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피나무 / 강미숙
친정에 가면
제피향이 배어있다
큰집이 있던 우물 옆에
늙은 제피나무가 살아 있다
유월이면
코끝 진하게 알싸한
할머니의 손맛이 파고든다
절인 단배추를 넣고
육쪽마늘을 찧으면서
돌절구에 제피순을 갈았다
골목까지 번져오는
할머니 내음새에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가
입을 벌렸다
고춧가루가 듬성듬성 묻어 있는
여름김치맛은 달았다
제피나무를 보면
삼베 적삼이 생각난다
그날 할머니가 입었던 옷
그 가실가실했던 촉감이
만져진다
지금 큰집은
잡풀 속에 사라졌다
군침 돌게 서 있는
제피나무 앞에서
나는 새끼제비 같은 아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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