뭘 서명하는지도 몰랐다든지 하고 나오면 피곤해진다.
각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예기를 해주면 고용주들은 굉장히 실망하면서 오히려 미국의 법률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굳이 각서가 도움이 되는 분야가 있다면 상인과 상인간의 상거래를 둘러싼 계약 같은데에선 구두계약 보단 원시적으로 만들었을지라도 서면으로된 각서가 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글/김윤상 변호사
문제는 많은 한인들이 한국식의 사고방식으로 각서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할 기회가 없어서 각서가 어떤 법적 효력을 갖는지 피부로 느껴볼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간접경험을 통해본 바에 의하면 각서의 효과는 마치 '한국사회는 각서 한장이면 모든게 만사형통인가'라는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로 그 법적효과가 큰 듯하다. 대한민국도 이제 많이 세련돼 단순한 각서가 불법적인 계약조차도 유효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은 없으리라 믿는다.
예전엔 화류계 여성들이 포주들에게 써주는 각서라든지 노름빚을 못갚으면 신체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각서 심지어는 '마누라'까지 파는 각서 등등 과거 대한민국 각서에는 못담는 내용의 한계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영미법의 계약법은 계약내용이 불법적이면 일단 그 계약은 무효하다. 위에 든 예들은 아무리 각서를 천장 만장 써줘도 영미법상 계약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 채무채권 관계에서 상식밖의 내용들을 채무자들이 각서로 써주고는 채권자들이 각서를 근거로 이를 이행하는 사례가 한국에선 꽤 많았던 듯 싶다.
종업원문제를 다루다보면 많은 한인업주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종업원으로부터 일종의 각서를 받아두면 노동법에서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인고용주들이 종업원들로부터 받는 각서는 '고용주를 어떤 일이 있어도 소송하지 않겠다'에서부터 밀린 임금에 대해 안받아도 된다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없이 일해도 괜찮다는 것에 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고용주들이 좋아하는 각서가 오버타임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각서. 고용주와 종업원은 법이 정해놓은 종업원의 권리를 개별 계약서를 통해 종업원의 권리를 제약하지 못한다.
같은 선상에서 종업원 상해보험이나 실업수당 청구를 안받아도 된다는 식의 각서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일단 고용주들은 노동법에 근거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무작정 밀린 임금을 없던 것으로 한다든지 어떤일이 있었도 소송하지 않겠다든지 하는 식의 한국적 발상을 근거로 한 각서들은 휴지조각이다. 따라서 각서를 갖고 자신들이 어기고 있는 노동법에 대해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래도 가끔 법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각서란 것이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고용기간 제대로 다 챙겼다든지 고용주가 종업원에게 밀린 임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든지 하는 각서들인데 이런 각서들도 종업원이 막상 소송을 하거나 노동청에 고발해오면 결과를 뒤집을 만큼 도움이 되는 증거들은 아니다. 고용주가 강제로 서명하게 만들었다든지 뭘 서명하는지도 몰랐다든지 하고 나오면 피곤해진다.
각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예기를 해주면 고용주들은 굉장히 실망하면서 오히려 미국의 법률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굳이 각서가 도움이 되는 분야가 있다면 상인과 상인간의 상거래를 둘러싼 계약 같은데에선 구두계약 보단 원시적으로 만들었을지라도 서면으로된 각서가 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글/김윤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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