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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해설] 새 찬송가 301장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15.09.26|조회수737 목록 댓글 0

 

 

 

 

 

   

  
 [찬송가해설] 새 찬송가 301장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작사자 사사오 데쓰사부로(笹尾鐵三郞, 1868-1914) 목사는 1869년에 일본 이세(伊勢)에서 태어난 홀리네스파 목사다. 무역업자로 성공해보려고 1888년에 미국으로 갔다가 어느 목사 부인을 만나 예수를 영접하였다. 그 후 샌프랜시스코에서 열린 전도집회를 구경 갔다가 하나님께 헌신하였다. 감리교인 가와베 데이끼지(河?貞吉, 1864-1953)와 함께 샌프랜시스코, 시애틀 등지에서 전도를 하였다. 1894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마쓰에(松江)에서 벅스턴(Buxton, Barclay Fowell, 1860-1946) 영국 성공회 선교협회 선교사의 지도를 받아, 후에 가와베 데이끼지가 시작한 일본메소디스트 교회에 출석하였다. 후에 벅스턴 선교사의 소개로 나까다 쥬지(中田重治, 1870-1939)를 만나 1901년 동양선교회 성서학원 교수가 되었다. 그 동안에 벅스턴 선교사와 함께 영국과 미국을 돌며 순회전도를 하였다. 벅스톤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마쓰노 기꾸따로(松野菊太郞)와 함께 일본 홀리네스교단 최초의 찬송가인「구원의 노래」(救いの歌, 1894) 를 편집 발행할 때 많은 찬송을 번역?창작하였다. 1913년 성서학원을 사임하고 전적으로 전도사업에만 힘을 기울여 규슈(九州)에서 혹까이도(北海道)까지 전국 순회전도에 힘썼다.

작곡자 박재훈(朴在勳, 1922- ) 목사는 1922년 강원도에서 박창숙의 4남으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평양으로 가서 요한학교에 입학, 장수철, 윤춘병 등과 함께 1943년 3회로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제국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곧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훈련소에서 도망쳐 귀국, 평남 강서군 문동국민학교의 교사로 교편을 잡은 그는 이유선(李宥善, 1911-2005) 교수에게 작곡법을 배웠다. 1946년 4월에 월남하여 서울 용산에 있는 금양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46년 그 동안 작곡한 동요들을 모아《일맥동요집》을 출판하였다. 일맥(一麥)이란「한 알의 밀알」을 뜻하는 그의 아호이다. 그는 대광고등학교의 음악교사로 자리를 옮긴 후, 야간으로 새로 설립된 중앙신학교에 입학 제1회로 졸업하였다. 6?25 사변 때에는 해군 정훈음악대에 복무하였다. 전쟁 후에는 기독교방송 음악과장, 영락교회 찬양대 지휘자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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