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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현장

[스크랩] 다락방 해외교회 순방(27)/ 시카고 하나로 교회 (이덕신 목사 담임)

작성자만년청년-이경형|작성시간10.02.18|조회수775 목록 댓글 1

 
" 다락방 해외교회 순방(27)/ 시카고 하나로 교회 (이덕신 목사 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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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해외교회 순방 : 시카고 하나로 교회 (이덕신 목사 담임)]

새로운 개혁과 정복의 시간표 누리는 교회

고향을 떠나는 사람은 범죄자이거나 영적문제자 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가진 이일 것이다. 더군다나 말도 풍습도 낯선 타향, 그것도 외국에서 핍박받는 복음과 함께 현장을 정복하는 메시지를 붙들고 승리하는 것은 당연히 누구나 해야 될 일이지만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골프 로드 변에 새롭게 단장한 교회간판이 산뜻하게 다가온다. 누가 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붙여진 간판은 차를 타고 달려가면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 교회가 바로 예전에 ‘시카고 임마누엘교회’로 불리다가 최근에 교회건물을 구입하고 시카고 전도 캠프 후에 진행된 시카고 전도 집회가 끝나는 2007년 6월 5일에 입당 예배를 드린 바로 그 ‘시카고 하나로 교회(Oneness Church Of Chicago 담임 이덕신 목사)’이다.

“우리 가문에 술 내력이 있었어요. 군대있을 때인데 술에 취해 실수하다가 중령에게 걸렸고 그가 권총으로 죽인다고까지 했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도 개구리복 입고 술에 묶여 살았는데 CCC에서 사 영리로 전도하는 말에 믿음이 생겨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술집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 믿음을 고백하는 이목사의 말이다.

경희대를 다니며 정동 CCC 회관에서 순모임으로 양육 받았다. 당시에는 마음이 뜨거워 전도지를 구해 광화문에 나가 노방전도를 하기도 하며 대학을 졸업할 때 CCC에서 간사제의가 있었으나 ‘한국화이자’에 취직하였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돈을 많이 주는 회사였는데 회식자리에 갈 때마다 찬송하고 간증하니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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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중에 흰옷 입고 설교하는 자신의 모습을 신비적으로 느껴 김준곤 목사에게 상의하자 합동 총회신학교를 가라고 하셨다. 신학교를 갈 때 성구를 천개정도 암송했고 매일 성경읽기를 하였다. 총신에 가서도 총신 뒷동산에서 밤10시마다 기도하였다. 총신 3학년 학기가 거의 마쳐 질 즈음 미국으로 오게 되고 결혼하였는데 사모는 그때 대학 3학년이었다고 한다.

류재한 사모는 17살 때 미국으로 왔고 18살 때 신앙을 갖게 되었다. “용기가 많으신 아버지께서 우리가 미국 이민 올 수 있도록 미국에 먼저 2년 먼저 오셔서 준비하시다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류재한 사모의 말이다. 아버지가 안계셨지만 계획대로 결국 어머니와 가족이 미국으로 와서 고생을 밥 먹듯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회를 다니면서 무슨 뜻인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까 목사 사모가 되면 일을 많이 할 것같이 느껴져 사모가 되기로 자원하고 결심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목사 될 사람이라면 여기저기 중매 볼 것 이 아니라 누구든지 첫 번째 만나는 사람과 무조건 결혼한다는 원칙을 세워놓았다고 하는데 당시 신학생이었던 이 전도사의 청이 들어오자 무조건 한국 가서 모시고 들어왔다고 한다.

미국에 와서 ‘휴스턴 한인교회’ 다니며 교회에서 전도사 사역을 하였다는데 미국의 실정을 모르고 사역을 하다 보니까 부유한 성도에게 여러 가지로 눌렸다고 한다. 시련의 시간표가 온 것이다. 결국 시카고로 와서는 목회를 그만두고 세탁업을 시작했는데 사모가 집 한 채와 좋은 차는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해 기도했는데 아파트와 차를 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3, 4년이 지나자 이 목사는 이상하게 설교가 하고 싶고 눈에서 눈물이 자꾸 났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는 돈을 세다가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기도 했다. 결국 사모가 당신은 신학공부를 다시 하라고 해서 야간에 신학공부를 하면서 기도하다가 결국 지하실이 있는 집에서 100불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하나님은 이제 전도자로 쓰일 이 목사를 부르시는 시간표가 되었다. 93년도에 한국의 칠보산에서 기도하고 돌아가려는데 어떤 목사가 부흥회 자료라고 내놓는 것이 있기에 들어보니 맞는 말이어서 자료로 얻어왔는데 그분이 정은주 목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95년 5월에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다락방 집회가 있었다. 류광수 목사와 신학교 동창이었던 이 목사가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석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인생과 목회를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저 사람이면 좋겠다.” 처음 류 목사의 메시지를 받으며 이 목사가 느낀 생각이었단다. 둘째 강의에는 사모를 데려갔다. 류 목사와 인사를 하는 가운데 류 목사는 “전도자는 굶어 죽지 않으니 사모에게 일시키지 말고 전도시키라”고 하면서 “죽으면 순교”라고 말했다. 처음 만남에서 당돌하게 그런 말을 하는 류 목사를 볼 때 ‘미국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좋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이 목사는 회상했다.

부산에 한번 놀러 오라는 말을 듣고는 필리핀 선교 후 사모와 함께 한국으로 갔다. 부산에서 합숙훈련을 받고 돌아온 사모가 먼저 복음편지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중고사역을 해서 청소년을 알고 있었는데 도저히 변화가 안 되는 거였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복음편지로 다락방을 하다 보니 아이들도 바뀌고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류 사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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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사모는 결국 97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무디신학원을 2년 다녔는데 한국 주교교육의 엉성함을 느끼고 선교사업의 의미를 발견함과 동시에 1.5세 2세 교육의 사명을 발견하고 교육대학을 들어갔다. 미국 감옥에서 마약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보니 안에서는 신앙생활이 되어도 나와서는 실패하는 것을 보며 2세 사역에 방향을 맞춘 것이다. 다락방을 하기 전에는 사모로서 변하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과 열심히 해도 실패하는 이유를 몰랐으며 충성하는 장로들의 가난과 갈등으로 너무나 힘들었는데 복음운동하면서 모든 이유를 발견하고 신자의 축복을 알게 되고 완전히 회복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합숙을 받고 온 이 목사가 복음운동을 시작하니 그동안 불건전 신비운동에 있던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전도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락방이 되어지기 시작하자 방해꾼이 일어났고 97년에 이단론이 대두되었지만 하나님이 이길 힘을 주셔서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고 다락방에 갈등 느낀 적이 없다고 이 목사는 말한다.

처음 시카고에서는 성민교회에서 20여 명의 목회자들이 전도학교를 진행했다. 그러다가 삼일교회로 옮겼고 현재 시카고에는 6교회가 참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목사와 함께 다락방 이전에 신비운동에 있던 시애틀의 장휘명 목사를 기도원에서 만났을 때 복음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차를 타고 가며 류 목사의 복음편지 메시지를 틀어 주었다. 관심을 보이기에 테이프를 한 개만 빌려 주었는데 그것이 시애틀에 복음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목사는 당시 워싱턴에 60번이나 오가며 신학원을 다니며 미국집회는 거의 참석을 하였는데 지금도 감사한 것이 언약을 알게 하시고 복음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은혜가 크기에 하나님이 하셨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언약가진 목회자에게 있어 자녀들은 면류관과 같다. 85년생인 두루와 87년생의 복음 두 아들은 PK이며 MK이다. 류 사모는 이들에게 고교 때까지 혼내주기를 겁내지 않는 두려운 존재였다. 엄마는 가장 무섭고 가장 좋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틀을 주되 풀어주고 규모를 가르쳤다고 류 사모는 말했다. 사모로서 또한 교육자다운 가정교육이었다. 이들에게 렘넌트 세계대회를 매년 참석케 했다. 다행이도 말썽 없이 자라 이제는 공부와 운동, 교회 일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엘리트코스를 가는 미국 청소년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동생 복음이는 골프 농구 기타 드럼에 능하고 두루는 야구 농구 소프트볼 피아노 기타가 수준급이다. 이들이 가진 달란트로 봉사하며 필요하면 교회에서 운전도하고 주보제작과 교사활동으로 바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해에 교회가 교회건물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부르시더니 5천불을 건축 헌금 하라고 하실 때 조금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두루는 말했다. 그러나 이내 언약으로 돌려 생각하니 목사님의 말씀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순종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학교에서 조교 자리가 나와 연구원생으로 10-12시간 일하고 병원일도 하며 심부름하고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며 기회가 되는 대로 몸을 아끼지 않으며 주일은 또 힘껏 통역도 하며 한해를 보냈는데 1년을 지나 결산해보니 5천불 작정한 건축헌금이 무려 1만 2천불이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와 가정, 일 모두가 힘들지만 잘 적응하고 있고 이것이 내일을 위한 준비라고 본다고 했다. 때로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돈은 작은 문제라고 보고 교회와 미래 복음화와 선교위해 우리가 쓰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것을 배우고 보므로 헌신이 두렵지 않다고 두루는 어른스럽게 말했다.

하나로교회 여전도회는 35세부터 55세까지의 한나회와 56세 이상의 에스더회 두 개가 있다. 어느 여전도회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봉사를 감당하는데 수고하는 자리에 있음이 기쁨이지만 오히려 전도현장을 확보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회장을 맡은 김애희 권사(51)는 말한다. 25명이 한 달에 한번 모이는데 전도신학원 학기 중에는 교회에서 모이고 보통은 집에서 모인다고 한다. 가정의 배후에 역사하는 사단을 모르고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후로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들고 이제 까지 온 것 이 감사하다고 한다.

에스더 여전도회 회장 윤태자 권사(66)는 4명의 회원들이 모일 때마다 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새 교회가 구입되어 어린 렘넌트들을 위해 놀이터를 선물해 주고 싶었으므로 10불씩의 여전도회 회비와 김치를 담거나 산에서 산 마늘을 캐서 판매한 수익금을 합하여 4천불짜리의 멋진 놀이터를 준비했다고 기뻐하였다. 우리교회는 순수한 교회요 가정적 분위기의 편안한 교회라는 윤 권사의 말에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한껏 풍겨 나왔다.

남전도회는 35세 이상으로 구성되어 15명이 모이는데 전반적인 교회 일을 돕고 산업선교에 참여한다. 남전도회는 렘넌트를 후원하고 교회전도에 총력을 기울인다고 회장 류재상 집사(43)는 말한다. 류 집사는 세탁업을 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렘넌트를 키우려고 장학기금인 ‘Seed Money'를 준비 중이고 장학사업과 스포츠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큰딸 다혜가 골프 프로 수업중인데 지역대회에서도 1등을 했고 일본대회도 참여 하는 등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음이 감사하고 아들 석현은 의술을 가진 아프리카 평신도 선교사를 기도하고 있다면서 가족 모두가 복음 안에서 살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실을 보며 비전가지고 도전하면 하나님이 이루심으로 불신앙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산업선교회 회장 정윤찬 집사(43)는 잡화가게를 운영 중인데 장년성도로 구성된 시카고 산업선교가 매월 첫 주 오후 4시에 하나로 교회에서 모인다고 한다. 교회 안에서는 3부 예배를 오후 1시 30분에 드리는데 산업선교메시지를 받고 포럼을 나누고 메시지는 CD로 제작해 자료로 나누어 듣도록 한다고 한다.

“우리교회 산업선교가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산업인이 아직은 미약하지만 사60:22처럼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축복이 다가옴이 확인 됩니다.이제 RUTC와 OMC의 축복 누리기를 원하기에 내 평생 삶을 드릴 가치를 찾았으니 이제야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업선교회장의 말이다.

하나로교회에는 아직 부교역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교회가 조용히 본부 메시지의 흐름을 타는 가운데 인도 받고 있다. 주일 오전 9시에 제직 훈련 및 제자훈련을 하고 있다. 이 목사는 다락방에 생명을 걸었고 이 세계복음화 다락방 운동에 감사하며 RUTC가 축복임을 믿기에 새 성전도 여기에 방향을 맞추었고 시카고 렘넌트 위해 준비하였기에 본당도 렘넌트들이 마음껏 쓰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민족에게 방향을 맞춘 가운데 금번 임직식에 일본인 골프 교사 구노집사를 임직케 하려고 한다. 일본에서 신기섭 목사와 다락방을 하다가 미국에 와서는 교회를 못 찾고 있었는데 옷가게에서 일하던 부인 이창숙집사가 전도 캠프 팀과 만남이 되므로 교회에 인도되어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다. 언어의 불편이 없지 않으나 부인이 통역해주고 성도들과 함께 복음 누리는 것이 좋다며 구노 집사는 활짝 웃었다.

이번에 장로로 임직되는 전용준 집사(60)는 이목사와 16년을 함께한 그야말로 친척과 같은 분이다. 지하실 개척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이목사의 주변에 있으면서 힘이 되어온 전 집사는 복음과 함께 되어지는 역사를 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면서 부족해도 교회와 성도의 본이 되겠으며 세계복음화하시는 목사님의 보호자로 살겠다고 고백하였다.

지난 6월 5일 오전 12시. 하나로교회에 감격의 순간이 왔다. 다윗도 받지 못한 성전건축의 축복을 받아 시대적인 전도자들과 함께 입당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상업용 건물을 교회로 바꾸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셨고 30여명의 성도로 건물구입에 240만 불, 리모델링에 90만 불이 들어간 새 예배당이 지역의 문화 바꿀 성전으로 드려진 것이다.

이민사회에 새로운 언약의 불을 밝히고 세계복음화와 다민족 선교의 응답을 따라 렘넌트 키우는 발판이 되는 RUTC의 축복을 받으며 현재 진행되는 어린이 전도학교와 전도신학원,선교사 훈련원을 잘 섬기는 가운데 새로운 개혁과 정복의 시간표를 하나로교회는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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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임현규 | 작성시간 10.03.10 이 교회가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사역했던 교회인데... 무지하게 고생했던...^^ 그래서, 많이 치유받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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