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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처럼 / 엄상익 변호사의 수필집에서

작성자윤기일|작성시간26.06.10|조회수22 목록 댓글 2

그분처럼

오래전 시경 형사계장한테서 들은 이런 얘기가 떠오른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 상부에서는 범인을 검거하라고 닦달하고 언론이 경찰을 몰아칠 때는 하는 수 없이 살인범을 만드는 수도 있었어요.”

씁쓸한 표정이었다.

“용의자의 머리털 하나를 구해 몰래 범죄 현장에 가져다 놓는 겁니다. 감식반이 그 머리털을 주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죠. 바로 DNA감정서가 나옵니다. 판사들은 그 감정서에 꼼짝 못해요. 그걸 절대적으로 믿고 유죄판결을 내려요. 그 재판은 절대로 뒤집어질 수 없는 거죠. 그런 때가 있었어요.”

그 말을 들은 건 내 나이 사십대 초였다. 그 무렵 노원경찰서의 한 늙은 형사는 이런 말을 했다.

“때리는 걸 위에서 눈감아주면 어떤 범인도 만들 수 있어요.”

그의 얼굴을 보면서 기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살인범 누명을 쓰고 이십년이 넘게 감옥생활을 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를 살인범으로 조작한 형사도 죽었다. 그가 절규했다.

“정말 하나님은 사람도 아니야. 공정한 하나님이라면 나를 이렇게 평생 억울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며? 개뿔. 죄 없는 나 같은 인간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지나 말라고 하지.”

한승헌 변호사는 독재정권 시절 ‘법과 인간의 항변’이란 글을 썼다가 감옥에 갔다. 그가 살아있을 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자격으로 업무상 가던 구치소와는 차원이 달라.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플라스틱 식반과 젓가락을 가슴에 안고 교도관을 따라 감옥의 복도를 걸어갔지. 구석의 한 감방으로 들어갔어. 뒤에서 ‘철커덩’하고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는데 천둥이 치는 느낌이더라구.”

바짝마르고 볼이 움푹 들어간 노인인 그의 눈이 반짝였다.

“혼자 한 평짜리 좁은 감방에 앉아 두리번거렸지. 축축한 벽에 낙서가 가득했어. 구석에는 엽서 만한 전도지들도 놓여있더라구. 진실한 글을 썼는데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거야. 억울해서 속이 아픈 건 말도 못해. 어떻게 상황을 이겨 나갈까 안간힘을 썼지.”

그는 변호사자격도 박탈당했다.

나도 글을 쓴 죄로 피고가 되어 여러 번 법정에 섰다. 감옥에 갈 수도 있었고 재산을 날릴 수도 있었다.

고참 형사는 앞의 철 의자에 피의자로 앉은 나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나를 뭉개는 그의 표정에 쾌감이 떠올랐다. 그를 보면서 심장이 뛰고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젊은 검사는 한없이 대기시켰다. 나를 고소한 사람이 미친개처럼 물어뜯게 했다. 내가 피흘리는 걸 보면서 그 검사는 즐거워했다. 나는 똥물을 흠뻑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담당 대법관은 내게 말했다.

“그래도 뭔가 잘못한 게 있겠지”

해명은 의미없었다. 그들은 아예 귀를 막았다. 나는 패소 판결을 받고 피 같은 돈을 빼앗겼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 아팠다.

내면에 있는 흉터는 그것만이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바른말을 하고 선생님에게 떡이 되도록 맞았다. 칼을 맞고 오히려 무기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공직에서 배제된 적도 있다. 침묵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됐다. 그런 세상을 살았다.

수시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정말 억울했다. 그는 누명을 쓰고 재판에 회부 됐다. 선동된 여론은 그를 죽이라고 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재판관 앞에서 침묵했다. 해명하지 않았다. 재판관은 그의 결백을 알았지만 여론에 편승했다.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채 사형대 위에서 부르짖었다.

“하나님 왜 저를 버리십니까?”

인간 예수는 세상에서 패배자였다.

그렇다면 나의 억울함들은? 그걸 안고 이 나이까지 왔다. 나는 오늘 아침 그 답을 엉뚱한 곳에서 만났다. 요한 계시록 5장이다. 그는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합당하다고 했다. 이성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다. 해명하지 않고 침묵한 걸 높이 평가했다. 내 이해 영역을 벗어난다.

억울함 앞에서 나는 겉으로 침묵했다. 속에서 분노의 불이 은은히 탔다. 하나님 앞에서 한번은 부르짖어야 겠다. 그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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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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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의정 | 작성시간 26.06.12 자신의 죄는 없에고
    죄없는 사람의 죄를
    만들어 감옥에 보내는
    세상이지요
    영화 앵무새 죽이기는
    인종차별아 심했던
    1930년대 죄없이
    살인죄로 누명을 쓴
    흑인청년을 변호하는
    그레고라 펙의 이야기지요 고군분투했은나
    백인으로만 구성된
    12명의 배심원에게
    유죄 판결을 받지요
    그시대의 사회상을
    적나나하게 표현한
    영화로 그레고리 펙
    은 열연으로 아카데미주연상을 받았지요

    기일님 ! 감사합니다
  • 작성자정의정 | 작성시간 26.06.12 영화 앵무새 죽이기
    그레고리 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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