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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한시]차에 관한 멋진 한시 한 수: 茶半香初

작성자은밤|작성시간02.10.03|조회수1,046 목록 댓글 0

차에 관한 멋진 한시 한 수...

   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

이 시는 황산곡 즉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자 노직(魯直), 호 산곡(山谷)]의
시라고도 나오며 추사 김정희의 "다선송(茶禪頌)"이라고도 나오는데,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추사는 남의 글을 글씨로 쓰기만 했을 것도 같습니다.
하여간 황정견은 차를 좋아해서 차를 주제 내지는 소재로 한 시가 백여 편이
된다고 하며, 차를 "雲수"(수 = 파리할 수: 嫂의 女대신 月) 파리한 구름... 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시의 번역은 여러 가지로 나옵니다.

   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를 반 넘게 마시도록 타는 향은 처음과 같고
   고요히 흐르는 시간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더라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면 향기는 언제나 처음 그 맛.
   신묘한 마음(지혜)의 작용은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고요한 자리에 앉아, 눈으로는 색깔을
   코로는 향기를 입으로는 맛을 음미하며
   차를 마시니 어느 때인지
   물 흐르고 꽃피는 곳에 와 있구나.

   고요한 좌선실에 차 맛은 반잔의 맛, 향기는 첫 향기
   묘용을 쓰는 시간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나니.
 
   등등.

우선 靜坐處 茶半香初의 뜻은 명확해 보입니다. 고요한 곳에 앉아 있는 것과 차가 반이
줄었는데도 향기는 처음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茶半香初는 위의 마지막
번역에서처럼 '차 맛은 반잔의 맛, 향기는 첫 향기'라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해석 문장이 주장하는 내용['차 맛은 반잔의 맛...']이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고, 水流花開 구절과 대비해보면 '차는 반이 되었고 향은 처음이다'로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반면에 다음 줄의 해석은 다 다릅니다. '묘용'이라는 것은 불교나 선가에서 즐겨 쓰는
용어로서 '신묘한 작용, 불가사의한 작용, 극히 뛰어난 작용'을 말합니다. 예로서 다음
구절이 있네요.

   蓋己者卽本來之虛靈, 動者爲意, 靜者爲性, 妙用則爲神也.
   대개 "자기(己)"라고 하는 것은 본래 허(虛)의 작용으로서, 움직이면 "의(意)"가
   되고, 고요하면 "성(性)"이 되고, 신묘하게 작용하면 "신(神)"이 되느니라.

그러니까 妙用時 水流花開는 "'묘용'의 때에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말이
됩니다. 위에서 妙用時 부분의 해석은 다 의역이고 어떤 것은 그 정도가 심하게
보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석해 보았습니다.


   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
   고요히 앉은 이곳 차는 반 줄었어도 향기는 여전하네
   신묘한 작용이 일어나니 물 흐르고 꽃 피어나는구나

 
'靜坐處'는 그 뒤의 구절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차가 가져다주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이며 그것이 바로 '정좌한 그 곳'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 앉아'라고만 해석하면 그 의미와 뉘앙스를 잃는 것이 많을 겁니다.
'水流花開'의 구절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기가 막히게 멋집니다. 아마도 이미 주위는
물이 흐르고 있고 꽃이 피어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묘용시' - '정(靜)'과 '차(茶)'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신묘한 경지의 순간에 그 물과 꽃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합니다.
똑같은 물과 똑같은 꽃을 봐도 우리의 마음 상태 여하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종의 득선(得禪)과 득선(得仙)의 순간에 통상의 자연이
새로움의 자연으로 창조되어 피어나는 것이겠지요.

이상은 제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입니다. 더 좋은 번역과 다른 의견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때요, 차 한 잔 나누면서 인생을 함께 관조해 보시지 않으실래요?
이 카페가 그런 '언어의 차'를 나누는 곳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 은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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