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 관련 예화
▣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됨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 기독교 대학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산 속에서 수양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수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히틀러 당시의 독일 공군에 복무했던 조종사, 일본을 위해 싸웠던 조종사, 그리고 독일 폭격에 참여했던 미합중국 공군 소속의 전직 조종사가 있었습니다. 이 세명의 조종사들은 구원을 받은 적이 없었고, 서로 만나 본 일도 없었습니다.
수양회 마지막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캠프파이어 주위에 모였습니다. 사회자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라고 권유하며, 주님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번제물로 기꺼이 드리겠다는 표시로 막대기를 집어 불 속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독일 조종사가 제일 먼저 던졌고, 그 뒤를 이어 일본 조종사와 미국 조종사가 따라 던졌습니다. 눈물이 눈에 가득 고인 채 옛날의 적들은 서로를 팔로 감싸 안고 다른 성도들과 목소리를 함께 하여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이라는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성도로서 누리는 사랑의 교제를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하나되는 운동
에릭 프롬은 말하기를 '인간 심리와 행동의 모든 의식적 ·무의식적 원천에는 분리를 극복하려는, 합일(合一)에 이르려고 하는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갈라진 둘이서 하나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C.S. 루이스는 (대 이혼 사건)이라는 글을 샜는데 이것은 밀턴의 (실락원)이나 단테의 (신곡)처럼 유명합니다. 이것을 사랑과 미움의 대하(大河) 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겠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전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고, 정 관계가 반 관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에 의해서 하나님과 사람을 하나로 만들고 나와 이웃, 나와 나를 하나로 만드는 운동, 회개하는 운동, 즉 정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 사건을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인 김 소월은 (초혼)에서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이 말 속에는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내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외치는 절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4:13)
▣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하나
중국의 YMCA의 책임자로서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중국의 대표자들의 자문위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무려 8백 마일이나 되는 일본군의 점령지를 걸어서 탈출했던 쿠는 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세상에는 인종과 피부색과 언어, 풍습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세계 방방곡곡에서 표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서로의 관점의 차이 때문에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만물이 하나로 연합할 수 있다."
▣ 하나됨의 아름다움
서로 나뉘어 외면하고 갈등하는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정치적 군사적 이념적으로 분단돼 있습니다. 남쪽에선 지역주의라는 감정적인 분단, 노동자와 사용자라는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한 반목이 계속됩니다.
가장 거룩하고 신성해야 할 교회와 가정마저도 갈등과 반목속에서 하나 되지 못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33편이 이런 시대에 좋은 답을 주고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우리는 먼저 하나가 되고 일치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아름다운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론과 그 후계자인 대제사장들은 직무를 수행할 때 각종 향로로 만든 기름을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기름은 머리에서 수염으로,수염에서 옷깃까지 타고 흐릅니다. 그 모양이 거룩하고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2000년 6월13일 북한 순안공항에서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서 환한 얼굴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인사를 나눌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습니까? 비록 두 사람이 잘 생긴 얼굴도 멋있는 몸매도 아니었지만 50년이 넘는 불신과 미움을 극복하고 화해하려 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려 하는 그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하나되고 화목한 가정,서로 높여주고 사랑하는 교회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거기서 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둘째로 서로 하나 되는 것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복이 됩니다.‘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다’는 구절을 살펴봅시다. 헐몬이란 가나안 북쪽에 있는 헬몬산입니다. 시온의 산들이란 가나안 남쪽 유대지방입니다. 북쪽 헬몬산 꼭대기에 내린 눈들이 녹으면 강을 이뤄 유대 땅을 흘러 적십니다. 그 물이 증발하면 남쪽 들판에 이슬이 돼 내립니다. 목초가 자라기 어려운 남쪽 가나안 광야에서는 이 이슬 덕분에 농사도 짓고 가축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북쪽과 남쪽이 서로 도와서 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면 우리는 더욱 강해지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도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은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됨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하나되는 것이 아름다움이고 하나될 때 강해지고 하나됨으로써 서로에게 복이 됩니다. 하나되는 가정, 하나되는 교회,하나 되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복내려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나누고 분리시키는 것은 마귀의 일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하나되게 하시고 화해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다투고 분열할 때 가슴 아파 하시면서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고 기도하셨습니다. 끝내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세상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내가 있는 곳에서 갈등과 대립을 화목과 일치로 만드는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돼야 할 것입니다.내 자신이 화목의 씨앗이 되기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고 인내를 가집시다. 하나 되는 일을 위해 기도합시다. 일을 행하시고 그것을 성취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김명섭 목사
▣ 우리는 한 팀이다
래리 도비는 미 프로야구 최초로 발탁된 흑인 선수다. 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팀에 들어가 출전하는 첫날(1949년)이었다. 3만명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전국의 라디오 청취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도비의 실력이 얼마나 탁월하기에 감히 흑인이 프로구단에 뽑혔단 말인가. 극도로 긴장한 탓인지 첫 타석에 선 도비는 어이없이 3진 아웃된다. 몹시 실망한 그는 자리에 돌아가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 다음 이야기다. 도비 다음으로 타석에 나간 선수는 구단 최고의 강타자 조 골든이었다. 그는 나가자마자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해 버렸다. 골든 선수는 도비와 똑같은 행동으로 힘없이 자리에 돌아와 두 손으로 머리를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나같이 경험많은 강타자도 안 맞을 때가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한 배에 탔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 말은 ‘우리는 한 팀이다’는 말과 같다. 이겨도 함께 이기고 져도 함께 진다는 뜻이다. 흥망성쇠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면 질투하고 경쟁하고 싸우는 것은 어리석다. 나는 흥하고 너는 쇠해야 한다는 못된 생각이 있기 때문에 때려눕히고서라도 내가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짐승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국제화란 말이 유행되고 있지만 그것은 영어 조기교육 같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국제화돼야 한다. 다른 인종,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한 이질감을 극복하고 누구와도 한 팀이 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결혼, 주거, 여행, 경제, 문화활동 등에서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넓은 생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
단일민족 단일문화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우리가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지만 마음의 개방은 시급한 과제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되는 말은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이다. 서울대 이부영 교수는 ‘끼리끼리병’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인이 빨리 고쳐야 할 병인 것이다. 내 회사, 내 교회만 잘 되면 그만이다. 내 집만 탈 없으면 이웃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이런 집단이기주의는 나의 발전도 저해하고 남에게도 해를 끼친다. 우리는 연결된 사회, 연결된 지구촌에 살고 있다. 지구는 한 팀이며 한 배를 탔다. 경쟁이나 자랑,대립이나 싸움은 웃기는 이야기가 되었다. 흥해도 함께 흥해야 하고 망한다면 다 함께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효섭 목사 (미국아쿨라연합감리교회)
▣ 한 팀
새앙쥐 한마리와 큰 코끼리가 함께 한 팀이 되어 길동무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다 보니 큰 다리를 건너 가게 되었다. 두 길동무는 한 팀이 되어서 다리를 건넜다. 다리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다 건너와서 새앙쥐가 뒤를 돌아보고 하는 말이었다.
"아휴! 우리가 저 육중한 다리를 거의 흔들어 놓았단 말이야!" 새앙쥐 자신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한 팀으로 '우리'가 되었을 때에는 가능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이 연약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능하시고 크시며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한 팀이 되었을때 그러한 일을 능히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조화로운 하나됨의 미학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은 평화를 뜻하고 조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피차가 녹아없어져 융합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각자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주어 더 아름다운 하모니(Harmony)를 이루는 것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각자의 특색이나 성격을 포기하고 제3의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개성을 잘 유지하면서 보다 나은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이 결혼이다.
하모니를 사전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서로 다른 소리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발전된 새 질서를 창조하는 음악 형성의 3대 요소 중 하나이다”
불화는 성격의 차이보다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은 서로 얼굴이 다르듯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특색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기와 다르다고 불평하거나 자기와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다른 점을 음미하고 다른 소리끼리 묶여 하모니의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한다.
차이점이란 꼭 필요한 것이며 발전의 요소가 된다. 우리가 서로 도와준다 혹은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음식의 조화가 깨져도, 정서의 조화가 깨져도 사람은 병들게 되어 있다. 건강이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남녀의 조화를 젓가락에 비유하고 싶다. 젓가락은 2개로서 그 기능을 발휘한다. 이중창이나 마찬가지이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독창 경연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소리를 모아 이중창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위하여 하나가 되는 예술을 터득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런 기도를 드리셨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성자 예수,성부 하나님,그리고 성령이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제자들,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는 경쟁 분쟁 파당 분열을 피하고 화목하여 한몸을 이루어 주님이 맡기신 하나님 나라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4)
/최효섭<미국 아쿨라 연합감리교회>
▣ 모든 것은 하나부터
한 곡의 노래가 순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한 자루의 촛불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고,
한 번의 웃음이 우울함을 날려보낼 수 있다.
한 가지 희망이 당신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한 번의 손길이 당신의 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한 개의 별이 바다에서 배를 인도할 수 있다.
한 번의 악수가 영혼에 기운을 줄 수 있다.
한 송이 꽃이 꿈을 일깨울 수 있다.
한 사람의 가슴이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 수 있고,
한 사람의 삶이 세상에 차이를 가져다 준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고,
한 단어가 모든 기도의 시작이다.
- 틱낫한의《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중에서 -
* 모든 것은 하나부터 시작합니다. 하나가 없으면 둘도 없습니다. 한 마디 따뜻한 말, 한 번의 정다운 웃음, 한 번의 소중한 만남, 한 번의 열린 가슴이 인생의 별이 되고 꽃이 됩니다. 우리네 사랑도, 행복도 그리고 역사도, 전설도, 신화도 하나부터 시작됩니다.
▣ 하나가 되는 길
본문: 빌립보서 2: 1∼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유대인들은 옛날부터 연대의식이 강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훈련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왕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온 백성이 축복을 받고 왕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온 백성이 여러 재앙과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연대 의식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는 세계가 다 한 혈통으로 지어졌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구속 안에 있는 형제임을 나타내 줍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모두가 한 형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 의식이요, 형제 의식입니다. nfl의 갈등과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분기점을 이룹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미움이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이 시작됩니다. 미움과
사랑, 불행과 행복의 분기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23:8)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도 한 분이십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는 하나가 되는 길을 밝혀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믿음 없이는 가정도 교회도, 그리고 회사도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이 믿음을 사도 바울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하였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문에서 겸손과 낮아지는 마음, 또 빈(empty) 마음으로 설명합니다. 이 말씀의 근본 뜻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더불어 하나님께 복종하는 충성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진리의 승리를 확신하며, 주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서야 이에 따르는 낮아짐과 겸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곳에 하나가 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체적으로 그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기 자랑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안에 있는 자아 의식 속에서는 자기 자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는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만 있을 뿐이요, 나를 자랑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자랑이 분쟁의 씨가 됩니다. 바울은 자기를 언제나 자기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로 평하였고 나는 “매일 죽노라”고 까지 말했던 것입니다. 내가 작아질 때, 그리스도가 커지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 우월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무자격한 중에서 오늘 내가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을 허락하신 은총이 특별한 것이지, 그 일을 맡은 내가 잘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은 죄인이며 여전히 부족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즉 나만이 특별해서 이 일을 한다는 우월의식을 버리고,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셋째,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일을 돌아보아서 자기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바꾸어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시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모든 이웃을 위하며, 그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즉, 중심을 자기에게서 옮겨 그리스도에게로, 그리고 다시 이웃에게로 향할 때, 거기에 하나가 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일치를 이루시는 하나님, 스스로 자기를 비워 종의 자리까지 내려오신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나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교만과 자랑, 그리고 특권의식을 버리게 하옵소서. 사랑 안에서 하나되게 하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나날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자양고등학교 교사)
▣ 하나되게 하소서
본문: 에베소서 4:1∼6.
바울이 옥중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부탁한 것은 자신의 구명운동이 아니라 성령으로 하나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하나 되는 역사일 것입니다. 한국 근대사의 반은 나누어지고 찢어지고 분열되는 역사였습니다. 교회도 분열되고 반목하고 대립하는 부끄러운 순간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게다가 요즘 우리 정치 현실이 여?야, 친노? 반노, 진보? 보수 등으로 나뉜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싸울 만큼 싸워보았으니 이제는 화해와 일치의 장을 펼쳐나가야 할 때입니다. 역사는 언제까지나 우리가 분열 반목 대립만 하도록 기다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세례식을 베풀기 위해 물을 떠다놓고 그 물을 축복했습니다. 그 물은 성수,거룩한 물이 됩니다. 그런데 그 물에 파리가 빠져 죽었습니다. 거룩한 세례예식을 행하는 성수가 오염된 것입니까? 아니면 거룩한 물에 빠져 죽은 파리가 성화된 것입니까? 145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목사님들은 이 문제로 토론하다 성수 오염파와 파리 성화파로 분열됐습니다. 바로 그 순간 회교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침공,수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하나가 돼야 합니다. 분열의 싸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탄의 역사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 됨을 위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해와 양보입니다. 내 것을 내놓고 희생,양보하지 않고서는 화합의 한마당을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탄핵정국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온 몸으로 겪어내고 있습니다. 국론은 첨예하게 대립해 상대방 허물 찾기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이제 화합과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특히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주님을 믿는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우리 사회의 하나 됨을 위해 힘써 기도할 때입니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시민,또 다른 한편에서 탄핵 찬성을 외치는 시민 모두 대한민국 백성입니다. 정치적 성향과 소신은 다를지라도 한반도,대한민국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 된 백성입니다. 이제는 너와 나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통합적 사고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홍열<한국 루터회 총회장>
▣ 하나됨의 중요성
얼마 전에 저의 교회 옆에 어떤 목사님이 새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만나 보니 뒤늦게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고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었는데 정말로 깨끗하고 순수하고 훌륭하신 목사님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보험 회사를 다니면서 목사님 일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모님 심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목사로 부름을 받았지만 자신은 교회 사모의 일보다 보험 회사의 일이 좋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됨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축복이 주어지겠습니까?
하나됨을 이루기만 한다면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존재가 하나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지만 그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소중한 일을 위해 우리는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가 부모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든지, 아니면 부모가 자녀의 부족한 모습을 이해하려고 스스로를 낮추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녀가 십자가를 지든지, 부모가 십자가를 지든지, 최소한 둘 중의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보다 성숙한 사람이 십자가를 져야 하고, 나이에 불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됨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옳은 의견을 내고, 의로운 길을 가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는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독선과 완고함의 표시일 뿐입니다.
의를 위해 자기를 깨뜨릴 수 있어야 하나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 그것에 바로 삶의 의미가 담겨 있고,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 감동도 없고, 문제 해결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편한 것을 좋아하지만 한평생 편하게 지내다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무엇하다 왔느냐고 물으면 "그냥 편하게 지내다가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고백은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사랑과 희생 속에 진정한 영광이 들어 있게 됩니다.
이제 우리들은 영광의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됨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바로 참된 영광입니다. 이 영광의 의미를 아는 자에게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넘칠 것입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됩시다
본문: 빌립보서 2:1∼4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빌2:2)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 본문 말씀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사람을 권면하거나 위로하거나 교제하거나 남을 불쌍히 여기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때,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하고 뜻을 합해서 한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에는 죄로 인한 타락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늘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해놓고도 내가 칭찬을 받고 싶고,같은 일을 이뤄놓고도 내가 했다는 그러한 마음들이 우리에게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마음들을 하나될 수 있도록 묶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본문 3절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 됨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첫 번째는 ‘다툼’이라는 것입니다. 다툼이란? 서로 겨루어 승부를 내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들로 인해서 성도 간에 다툼이 있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그런 마음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하나 됨에 있어서 버려야 할 것은 허영입니다. 허영이란 무엇입니까? 신분에 넘치는 외관상의 영화나 필요 이상으로 하는 겉치레나 자만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자기교만에 빠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 됨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이런 다툼과 허영들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이 충만케 하라.”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만 앞세우는 것도 옳지 않고요.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남만 돌아보는 것도 결코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다툼과 허영을 다 버리고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남의 일도 돌아보아 형제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형제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우리의 모든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교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이 예수님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고영기 목사 (성은교회)
▣ 좋은 교회 / 사도행전 3장 1절-10절
지난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은퇴하신 목사님께서
자신의 교회론(교회를 대장간으로 비유)을 말씀하시면서 좋은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대장간에서 쓸모없는 버려지고 망가진 부러진 칼, 못쓰는 가위, 농기구들을 가져다 풀무불에 넣어
녹이고 틀에 넣어 새롭게 만들고 망치로 두둘겨서 쓸모있는 연장으로 만드는 것처럼
교회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인생들이 나와서 성령의 불로 녹아지고 말씀으로 다듬어져서
새사람이 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예사랑교회는 좋은 교회인가를 생각했다.
역사상 완전한 교회는 없었다.
예루살렘교회가 완전한 교회의 모델처럼 생각하지만 초대교회도 완전한 교회는 아니었다.
완전한 교회는 하늘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완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완전한 교회는 역사상에 없었지만 좋은 교회는 있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읽은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본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기도에 전혀 힘쓰는 생활을 했다.
1.좋은 교회는 날마다 기도하는 교회이다.
요한복음 14장14절에서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다.
기도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전혀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 처음 예수를 믿으니 저절로 기도를 하게 되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처음 예수 믿고 세수를 하는데 런닝셔츠가 구멍이 나있었다.
그래서 "하나님 이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구멍난 셔츠를 입어서 되겠습니까?
런닝셔츠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5분후 전혀 생각지 않은 사람이 새셔츠를 두벌 갖다주었다.
첫 기도응답이었다. (다른 기도응답은 생략)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나 기도에 <그러나>가 빠지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세 번씩나 간절히 동일한 기도를 하셨다.
기도는 내 원을 이루기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기도임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에 <그리 아니하실찌라도>가 있었어야 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 앞에서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라고 하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 아옵소서.”라고 대답을 했다.
어느 믿음 좋은 부부가 17년 동안 사랑하는 딸을 위해 조용히 때로는 소리내서
매일 기도를 했다.
건강하게 자라고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고 그리고 나갈 방향을 위해서 기도를 했다.
딸이 운전을 시작했을 때 "하나님 딸을 보호해 주세요."라고 더욱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사랑그러운 딸이 교통사고를 죽은 것이다.
그러면 기도를 포기해야 하는가?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기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이다.
삶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계속해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어야 한다.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떠나면서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빌립 집사의 네 딸이 예언하고,
또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예언하기를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할 것이라 예언을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다.
그리스도인은 편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은 은 어떤 환난이 앞에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는 기도를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된다.
2.하나가 되기 위해 힘쓰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갔다.
초대교회는 마음을 같이 했다.
현대교회는 슈퍼마켙과 같은 교회가 되었다.
만남이 없는 교인들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교회가 되었다.
만남이 없는, 관계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교우가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한다면 이미 교회가 아니다.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사랑으로 하나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절, 3절에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다.
자기 목적을 위해 상대방을 조정하고 지배하고 이용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만남이 있는 교회가 서로 사랑으로 하나되기 위해 힘쓰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3.성전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향해 날마다 올라가 기도를 했다.
기도야 어디서 못하겠는가? 집에서도 할 수 있고 산에서도 할 수 있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어야한다.
눈에 보이는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4.성령의 감동에 민감한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은 매일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매일 성전에 앉아 있었던 앉은뱅이를 보았을 것이다.
하루에도 세번씩이나 만났던 구걸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성령의 감동을 느꼈다.
만약 베드로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령의 내적인 충만은 항상 충만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이 임하는 외적인 충만은 특별한 경우에 임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특별한 권능이 임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구걸하는 사람을 향해 “우리를 보라”고 한 것이다.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는 구걸하는 사람을 향해 베드로가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명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의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된 것이었다.
항상 성령의 역사하심에 민감한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5.오직 예수만 의지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세상의지하지 말고 예수만 의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좋은 교회는 말씀중심의 교회이다.
말씀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교회이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은과 금은 많으나 예수가 없는 교회이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예수가 우리 중심에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6.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그냥 베드로가 들어갔다면
구걸하던 사람이 “왠 미친 놈이 있나”하고 멍하니 베드로를 바라만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사랑으로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미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예화가 있다.
(예화생략)
기적은 사랑을 실천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7.예수의 제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제자는 훈련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몽펠리에예사랑교회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어느 시골에 새로 목사님 이 오셨다.
오신지 몇달이 지났을 때 시골 구멍가게 주인이 이번에 새로 오신 목사님이 참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했다.
구멍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새로 오신 목사님은 참 훌륭한 목사님이시다.'라고 했다.
그래서 목사님을 만나 보신 적이 있느냐 물으니 아니라고 구멍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아니 목사님을 만나 본 적도 없는 데 어떻게 새로 오신 목사님이 훌륭하신 분인것 아느냐 물으니
예전에는 교인들이 외상 값을 잘 갚지않고 외상도 많이 했는데 요즈음에는
외상 값도 잘 갚고 외상도 잘 하지 않는다고 대답을 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이 기적이 아니라 평생 구걸하며 살던 앉은뱅이가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전으로 들어간 것이 기적인 것이다. 그가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이 기적인 것이다.
좋은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교회였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등 예수님의 제자들은 천민들이었다.
그들이 예수를 만나 변화되어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고 예수의 제자로 삼으시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셨다.
제자의 수가 말마다 더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나는 몽펠리에예사랑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믿는다.
그리고 몽펠리에예사랑교회가 좋은 교회로 소문나기를 기도한다.
▣ 하나되어 승리하는 교회 (수 6:8-14 )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맞은 성이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가나안에서 제일 큰 성으로 외성이 넓이가 2미터 내성의 넓이가 4미터인 이중성으로 높이가 8미터나 되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부르셔서 이 성을 함락시킬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장 세우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그 뒤를 다르며 하루에 한번씩 6일간 여리고 성을 돌고 마지막 날은 7번을 돌면 하나님이 성을 무너뜨려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고 온 백성들이 그대로 행하여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처럼 행하여 이 어려운 한해를 헤쳐 나가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일들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이들은 병고의 여리고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물질이나 사업의 여리고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공부나 장래 신앙의 문제 그리고 자녀의 여리고를 둔 분도 있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우리 교회학교 안에도 여리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평안하고 부흥해야 하는데 사탄은 그렇게 두지를 아니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여리고를 깨트리고 승리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잘 들으시고 말씀대로 사셔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리고를 깨트리고 승리하는 한해가 될수 있을까요?
1. 순종할 때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에게 여리고를 깨트리는 방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수6:8-9)
여호수아를 통하여 들려 온 하나님의 말씀은 참 행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자말자 곧바로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여리고를 깨트리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우리는 순종에 대해서 많이 듣고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내가 참다운 순종을 하고 있는가 한번 나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순종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명령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고 이해가 되고 결과가 눈에 잘 될 것처럼 보인다면 순종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도 비합리적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예화
2) 하나님은 꼭 당신의 명령을 사람을 통하여 하십니다.
하나님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놓고서 여리고를 치는 방법을 설명하신다면 순종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하게도 직접 말씀하시지 아니하고 여호수아를 불러 그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성을 치러 가는데 창이나 칼이나 사다리를 쓰라고 아니하시고 하루에 한바퀴씩 여리고 성을 돌리는 그 이상한 방법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리고를 깨트리는 놀라운 첫 번째 열쇠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순종한다고 하면서 내 마음에 맞을 때에는 행하고 내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길길이 뛰고 혈기 부리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자신의 방법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순종하는 성도인줄로 착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순종의 열쇠는 전혀 쓰지 아니하고 여리고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우리모두 참다운 순종의 길을 찾으십시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죽여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이 죽으면 하나님이 별과 같이 많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얼마던지 하나님께 항변할 수 있었습니다.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 산으로 갔고 그곳에서 아들을 죽여 드릴려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시고 그 아들을 죽이지도 않게 하시고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넘치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모리아가 순종의 산이고 그곳에 후대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곳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3:1)
따라서 순종의 산 모리아에 성전이 건축 되었다는 것은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 처럼 순종하는 사람만이 들어와 죄사함과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고 또한 오늘 거룩한 성전에 오신 성도들은 마땅히 순종의 사람이여야 하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순종의 사람이 되십시다! 그래서 우리와 나라와 교회의 여리고를 깨트리시고 이스라엘처럼 축복을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되는 교회와 성도가 여리고를 깨트립니다.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가되었습니다. 한결같이 여리고 성을 모두 합해서 13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를 때에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 가장 큰 증거가 말없이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10)
성을 치는데 그냥 돌기만 하라는 여호수아의 명령은 너무도 비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불평할 사람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야 칼이나 활을 써도 될까 말까인데 그냥 돌기만 하라니 우리 지도자 여호수가 제정신인거 맞아?' 할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여리고 성 사람들이 성을 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좋은말을 하겠습니까?
별의 별 욕설과 저주와 야유를 성 아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쏫아 내지 않겠습니까?
욕도 한두번 이어야 참을수 있지만 계속되는 욕을 듣고도 참기는 너무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60만은 한결같이 참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명령에 한결같이 순종하고 행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온 민족이 하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평도 이길수 있고 저주의 이야기도 이길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됩시다!
말꾼이 아무리 말을 만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 까지 덧붙여서 우리에게 불평하고 우리를 선동해서 불평하는 성도로 만들려 해도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에 마음을 묶어 하나되면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의 여리고를 넉넉히 깨트리고 이기게 될줄로 믿습니다.
나 같은 것 하나쯤이야 무슨 영향이 있을까?
나 하나쯤 불충성하고 나 하나쯤 불평한다고 교회가 잘 굴러가는데 방해가 될까 하고 소홀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만일 이스라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이런 사람이 있어서 불평하고 지도자 여호수아를 공격했다면 여리고가 저절로 무너졌겠습니까?
아마도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하나쯤이야 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결코 옳은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나 하나부터 우리 교회의 귀중한 구성원임을 알아야 할것이고 나 하나부터 우리 가정의 귀중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 하나가 묶어져서 하나가 될 때에 거기에 놀라운 능력과 하나님의 축복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고 여리고 성민이 아무리 욕을 하고 더러운 것을 던지고 저주의 말을 해도 들은척도 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랑스런 모습을 상상하시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결단 하십시다.
이제 우리 하나되는 일에 힘을 쏫읍시다.
이제 우리 모두 우리 가정이 우리 나라가 하나되는 일에 힘을 쏫아 합칩시다.
그러면 아무리 큰 여리고도 이 민족 앞에, 우리교회 앞에, 그리고 우리 가정앞에 버티고 있을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여리고를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능력으로 깨트리고 당당히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입성하고 승리하는 무성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면 여리고가 무너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깨트리는데 우리 인간의 방법을 사용한다면 칼이나 활이나 창이나 사다리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방법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을 쓰는 것이 당연한데도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방법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에 백성이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을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20)
활과 칼로도 무너뜨리기 힘든 성벽이 소리 지른다고 무너지겠습니까?
그것도 가나안에서 가장 견고한 성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니 성벽은 무너지고 승리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홍해 아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라의 쓴물이 한 나무를 잘라 던지라는 명령에 순종할 때 단 물로 바꿀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와 그 뜻을 찾는 길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거기에 여리고를 무너 뜨리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순종하고 하나되고 하나님의 방법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여러분 되셔서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여리고도 이스라엘처럼 파하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에 관한 성경 말씀
0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 21- 23)
0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0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0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 12- 13)
0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0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 3- 6)
0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빌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