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chosun.com/opinion/correspondent_column/2026/06/04/SW4MQGG6ZJAQ3KZAW3DKXKNHD4/
용어 정리:
소년반 - 1978년부터 시행된 매년 15~16세 영재를 뽑아 학부에 넣고 초고속 트랙을 거쳐 20대 초반에 석,박사 학위를 받게 하는 제도.
양자기술 - 원자, 전자 등 아주 작은 미시 세계에서 나타나는 양자역학적 특성(중첩, 얽힘 등)을 활용해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혁신 기술
병목 - 병의 좁은 목 부분처럼 전체 흐름이나 시스템에서 어느 한 구간이 좁아지거나 막혀, 전체의 처리 속도나 효율이 그 특정 구간의 속도에 맞춰 제한되는 현상
사이클 산업 - 생산, 투자, 수요 및 수익성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산업.
사장되다 - 사물 따위가 필요한 곳에 활용되지 않고 썩다.
내용 요약:
해당 기사에서는 중국과학기술대학교의 '소년반' 에 대해서 다룬다. 이는 1978년부터 매년 15~16세 영재를 뽑아 학부에 넣고, 초고속 트랙을 거쳐 20대 초반에 석,박사 학위를 받게 하는 제도이다. 이는 초기에 비해 굉장히 늘어나 지난해엔 372명에 달했으며, 이렇게 규모가 커진 까닭은 AI, 반도체, 양자기술, 우주항공 인재를 일찍 확보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두뇌 공급망으로 해당 제도가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러한 소년반을 운영하는 까닭은, '창조적 인물의 성취가 개인의 몰입뿐 아니라 비슷한 수준의 인물들과 교류하는 지적 환경에서 발현된다' 는 하워드 가드너의 말에 영향을 받았는데, 소년반은 그것을 제도화하여 마치 '공장'처럼 만들었다. 위의 말과 비슷한 뜻을 지닌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는 신념 하에, 영재들을 한 곳에 모아 평범한 교육 과정 속에서 인재들이 사장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이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 제도에는 단점 또한 존재하는데, 조기 영재 선발은 아이에게 과도한 압박을 가할 수 있으며 지능으로 재능을 규정하는 방식은 위험하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또한 영재 교육이 사회적 특권층의 통로가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해당 기사에서는 이러한 단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특별한 경로를 제공하는 것은 과연 불공정한가?' '모든 아이를 같은 속도와 같은 교실에 묶어두는 것이 언제나 옳은가?'
이 기사에서는 기술 패권 경쟁에 있어 '사람'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입장을 취한다. 첨단 기술의 다른 요소들은 시간과 자본을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기초과학 훈련을 받은 최고급 두뇌는 갑자기 데려올 수 없다고 말하며, 이러한 제도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우리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학생들이 고교 입시, 내신 경쟁에 신경을 쏟는 동안 중국 영재들은 연구실에 들어가 실험을 시작함으로써 더욱 나은 '인적 자원'으로써의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AI에 영향을 끼친 인물 (창업자 등)이 소년반 출신이기도 하다. 한국은 천재들이 여전히 필요한 나라이며. '우리만의 천재 양성소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글에서는 주장한다.
나의 생각:
해당 기사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제도에 대해 긍정적 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나는 이 제도에 대해 기사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싶다. 물론 기사에서 제시한 '제도 발전의 효율성', 인적 자원으로써 기술 발전에 기여 등의 장점을 간과할 순 없으나, 기사에서 제시한 단점에 대해 해당 글에서는 제대로 된 반박을 제시하고 넘어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지능으로 재능을 규정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라는 지적에서 그러하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특별한 경로를 제공한다는 사실 자체가 공정하다고 가정하더라도, '특별한 재능'을 규정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공정할 수 있는가? 지능은 재능으로 직결되지 않고 오히려 노력을 요할 수 있으며 재능 또한 지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재능을 '지능'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것의 편리함 탓일 텐데,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능으로 무엇에 대한 재능이든 재단하는 것은 또한 옳지 않을 것이다. 지능은 우리의 모든 것을 포괄하지 않으며 우리의 수많은 기관으로 이루어진 몸 중 단지 뇌에 담긴 사고 흐름의 결과로서 수치로 보여질 뿐이다. 따라서 나는 지능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분야의 재능을 전부 책임질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잘못된 판단으로 이루어진 재능 분류를 통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를 선별하고 이에게 특별한 경로를 제공하는 것은 그 과정부터가 불공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추구하는 단일한 가치에 걸맞는 사람을 획일적으로 선택하고 이들에게 특권을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며, 그러므로 사회적 특권층의 통로가 되는 미래를 맞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사회적 특권층은 자신들의 사회적 효용에서 기반한 특권을 잃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며, 재능이 선행되지 않더라도 지능을 만들어내어 이러한 특권을 유지하려는 행동을 취할 수도 있는데, 그에 따라서 계속해서 특별한 경로가 사회적 특권층에게만 한정되어 제공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완전히 공정할 수 있는가? 나의 생각이 과도하게 편향된 비약이라 하더라도, 모래알 500알과 501알이 있다면 전자 쪽으로 기울듯 조금의 차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공정으로 귀결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굳이 극단적인 가정을 하지 않아도 이것이 평형 상태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이러한 논의는 뒤로하고, '모든 아이들을 같은 속도와 같은 교실에 묶어두는 것이 언제나 옳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이러한 질문의 본질적 뜻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을 같은 틀 안에 묶어둔다면 그들의 각각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킬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러한 사실이 영재들만을 꼽아 영재반을 창설하여 그들에게만 사회적 특권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을 말하진 않는다. 누군가를 차등적으로 교육할 것이라면 그것은 공정히 모두에게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쉽게 말해, 영재를 영재반에 편성할 것이라면 다른 아이들에게도 각각의 수준에 맞는 교육과 속도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해당 제도는 영재가 아닌 아이들을 똑같은 속도의 교육으로 배제시켜 두고 오직 영재라는 범주에 들어간 아이들에게만 그러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이는 평등이 아니며 공정 또한 아니다. 자신이 자신의 속도대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면 누군가에게만이 아닌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
한편, 다른 관점에서 이 제도가 만들어진 사회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인간을 기술 발전의 자원으로써 소모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이다. 천재 양성소 구축은 정말로 필요한가?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실험에 착수되어 기술 발전을 위해 소모되는 것이 아이들의 행복에 정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이것은 내가 그 아이들이 직접 되어보지 않는 이상 내가 생생히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만 같다. 그렇지만 감히 예상해보자면, 어떠한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렸을 때부터 심하게 부여되고, 특히나 집단 내에서는 또래들과 함께하겠지만 대학교라는 큰 사회에서는 자신의 또래가 없을 터인데, 사회에 대한 적응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진 못할 것 같다. 비슷한 사례로, 우리 나라에서 10살이 과학고에 입학해 학교폭력을 당했던 사건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사건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