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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이야기, "아래 한글"의 유래

작성자박일선|작성시간10.10.21|조회수588 목록 댓글 0

* 저의 고등학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입니다. 

 

오늘 얘기는 저에 경험담입니다. 제 자랑을 하는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씁니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아래 한글"이란 한글 워드프로세서 쓰시는 분들 많이 계시죠? 저도 쓰는데 지금 이 글도 "아래 한글"로 쓰고 있습니다. "아래 한글"은 아래와 같이 제가 관계된 얘기가 있습니다.

 

1983년인가 토론토에 산다는 한 한국 청년이 제가 일하고 있던 산호세 소재 텔레비데오 사에 찾아왔습니다. 자기가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 소개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당시 미국에는 "Wordstar"라는 영어 워드프로세서가 판을 치고 있을 때지요. 아마 IBM PC가 막 나왔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 청년이 보여준 한글 워드프로세서 데모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글 자음 모음을 영어 워드프로세서에서처럼 계속 처 나가는데 자음 모음이 정확하게 제 자리를 찾아서 글자로 생성되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알고 보면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그렇게 어려운 프로그램은 아니었는데 (한글의 과학성 때문에) 그때는 참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데모는 그 청년이 가지고 온 애플 컴퓨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텔레비데오 사에서 IBM PC에서 돌아가는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할 의향이 있으면 자기가 개발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워드프로세서를 포함해서 모든 응용 프로그램은 운영체제가 다른 컴퓨터마다 따로 개발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애플 컴퓨터에 돌아가는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IBM PC에서는 안 돌아갑니다.). 당시 Mr. 강은 (현재도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니 이름은 그냥 Mr. 강이라고 해두지요) 인천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부모님을 따라서 캐나다에 이민을 갔는데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던 청년이었습니다. 왜 심리학을 택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공부를 하면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조그만 회사를 세우고 컴퓨터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Mr. 강은 텔레비데오가 한국 계 회사라는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회사의 허락을 받아서 Mr. 강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시작해서 약 6개월 만에 개발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1984년인가 한국 시장에 내놨습니다. 한국 최초의 한글 워드프로세서였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술적인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워드프로세서는 기능면에서는 당시에 쓰이던 한글 타자기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수했지만 종이에 찍어내면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당시 IBM PC에 연결해서 쓰던 대표적인 프린터는 24-pin의 엡센 프린터였는데 바늘 같은 핀 24개를 묶어서 글자에 따라서 어떤 핀은 나오고 어떤 핀은 들어가고 하면서 글자를 찍어내는 기술이었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영자를 찍어내는 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영자보다 훨씬 획수가 많은 한글 글자 하나를 찍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어서 모음 자음 하나마다 키가 따로 있던 한글 타자기에 비해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텔레비데오 사가 개발한 한국 최초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실패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Mr. 강과 계약을 할 때 5년 동안은 Mr. 강이 따로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할 수 없도록 했는데 Mr. 강은 그 약속을 지켜서 5년이 지난 1988년경에 그 동안 따로 개발해 두었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한국에 나왔습니다. 조그만 회사를 세워서 워드프로세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역시 성공을 못했습니다. 아마 그때도 역시 너무 일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글 워드프로세서 사업은 옆으로 제쳐놓고 삼성 같은 회사로부터 계약을 따서 프로그램 개발해주는 사업을 했습니다.

 

여기서 "아래 한글"을 개발한 이찬진이라는 친구가 등장합니다. 이찬진 아시죠? Mr. 강 말에 의하면 (1995년 한국에 잠깐 나왔을 때 Mr. 강으로부터 들은 얘기) 당시 서울 공대 학생이었던 이찬진을 Mr. 강 회사에서 인턴사원으로 몇 주 동안 고용했었는데 이찬진이 Mr. 강이 개발한 워드프로세서에 흥미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연구를 한 후에 고용기간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갈 때쯤 해서 Mr. 강에게 Mr. 강이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여러 가지 미비한 점을 자기가 개선하겠다는 제의를 했답니다. 그러나 계약 프로그램 개발에 정신이 없었고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돈이 안 될 때라 Mr. 강은 이찬진의 제의를 안 받아들였답니다.

 

그렇게 해서 학교로 돌아 간 이찬진은 독자적으로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답니다. 그러나 학생 신분이어서 사업할 생각은 못했고 자기가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소위 shareware로 (공짜 프로그램) 기증해버리고 군대에 갔답니다. 그러나 군대에 있는 동안에 (2년?) 이찬진의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히트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답니다. 미국에도 shareware로 시작했다가 대성공을 거둔 소프트웨어 제품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찬진은 제대한 후에 한글과 컴퓨터라는 회사를 세워서 한글 워드프로세서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그 다음 얘기는 잘 알려진 얘기라 생략하겠습니다. 이찬진은 젊은 나이에 명예와 부를 얻고 아름다운 부인도 만났습니다. 한글과 컴퓨터 사는 한국 최초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창업회사가 되었고 "아래 한글"은 아직도 한국의 대표적인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시 주부생활에 나왔던 저와 한글 워드프로세서에 관한 기사를 스캔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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