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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anic의 우리말 표기

작성자은밤|작성시간10.01.21|조회수510 목록 댓글 1

Titanic은 영국에서 만든 배였다. 실제 건축은 아일랜드의 벨파스트(Belfast)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Titanic 호의 사건은 몇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중 가장 대작이고 최근의 것이 1997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Titanic을 우리말로는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사전에는 "'타이타닉'호"라고 되어 있다. 어원

자체가 그리스신화의 타이탄에서 나온 것이다. 또 배를 건조한 영국사람들 발음이 ‘애' 보다는 '아'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어 발음이 '타이타닉'에 가깝다.

 

반면 미국영어는 '타이태닉'이다. ~ic로 끝나면 대개 바로 앞의 음절에 액센트가 와서 '태'에

액센트가 붙는다. (실은 같은 문제가 이 '액센트'에서도 나온다. 표준 표기는 -그게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악센트'인 듯하다. 하지만 영어 발음은 액센트, 액선트 같은 식이다.

근본적으로 영어 발음과 한글 발음은 달라서 똑같이 표기할 수는 없다.)

 

Titan의 영어 발음은 ~an이 약하게 나서 '타이튼'에 가깝게 들린다. 그러나 우리말로 그렇게

표기할 이유는 없어 '타이탄'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Titanic이 형용사로 간주될 때는

'타이탄의'라고 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것이 고유명사가 될 때는 원래 영어이기 때문에

Titanic이 '타이탄'에서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타이타닉이라고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영어일 때는 미국과 영국 영어에 따라 각각 '타이태닉'과 '타이타닉'이 가능하다. 한영사전에는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확인한 것은 모두 '타이타닉 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이런 식의 발음상의 혼동이 많다. 예전에는 영국식 영어를 많이

배웠다. 특히 발음이 그랬다. 미국에서도 학생들에게 봉사로 영어를 가르치던 할머니 한 분이

한국사람들은 영국식 영어발음을 한다는 지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게 반드시 영국식

영어이기 때문이라기보다 단어 속의 알파벳들을 원발음을 잘 알지 못하고 발음기호처럼 인식한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난 친미, 반미라는 용어를 초월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영화나 뉴스 등을 통해 미국식

영어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고 있기 때문에 발음은 미국식 발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어를 가르치다보면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Titanic의 한글표기를 정하라면

'타이태닉'을 선택할 것이다.

 

이런 예도 있다. 'Robot'은 원래 동구권(체코)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원발음이 뭔가는 잘 모르겠다.

이것을 예전에는 '로보트'라고 표기했다. 지금은 영한사전들에서보면 '로봇'이라 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 발음을 들어보면 다 '로밧'이라고 한다. 물론 로-가 장음이고 등등 그 발음을 우리말로

그대로 표기해낼 수 없음은 우리말이 세상의 발음들을 표기해낼 수 있는 발음기호가 아니기 때문에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다. Robot을 우리말로 표기할 때 차라리 '로밧'이라 표기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흔히 보는 잘못은 '애'와 '에'의 혼동이다. 영어 단어의 스펠링으로도 발음으로도 혼동될 여지가

없는데 혼동되어 표기되는 경우가 TV에서도 뉴스에서도 흔히 보인다. 기자나 관계자들의 수준을

의심할 때가 많다. "에로" 영화를 "애로" 영화라고 하면 어딘지 코미디 같다. '애로사항'을 '에로사항'

이라고 말장난하는 경우도 많다. '에로' 자체가 일본식 과감히 끊어먹기, 줄이기, 엉터리 발음쓰기의

전형적인 예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아가서, 왜 대체 가급적이면 단어를 외국어로 쓰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글을

써도 충분한 경우도 많고, 더 창의적으로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영화 제목은 거의 한결같이 영어

발음을 그대로 나타낸 것들이다. 다음은 요즘 며칠 동안 케이블 TV에 나왔던 예이다.

 

- 콜래트럴 Collateral

- 오션스 트웰브 Ocean's Twelve

- 레인 오브 파이어 Reign of Fire

- 더 셀 The Cell

- 얼티메이텀 Ultimatum

- 투모로우 The Day After Tomorrow

- 엑시트운즈 Exit Wounds

- 데블스 에드버킷 The Devil's Advocate

- 겟 썸 Get Some

 

이중 The Day After Tomorrow와 The Devil's Advocate는 전에 이미 시청한 것들이며 다른

것들은 본 것은 아니다. "레인 오브 파이어"라는 제목을 보고는 "Rain of Fire"를 상상했었다.

"엑시트운즈"는 Wounds는 떠올렸는데 Exit과 연결이 되지는 않았다. "투모로우"는 미국에서

영화를 본 것이기 때문에 영어 제목을 알고 있었고, 뭉텅 잘라먹은 이상한 제목임은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다.

 

명사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그래도 봐줄만 하지만 관사/정관사, 전치사, 소유격, 복수형, 부사

같은 것들이 발음대로 표기되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콜래트럴" 같은 단어를 알아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영어 단어의 뜻을 알고 있다고 해도 영화에서의 뜻(an expendable person

who's in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을, 영어로 듣고 이해하지 않는 한 알아챌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상황이 개탄스러울 정도이다. 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곳이 적절한 한글제목 하나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시청자의 수준이 한글로만 쓴 발음을 보고 영어제목도 제대로 알아내고 그 뜻도

알아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수준이 되어 있다는 소리인가. 확인해보니 19금 영화의 제목들은

절반쯤(제목들의 절반이기도 하고 한 제목 안에 한글과 영어단어가 절반 정도씩 들어 있다는 뜻)은

한글로 되어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영어로 써야 고상해진다는, 참으로 잘못된 관념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는 외국영화 제목의 무분별한 표기는 그만하고 창조적인 한글제목들을 달아

가는 분위기가 되길 바래본다.

 

- 2010. 1. 21. 翰軠 류주환

 

 

PS. 눈에 띈 영화 제목 하나: "공공의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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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은물결 | 작성시간 10.01.22 "앞으로는 외국영화 제목의 무분별한 표기는 그만하고 창조적인 한글제목을 달아가는 분위기가 되길 바래본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참 좋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Wings of Desire"(1987)는 독일어 원제목과 많이 다른 것이 예가 될 것 같구요. 허진호 감독의 "외출"(2005)도 영어제목이 "April Snow"로 많이 다르지요. 각 지역 특유의 말습관 또는 말표현이 존재하므로 그것을 아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타이태닉"이라는 발음에 익숙한데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1997년작인 "Titanic"외에 1953년작인 "Titanic"이 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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