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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명상

인종 차별

작성자없이계신이|작성시간13.10.04|조회수153 목록 댓글 1

호주에서 살면서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왜 없겠는가? 자기들이 쓰는 언어를 제대로 못하는 이방인들을 무시하는 현상이. 더욱이 무식하고 교양 없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인데. 그러나 사람에 따라 개인적으로 인종차별의 경향을 가진 인간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적어도 법적 제도적인 차별은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발달이 되어 있다.


백인우월주의 혹은 ‘백인 인종주의’의 단초는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투갈 선박들이 이슬람의 세력들을 누르고 서 아프리카 해안에서 흑인들을 납치하여 포르투갈에 노예들을 팔기 시작하면서 백인들의 우월주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 이전 까지는 ‘색깔이나 얼굴형태’를 중심으로 한 인종주의는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18세기 이전에는 색깔중심의 인종주의 (racism) 보다 ethnic 중심의 ‘인종주의’가 보편적이었다.

태초부터 인류는 자연 환경을 중심으로 오래 동안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문화적 동질성이라든가 같은 언어를 쓴다든가 하는 요소가 부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적 정체성’은 다른 부족들의 정체성과 문화의 차이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즉, zenophobia (타 종족을 두려하는 의식)을 생기게 만들었다.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비서구 인종들에 대한 삶의 양식과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그들이 주조한 ‘유사 과학’주의에 근거해서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팔레스틴 출신의 양심적 지식인인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는 '동양주의’ (Orientalism)이라고 명명했다.


동양주의는 한 번도 서구를 벗어나 동양을 여행해 본 경험이 없는 관리나 학자들이 주로 피 식민주의 나라에 파견되어있는 정치인들 과학자 인류학자들 그리고 행정관과 선교사들이 보내준 편지나 간단한 정보를 분석하여 그들의 서재에서 피 식민주의 인종들의 삶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포함한 문화를 ‘재구성’하고 ‘재창조’했다.

예를 들면 보고서에 중동인들은 호전적인 사람들, 중국인들은 큰소리만 치고 게으른 사람들...자기나라를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갈 능력이 없는 야만인들 등등... 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에 의하면 백인들은 비백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창조해 가고 있던 고유의 문화를 하나의 '차이'와 '특징'으로 보지 않고 '야만성'과 '후진성'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서구의 진보적인 문화와 가치로 그들을 '계몽'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고 백인들이 비백인들을 근대성으로 '계몽' 해야 한다는 일종의 'manifest destiny' 같은 허위 강박 관념을 갖기 시작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비 서구인들의 얼굴 색깔은 야만인들의 색깔이고 계몽 받아야 할 무지한 체질로 이해 시켰던 것이다.  


이 같은 ‘백인우월 신화’나 ‘비 백색 야만인 신화’는 일반 백인들에게 알제리의 지식인 프란스 파농 (Franz Fanon)이 인용한 섹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prospero'증후군을 낳게 된다. prospero 증후군이란 백인 딸을 둔 백인 부모들은 혹시 자기 딸이 흑인 남자로부터 강간을 당할까봐 늘 안절부절 하는 강박관념을 말한다.

이런 심리는 백인들은 비 백인들을 ‘야만성’과 ‘후진성’으로 동일화하면서 그 색깔 속에서 위협의 공포를 ‘상상’하게 되는 그야말로 그들 스스로를 허위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만들어갔다.


프란츠 파농 (Franz Fanon)은 반면에 흑인들은 백인을 증오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백인들을 닮아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은 검은 자기 피부를 백색으로 염색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근대 이후 오랫동안 백인 지배 환경 속에서 그들의 문화에 습합되어 비 서구인들의 의속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일종의 ‘내면화된 식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툭하면 한국 사람들 스스로 “엽전이 별 수 있나? ‘ 하는 자학적인 소리를 많이 했었다. 즉 식민지근성이 자신도 모르게 의식과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요즘 한국의 교과서에서 뉴라이트 학자들의 견해가 빛을 발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이론이 ‘식민지근대화론’인데 한 마디로 일본 덕에 우리의 근대화가 빨랐다는 것이다. 학자로서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이론이지만 문제는 그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가 조선총독부 자료라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인간의 사회심리 상태가 문명에 발달로 한데 얽혀 살 수 밖에 없게 된 현대에 와서는 다문화라는 말로 두루뭉실 표현되고 있다.


다문화’ (multiculture)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1950년에 제일 먼저 사용한 나라는 놀랍게도 인도였다. 징그럽게 크고 말이 많은 인간들로 구성된 나라를 경영하려니 필요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1971년에 캐나다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를 차용했는데 영어를 사용하는 구역과 불어를 사용하는 구역이 구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주의 경우는 캐나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처음에 사용되었다. 호주는 1967년부터 백호주의에 대한 논쟁들이 지속되다가 1978년 공식적으로 ‘다문화’를 국가 정책으로 채택했다.

한국에서도 외국 선교사들이 오고 백인이나 흑인을 막론하고 미국인들과 서구사회에서 들어 올 때는 다문화라는 말이 없었는데 동남아시아나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결혼이나 취업을 통해 들어오면서 다문화가 의제로 떠올랐다.


여러 색깔로 구성된 무지개는 아름답다. 다양한 색깔들로 구성되어 있는 색종이의 조화는 환상적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오랫동안 갈등과 모순의 반복 속에서 형성된 문화들 간의 만남을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아서 때로는 피비린내를 부른다. 인간은 역시 죄 많은 동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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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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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에스더 | 작성시간 13.10.04 백인 우월주의가 실은 두려움에서 나왔다는 점은 제게도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두려움'이 스스로를 가두게 하는 것이니까요.
    요즘은 발달한 정보력이나 지식의 발달 등으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확실히 줄었지요.
    그래서 다문화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거리낌이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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