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도 봄 어느 날 구파발 신도 국민학교 앞 신작로 도로 한가운데로 리어카를 끌고 갈 정도로 한산하다.
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내 주변에 항상 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운전을 하면서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면 항상 사진을 찍는 일을 했던 의원의 차 운전사 밖에 없었다. 국회의원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간 여당 국회의원의 임시 개인비서를 하면서 총선과 대선을 치루어 보고 정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았다. 배운 것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그 때 느낀 것은 정치는 점잖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그런 생각이 신학교를 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조 평생을 정치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현실밀착형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여 무관심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요즘 민주당 전당대회 형편에 대해서 느낌은 있지만 실상을 잘 모르겠다.
정치판은 인간들의 욕망 실현의 격투기장 같은 곳이다. 옳거나 그러거나간에 권력이 없을 때는 책임을 질 일이 없으니 악만 쓰면 된다. 그러나 권력을 쥐고 있을 때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더 어렵다. 더욱이 이번처럼 애매하고 뒷맛이 찜찜한 선거를 치르고 난 후의 당대표 선거는 간을 보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재명은 노무현이나 문재인처럼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출발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던 이들과는 달라서 현실적이라고 판단되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사람이라는 점이 오히려 불안하게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장 다니느라고 제대로 폼을 잡을 기회가 없었다. 다행히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서 어느 정도 폼을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삶이 성과위주로 살아 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시골 출신이긴 했어도 최악의 환경에서 살아온 것은 아니고 어려워도 안정적인 조건 속에서 살았었다.
결론적으로 인격적으로 본다면 이재명은 노무현, 문재인 보다 불안정 하지만 성과면에서는 탁월하다.
10년 전 시드니에 있을 때 성남시장인 이재명이 호주에 왔었다. 나로서는 그가 무엇을 어떻게 잘 하고 있는지 이미 잘 알고 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구태여 먼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으나 장소가 대학이라 참석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갔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강연 도중에 역사의 방관자가 되어서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방관자 효과’를 설명할 때 많이 쓰이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Murder of Kitty Genovese)-1964년 3월 13일 뉴욕 주 퀸스에서 캐서린(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강간살해 당한 사건-을 들었다.
그런데 그 사건은 애초부터 사실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선정적인 언론에 의해서 전혀 사실과 다르게 각색이 되었다는 것이 최근의 방관자로 손가락질 받던 38명에 의해서 법원판결이 밝혀진 바가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이 본질은 '방관자 효과'가 아니라 '언론의 무책임한 선정성'을 보여주는 예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변호사 출신인 이재명이 공무에 바쁘다 보니 최근 정보가 업 데이트가 되지 않아 사실과는 정반대되는 예를 들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 가나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할 촉망 받는 정치인이 작은 실수가 혹시라도 옥의 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강의가 끝난 후 메모를 해서 수행원에게 이재명에게 전달해 주라고 하고 왔다.
이재명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허점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