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9 양나연 미디어 리터러시 비평 (1학기 9주차)

작성자3309 양나연|작성시간26.06.14|조회수15 목록 댓글 0

<용어 정리>

정치인 비방죄(독일 형법 제188조 등): 공적 대중 앞에 서는 정치인의 활동을 저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욕이나 비방을 처벌하는 독일 형법상의 가중처벌 조항. 대중의 신뢰를 훼손하고 사회적 적대감을 부추기는 표현을 규제하기 위해 존재함.

방어적 민주주의(Wehrhafte Demokratie):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적에게는 민주주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개념. 독일이 나치 정권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이나 혐오 선동, 공적 질서를 해치는 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도입한 헌법적 원칙.


<내용 요약>

https://www.yna.co.kr/amp/view/AKR20260605158500082

지난해 10월 메르츠 총리의 방문에 맞춰 비행금지구역을 알리는 하일브론 경찰 페이스북 페이지에 '거짓말쟁이 프리츠'(Lügenfritz)라는 댓글이 달렸다. 수사당국은 비판 댓글이 잇따르자 38건을 정치인 비방 혐의로 수사했다. '거짓말쟁이 프리츠'는 19세기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토지계약 사기를 친 독일 상인 아돌프 뤼더프리츠(1834∼1886)의 이름에서 온 조롱 섞인 표현이다. 독일 외어링겐 지방법원은 해당 피의자에게 30일치 소득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내렸다. 검찰은 그 댓글이 피해자의 정직함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큰 부정적 편견이나 적대감을 부추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댓글 처벌을 두고 카르스텐 리네만 기독민주당(CDU) 사무총장은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이 정도 표현을 검찰이 처벌하기 시작한다면 정말 선을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 로저스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은 독일의 특별한 역사를 고려할 때 검열에 어느 정도 여지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듣는다며 독일의 검열은 실제로 이런 데까지 확장된다고 비꼬았다. 독일은 그동안 온라인 검열을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비판에 인종차별과 혐오를 선동한 나치 흑역사를 들며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도구라고 반박해 왔다.

 

<나의 생각>

 인간은 일상에서 늘 가면을 쓰고 산다.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은 자신의 얼굴로 말할 때 가장 진실하지 못하다. 가면을 씌워주면 진실을 말할 것이다"라고 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 역시 인간의 사회적 삶을 하나의 연극으로 정의했다. 우리는 타인과 마주하는 '전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사회가 요구하는 배역에 맞춰 연기한다. 무대 뒤편에서 가면을 벗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다.

 이 관점을 대입하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를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한 이번 사건은 대단히 기묘한 블랙코미디다. 정치야말로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무대 아닌가. 무대에 오른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유능하고 정직한 지도자'라는 배역을 필사적으로 연기한다. 그들이 던지는 화려한 수사학, 철저히 계산한 몸짓, 전략적인 생략과 과장은 순수한 진실이 아니라 철저한 연출이다. 관객인 시민 역시 이를 이미 안다. 누군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가 '그 사실을 모르는 배역'을 연기할 뿐이다.

 시민이 페이스북에 적은 "거짓말쟁이 프리츠"라는 조롱은 무대 위 배우의 연기가 어설프다며 관객석에서 보낸 야유다. "당신의 연기는 가짜 같아 도무지 몰입할 수 없다"라는 극평이다. 연극을 연극으로 받아들인 관객의 당연한 권리다. 특히 검찰이 피노키오 이모티콘을 쓴 사람은 기소하지 않고, 관용구를 문자로 박아 넣은 사람만 처벌한 대목은 황당하다. 피노키오라는 우화적 표현은 연극적 유희로 넘겼으면서, 직설적인 야유에는 기계적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법은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사건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언어의 유연한 맥락과 해학을 가차 없이 잘라냈다.

 여기서 사법부의 태도는 더 꼴불견이다. 독일 법원은 무대 위 권력자들의 정교한 연출을 지키려고 관객석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극장 경비원’이다. 관객이 "연기 진짜 못하네!"라고 야유를 보냈더니, 극장 경비원이 달려들어 관객의 입을 틀어막고 쫓아낸 꼴이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관객의 야유를 견뎌야 한다. 권력자의 가면이 상처 입을까 봐 관객의 입을 막기 시작하면, 그 극장에는 결국 삼류 연기만 남을 뿐이다. 무대 위의 연출을 현실로 착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재미없는 연기에 기꺼이 야유를 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관객의 태도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