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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료]수도원의 유래 / 파코미우스(St. Pachomius)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08.04.20|조회수71 목록 댓글 0

수도원의 유래 : 파코미우스(St. Pachomius)

 


 

 

파코미우스(286-346)는 대표적인 사막교부인 안토니의 생애기간 중에 활동했고 안토니보다 10년 전에 사망했다. 그는 고(high) 이집트에 살았던 비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군 생활 중 나일강의 배 위에서 자신의 몸을 보살핀 그리스도인들의 자선활동에 감명을 받아 복무를 마친 후 세례를 받고 금욕의 길을 택하였다. 그는 320년에 이집트 테바이스(Thebais)지역의 타벤니시(Tabennisi)라고 불리는 황폐한 시골 마을을 찾아가 거기서 팔레몬(Palemon)이라는 수도자의 지도를 받았다. 후에 팔레몬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도 파코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수도원을 세우라는 한 이상(vision)이 그를 붙잡았던 것이다. 그는 수도생활을 열망하는 이들과 함께 기꺼이 미지의 세계를 열어갔다. 처음 그는 은둔수도의 소명을 받은 것 같았으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또 다른 수도형태였다. 파코미우스는 은둔자들을 모아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맨 처음 그의 형이 그의 수도생활에 동참하였고 이후로 다른 이들이 그의 곁으로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수도원적 이상에 동조하여 제자가 되었다. 파코미우스는 이들 초심자들에게 위대한 지혜를 펼쳐 보였다.

 

 많은 이들이 은둔 수도생활에서 번잡한 생각에 빠지기 일쑤였고 수도적 삶이 점점 산만해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수도자들이 자신의 모든 시간을 공동체 생활 안에서 함께 고된 노동을 감내하면서 동시에 영적인 훈련에 헌신하도록 이끌었다. 그들은 상호간에 서로 도움이 되고, 방문자들을 환대하고 상담하기 위해 은둔 수도사의 성숙한 인격을 배우는 동시에,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는 등 "사람들에 대한 봉사" 차원에서 공동생활을 추구했다. 그들은 공동생활의 근거를 행 4:32-33에서 찾았다.

 

  사막의 은둔 수도자들이 금욕과 고행을 통해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소원했다면 파코미우스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사람의 일상적 삶 안에서, 그 곁에서 일상의 음식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고 약간의 고기와 빵과 소금과 물을 먹으며 노동과 일정한 규율 안에서 공동수도를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상부 이집트(Upper Egypt)의 수도운동은 하부 이집트에서 발생한 것과는 다른 형태를 취했다. 테베의 타벤니시(Tabennisi)에서 시작된 이같은 조직적 수도원 운동은 한 사람의 영적 교부를 중심으로 하여 은수사들이 모였던 초기 사막수도와는 달리 형제들이 연합하여 일하고 기도하는 공동체였다.

 

이런 파코미우스의 경험은 후에 수도원 운동의 발달에 대단히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파코미우스 수도원 운동은 사막의 개인적인 은둔 수도운동이 하나의 형태를 가진 공주(共住)수도운동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은둔 수도의 고행보다 수도원이란 공동체적 삶을 지향했다. 타벤니시의 수도원은 점점 커져갔다. 곧이어 파바우(Pabau)에도 수도원을 세웠고, 얼마 후 9명의 남성 수도사와 2명의 여성이 포함된 케네보스키온(Chenoboskion)에 있는 한 작은 수도원이 파코미우스가 죽기 전 그를 따르게 되었다.

 

  파코미우스 수도원 운동은 수도사들이 개인 방에 거하거나, 개인 기도를 의무적으로 하고, 일요일에만 성찬을 행한 일, 압바에 대한 순종의 의무 등은 다른 은둔수도자들과 동일 선상에 있지만, 이 공동체에 가입하고자 하는 인물은 누구나 전 재산을 완전히 포기하고 상사에게 절대 복종할 것을 서약했으며 구성원들은 모두 육체 노동을 해야 했으며 그 어떤 사역도 거부할 수 없었다. 기본 규칙은 상호 봉사였으므로 비록 명령하는 위치에 있는 자라도 절대 복종의 서약에도 불구하고 하급자들을 섬겼다.  그의 수도원 운동의 특징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가. 규율의 도입 - 압바에 대한 수도사의 관계와 수도사들 상호간의 관계는 확실한 규율에 의해 규정되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거룩한 공동체"에 속했다고 생각했으며 수도원 규칙을 준수하고 동일한 규범을 지키며, 질서를 중요시 여겼다. 이는 조직 내적 질서와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순종의 대상과 권위는 규칙에 있게 되었다.


    나. 공동생활 - 규율의 제정은 확고한 규정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공동체의 건설을 의미한다. 규정은 하나님이 계시한 질서로 간주되었고, 파코미우스는 수신자와 중개자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이런 생활 형태에서 원시 그리스도교의 한 혁신,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의 철저한 제자도를 실현시킬 가능성을 보았다. 이들의 이런 내적 일치성은 건축상의 일치성을 통해 외형적으로 보존되었으며, 개인 명상의 의무를 지킴과 동시에 감독자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순종을 통해 개인주의와 독단의 위험요소를 제거하였다. 그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또한가지는 공동식사였는데, 공동식사는 매일 두차례 이루어졌으며 침묵 속에서 그리고 확고한 좌석규정 속에서 행해졌다. 그들은 기도로 이루어지는 매일 두차례의 예배를 드렸고, 공동노동으로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분업화한 노동을 수행하였다.


    다. 노동과 훈련의 엄격성 - 수도원 내에서는 철저히 엄격한 훈련과 노동을 해야 했고 단지 수도원을 떠나는 자에게만 완화되었다. 그러나 한번 수도원을 떠나면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새로 입회하는 자는 누구나 주기도문과 일정한 수의 시편을 암송해야 했으며, 모든 수도자에게는 독서의 의무가 있었고 강의와 시편 낭송이 예배 모임에 필수적이었다.


    라. 가난 - 광야의 금욕가들은 가난하게 살기는 했지만 가난의 정도와 범위는 스스로 결정했다. 하지만 수도원에 거주하는 수도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개인의 소유는 전혀 없었고 기본적인 삶에 필요한 것들은 수도원 자체에서 해결하였다. 이는 수도원이 갖고 있는 소유물들은 "그리스도의 재산"(Eigentum Christi)이라는 사고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류의 사고는 후일 정치적이나 사회적 혼란기에 수도원의 재산을 노리는 사람들과 세력에게 유력한 방어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수도원의 소유는 그리스도에게 양여된 재산이고, 이 재산으로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엄격함 속에서도 파코미우스는 지나친 금욕은 반대했다. 극단적인 금욕은 그가 설립한 공동체 생활에 명백히 배치되었다. 단지 그의 수도원 운동은 집단적 통솔을 받는 운동이었다.

  은둔자들과 수도원주의자들은 때때로 삶의 방식에 대하여 긴장 관계에서 논쟁하거나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어느 것이 더 완전한 삶인가에 대하여 논쟁하였던 것이다. 은둔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금욕적 삶의 양식에서 모범이며 은둔에서의 금욕이 완전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고 반면 수도원주의자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표징인 거룩함과 완전함을 보여주는 삶의 양식이 곧 수도사의 삶"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후일 수도원이 부와 권력의 창고로 전락된 시기도 있었으나 클뤼니 등의 수도원 개혁운동으로 그 순수함은 회복될 수 있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목사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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