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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집일 뿐이다.

작성자없이계신이|작성시간11.08.13|조회수95 목록 댓글 0

이번에 13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면서는 나갈 때 살면서 문제가 생겼던 것을 모두 수리를 해주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이사를 하고 난 후에 수리를 하러 사람을 보냈더니 페인트공이  집에서 곰팡이 냄새가 심하게 난다.’면서 그 동안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집이 오래되고 낡았지만 별 불편 없이 살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호주로 오면서 살고 있던 부천의 13 평 연립주택의 관리를 후배에게 맡겼을 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참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떠난 후에 후배가 수리를 하기 위해서 내가 살던 연립에 들어가 보고 목사님이 그동안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찡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 동안 호주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번듯한 집에 살아 보지를 못했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작고 싼 집이지만 아담한 내 집에서 살게 된 샘이다.

 집에 대한 아주 대조적인 기억이 있다. 80 년대 첫 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이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병원 원장의 평창동 저택에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아서 간 적이 있었다. 원장 집에서 돌아오는 택시에서 아들이 부러운 마음으로 ! 원장님 집 되게 넓고 좋더라!” 하고 감탄을 연발 했다. 아들의 그런 모습이 좋게만 생각되지 않아서 “인엽아? 원장 님이 운영하는 병원에 간호원 누나들은 조그만 자취방에서 둘이서 사는데 그렇게 넓은 집에서 4 식구만 딩굴 딩굴 거리며 사는 것이 꼭 좋은 일 만일까?고 했더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었다.


또 한 번은 내가 광명시 하안동 철거민촌에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할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는 의료 보험이 없을 때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에 가기가 힘들 때여서 기독교 병원에서는 무료진료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원장이 장로인 부천제일 병원에 부탁을 해서 의료 봉사팀을 초청해서 동네 사람이 무료 진료를 받도록 했다. 의료진 가운데 간호원 두 명이 화장실을 찾다가 어느 집 문을 그만 화장실인줄 알고 열었더니 사람이 살고 있는 방이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호들갑스럽게 했다. 그들 눈에는 화장실로 밖에 보이지 않는 집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넓게 볼 것도 없이 내가 경험한 세계에서만 해도 병원 원장의 저택과 간호원들의 월세방과 철거민들의 판자집, 세상의 집은 이렇게 다양하다.


물론 인간에게 집은 소중한 재산 가치이고 대부분의 삶이 진행되는 터전이다. 그러나 나는 집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더 가치를 둔다. 그래서 항상 집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집은 재산가치보다 활용가치에 의미를 더 둔다. 내가 한국에 가면 아지트(?)로 종종 이용하는 잠원동의 김 여사의 아파트는 넓지도 않지만 아무런 가구가 없다. 김 여사는 여러 사람이 모여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두지 않은 거실에서 뜻은 있으나 모일 장소가 없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먹인다. 그것이 김 여사가 집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사람이 사는 집처럼 인간의 몸도 영혼의 집 같은 구실을 한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식이 중세의 캐캐묵은 이원론적인 개념을 설하려는 것이 아니다. 육체를 입은 영혼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집에서 살면서 생명이 붙어 있는 모든 동물이면 다하는 밥 먹고 잠 자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하고 사느냐 하는 의미를 따져 볼 일이다. 어떤 집에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즉 살아 있는 동안 육체를 가지고 살면서 먹고 싸고 하는 일 외에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다. 추구하는 가치가 신통치 못하다면 그 인간의 가치도 결코 신통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청와대 세입자에게서 그런 모습을 잘 보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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