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글입니다.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우리 한민족에게는 독창적인 무언가가 있고 그것의 발현을 역사적 사명으로 알고 매진하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그 폐해로 아직도 '국민 교육헌장'의 상당부분을 암송할 수 있는데 그만 기억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한다. 이러한 생각 즉 '우리만의 독창적이고 위대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고방식은 박정희시대에 일본의 것을 베껴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는 메이지 유신( 明治維新 ( めいじ いしん ) 을 통해 근대헌법을 제정하고 야마토다마시(大和魂)란 개념을 만들었는데 훗날 이는 제국침략의 논리로 이용된다. 이차대전에서는 '대 일본제국의 위대한 정신' 때문에 일본은 전쟁에서 이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적군이 퍼붓는 포화에도 야마토다케시가 일본을 보호 하고 있다고 믿은 나머지 칼만 들고 탱크에 돌진했다 개죽음을 맞이 하기도 하였다. 논리적 판단능력이 아직 부족한 중학생정도의 아이들을 세뇌시켜 비행기를 몰고 적의 군함에 돌진하게 하였다. 카미카제특공대이다. 자살폭탄테러의 원조이다.
명치유신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 보아도 별로 배울 점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지도자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70년대 만들어진 "국민교육헌장"은 메이지유신의 기초이념을 정리한 "교육에 관한 칙어 教育ニ関スル勅語, きょういくにかんするちょくご "를 본 따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황국시민"으로 지켜야 할 열 두가지 덕목을 보자.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12조)부터 법률을 따르고 준법하고(11조)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발전시켜(8~9조)"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자(10조)"는 소름끼칠 정도로 우리의 것과 흡사하다.
우리만의 독창적인 것을 계발하자는 생각은 굉장히 비독창적인 방법으로 차용한 것이다.
명치유신이야 자기네 나름대로의 근대화의 의미가 있었다지만 그럴 본따서 실행에 옮긴 대한민국의 10월 유신과 국민교육헌장은 촌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슬프고 아프다. 우수한 민족이 되자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은 춘원 이광수같은 일제시대의 매국학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는 '민족개조론'을 들고 나와 우리민족이 부족하고 어리석으니 일제에 저항 하지말고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계발해서 일본과 같이 힘을 기르자는 '민족개조론'을 주창 하였고 우리는 이런작자들을 우리는 선각자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에게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가 힘든 독창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한글의 발명이다
한글창제또한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기 이전까지는 우리는 한글의 창제원리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었다.
위에 열거한 문화유산이 과거사라고 한다면 한글은 현재도 숨을 쉬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한글은 지구 상, 발명된 어떠한 언어 중에서도 가장 쉬우며 독창적이고 과학적으로 완벽한 문자"이다.
실제로 한글을 모르는 여러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보면 집현전학자 '정인지(鄭麟趾'가 '훈민정음해례본'의 서문으로 적은 내용이 틀림이 없음이 증명된다.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두 시간에 읽고 쓰고를 깨우친 사람도 많았고 적어도 하루 이틀이면 문제 없이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한글이 이처럼 익히기 쉬운 이유는 간단하다. 성음의 이치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만든 글자이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의 제자해(制字解)에 잘 나와 있다.
今正音之作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初非智營而力索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다만 그 (원래에 있는)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 뿐이다.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음양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귀신과 그 사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스물 여덟자는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 《훈민정음 해례》(訓民正音解例), 〈제자해〉(制字解)
훈민정음은 음양오행에 기초하여 다섯가지 기본 자음의 소리,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ㅁ,ㅅ,ㄱ,ㄴ,ㅇ 국악의 5음계와도 동일하다)를 만들었는데 입속의 혀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명시되어 있고 모음의 기초는 태극의 원리 천지인을 기본으로 제창되었다.
당시 조선에는 '사역원(司譯院)'이란 공식통역기관이 있었는데 세종대왕은 이들을 한글 창제작업에 참여시켜 중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골어, 위구르어, 여진어를 연구하여 이를 토대로 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문자를 발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소리는 거의 없다.
몇 해전 종영한 한석규가 출연한 '뿌리깊은나무'에서 코미디언 '정종철'이 하루 종일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고 그것을 기록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러했으리라 보인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저승에 계신 세종대왕이 진노할만 일은, 지난 한 세기동안 발생한 심각한 한글 훼손문제이다. 그리고 그것의 원흉은 일본이다. 일본 제국은 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諺文綴字法)을 만들면서 한글을 간소화하여 ㆍ(아래아)를 폐지하고 두음법칙을 만드는등 한글의 발음체계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단어의 첫 글자가 'ㄹ'이나 'ㄴ'이 나오면 그대로 발음하면 되지 그것을 법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는 없을 것이다.
한글은 현재의 우리가 생각하는 절름발이 문자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우리에게 없는 영어의 발음들, p와 f, v와 p, z, r과 l의 구분은 물론 영어이외의 발음들도 한글로 완벽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다.
이를테면 ㆍ(아래아)도 훈민정음 해례본의 병서(竝書) 연서連書 원칙과 사라진 글자들에서 고스란히 있다. (고금통의-이덕일저) 아직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순경음발음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문자는 일제식민시대에를 거쳐 말살 되어 버렸다.
사라져가는 부족의 언어를 보존 하기위해 한글이 사용되었는데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한국정부에서 지원이 중단되어 프로젝트가 사라질 위험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북한의 독재정권조차 한글훼손의 문제에 있어서는 남한정부만큼 수수방관하지 않았다.
그 결과 북한에는 한자어/외래어가 우리와 비교하여 월등히 적으며 일본제국주의의 폐해인 두음법칙도 폐지한 지 오래다.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http://nk.joins.com/dic/view.asp?idx=20001209180223)
한자어
[남] [북]
관절 뼈마디
교목 키나무
능력 일본새
멸균 균깡그리죽이기
살균 균죽이기
월동 겨울나이
인력 끌힘
추수 가을걷이
한복 조선옷
홍수 큰물
외래어
[남] [북]
노크 손기척
레코드 소리판
스프레이 솔솔이
시럽 단물
젤리 단묵
카스텔라 설기과자
커튼 창문보
코너킥 모서리뽈
파마 볶음머리
훅(hook) 맞단추, 겉단추
태블릿피씨 판형콤퓨터
나는 이 단어들이 우스꽝스럽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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