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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해설] 새찬송가 545장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이 찬송가는 일본 미다니 다네끼지(三谷種吉, 1868-1945) 목사가 펴낸
「福音唱歌, 1901」에서 이장하(李章夏, c.1886- ?) 목사가 번역하여
《신증 복음가, 1919》119장에 실린 찬송이다.
*작사자 미다니 다네끼지(三谷種吉, 1868-1945) 목사는 1868년 8월 24일
일본 고베(神戶)시에서 미다니 사스께(三谷佐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3개월 후에 일본이 개항(開港)되어 그가 사는 마을 건너 편에
외국인 거류지가 생겨나자, 미다니 아버지는 우리 속어로
「양키물건」장사를 하다가 미국 선교사 매튜 페리(Perry, Matthew Calbraith,
1794-1854) 목사에게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1875년 아내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다네끼지는 아우 도라노스케(寅之助)와 함께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나가는 교회는 일본 최초의, 일어로「구미아이교까이, 組合敎會」라
부르는 감독파교회(Congrigational Church)였다.
다네끼지는 15살에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 영어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하자 고베로 돌아와 외국상사에서 통역을 하였다.
거기서 이태리인에게 첼로 · 바이올린 · 아코디언 · 코넷 등을 배우고
음악 이론도 배웠다. 음악의 재능이 탁월했던 그는 특히 아코디언을 잘 쳤다.
그는 1897년 전도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수입이 썩 좋은 상사를 그만두었는데,
선교사의 간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그가 선교사와 함께 걸어다니며 전도 하자 불교 중들의 핍박이 격심했지만,
옛날 영국의 웨슬리안처럼 아코디언을 치고 찬송을 부르며 노방전도를 하였다.
신기하고 신나는 아코디언 소리에 몰려오는 아이들을 모두
주일학교로 데리고 가서 가르쳤는데, 어찌나 아이들이 많이 모여드는지
수용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다니는 사람들이 금세 복음을 배울 수 있도록「창가(唱歌)」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하고「福音唱歌, 1901」를 출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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