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ring and Fall -
to a young child
Margaret, are you grieving
Over Goldengrove unleaving?
Leaves, like the things of man, you
With your fresh thoughts care for, can you?
Ah! as the heart grows older
It will come to such sights colder
By and by, nor spare a sigh
Though worlds of wanwood leafmeal lie;
And yet you will weep and know why.
Now no matter, child, the name:
Sorrow’s springs are the same.
Nor mouth had, no nor mind, expressed
What heart heard of, ghost guessed:
It is the blight man was born for,
It is Margaret you mourn for.
봄과 가을 : 어린 소녀에게
마가렛, 너는 황금빛 숲에
낙엽이 지는 걸 보고 슬퍼하고 있니?
낙엽을, 여러 인간사처럼, 그렇게
순진한 생각으로 측은해하다니, 정말 네가?
아! 마음이 늙어갈수록
더 차가운 광경에 차츰
익숙해지고, 창백한 숲의 세계가
한 잎 한 잎 떨어져 썩어 가도 한숨조차 쉬지 않을 거야;
그러나 너는 울면서 그 이유를 알려 하겠지.
허나, 얘야,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단다:
슬픔의 원천들은 다 똑같으니.
어떠한 입도 또 어떤 정신도 표현하지 못했단다.
가슴이 듣고 영혼이 짐작한 것을:
그것은 인간이 결국 걸리고 마는 질병이고
네가 슬퍼하는 것도 마가렛 네 자신임을.(김호영 역)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 1844-1899)는 빅토리아조 시대의 영시와 현대 영시를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는 시인이다. 홉킨스는 ‘sprung rhythm'(돌발 리듬)을 위시해서 독특한 조어법 등으로 새로운 기교를 도입한 스타일의 시를 써서 현대 영시의 초석을 닦았고, 또 가톨릭 사제로서 기독교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cf)돌발 리듬: 4행의 첫 음보를 'leaves', 'like'처럼 강강보로 처리하는 등의 예.
이 시는 ‘마가렛’이라는 소녀가 ‘황금빛숲 ’ (goldengrove = golden + grove)에 낙엽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화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golden'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황금을 지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장 좋은 부분, 더 나아가 기독교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에 낙원에 기거하던 시기를 의미하는 수식어이다. 비록 소녀는 이 단어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화자는 이 단어를 통해서 삶의 어두운 측면을 알지 못했던 소녀의 어린 시절이 이제 끝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인류의 타락이라는 패턴을 한 인간으로서 다시 한 번 겪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 시의 기본적인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1-4행에서는 순진한 소녀가 처음으로 느끼는 삶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화자의 놀라움이 주조를 이루고, 그 다음 5-8행에서는 화자 자신의 인생 경험에 입각한 삶에 대한 어두운 시각이 주조를 이룬다.
9-11행 부분에서 화자는 비로소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 접근한다. 그 질문은 왜 인간은 그러한 고통과 죽음으로 얼룩진 세계에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 시의 제목인 ‘spring and fall'에는 ‘봄’과 ‘가을’이라는 뜻 외에 ‘원천’과 ‘타락’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따라서 제목 속에 9행에 나타난 소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느 정도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지막 12-15행에서 화자는 슬픔의 원천을 인지할 수 있는 수단은 인간의 언어나 지적 능력(‘mouth', 'mind')이 아니고 마음과 영혼(’heart', 'ghost')임을 강조하고, 비록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의 근원적인 조건으로서의 타락과 죽음 그리고 그것의 보편성을 소녀에게 말해준다.
그러나 화자는 끝끝내 소녀의 질문에 명백히 답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언어나 이성적 이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화자는 ‘blight'(잎마름병)이라는 은유로 인간의 타락이나 죽음을 대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blight'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마가렛이 낙엽을 보고 슬퍼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타락과 죽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홉킨스는 인간은 오만에 의해서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었고 그것의 결과로서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이 시를 썼지만 의도적으로 기독교적인 색채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설명이 어린 소녀에게 그저 설명으로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화자는 소녀가 개념적이 아니라 순진한 마음으로 파악한 인간의 타락과 죽음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호영, 영시와의 만남, 지문당. 173쪽-177쪽)
인터넷으로 본 중앙일보에서 북한 청진 시내의 피폐한 모습이 동영상으로 올라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꽃제비들이 굶어 비실비실하고, 동상으로 발가락이 썩어 떨어져나가 기어다니는 모습, 소주병을 입에 대고 나발불 듯 마시고, 담배를 능숙하게 뻐끔거리는 모습 등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처참한 가난은 가장 약한 어린 아이들부터 망가뜨리는군요.
슬프게 삶을 견뎌내는 어린 부랑아 꽃제비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to a young child
Margaret, are you grieving
Over Goldengrove unleaving?
Leaves, like the things of man, you
With your fresh thoughts care for, can you?
Ah! as the heart grows older
It will come to such sights colder
By and by, nor spare a sigh
Though worlds of wanwood leafmeal lie;
And yet you will weep and know why.
Now no matter, child, the name:
Sorrow’s springs are the same.
Nor mouth had, no nor mind, expressed
What heart heard of, ghost guessed:
It is the blight man was born for,
It is Margaret you mourn for.
봄과 가을 : 어린 소녀에게
마가렛, 너는 황금빛 숲에
낙엽이 지는 걸 보고 슬퍼하고 있니?
낙엽을, 여러 인간사처럼, 그렇게
순진한 생각으로 측은해하다니, 정말 네가?
아! 마음이 늙어갈수록
더 차가운 광경에 차츰
익숙해지고, 창백한 숲의 세계가
한 잎 한 잎 떨어져 썩어 가도 한숨조차 쉬지 않을 거야;
그러나 너는 울면서 그 이유를 알려 하겠지.
허나, 얘야,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단다:
슬픔의 원천들은 다 똑같으니.
어떠한 입도 또 어떤 정신도 표현하지 못했단다.
가슴이 듣고 영혼이 짐작한 것을:
그것은 인간이 결국 걸리고 마는 질병이고
네가 슬퍼하는 것도 마가렛 네 자신임을.(김호영 역)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 1844-1899)는 빅토리아조 시대의 영시와 현대 영시를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는 시인이다. 홉킨스는 ‘sprung rhythm'(돌발 리듬)을 위시해서 독특한 조어법 등으로 새로운 기교를 도입한 스타일의 시를 써서 현대 영시의 초석을 닦았고, 또 가톨릭 사제로서 기독교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cf)돌발 리듬: 4행의 첫 음보를 'leaves', 'like'처럼 강강보로 처리하는 등의 예.
이 시는 ‘마가렛’이라는 소녀가 ‘황금빛숲 ’ (goldengrove = golden + grove)에 낙엽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화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golden'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황금을 지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장 좋은 부분, 더 나아가 기독교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에 낙원에 기거하던 시기를 의미하는 수식어이다. 비록 소녀는 이 단어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화자는 이 단어를 통해서 삶의 어두운 측면을 알지 못했던 소녀의 어린 시절이 이제 끝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인류의 타락이라는 패턴을 한 인간으로서 다시 한 번 겪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 시의 기본적인 주제를 암시하고 있다.
1-4행에서는 순진한 소녀가 처음으로 느끼는 삶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화자의 놀라움이 주조를 이루고, 그 다음 5-8행에서는 화자 자신의 인생 경험에 입각한 삶에 대한 어두운 시각이 주조를 이룬다.
9-11행 부분에서 화자는 비로소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 접근한다. 그 질문은 왜 인간은 그러한 고통과 죽음으로 얼룩진 세계에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 시의 제목인 ‘spring and fall'에는 ‘봄’과 ‘가을’이라는 뜻 외에 ‘원천’과 ‘타락’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따라서 제목 속에 9행에 나타난 소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느 정도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지막 12-15행에서 화자는 슬픔의 원천을 인지할 수 있는 수단은 인간의 언어나 지적 능력(‘mouth', 'mind')이 아니고 마음과 영혼(’heart', 'ghost')임을 강조하고, 비록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의 근원적인 조건으로서의 타락과 죽음 그리고 그것의 보편성을 소녀에게 말해준다.
그러나 화자는 끝끝내 소녀의 질문에 명백히 답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언어나 이성적 이해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화자는 ‘blight'(잎마름병)이라는 은유로 인간의 타락이나 죽음을 대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blight'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마가렛이 낙엽을 보고 슬퍼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타락과 죽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홉킨스는 인간은 오만에 의해서 낙원으로부터 추방되었고 그것의 결과로서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이 시를 썼지만 의도적으로 기독교적인 색채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설명이 어린 소녀에게 그저 설명으로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화자는 소녀가 개념적이 아니라 순진한 마음으로 파악한 인간의 타락과 죽음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호영, 영시와의 만남, 지문당. 173쪽-177쪽)
인터넷으로 본 중앙일보에서 북한 청진 시내의 피폐한 모습이 동영상으로 올라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꽃제비들이 굶어 비실비실하고, 동상으로 발가락이 썩어 떨어져나가 기어다니는 모습, 소주병을 입에 대고 나발불 듯 마시고, 담배를 능숙하게 뻐끔거리는 모습 등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처참한 가난은 가장 약한 어린 아이들부터 망가뜨리는군요.
슬프게 삶을 견뎌내는 어린 부랑아 꽃제비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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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etaphor 작성시간 05.01.07 잘 읽었습니다. the name이란 슬픔으로 몰고가는 원천에 대한 지칭인가요? 낙엽, 썪음등의 단어때문에 죽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입도 어떤 정신도 표현하지 못했단다"라는 표현때문에 죽음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 것 같기도 하고 ... 어렵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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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Jan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5.01.12 저도 좀 어려웠지만, 인생의 유장함과 비감을 일깨우는 점이 의미있게 느껴져서 참고로 시평을 길게 실었답니다. 그냥 시만 읽으면 잘 모를 수 있지만, 해설이 있으니 좀 더 이해가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