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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화]]순교에 대한 예화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09.09.25|조회수877 목록 댓글 0

순교에 대한 예화

 

 ▣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부흥과 발전을 이룩한 한국 개신교. 그런데 최근 10년 사이에 그 성장 속도는 크게 둔화되어 교인 수가 정체 또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개신교 신자 수는 2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날이 개신교 신자 수가 늘어나는 지역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복음화율을 자랑하는 그곳은 바로 전라남도 신안군이다. 크고 작은 섬들로만 이루어진 신안군의 복음화율은 35퍼센트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증도는 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예수를 믿는 전국 복음화율 1위의 섬이다. 마을 사람 거의 대부분이 크리스천으로 주민 2,200여 명인 작은 섬에 교회만 11개가 세워져 있다.
예로부터 섬사람들은 토속 신앙을 믿으며 살아왔다.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그들로서는 바다의 신, 바람의 신, 태양의 신이 그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이런 오랜 전통 때문에 섬은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기 가장 어려운 곳 중 하나였다. 이런 곳에 어떻게 개신교가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전국 복음화율 1위의 섬을 만들 수 있었을까?
증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한 사람, 신안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을 나룻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끈질기게 주민들을 설득하고 먹이고 입히고 돌보면서 교회를 세운 사람, 그 사람은 목사도 선교사도 아닌 연약한 한 여인이었다. 섬마을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 그녀가 있었기에, 그녀의 눈물겨운 헌신의 삶이 있었기에, 그녀가 뿌린 숭고한 순교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날 신안군과 증도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준경. 1891년 신안군 암태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열일곱 살에 증도로 시집을 간다. 그러나 신랑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혼례를 치른 첫날밤부터 소박을 맞는다. 이후 2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생과부가 되어 모진 시집살이를 하게 된다. 아무런 희망도 낙도 없는 한 많은 여인의 삶이었다. 이무렵 그녀는 우연히 집을 찾아온 전도부인에게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당시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목회하던 이성봉 목사는 한국 교회가 낳은 위대한 부흥사였다. 문준경은 이성봉 목사에게 은혜를 받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전도부인이 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문준경은 방학마다 고향에 내려와 신안 일대 섬들을 돌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훗날 48명의 순교자가 나온 임자도 진리교회는 그녀가 개척한 첫 번째 교회였다.
이후 증도에 증동리교회와 대초리교회를 개척한 후 곳곳에 기도처를 세우고 리더들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자은도, 암태도, 안좌도, 비금도, 압해도 등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이런 과정에서 당했던 고난과 역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 어떤 어려움도 신앙의 힘으로 이기며 사도 바울처럼 전도 여행을 계속했다.
1950년 6?25사변이 터지자 신안 섬마을에도 공산당이 들이닥쳤다. 문준경 전도사는 끝까지 교인들을 보호하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해 10월 5일 증동리 앞바다에서 공산당에 의해 처참하게 순교를 당했다. 그녀의 장례식 때는 백범 김구 선생 장례식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순교의 피와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그로부터 증도는 복음의 진원지가 되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 MBC TV에서 방영된 수목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무대가 되었던 증도는 바로 이런 문준경 전도사의 거룩한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천국의 섬이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까지 내준 문준경 전도사의 헌신적 사랑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교회가 낳은 위대한 순교자이자 여성 목회자의 교과서였던 문준경 전도사의 삶과 그 풍성한 열매가 드러난 증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책이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가 다시 한 번 뜨거운 회개와 부흥 운동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죽음을 각오하는 순교 영성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영적 각성을 위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 한국교회 순교의 꽃 주기철 목사

 

주기철 목사는 1897년 11월 경남 창원군 웅천면 북부리에서 웅천 아전 출신 주현성의 넷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1910년 온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주기철도 그때부터 웅천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는 웅천 개통학교를 거쳐 1916년 정주 오산중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조선예수교대학교(후의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건강 문제로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요양하던 중 1920년 11월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은혜ㅓ 받고 목회자가 될 것을 결심,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 12월에 졸업하였다.  이후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부산 초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고 1931년 마산 문창교회를 거쳐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에 부임하였으며 부임 1년 만에 3백 평 규모의 2층 벽돌 예배당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예배당 건축 직후 주기철 목사와 산정현 교회는 고난의 시대를 맞았다.  그것은 한국교회 전체가 겪어야 했던 시련과 아픔이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는 1930년대 들어서면서 강화되다가 1938년 2월 조선총독부가 <기독교도에 대한 지도대책>을 마련한 후부터 경찰력을 동원하여 노골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신사참배 현장으로 끌어냈다.  거부하는 목회자에 대한 탄압이 본겪화되었다.  1938년 2월 평북 노회에서 제일 먼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평양 신학교 학생들이 교내에 있던 평북 노회장 기념식수를 도끼로 짹어버렸는데 이를 계기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목회자들을 대거 체포하였던바 주기철 목사도 평양 경찰서에 검속되어 4개월 옥고를 치렀다. 일제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던 주기철 목사는 1939년 8월 농우회 사건으로 다시 경북 의성경찰서에 검속되어 6개월 옥고를 치렀고 그 후에도 몇 차례 구금과 석방을 반복하다가 1940년 9월 '신사참배 반대자 일제 검거' 때 마지막으로 끌려갔다.  그는 끝내 타협을 거부하고 1944년 4월 21일 평양 형무소 병감에서 숨을 거두어 '순교의 면류관'을 썼다.

 

 

▣ 십대 순교자들

우간다에서 전도 사역에 지도적인 역할을 한 훼스토 키렌제레는 "나는 이디아민을 사랑한다" 라는 책을 썼다. 그는 그 책에서 우간다의 교회사를 기술하고 있는데 다음 인용문은 우간다 역사상 첫 순교자들을 말한 것이다.
"같은 해 곧 1885년 초에 세명의 그리스도인 소녀들이 우간다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렸다. 왕은 기독교를 짓밟아 버릴 목적으로 이 사환 소년들을 체포할 것을 명령했다. 가장 나이 많은 소년이 15세, 가장 어린 소년이 11세인 유수푸였다. 사람들이 울고 부모들이 눈물로 간청해도 그들은 생명을 내걸고 믿음을 고수함으로써 화형틀에 달리게 되었다. 화형을 집행하는 장소에서 그들은 왕에게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보냈다.
'주님의 위엄을 왕에게 말해 주시오. 그가 우리 몸을 불가운데 넣었지만 우리는 이 불에 오래 있지 않을 것이며, 곧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주님의 곁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왕에게 회개하고 마음을 바꾸라고 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불못과 멸망으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그때에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 우간다에서는 순교의 노래로 잘 알려져 애송하고 있는 노래이다. 그 한 구절을 보면 '아! 내게도 천사들처럼 날개가 있었으면 날아 올라 주님 곁에 있을 것을'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어린 유수푸가 '내 손을 자르지 말아 주세요. 나는 불속에서 몸부림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불이 나를 주님께로 데려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소년들이 죽던 날에 40명의 어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다. 이것은 불이나 고난이 막을 수 없는 새로운 생명이다. 이 세 소년은 우간다의 첫 그리스도인 순교자로서 캄파라 근교에 기념비가 있다.1887년 교회 창립10주년 말에 100여명이 죽임을 당했다. 바로 그 소년들의 죽음 때문에 결신자가 일어났던 그 마을에서 순교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자들이었고 신학적인 지식도 거의 없었으며 어떤 이들은 겨우 읽을 줄 아는 정도였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부여안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드릴 준비가 된 자들이었다.{이 위태로운 시기에 그리스도를 옹호한 무리 가운데 가장 빠르고 확실한 부흥이 있었다."
- 죤 맥아더의 글 중에서

▣ 순교의 비결 - 소망의 확신


이는 전 역사를 통해서 성도와 순교자들의 보편적인 간증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영광스런 죽음으로 죽을 수 있도록 한 것은 그들 앞에 있어 그것을 그렇게 분명하게 보았던 이 소망이었습니다. 스데반의 기록으로부터 여태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 점은 순교사에 있어서 영광스런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게 하였습니까? 해답은 그들이 소망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어가면서 잔인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전세기(全世紀)를 걸친 모든 시대의 순교의 이야기를 읽으십시요. 그러면 매 경우에서 여러분들은 그들의 비결이 자기들이 어디를 가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았던데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다가가고 있는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을 어렴풋하게나마 체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영광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확신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넉넉히 이기게'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것을 확고하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모름지기 좌절감을 낼만하고 패퇴케 할 만한 일들을 자랑할 수 조차 있습니다.

 

▣ 임기주 목사의 순교

임기주 목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매산학교 교사로봉직했다. 이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정주 오산교회 시무 중 신사참배가 가결되자 이의를 보여 일경에게 구금된 적이 있으며, 해주등지에서 목회할 때 사상범으로 지목되어 수난 을 당했다. 해방 후에 재령읍 서부교회에서 시무하던 중 공산당에게 연행되어 순 교하였다.


 

▣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시의 남서쪽에 리틀턴이라는 지역에 있는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학생 25명과 용의자 2명이 총기 난사 속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 가운데 살아남은 여학생이 증언한 놀라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이 학교의 불량 서클 단원이었던 '트렌치 코트' 마피아단원 둘이 총기를 가지고 들어와서 학생들을 난사하고 있었을 때, 그곳에는 17살 된 캐시 버넬이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총을 들고 있던 학생 하나가 그녀에게 총구를 목에 겨누고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냐?" 만약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했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그녀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어"(Yes, I believe in God). 그러자 그는 총구를 캐시의 가슴에 겨누고는 마구 총을 쏘았습니다.
캐시의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미국 크리스천 십대들 사이에서 "Yes, I believe in God"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고, 플로리다 주의 한 도시에서는 2천 5백 명의 십대들이 모여 감동적인 신앙고백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이 집회의 이름 역시 "Yes, I believe in God"이었습니다. 이 집회는 마약 속에 찌들어 죽어가던 미국 크리스천 십대들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운동으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소위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장로, 집사, 권사라고 하면서도 빌라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순교자인 캐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삶과 죽음을 통해서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성경의 가치관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내 출세와 경제적인 이익을 앗아간다 해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 이동원

▣ 순교자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장작더미위에 맨발로 올라섰다. 이제 막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자기의 화형집행 형리를 감독하던 치안판사를 가까이 오라고 했다. “죄송하오나 판사님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이제 곧 화형을 당하는 몸이옵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저의 종교를 믿지 마시고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의아했던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치안판사는 너무나 놀랐다. 이 비범한 힘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불안한 것이요. 두려운 것이며 고통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으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주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니 어찌 불안하며 두려우랴. 무디 선생은 “세상이 점점 멀어지니 천국문이 열린 것이 보이는구나”
라고 하며 기쁘게 세상을 마쳤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천국문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쁘게 죽어갈 수 없을 것이요. 기쁘게 죽어가지 않을 자가 어찌 천국에 가겠는가. 마지막 모습이 그의 행방을 말해 줄 것이다.

▣ 순교의 피

3.C. 170년경에 시리아의 안디오크스 에피파네스가 유대 종교를 말살해 버리고 완전히 헬라화를 시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8만명의 유대 사람들을 죽이고 10만 명은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방의 신을 모셔 놓고 강제로 숭배를 하게 했으며 돼지고기를 가지고 성전을 더럽혔고 성전을 창녀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신앙 때문에 생명을 바쳤습니다. 특히 유명한 사건 하나는 일곱 사람의 형제에게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성기라고 했는데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하나씩 차례로 학살을 당했습니다. 장남은 차바퀴에 결박을 하여 돌려서 죽이고 차남은 쇠못 장갑으로 가죽을 벗겨서 죽였으며 셋째는 능지 처참을 했고 넷째는 혀를 자르고 다섯째는 산 채로 돌방아로 장어서 죽이고 여섯째는 시뻘겋게 단 쇠꼬챙이로 창자를 찔러서 태워 죽였으며 일곱째는 불가마에다 볶아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일곱째는 여섯 형제에 대한 그 고문과 학살을 수시간 동안 보면서도 결코 그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지킨 순교의 퍼가 면면히 흐르고 흘러 신약의 순교의 퍼가 흐르고 전도자들의 순교의 피가 흐른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한국 사회에도 카톨릭과 개신교의 많은 순교의 피가 이조 시대와 일제 시대와 공산치하에서 이렇게 흐르고 흘러서 우리들에게 생명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함부로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됩니다. 많은 종교 중파 하나로, 유명한 사람의 철학이나 성현의 가르침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렇게 진실한 사람들이 자기와 단 한번만의 생명을 제물로 바친 것뿐만이 아니고 자기치 매 순간 순간을 통해 진실되게 증언해 준 진리입니다. 이 생명의 복음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순교의 피를 생각하며 우리도 그들처럼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 이것을 후대에게 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 순교의 결실

영국 전역에 인쇄된 성경이 퍼진 것은 1537년의 일이었다.  1536년 종교개혁자 윌리엄 틴과 그의 친구들이 2년동안의 복역끝에 화형을 당했는데 이를 계기로 성경이 보급됐던 것이다. 당시 윌리엄 틴과 그의 친구들은 종교계급을 비판하면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앞장섰다가 반대파의 밀고로 헨리 8세에 의해 체포,구금됐었다.
윌리암 틴은 화형에 처해지기전 『주여,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라는 말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영국 전역에 성경을 보급시킨 주인공은 바로 헨리 8세였다.

▣ 거룩한 순교

베트남 항공기 사고로 순교한 오형석 선교사.그는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선교지인 캄보디아에서 순교했다. 그는 사고 전날 한국을 떠나면서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선교의 오지다.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곳이기에 더욱 선교활동이 필요 하다. 선교활동이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라면 나는 이곳을 선교지로 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선교사는 죽음과 위험을 무릅쓰고 「선교는 곧 순교」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 나는 죽어도 예수를 믿습니다

제정시대 때에 만주 연길현에 종성동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이곳은 함경북도 종성 사람들이 개척한 동리로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침례교회도 하나 있었다. 그런데 1939년 11월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공산당원들이 이 마을을 습격하고는 교인과 동리 사람들을 예배당에 몰아 넣고는 불신자는 좌편에 교인들은 우편에 갈라 서라고 명령했다. 이때에 한씨 부인이 "나는 죽더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는 우열로 나서자, 너도 나도 60여 명의 교인들의 이에 따라 나섰다. 그러자 공산당원들은 이 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던 김영진 목사를 끌어다가 완전히 옷을 벗겨 쇠사슬로 결박한 다음 교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면도날을 들고는 발목으로부터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칼을 목에 대고 "너 이래도 예수를 믿겠느냐?"고 다짐시킬 때에 김 목사는 "나는 예수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습니다."하며 '예수, 예수'할 때에 공산당원들은 그의 생식기까지 잘랐다. 이때에 김 목사는 숨이 끊어지고 말았는데 독이 오른 공산당원들은 "너희들도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렇게 죽이겠다."고 소리 소리 쳤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 배교하는 자 없이 모두 엎드려 울부짖어 기도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김영진 목사 후임으로 종성교회에 부임했던 한기춘 목사가 중언한 내용인데 말세에 이와 같은 때가 이르리니 죽도록 충성하라고 주님은 교훈하고 계신다.

▣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성 루시안(S. Lucianus)은 이단과 싸우다가 9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다. 311년 맥시미아노 황제가 박해할 때 그도 잡혀서 끌려나가 심문을 받을 때, 그가 위대한 학자임을 아껴 배교하면 목숨을 살려 주고 부귀끼지 주겠노라고 약속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다만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한 마디만 말할 뿐이었다. 재판하는 법관 앞에서도 일체 말하지 않고 다만 "나는 크리스챤입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였다는 것이다. 감옥에 그를 면회하러 찾아온 성도를 보고 자기는 판자에 쇠사슬로 묶여 누워 있으면서도 도리어 신자를 보고 신앙을 끝까지 지킬 것만 권면했다. 그리고 그가 쇠사슬에 묶여 누워있는 그의 가슴을 제대(祭臺)롤 삼아 그 위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고는 그 다음날 끌려나가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박해자들은 그의 시체에 큰 돌을 매달아 깊은 바다에 던져 넣었으나 2-3일 후에 시체는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랑하고 고백해야 할 말 -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세상과의 타협이 들어와도, 유혹이 눈웃음쳐도, 죄가 미혹시켜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외쳐 야 할 말,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 죽음을 넘어선 사랑

로마시대 북아프리카의 어느 지방에 펄페튜아라는 젊은 여인이 주 예수님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한 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감옥을 방문해서 로마 법정이 요구하는 대로 예수님을 배반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에게 아첨해서 자유 얻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재판할 로마의 치안관은 잔인한 법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로마법을 집행해야 하지만 이 여인을 사형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리스도인으로 처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수차례 그녀에게 말하면서 그녀를 설득시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치안관의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법정에서 재판관은 그녀를 향하여 “너는 그리스도인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간단하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그녀를 원형극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녀는 군중들이 고함치는 원형극장에서 굶주린 짐승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그러나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용감했습니다.

▣ 폴리갑의 순교

초대교회시대는 교회에 대한 많은 핍박이 있었고 수 많은 사람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서머나의 감독 이었던 성 폴리캅이 있었습니다.(A. D.69-155)
그가 순교할 때의 일 입니다. 그는 자기를 체포하러온 병졸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준뒤 화형대 앞에 섰습니다. 그때 호민관이 폴리갑에게 지금이라도 배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나는 86년동안 그리스도를 섬겨왔고 주님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왕이시요, 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겠는가?" 하고 화형의 장작더미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화형을 집행하는 형리에게 외칩니다. "그대들은 한시간 가량 사르고 없어질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여 장차올 심판의 불을 모르는가? 왜이리 지체하고 있느냐 어서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라" 그는 아주 평화롭게 찬양을 불렀으며,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서는 천사들이 그에 화답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결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육체적인 쾌락때문에 반쯤은 딴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할 수도 없고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 토마스 모어의 순교

[유토피아(Utopia)]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교수형을 당할 때의 일이다. 사형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그때에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성경에서 보면 스데반이 죽을 때에도 사도 바울은 이를 합당히 여기고 죽이는 일에 가담하였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이 스데반을 죽인 것이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끝까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이는 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마침내 그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고 그도 순교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 같은 순교자끼리 친구가 되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것을 믿는다. 오늘 내가 당신들의 손에 죽지만 언젠가 당신들도 회개하여 주님 앞에서 친구로 만나 영원한 행복을 누릴것을 믿고 기도한다." 그는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이다.
/곽선희 목사 설교 예화

▣ 마지막 설교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하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 이후 4차 검속에 전후 7년 간의 옥고를 겪다가 1944년 4월 21일 평양감옥에서 순교하신 분이다. 일본 경찰이 그를 회유하려 잠시 가출옥시켰을 때 그는 자기가 시무하던 산정현교회에서 최후의 설교를 했다. 다음은 그 설교의 일부분이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 80이 넘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나의 병든 아내와 어린 자식들과 나의 사랑하는 교우님들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이 산정현교회의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따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려합니다.
(말씀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에 주목사님의 음성도 비장하여졌고 만당의 교우들은 모두 눈물로 성경책을 적시며 흐느껴 울었다. 독사의 눈 같은 일본 형사들의 눈에도 눈물이 어리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여 철석같은 마음이 변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울음소리 때문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신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설킨 인정의 줄 때문에 주님 따라 가는 길이 방해를 받는다면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부모나 처자를 사랑하고 아끼되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이 마지막 설교 속에는 참된 순교자의 의연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 똥을 퍼먹은 허임

1840년 1월 30일 순교하여 103위 성인 가운데 오른 허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포청에 끌려갔는데 심한 혹형으로 배교를 하였었다. 그러나 곧 그것을 뉘우치고 즉시 재판관을 찾아가서 말했다.
"나는 죄를 지었으나 지금은 그걸 뉘우칩니다. 입으로는 배교하였으나 마음으로는 교우였고 지금도 교우입니다."
재판관이 그를 다시 옥에 가두었는데 옥사장들이 그를 괴롭히며, "말로 취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네가 뉘우친다는 표를 우리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대소변이 가득 찬 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참으로 뉘우친다면 여기 사발이 있으니 저 통에 있는 것을 퍼서 먹고 마셔라" 그러자 허임은 서슴지 않고 그 것을 한 사발 듬뿍 퍼서 단숨에 삼켜버리고 다시 뜨려고 하니 옥사장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만 두어라, 그만 둬. 그렇지만 여기 십자가가 있으니 네가 배교하기 싫거든 십자가 앞에 엎드려라."  허임은 꿇어서 이마를 땅에 대고 조아리며 배반하였던 예수를 온 마음을 다해 통회하고 예배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배교를 취소하고 심한 매질과 함께 옥중에서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주님을 파는 아버지는 원치 않습니다

후르레스끄라는 성도는 죽도록 매를 맞고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와 칼로 고문을 당했습니다. 간수들은 굶은 쥐들을 감방에 들여 놓아, 그는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눈을 잠시 붙이려고 하면 쥐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쥐들을 쫓아야만 했습니다. 간수들은 그를 2주동안 밤낮으로 세워놓고 동역하는 성도들을 배반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의 14살난 아들을 데려다 그의 앞에서 사정없이 채찍질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이들에게 말해야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러자 그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주님을 파는 아버지를 원치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만약 이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예수님과 조국을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악에 찬 간수들은 소년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습니다. 감방벽은 붉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소년은 주님을 찬양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주후 32년 경 겨울에 로마 황제는 군인들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은 이교 신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그 칙령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그 직분을 잃을 뿐 아니라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300년 동안 무적의 사단이었던 12사단의 대장은 자기들의 부하를 불러 모아 놓고 그 칙령을 읽어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2사단 군사들이여, 여러분은 여러 전투에서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황제의 법에 순종함으로써 제국의 가이사에게 충성을 다 하는데 앞장섭시다. 내일은 우리 사단이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얼마 뒤 두 명의 군인이 장군을 찾아 와 12사단에는 40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그들은 이교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장군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들에게 말하시오, 만약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무기를 압수당하고 그 직책에서 쫓아 낼 것이며,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리 알고 깊이 생각하고 좋은 쪽을 선택하라고 하시오," 그 날 밤 진영에서 4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시편을 읽고 찬송을 불렀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제사 참여를 거부하자 처형하라는 장군의 명령이 떨어졌다. 팔과 목이 묶인 채 제사를 거부한 사람들은 얼어붙은 호수 근처로 끌려갔다. 해가 지자 그들은 벌거벗긴 채 호수 한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들이 세운 큰 전과(戰果)를 참작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철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호수 옆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고 제사를 드리기로 작정한 사람을 위해 따뜻한 목욕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이들이 호수 가운데로 끌려가자 차가운 바람이 얼어붙은 호수 위로 불었다, 목욕탕을 지키고 있던 보초병은 호숫가에서 장작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 보초병은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 가자 찬송 소리가 약해졌다. 그 때 보초병은 그리스도인들의 중얼거리는 기도 소리와 함께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런데 조금 후에 그 천사의 찬송 소리가 바뀌어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39명, 순교자 39명, 그리고 39개의 면류관이로다 " 그때 그 보초병은 따뜻한 목욕탕으로 걸어오는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즉시 그 보초병은 무기를 놓은 채 소리 질렀다. "여기 내 옷을 입으시오. 내가 당신을 대신하겠소!" 그리고는 그 보초병은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로 얼어붙은 호수 가운데를 향해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40명, 순교자 40명, 그리고 40개의 면류관이로다." 다음날 아침 장군은 죄수들을 끌어내라고 명하였다. 얼어 죽은 시체들이 호수 한가운데 쌓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보초병의 시체도 있었다. 그가 주님을 안 것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주님의 품에 안긴 것이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 순교자 기념관

용인에 가면 한국선교백주년순교자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 3층을 올라가면 그곳에 한국에서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순교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에 순교자 사진 마지막에는 사진박스는 있는데 사진은 없었습니다. 대신 거울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자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젠 당신이 순교할 차례입니다.
(김홍진목사)

▣ 순교에 관한 성경말씀

0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2)
0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10: 39)
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 24, 25)
0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목숨을 잃는 사람은 보존할 것이다.(눅17:33)
0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5)
0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8)
0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0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 13- 14)
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요10:17- 18)
0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25)
0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롬5:7)
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2: 30)
0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0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요한계시록14:13)


 

▣ 믿음을 지킨 사람 

 

나는 초대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순교사를 배울 수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폴리갑이었다. 그는 서머나의 감독으로서 86세에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그가 화형에 처해지는 순간에 로마의 군사들도 신망이 높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던 그를 죽이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한마디만 거짓말을 하시오"라고 회유했다. 그때 서머나의 위대한 감독 폴리갑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예수님은 86년 동안 나에게 한 번도 거짓을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예수님은 한 번도 나를 배신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구차한 생을 살겠다고 거짓을 말하겠소. 어서 나를 죽이시오." 그리고 폴리갑은 원수를 위해 기도한 후 장작더미에 올라 장렬하게 순교했다. 이것이 충성스러운 사람, 신실한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는 교회가 이런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충성을 다하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눈물 나게 하는 이야기」/ 김병삼 

* 기도: 주님, 도처에서 종말의 징조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천국을 소망하기 원합니다.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해질지라도 인내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생명의 삶

 

▣ 십자가의 길

15년 전쯤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성지순례 코스인 비아돌로로사를 교인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걸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주님의 거룩함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길옆으로 관광 기념품 가게들과 호객행위에 여념 없는 상인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순례객들은 그 사이를 헤집고 걸어야 했다. 원래 십자가의 길은 조용한 산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살면서 따르는 도가 아니다. 죄악과 고통, 욕심으로 혼탁한 시장판 같은 세상 속에서 증거하는 것이다.
 최근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재일대한기독교단과 8·15 남북평화 기도회가 열린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고난의 100년을 겪으면서도 조국과 일본을 위해 기도해온 재일동포들, 200개가 넘는 문화강좌를 마련하고, 학교와 유치원을 세워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를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교회가 벽을 허물면 하나님의 생수가 넘쳐 흘러 세상을 살린다(겔 47:1∼12).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 헌신된 선교사들의 순교

본문: 시편 86 장 9 절
"주여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

아우카 부족에 대한 선교 이야기입니다. 아우카 부족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은 가톨릭 신부, 상인, 석유탐사자 등 수백 명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인만 보면 죽여버리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준비해오고 있는 5명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1955년 9월 정글 속에서 그들은 아우카 부족의 마을을 발견하였습니다. 몇 달 동안 비행기에서 바구니 하강 장치를 통해 칼, 옷가지, 자기들의 사진 등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교제가 무르익었을 때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56년 1월 6일, 10여 명의 아우카 남자들과 대면하기 직전 그들은 부인들에게 전신을 남겼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4시 30분에 다시 연락하겠소. 그때엔 아마 놀라운 소식이 있을 것이오.’ 그들은 실종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 뒤 아우카 부족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명의 헌신된 선교사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고자 자신의 생명마저 바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증거되기를 원하시며 이 일을 해낼 일꾼을 찾으십니다.

* 기도: 나의 섬김을 통하여 온 세계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날이 속히 오게 하소서.

 

▣ 죽음 앞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

본문: 시119:87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미국 독립전쟁 무렵인 1776년에 22세의 젊은 나이로 교수형을 받은 네이턴 헤일은 영국군의 기밀을 훔치다가 들켜서 죽은 미국군 사병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헤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립할 조국을 위해 내가 바칠 수 있는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한편 1960년에 소련 상공에서 첩보비행을 하다가 체포된 프랜시스 파워즈는 소련 정보요원들의 신문을 당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이런 짓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다. 미국 CIA가 강제로 시켜서 했을 뿐이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던 죄밖에는 없다."    그는 2년 후에 미국에서 잡힌 소련 간첩과 교환되어 살아 돌아왔다고 합니다. 헤일은 비록 죽었지만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오래 남는 인물이 되었고 파워즈는 살아 돌아왔으나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고통받고 핍박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는 자세야말로 '순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순교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면서 확신 있게 행동하는 자에게는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피할 길을 허락하십니다.

* 기도: 고통받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인도해 주소서.


 

▣ 순교란 무엇인가

최근 목회자 5명의 이라크 무단입국과 급거 귀국 소식을 접하고 기독인들은 물론 많은 국민이 경악했다. 무엇이 목숨을 담보로 해서 모술(구약시대의 니느웨)까지 가게 했을까라는 ‘건강한’ 궁금증보다는 어떻게 이토록 무지할 수 있을까라는 조소 섞인 비난이 주종을 이뤘다. 그 누구보다 ‘순교의 ABC’를 알아야 할 목회자들이 왜 그토록 무모하게 ‘순교 한탕주의’를 신봉하는 것인지 우려됐다.

기자는 이 소식을 듣고 순간 서머나(지금의 터키 이즈미르지방)의 감독 폴리캅(AD 70∼156년)이 떠올랐다.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한 세대와 그 후의 세대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 있던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서머나에 기독교 박해의 광풍이 불어닥쳤을 때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받았다. 당시 크리스천은 화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서머나의 통치자는 폴리캅을 살리기 위해 “단 한 번만 그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그 후에는 어떤 일을 하여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회유했다.

이에 대해 폴리캅은 “86년간 예수님은 나를 단 한 번도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 분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장작더미위에 앉아서 기도하며 순교자 반열에 들어갔다. 그의 순교로 인해 서머나에서 기독교는 쇠퇴하기보다 더 많은 주의 종들을 배출했다.

폴리캅의 순교정신과 비교할 때 이번 목회자의 이라크행과 순교론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다.“우리는 순교 각오로 이라크에 입국했다” “우리가 죽으면 시신을 실험용으로 써달라. 순교자 OOO”라고 적힌 목걸이를 한 목회자의 위풍당당한 모습.“당신들이 죽고 싶지 않고 모술의 기독교인을 죽이고 싶지 않으면 즉시 돌아가라”고 한 현지 목회자의 절규. 모두 한 기독교의 모습인데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한국 목회자들의 잠행이 진정 현지 기독교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면 하필이면 라마단 기간을 선택했는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테러대상이 된 한국인이,그것도 목회자 신분으로서 현지 기독인들조차 반길 수 없는 시점을 왜 선택했느냐이다. 둘 중 하나다. 라마단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든지, 알았다면 ‘죽음의 클라이맥스 적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중동선교사는 “라마단 기간에 모슬렘들은 외국인을 만나면 이슬람을 믿으라고 부드럽게 권유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선교적 기회로 여기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선교사 입장에서 가장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때가 라마단 기간”이라고 지적했다. 즉 평소에 코란을 잘 안 읽던 모슬렘도 괜히 더욱 신실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문제는 이슬람권내에서 ‘이라크에서의 테러와 살상’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하는 부류에 비해 미국 및 미국에 협력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이라크의 적이자 모든 아랍 모슬렘들의 적이라고 느끼는 부류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5명의 목회자들은 바그다드에서 잠시 머무를 호텔조차 잡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순교는 결코 개인 영웅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하면 좋고 하지 못하면 아쉬워 할 선택과목도 아니다. 고난과 십자가신학의 절정에 들어선 특별한 기독교인들의 특권이자 선물이 순교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를 위해 순교를 선택하려는 것은 오욕이다. 하나님의 뜻과는 유배된다. 순교는 계획이 아니다. 좀더 쉽게 하나님이 되고 싶은 잘못된 유혹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함태경 국민일보 기자


▣ 참된 기독교 신앙(59)

재미작가 김은국 씨의 소설 순교자를 읽어보면, 북한 공산치하에서 12명의 목사가 체포되어 처형을 당합니다. 사람들은 처형당한 목사들을 순교자라고 칭송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12명 모두 처형장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저주하면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12명의 목사들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의 관점으로는 초대 교회 당시에 기꺼이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바쳤던 성도들의 행위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진실한 성도는 내가 병들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참된 신앙은 사업에 실패해서 빈털터리가 되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죽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 뚜껑 없는 감옥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는 뚜껑 없는 감옥이 있다.기독교인을 박해했던 영국의 메리 여왕은 젊은 부부와 어린 세 자녀 등 일가족 5명을 뚜껑 없는 감옥에 수감했다. 사방이 140㎝ 정도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붕이 없다. 메리는 그 가족에게 “주 예수에 대해 믿음을 지키려면 그 안에서 죽으라. 만일 살고 싶거든 신앙을 포기하고 담을 넘어 집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 가족은 신앙 양심에 따라 죽음을 선택,영생의 길을 갔다.

그후 영국에서는 세계적인 교회 지도자들이 많이 태어났다. 장로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낙스와 세계적인 전도사 존 웨슬리,세계 여러 나라에 많은 선교사를 보낸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온 것은 순교자들의 피의 대가다. 구원과 영생,평화의 복지는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들로 인해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 민족과 교회를 위해 죽은 밀알들이 있다. 깨끗한 양심에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다. 만일 내가 뚜껑 없는 감옥에 들어간다면….

/최낙중 목사(관악교회)

▣ 주님을 파는 아버지는 원치 않습니다

후르레스끄라는 성도는 죽도록 매를 맞고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와 칼로 고문을 당했습니다. 간수들은 굶은 쥐들을 감방에 들여 놓아, 그는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눈을 잠시 붙이려고 하면 쥐들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쥐들을 쫓아야만 했습니다. 간수들은 그를 2주동안 밤낮으로 세워놓고 동역하는 성도들을 배반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의 14살난 아들을 데려다 그의 앞에서 사정없이 채찍질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이들에게 말해야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차마 볼 수가 없구나."
그러자 그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주님을 파는 아버지를 원치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만약 이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예수님과 조국을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악에 찬 간수들은 소년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습니다. 감방벽은 붉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소년은 주님을 찬양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 Yes, I believe in God (그래, 나는 하나님을 믿어)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시의 남서쪽에 리틀턴이라는 지역에 있는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학생 25명과 용의자 2명이 총기 난사 속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 가운데 살아남은 여학생이 증언한 놀라운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마피아 단원 둘이 총기를 가지고 들어와서 학생들을 난사하고 있었을 때, 그곳에는 17살 된 캐시 버넬이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총을 들고 있던 하나가 그녀의 목에 총구를 겨누고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냐?”
만약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했다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그녀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어”(Yes, I believe in God).
그러자 그는 총구를 캐시의 가슴에 겨누고는 마구 총을 쏘았습니다. 캐시의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크리스천 십대들 사이에서 “나는 하나님을 믿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운동이 일기 시작했고, 플로리다 주의 한 도시에서는 2천 5백 명의 십대들이 모여 감동적인 신앙고백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이 집회는 마약 속에 찌들어 죽어가던 크리스천 십대들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운동으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소위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빌라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순교자인 캐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삶과 죽음을 통해서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성경의 가치관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내 출세와 경제적인 이익을 앗아간다 해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세상을 향해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동원 목사

▣ 순교적 신앙

천주교 신부님들은 로만칼라를 하고 다니기 때문에 신분이 노출됩니다. 그래서 요즘 개신교단에서도 목사 옷 따로 만들고, 장로 옷 따로 만들어서 입고 다니자는 여론이 있습니다. 장로 옷을 입고 사업하면 사기 치는 일은 아마 한결 적어질 것이 아니냐는 의견입니다.  전에 공산당이 기독교를 박해할 당시 묻는 질문은 오직 하나였다고 합니다.
“너 예수 믿느냐?” 믿는다고 하면 죽는 것이고, 안 믿는다고 하면 사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던 것입니다. 결국 궁극적인 상황에서 믿음은 단 한마디의 고백인 것입니다.
전에 로마에서 기독교를 박해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이 끌려왔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입니다. 총독이 재판정에서 물었습니다. “나이를 생각하라. 예수를 모른다고 해라. 그러면 너는 산다.”
폴리캅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군중들을 향하여 입을 열었습니다.
“예수를 모른다고 하라고! 내가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지만, 그 분은 나에게 한번도 모른다고 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욕할 수 있겠소?”
폴리캅은 산채로 불에 태워졌습니다. 일본에서 카톨릭 교인들이 박해를 받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란 책에 보면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17세기 도쿠가와 막부의 카톨릭 탄압이 심했을 때 요세페 캘러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여 씌어진 역사소설입니다.
“구멍 매달기”란 고문이 있었습니다. 깊은 구멍을 파고 거적에 싸서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인데, 그렇게 두면 사람이 금방 죽습니다. 그래서 귀뒤에 작은 상처를 내서 그쪽으로 피가 떨어지게 하면 오랫동안 죽지 않고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신부님과 가족 식구들이 그 신음소리를 듣게 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예수님을 부인하면 삽니다. 그러나 끝까지 부인하지 않고 순교했던 신앙의 위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순교자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2:36)
"Therefore let all Israel be assured of this:  God has made this Jesus, whom you crucified,  both Lord and Christ."』
우리가 오늘날 필요한 이는 천재가 아니라 순교자이다. 사람들에게 예수에게 대한 복종을 가르치기 위하여서
자기를 몸소 죽도록 복종하는 순교자, 순교자.  사람들은 이 순교자를 쳐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들이 가장 필요한 이가 바로 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순교자,  우리는 순교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한 신학자의 퇴임 송별사중-, S. Kierkegaard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 대한 순교자입니다. 이 순교자는 앞서 가신 예수님을 쫓아가는 순례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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