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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증명서 /엄상익 변호사의 수필집에서

작성자윤기일|작성시간26.06.15|조회수28 목록 댓글 1

엉뚱한 증명서

젊은 시절 나는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했다. 군판사가 됐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사법고시 출신 법무장교가 어느날 이런 말을 했다.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짝퉁이라는 소리였다.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그를 작살내고 싶었다. 한편으로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공부했다. 이미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는데 다시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합격했다. 정류장을 떠난 버스에 달려가 가까스로 올라탄 기분이었다. 기뻤다. 내가 빠져 나온 자리에 있는 동료들이 안타까웠다. 나도 거기 있었으니까. 세상은 자꾸만 등급을 매겨 사람들의 기를 죽였다. 그런 구분은 끝이 없었다. 한 모임에서 대법관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저희가 고시를 칠 때는 다섯 명만 뽑은 적도 있습니다. 요즈음같이 3백명을 뽑으면 그 사람들은 법조인도 아닙니다.”

나는 또 아니었다. 그럼 나는 다시 어떻게 해야하지?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를 거부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문학인이 되고 싶었다. 그곳에는 자유가 있을 것 같았다.

소설가 정을병 선생을 만났다.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나는 이십 대부터 문학을 신으로 섬기고 살아왔어요. 이 바닥을 알죠. 엄 변호사가 아무리 글을 써도 문단에서 그 누구도 아는 척 하지 않을 겁니다. 인정해 주지도 않을 거구요. ”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한번 밀고 나가보세요. 어느 날 문단에서 엄 변호사를 보고 법정 소설 나부랭이나 쓰는 놈이라는 소리가 들릴 거예요. 그건 비난이 아니예요. 대단한 의미를 가진 거라고 해석하면 될 거예요.”

나는 그냥 쓰고 싶었다. 컬럼을 청탁받고 기뻤다. 활자화 된 신문에 내 이름 석자와 사진이 나왔다. 나는 제대로 썼을까.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봤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 안에는 통찰도 철학도 없었다. 껍데기 뿐이었다.

나는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소설도 쓰고 수필도 썼다. 문학지에 기고한 단편소설이 평론가의 호평을 받았다. 기뻤다. 아이같이 칭찬에 목마른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쓰고 또 썼다. 삼십 년 세월 글을 썼다. 칠십대 중반이 가까운 이 나이가 되도록 쓴다. 그래도 내가 오르고 싶은 능선은 이르지 못했다.

나와 친한 형님 같은 분과 어느 날 만두점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나는 학벌도 없고 평생 가구를 팔며 살아왔어요. 항상 배운 사람, 높다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속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걸어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였어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한다는 소리가 강하게 들려오는 거예요.”

그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잘났다고 하는 판검사 너희들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확신이 들더라구요. 그 순간부터 인생이 달라졌어요.”

뭔가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다. 젓가락을 식탁 위에 올려 놓았다. 해방감이었다.

군법무관 시험으로 변호사 자격을 땄는데 나는 다시 같은 자격증을 따려고 헛수고를 했다. 나는 신춘 문예를 통과해야만 작가라고 믿었다. 세상이 붙인 정가표에 혼을 빼앗겼다. 나는 헛것을 따라다니다가 헛것이 되었다.

얼마 전 변호사시험에 떨어진 로스쿨생들의 고통을 들었다. 나는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차디찬 눈빛이 일었다. 짝퉁이었던 내가 그들을 짝퉁으로 보고 있었다. 나를 깔보던 법무장교와 내가 본질이 다르지 않았다.

나는 거리의 변호사가 돼 봤다. 겨울날 노숙자 같은 허름한 차림을 하고 탑골공원 뒷길로 갔다. 횟대에 나란히 앉은 새들처럼 노숙자들이 인도 경계석에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 끼었다. 지나가던 노숙자가 허리를 굽히더니 내 손에 뭔가 쥐어 주었다.

“이거 비비고 있어봐. 따뜻할 거야”

핫팩이었다. 또 다른 노숙자가 털실로 짠 목도리를 앞에 내밀었다.

“추운데 이거 둘러. 저기서 나눠주고 있어.”

그는 무심히 등을 보이고 갔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대법관이 아니더라도 그런 변호사도 재미있었다.

그분은 처음부터 내게 도장을 찍었다. 나는 그걸 모르고 엉뚱한 증명서를 받으려고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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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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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의정 | 작성시간 05:58 new 30년전쯤 LA에서
    리쿼 스토어를 하는
    어느분을 만난적이
    있지요 그분은 나에게
    이런말을 했언요
    나는 서울법대를
    졸업했지만 물어도
    이말은 잘 안해요
    왜요 ?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못하면 말짱꽝이거든요
    여러번 낙방한후
    인생의 낙오자가
    되기싫어 미국으로
    왔습니다
    서울법대를
    입학했 을때얼마나
    많은 축하를 받았을까
    졸업할때도 역시...
    그런 사시합격 못했다고 인생의 실패자..
    자기격하가 너무심한거 아닌가요

    기일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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