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오랜 시간 한 패거리로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김용민이 김어준에게 원한 맺힌 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의 글에 대해 어떤 사람이 "지옥가세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래도 명색이 목사인 사람에게 .....참 친절하기도 하다.
나는 두 사람과 개별적으로 잠깐의 교제가 있기는 했어도 자세히는 몰라도 김용민이 김어준을 씹는 이유는 알만 하다. 여러 경로로 그가 풍만한 몸에 비해서 마음은 그리 평수가 넓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서이다.
몸의 평수는 노력여하에 따라서 어려워도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지만 마음의 평수는 절대로 마음데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집을 지을 때 설계에 따라서 건평은 조절할 수 있지만 지평은 조절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는 방 2개짜리 임대 아파트에 살아서 가구를 놓을 때 실제로 1cm가 아쉽다. 공간이 좁으면 몸이 불편한 것처럼 마음이 좁으면 사는 것이 불편하다. 그런데 집이 좁으면 내가 불편하지만 인격이 좁으면 남이 불편하다.
마음은 마치 DNA 같아서 수술로도 약으로도 넓히거나 좁힐 수 없다. 마음이 좁은 사람과는 아무리 잘 지내다가도 한 가지만 삐끗하면 끝이다. 한 번 문제가 생기고 나면 그 동안 차곡 차곡 기록해 놓았던 청구서를 내놓듯 따지고 나온다.
좁은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싫어”, 혹은 ‘좋아’로 판단하는 아이들 같아서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싫어, 좋아’로 판단한다. 사물과 사건을 판단할 때 객관적인 생각 보다 주관적인 판단이 강하다.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전에 판단을 내리는, 추정(Presumption)이 발달하면서 자신은 직관이 발달되었다고 생각한는다.
반대로 마음이 넓은 것 같은 사람에게도 함정은 있다. 타인의 의견을 잘 듣고 자신의 생각을 넓혀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의 주장과 생각을 너그럽게 긍정하지만 자기 주장을 합리화 시키는 방법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비약과 논리의 모순이 발생할 수 밖에 없으나 그런 것은 개의치 않는다. 결론은 언제나 자기 말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대학 때 학생운동도 하고 위장취업을 해서 노동자로 일을 하기도 했던 386 세대의 사람이 “나는 그 시절을 생각하기도 싫다.”고 해서 이해가 잘되었던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자신의 삶이 개인적으로 아무 소득이 없었다는 자기 고백적 감정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자세를 ‘옹졸한 역사관’이라고 부르고 싶다. ‘옹졸한 역사관’이란 역사가 옹졸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옹졸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