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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서시*의 일어 번역 오역 문제

작성자은밤|작성시간06.08.20|조회수429 목록 댓글 0
 

* 일어와 번역에 관계가 되는 글이지만 시를 좋아하는 여러 분에게 흥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여기 올려봅니다.



"'서시' 오역에 윤동주 두 번 운다"는 기사가 있다.

http://news.media.daum.net/culture/art/200608/19/ohmynews/v13738065.html?_right_popular=R3 (2006년 8월 19일, 오마이뉴스) [참고를 위해 이 글 하단에 첨부했음.]

이 기사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논점은 크게 다음 두 가지이다.

  - 어디까지가 '오역'인가. 

  - '오역'에 대한 정치적 해석의 타당성.

여기에 덧붙여서 "서시"의 일본에서의 위치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들어가는 말


"서시"의 일어역은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위 기사(이하 단순히

'기사'로 지칭)에 나온 이부키 고_라는 사람의 번역이다. 이 사람은 한국시를 무척 많이

일어로 번역해 소개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번역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부키의 오역 주장은 이 기사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다시피 이미 한겨레에서 소개되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밝혀져 있다시피, 바로 이 기사가 새로운 듯이 호들갑을 떠는 것은 이미

오오무라 마스오라는 일본인 교수가 말 그대로 지적한 사항인 것이다.


한겨레의 7월 13일자 글에서는 오오무라의 주장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윤동주는 ‘죽어가는 것’을 모두 사랑했다는 것이고, 무한정적으로 생명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 건 아니다. 일본군국주의 때문에 많은 조선인이 죽어가고,

조선인의 언어도, 이름도, 민족문화의 모든 것이 죽어가는 시대였다. 윤동주에게는 그런

‘죽어가는 것’에 대한 사랑과 함께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있었을

것이다.”"


오오무라의 이런 언급은 언제 이루어졌는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최소한 몇 년 이전임은

확실하다. 그동안 왜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일까.



2. 오역의 한계


기사에서 오역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세 부분이다. 우선은 정치적인 측면의 논의는

배제하고 일반적으로 문학 번역을 할 때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1) 1행 "死ぬ日まで空を仰ぎ"의 空

(2) 2행 "一点の恥辱なきことを"의 恥辱(はじ)

(3) 6행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의 전반부


시의 번역에서 오역으로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경우는 말 그대로 정말 심한 오역일

때일 뿐이다. 번역자가 문맥을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용어와 구절 선정을 했다면

과연 그것을 매도할 수 있을까. 그것이 특별한 악의에 의해서 그렇다면 물론 문제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위 세 경우 모두 '오역'이라 단정해서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1) 空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라고 시인 윤동주는 말한다. 하늘... 우리말에서는 하늘은

대략 (a) 땅 위의 공간, (b) 신적인 존재가 사는 세계의 뜻이 있다. 반면에 확실히

일어에서 空(そら)는 물론 다른 뜻도 있지만 여기서의 논의의 측면에서는 (a)의 뜻만을

갖고 있고 (b)의 뜻이 없다. 여기서 논란이 시작되는 것이다. 반면에 天(てん)은 (a)와

(b)의 뜻을 모두 갖고 있으며, (a)를 뜻할 때는 そら라고 읽기도 한다.


기사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윤동주가 기독교인이었음을 감안해야 하며, 따라서 이 시의

'하늘'을 하나님(하느님)의 천국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을

(a)의 뜻으로만 국한시킬 때의 오류가 (b)로만 국한시킬 때 똑같이 발생한다. 물론

두 뜻을 모두 갖고 있는 天을 쓰면 단순히 해결될 듯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우선 天은 많은 경우 종교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본인에게는 그것은 기독교의

그것이 아닌 불교의 그것이다. 불교에서 天의 뜻은 무척 넓은데, 이것은 범어의 deva를

한역한 것이며, 천인(天人)을 뜻하기도 하고 (eg. 제석천 = 어떤 신의 이름임),

하늘의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과연 저 시가 명시적으로 종교를 표방하고 있는 것도

아닌 한에는 '하늘'을 과감히 天으로 번역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윤동주의 유고시집의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이다. 기사에서는 이것도 잘못인 듯이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는 바로 "서시"에서 나온 것이며, 윤동주 자신 혹은 그의 시풍을 잘

상징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유고집 제목이 지어졌을 것이다. 이것을 대체 누가

天, 風, 星, 詩로 일역을 하려할까. 혹시나 이렇게 번역했다 해도 여기의 天은 응당

そら로 읽혀야 할 것이다. 이것은 空을 한문 표기만 바꾼 것일 따름이다.


한 종교인에게 있어서 신앙과 시세계는 물론 공통분모를 이루겠지만 그 둘이 완전한

동격을 이룰 수는 없다. 물론 여기서도 여러 차원의 주장이 나올 수 있겠지만, 단적으로

말해 윤동주가 자신의 시들을 제단에서 기도문으로 사용하기 위해 썼다고 말할 수는

없다. 


번역에서 원시의 뜻을 하나도 잃지 않고 번역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언어에서건 모호성(ambiguity)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바로 이 모호성이야말로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도 특히 시를 성립시키는 원동력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하늘'을

일어와 표면적으로 공통분모가 가장 많다고 생각되는 天으로 바꾸었다고 해서 우리말의

하늘과 일어의 天이 똑같은 것은 아니며, 더구나 감성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그것이 항상

정답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윤동주가 '하늘'을 종교적인 천국과 기독교의 하나님 아버지를 뜻한 것이라

해도 그가 그렇게 명시하거나 '천국' 같은 명확한 종교적 뉘앙스의 단어를 쓰지

않은 한에는 그렇게 읽지 않을 권리는 독자에게 얼마든지 있다.


(2) 恥辱


恥辱은 대개 음으로 ちじょく라 읽고 우리말의 '치욕'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한글시에서 '부끄럼'을 '치욕'으로 바꾼다면 의미나 뉘앙스에서

잃는 것이 많겠지만 일어 번역에서는 과연 어떨까 하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치욕이 없기를..."이 되는데, 이때 이 구절을 과연 기사처럼 "마치 압제자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이 안 생기게 해달라고 빌기라도 하듯" 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하늘을

운운한 앞 구절이 없다면 어떨지 몰라도 말이다.


더구나 더 중요한 것은 일어는 여러 읽기가 가능한 경우가 흔히 있다는 사실이다.

번역시에 토를 달아놓은 것을 보면 恥辱을 ちじょく로 달지 않고 はじ로 달고 있다.

이것은 기사에서 주장하는 恥로 쓴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런 것을 과연 오역이라

부를 수 있을까.


(3)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


이 구절은 '일견' 좋은 번역이라 보기 어렵다. '죽어가는'이라는 구절에서 일제의 압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우선 생각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고 그것이 바로 윤동주의

결코 죽지 않는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런

해석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서, 그런 해석만이 맞다고 주장한다면 시란

것 자체를 너무나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이다. 정확한 수학공식처럼 다른 식으로 해석하면

'틀려버리는' 것이 시라면 널리 사랑받을 여지는 없다. 보는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를 수

있고, 바로 거기에 시의 생명이 있는 것이다. 생명은 경직되고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영어로는 'every mortal beings' 정도로 번역하면 가장 직역에 가깝지 않을까.

'모든'이란 말에서 큰 무게를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다만 그들의 필멸(必滅)성에 더 큰 *연민*을

갖겠다는, 자기희생적인 각오까지 읽어낼 수 있는 구절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할 점은 生きとし生けるもの라는 구절이 일어에서 고문(古文)에서부터

쓰인, 일본인에게는 친숙하고 고풍스러운 무게가 있는 구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기원에 자주 쓰인다.

"すべての生きとし生けるものが幸せでありますように"(모든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기를)


'살아있는'의 부분이 강조되고 있는 말이다. 그런 간절한 생명 존중의 어감과 기원의

느낌을 번역에서 살리고 있음을 높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 내가 *연민*의 뉘앙스를 언급했는데, 이것은 いとおしまねば라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いとおしむ라는 단어에는 연민과 사랑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すべての死んでいくものを愛さねば"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는데, 나의 느낌에는

이것은 근본적인 필멸성을 갖는 존재들보다는 지금 당장 죽어가고 있는 존재들을

사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과연 시의 의도가 그런 것에 가까운 것인가 잠시

의문이 들게 만든다.


번역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창작이다. 필경 다른 뉘앙스를 가질 수밖에 없는 다른

언어로 바꾸는데 원 언어가 가진 뉘앙스를 모두 살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번역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따라서 어떤 번역도, 근본적이고 명확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는 예외가 되지만, 더 옳고 더 그른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여기서의 결론은, 아니 나로서는, (1)은 空을 선택하겠고, (2)는 はじ로 읽는 한에는

恥辱으로 써도 무난하지만 더 명확하게 아예 はじ로 쓰는 것이 좋을 듯하며,

(3)은 바람직한 측면도 있고, "すべての死に向く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 같은 식으로

번역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뒤에 더 언급할 다른 이유들로

인해 이부키의 (3)의 번역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3. 오역에 대한 음모설


이부키라는 사람을 난 조금도 모르지만, 한국시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이 특정한 시의

번역에 어떤 의도를 담았을까. 모르는 사항을 추정해서 그 사상누각 위에 무슨

논리를 펼 필요는 없기에, 번역과 확인할 수 있는 사항들만 보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기사를 보자마자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시비를 세운다는 것도 그랬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진 것이 있었다. 바로 다음 구절이었다.

"그가 번역한 윤동주의 '서시'는 현재 일본 고교 국어교과서인 '신편 현대문'에 실린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에세이 '윤동주'에 전문 번역본이 인용돼 있다."


바로 일본 교과서에 윤동주의 시가 들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바라기

노리코의 글을 찾아 읽고, 교과서에 들어간 내용이나 그에 대해 선생들이 가리킬 때

이용할 교안 자료들을 찾아 읽고, 몇몇 청년들의 그 시에 대한 감상을 읽었다. 그런

다음 기사의 내용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안목이 치졸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치쿠마 교과서라는 곳에 "空と風と星と詩"의 제목으로 윤동주를

기리는 수상(隨想) 글을 써 놓고 있다. 윤동주의 시가 세 편이 소개되어 있고,

윤동주의 감옥에서의 내용도 모르는 주사들을 맞고 죽음, 죽을 때의 마지막 외침을

한국말을 모르는 간수만이 들었던 일화 등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통한(痛恨)의 일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부키씨가 얼마나 희생적인 노력을 통해 윤동주의 사적을

밝히고 시를 번역해내었는가를 설명한다. 또 40년전의 일인데도 일본 당국들은 은폐만

일삼고 있음을 꼬집기도 한다. 이바라기는 윤동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실은 그의

멋진 사진 때문임을 고백하며, 인간 윤동주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윤동주라는 한 인간을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를 깨닫는다. 이바라기는 후반을 윤동주의 동생인

윤일주씨를 일본에서 직접 만나 대화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하고 있다. 윤동주의

아버지가 그의 뼈를 일본에서 북간도까지 가져갔고 일부 뼈를 현해탄에 뿌렸다고

한다. 이바라기는 윤일주씨의 인품에 끌리면서 윤동주의 "인간의 질(質)"도 그렇게

훌륭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가 윤동주와 윤일주 형제를 만난 것이 큰

기쁨임을 밝히며 끝을 맺고 있다.


이런 내용의 글이 일본 교과서에 실린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매스컴에서도

크게 다루었다고 한다. (현행 교과서인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어떤 교육 지도

관련 글에는 학습 목표로 내세운 것에는 이런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일의 역사와 교류에 대해서, 과거의 불행한 경위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현재 및
장래의 발전적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런 내용을 본다면 누구라도 윤동주의 "서시"의 위치를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과연 시의 한 구절이 '모든 죽어가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것'으로 바뀐 것이

그렇게 잘못이며 정치적 음모로 매도하고 '너무 천한 의도'라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저 시에 관심을 가지면 윤동주라는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심지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요절한 것이라는 의심(이바라기의 글에 들어 있음)까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일본인 자신들이 "서시" 전체를 자신들의 만행의 고발장으로

삼았는데 그 중 한두 구절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단견의 소치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4. 나가는 말


윤동주의 시는 그 서늘함과 치열함이 칼날이 되어 가슴 깊이 박힌다. 그것은

우리에게 뿐만은 아닌 듯하다. 윤동주의 "서시"의 번역을 읽은 일본 청년들도

그 시를 사랑한다. 이부키씨의 번역이 더 많은 일본인들에게 "서시"가 다가가게

만드는 데 기여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 원시에 가까운 번역? 그게

반드시 항상 더 좋은 번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난 이바라기 노리코의 글에서

읽은 이부키씨의 모습에서만 보면 그가 어떤 음모를 꾀했다고 상상할 수 없다.

기사에서는 일부 고쳐져야 하는 세세한 사실들을 잘 적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악수를 하자고 내민 손이 투박하다고 불평 아니 비난하고 있는

어리석음의 소치는 아닐까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어떤가

잠시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요즘 교과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가 우리 사회에

혹은 바깥 사회에 대해 과오를 저지른 것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성숙한가.

 

물론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충분히 반성하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소한 독일처럼 해야 하며 아직도 너무나 멀었다. 그리고 이부키의

"서시"의 번역이 완벽하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번역에 다 찬동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여기서는 오히려 과장해서 그의 번역을 적극 옹호하는 역할을 해본

것이므로 이 점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한 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일본에 저항한 윤동주는 일본에 공부하러 갔다. 나는 오늘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 오류 지적이나 코멘트 환영합니다. *


- 2006. 8. 19. 은밤 류주환

  mykenji@hanmail.net

  영어 죽은 시인의 사회: http://cafe.daum.net/engdps

  은하철도의 밤: http://cafe.daum.net/MilkyWayTrain

  



===== 참고: 뉴스 ======================================

2006년 8월 19일 (토) 15:48   오마이뉴스

'서시' 오역에 윤동주 두 번 운다

[오마이뉴스 홍이표 기자]


일본 제국주의가 그 마지막 기세를 떨치던 어두운 시절, 당시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청년 시인 윤동주가 차디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싸늘하게 죽어간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민족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다행히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그의 친구(정병욱 교수)의 정성으로 마루 밑에 숨겨져 있다가 이후 출간되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운 민족시인 윤동주의 이름 석자는 세월 속에 그냥 묻혀 잊혀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그의 시 가운데서도 특별히 '서시(序詩)'가 한국인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가 다녔던 모교, 연세대와 일본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캠퍼스 내에 시비로 각인돼 영원히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음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다.

* 사진 ▲ 교토조형예술대학의 새로운 시비 ⓒ2006 홍이표

게다가 최근에는 윤동주가 마지막까지 살던 아파트가 있던 자리(현 교토조형예술대)에도 그의 시비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한국일보>, 6월 27일자). 최근 나는 처가집이 있는 고베를 방문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그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도시샤 대학에 이미 세워졌고, 이번에 또 다시 세워진 시비에는 터무니없는 오역이 연속해서 새겨졌음을 발견하니 그 기쁨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일본에 세워진 두 개의 시비는 윤동주와 그의 시를 오히려 왜곡하는 결과를 빚고 만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문제의 주인공은 1984년 윤동주의 번역 시집을 출간한 이부키 고(伊吹 郷)씨이다. 그가 번역한 윤동주의 '서시'는 현재 일본 고교 국어교과서인 <신편 현대문>에 실린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에세이 '윤동주'에 전문 번역본이 인용돼 있다.


또한 윤동주가 다닌 도시샤 대학과 최근의 교토조형예술대학에도 그 시가 새겨져 있으며, 최근 소설가 공지영씨와 일본인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한일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도 그의 번역이 원용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부키씨의 윤동주 시 번역은 지금 거의 다 일본어역의 정본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序詩


死ぬ日まで空を仰ぎ


一点の恥辱なきことを、


葉あいにそよぐ風にも


わたしは心痛んだ。


星をうたう心で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


そしてわたしに?えられた道を


歩みゆかねば。


今宵も星が風に吹き晒らされる。


(이부키 고, 伊吹郷 訳) 



이부키씨의 '서시' 번역... 의도적으로 윤색된 오역

  

* 사진 ▲ 1996년 2월 도시샤 대학에 윤동주 시비가 세워지기 직전 일본 기독교 출판사에서는 <天と風と星と詩>라는 윤동주 시집과 평전을 출간했다. 이부키씨가 번역한 시집의 제목은 <空と風と星と詩>라고 되어 있다. ⓒ2006 일본 기독교 출판국


하지만 이부키씨는 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 신념이 깊게 배어있는 윤동주 시의 양 축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왜곡하기까지 하였다.


'서시'의 첫 줄부터 살펴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에서 윤동주 시인은 물리적 개념의 하늘(Sky)을 막연히 바라봤던 것이 아니다. 거기서 '하늘'은 그의 맘 속에 뿌리내린 깊은 신앙의 고향을 의미한다.


이부키씨가 이것을 '소라(空)'라고 번역했으니 마땅히 일본의 기독교회가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주기도문의 하늘, '덴(天)'으로 표현해야 한다. 또한 영어의 경우에도 '스카이(Sky)'가 아닌 '헤븐(Heaven)'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한글에서는 '하늘'에다 '님'을 붙여 '하늘님' 혹은 '하느님'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해 왔다.


그렇듯 우리 말 '하늘'은 그 자체로서 깊은 종교성을 함축하고 있지만, 일본어의 경우, '소라(空)'에 님(사마, 樣)을 붙이면 '소라사마(空樣)'인데 그런 말은 없어서 매우 어색해진다. 따라서 일본 교회에서는 주기도문을 외울 때 소라(空) 대신 "'하늘(天)'에 계시는"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윤동주는 어떤 사람인가? 한국의 갈릴리 땅 같았던 만주 용정에 나고 자란 그는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식이 조화된 풍토 속에서 성장했다. 윤동주의 생가에 가면 직접 구운 기왓장 하나에도 십자가와 석삼자(삼위일체), 그리고 태극문양을 함께 새겨 넣었다.


기독교 신앙과 민족사랑은 그의 뿌리였으며 그 중심에는 공허한 하늘이 아닌 신앙으로서의 하늘이 있었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소라(空)' 대신 '덴(天)'을 써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오역은 더욱 치명적이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시인의 다짐을 "한 점 치욕(恥辱)이 없기를"이라고 옮긴 것이다. 여기서 윤동주 시의 신앙적, 민족적 지조와 양심을 완전히 훼손하고 있다.


이국(異國) 혹은, 이민족(異民族)으로 인해 어떤 환난이 닥쳐오더라도 결코 하나님과 민족의 양심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이 다짐이, 마치 압제자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일이 안 생기게 해달라고 빌기라도 하듯이 번역한 것이다.


이로써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무사안일을 소망하는 구차한 시처럼 바뀌고 말았다. 만약 시인이 그러한 옹졸한 자세로 살았다면, 27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한 그의 마지막 삶의 행적은 쉽게 설명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동주 시인은 "모든 죽어가는 것(すべての死にゆくもの)을 사랑해야지"라며 읊고 있다. 그는 점점 더 가혹해지는 민족과 세계민중의 기막힌 수난을 자신의 실존적인 아픔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도 이부키씨의 번역에는 문제가 많다. 그는 이 구절을 '모든 살아 있는 것(生きとし生けるもの)을 사랑해야지' 라며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문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일본의 대표적인 조선문학연구자 오무라 마스오 와세다대 교수도 '서시'의 이부키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고 한다.


"윤동주가 서시를 쓴 당시 일본 군국주의 때문에 많은 조선인들이 죽어갔고, 조선인의 말과 민족 옷, 생활풍습, 이름 등 민족문화의 모든 것이 '죽어가는' 시대였다. 이렇게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외친 그는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을 당연히 심히 증오했을 것이다. 이부키의 번역은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도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이 돼버리지 않을까?"(<한겨레신문> 6월 16일자)


또 연세대의 정현기 교수는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의 의미 차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그 표현을 의도적으로 구겨놓은 일본인 문인의 숨겨진 의도가 너무 천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제3자에 의해 윤색된 1차 사료(일기, 편지 등)는 신뢰하지 않으며 연구에 가급적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듯 의도적으로 윤색된 오역은 외면 받는 역사 사료와 그 무엇이 다를까?


* 사진 ▲ 윤동주의 장례식 광경 일제의 고문에 의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한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 광경(1945년 3월 6일 용정 자택) ⓒ2006 독립기념관


'서시'의 잘못된 번역... 오해와 대립만 심화시켜


최근 재일교포학자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는 "꺼림칙한 과거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한 일본인 문학가의 개인적 정서로 인해 윤동주의 시도 가능한 한 일본을 향한 고발로서가 아니라 매우 일반적인 '실존적 사랑의 표백(표출)'으로 읽고 싶어 하는 것이다. 번역이라는 행위가 타자간의 상호이해를 증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오해와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실례가 바로 이부키의 번역에 있다"(<한겨레신문> 7월 14일자 '모어'라는 감옥)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새롭게 세워진 윤동주 시비 위의 이부키 역 '서시'들 또한 계속해서 오해의 또 다른 실타래로 이어져 갈까봐 걱정하게 된다.


이 문제의 한가운데는 윤동주의 '저항시인으로서의 면모'와 '보편적이면서도 실존적인 사랑'이라는 두 시각이 충돌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윤동주의 서시는 이미 기독교 신앙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민족에 대한 애환이라는 특수한 가치가 동시에 내재되어 융합된 역설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어느 한 쪽만 강조할 수도, 누락시킬 수도 없는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윤동주 시의 원문이 왜곡됐는지의 여부인데, 심각한 오역이 일본에서 정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그렇듯 윤동주의 시를 바로 옮겨 쓰기 위해서는 그의 시 세계의 두 가지 체험과 가치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즉 식민지 수난의 민족 일원으로서의 실존적인 고통 체험과 거기에 저항할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하고 결단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었던 기독교 신앙의 체험이다.


물론 윤동주의 기독교 신앙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며 그 폭을 확대시키고 싶은 마음도 생길 수 있겠으나, 한 일본인 문인의 옹졸한 의도는 시인 윤동주의 신앙과 정신세계를 적잖이 왜곡시키고, 교묘한 은폐의 의도로 얼룩진 윤동주의 '서시'를 일본인들에게 전파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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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생애 흔적

 1942년 6월 3일, 일본 도쿄에서, 마지막 작품 '쉽게 씌여진 시'를 씀

 19942년 7월, 간도 용정 고향집을 마지막으로 방문.

 1942년 10월 1일, 교토로 옮겨 도시샤 대학 영문과로 편입.

 1943년 7월, 일경에 의해 체포됨.

 1945년 2월 16일, 의문의 주사를 맞던 중, 옥사함.

 1946년 7월, <경향신문>에 유작 <쉽게 씌여진 시>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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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비가 새롭게 세워진 곳은 시인의 도시샤 대학 유학시절 자취방이었던 다케다(武田) 아파트가 있던 곳으로, 창작의 열정을 꽃피웠던 마지막 처소였다. 시인은 이곳에서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의 굴레가 씌워져 1943년 10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5년 2월 알 수 없는 이유로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당시 함께 체포돼 역시 옥사한 시인의 고종 사촌 송몽규를 면회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매일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밝힌 바 있어 일제의 악랄한 생체실험 희생자라는 설도 있다.


그가 마지막 삶을 살았던 일본 교토의 한 변두리에 그를 기념하는 시비가 또다시 세워진다는 것은 정말 반갑고 기쁜 일이다. 그래서 나도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잰걸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하지만 시비를 지켜보던 중, "윤동주가 점점 상업화 되어가는 것 같다"며 무심코 내뱉은 아내 미나꼬의 한 마디는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다.


윤동주는 어느새 교토지역의 관광자원으로 인식되고, 도시샤, 교토조형예술대학 등의 학교 홍보용 소재가 된 듯한 느낌이다. 최근에는 인근 리츠메이칸 대학의 교수도 새로운 시비 건립 계획을 발표해 그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가운데는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신앙, 그리고 그의 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전제되었다 기 보다는 무조건 시비만 세우고 보자는 식의 성급한 도구적 논리가 앞선 것 같다.


이미 1995년, 구라타 마사히코, 한석희 선생 등, 일본 기독교 문인들이 뜻을 모아 <天と風と星と詩>라는 시집을 새롭게 펴내어 이부키씨의 시집 <空と風と星と詩>에 반박한 바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오역들이 모두 고쳐져 새롭게 세상에 나온 것이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부키씨의 번역이 새 시비 위에 버젓이 새겨져 있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씁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序詩


死ぬ日まで天を仰ぎ


一点の恥もないことを


葉群れにそよぐ風にも


私は心を痛めた。


星をうたう心で


すべての死んでいくものを愛さねば


そして私に與えられた道を


歩んでいかねば。


今宵も星が風にこすられる。


(일본 기독교 출판국. 日本キリスト敎出版局)


나는 교토 변두리에 세워진 새로운 시비 앞에서, 60여 년 전 조국의 하늘을 그리워했을 윤동주 시인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세워진 시비 위에 그의 마지막 유작 <쉽게 씌여진 시(詩)>가 새겨졌어야 한다는 깊은 아쉬움을 지금까지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쉽게 씌어진 詩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握手).


1942년 6월 3일.


/홍이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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