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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과 386의 차이

작성자sydney|작성시간26.06.05|조회수72 목록 댓글 0

 

6.3 선거에서  20대 이하 남성의 약 7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결과는 충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얼핏 보면 세상은 진보해 가는데 젊은이들이 보수화하는 반동 현상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만의 처절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족라고 탓할 수는 있겠지만 '헬조선'과 '이생망'으로 대변되는 20대의 불평불만은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불평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나는 386 시대의 젊은이들과 그 시대를 함께 했었기 때문이다.

 

8, 90년대 빈민운동을 할 때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이들은 모두 청년, 학생들이었다. 386 세대는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길바닥에서 약자의 생존권을 위해서 투쟁하며 땀을 흘렸던 大我的 경험을 가진 세대이었다. 즉 젊은 혈기에 욱하는 심정으로 진보, 개혁, 민주를 부르짖으며 잠깐 ‘데모’를 했던 것이 아니라, 大我的 시각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시대의 어둠과 장기간 조직적으로 싸웠다. 

 

기득권을 버리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다. 386세대는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의 버리는 일부터 해야 했다. 당시 대학 진학률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 대학생이라는 위치 자체가 사회적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우리 역사에서 언제 젊은이들이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자기를 희생하고 대의를 위해서 집단적으로 투신했던 시대가 있었던가? 영적인 면에서 보면 386세대가 활동했던 그 시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거룩한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의 이대남들에게 "대아(大我)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자세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386세대에게는 함께 싸워야 할 명확한 적이 있었다. 독재정권, 사회적 억압, 구조적 불의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오늘의 청년들이 마주하는 적은 훨씬 모호하다. 취업난, 주거난, 저출산, 경쟁, 불안정 노동, 고립감은 누구와 싸워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즉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시스템의 보호 없이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페북에 이 글을 썼더니 미국에서 살고 있는 80년대 성결교회 전국청년연합회장이었던 신현욱이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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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옛 생각이 많이 납니다. 당산동 사무실에서 식자를 찍어 편집판에 뗏다 붙였다 반복하시며 월간 형태의 회보를 발행하셨지요. 더운 여름 식자 글자가 선풍기 바람에 날아가 망연자실 하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쉽게도 회보 제목이 입에 맴도는데…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1991년 《옛날 하나님, 요즘 하나님》을 목사님께서 친필 사인 해 주셨던 책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옛날 하나님, 요즘 하나님》은 하나님이 변하셨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대가 변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신앙의 언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과거의 경험 속에 가두어 놓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만났던 하나님, 교회가 부흥하던 시절에 경험했던 하나님, 전통적인 교리 속에 설명되던 하나님만을 참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틀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지 않듯이, 옛날 하나님과 요즘 하나님도 다른 분이 아니지요.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뿐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권위와 질서를 강조하는 시대였다면 오늘은 공감과 소통, 정의와 평화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변하지 않는 복음의 본질을 붙들면서도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여전히 역사하시는데 교회는 과거의 언어와 과거의 방식만을 반복하고 있음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청년들은 떠나고 세상은 교회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시대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목사님은 이 책에서 물으셨지요 “당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인가, 아니면 과거의 기억 속에 박제된 하나님인가?”

신앙은 과거를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날 하나님, 요즘 하나님》은 하나님이 변했다는 선언이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의 신앙을 향한 도전이며 각성의 메시지였습니다.

목사님과 이렇게 만나뵈니 하늘의 별이 된 형지인 권사가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20대 대학(이화여자대학교)을 갓 졸업한 지인이를 성청 간사로 추천해 주셔서 좋은 동지로 암울했던 시대의 바람을 함께 맞았지요. 그런 지인이가 지금은 우리 곁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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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댓글을 보고 2012년 형지인의 장례에 대한 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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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천사가 아니라 50살 먹은 천사를. 얼굴도 마음도 심지어는 목소리까지도 천사이었던 사람을 보냈다.

짧은 인생을 역사와 민족,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의 길을 가던 천사를 보냈다.

비록 처지가 어려워서 만나지 않고 살아왔던 이대 동창들은 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그녀와 함께 20대에 활동을 했지만 그 동안 만남의 기회도 갖지 못했던 50대에 들어선 동지들이 원근 각지에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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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으로 몇 달을 다녔다는 두란노 서원의 200명의 직원들이 모두 장례식장을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말해 주었다. 아들과 딸들 조차도 엄마의 죽음에 대판 슬픔 보다도 자기들이 클 때까지 살아 있어 준 것을 감사한다는 했다.

삶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86년도 사귀고 있던 껄렁 껄렁한 전도사와 떼어놓고 싶은 마음에서 청년단체 간사를 제안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의 사장 비서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를 전국 청년연합회 간사로 일하도록 해서 직업적인 기독청년 운동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여서 결과적으로 인생의 가시밭길을 걷게 만들었기에 늘 마음에 미안함을 느껴왔다.

그녀는 5번이나 뇌수술을 받고 자신을 힘들게 만든 옛동지인 남편에 대해서 한 번도 힘든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모두들 그녀의 고통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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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 일터인 두란노서원 까페를 찾아가 "미국에 너에게 딱 어울리는 일 자리가 있는데 한 번 가보지 않을래?"라고 권했을 때도 그녀는 잔잔하고 따쓰한 미소를 지으면서 "목사님! 건강이 외국에 나가 살만큼 자신이 없어요."라고 했을 뿐이었다.

빈소에서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서 동지들끼리 따로 예배를 드렸다. 나는 설교에서 그녀를 보내는 슬픔 때문에 우는 작은 울음을 울지는 말자고 했다. 오히려 그녀가 안타까워 했던 이 땅의 불의와 모순, 고통에 대하여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 큰 울음을 울자고 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그녀를 기리는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벽제 화장장은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웠지만 가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원래 화장 땐 가까운 친인척만 가는 것인데 평소에 가족들이 친근하지 않았던 사람이 가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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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고 황진자가 당시 동지들을 기억해냈다.

 

이석봉 장순웅 이재완 이의영 변기수 신현욱 김해선 김팔옥 김정권 김주영 황남석 심우기 장세열 장서형 우혜승 신부호 황진자 여정순 김진숙 이민순 한미영 송의천 이 철 변준식 정필봉 최종상 김경일 임성규 최훈창 김태호 황준호 박창열 조용구 한은실 손재형 한우근 고경희 이춘흥 백성남 강경완 서정희 권지나 고봉주 문환주 손영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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