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는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시인 Theodore Roethke(1908-1963)의 시 "비애"(Dolor)를 소개합니다.
I have known the inexorable sadness of pencils,
Neat in their boxes, dolor of pad and paper-weight,
All the misery of manilla folders and mucilage,
Desolation in immaculate public places,
Lonely reception room, lavatory, switchboard,
The unalterable pathos of basin and pitcher,
Ritual of multigraph, paper-clip, comma,
Endless duplication of lives and objects.
And I have seen dust from the walls of institutions,
Finer than flour, alive, more dangerous than silica,
Sift, almost invisible, through long afternoons of tedium,
Dropping a fine film on nails and delicate eyebrows,
Glazing the pale hair, the duplicate grey standard faces.
곽 속에 깨끗하게 들어있는 연필들의 가혹한 슬픔을,
압지와 문진의 슬픔을, 서류철과
마닐라 폴더와 고무풀의 온갖 빈곤함을,
먼지하나 없는 공공장소,
인적 없는 접대실, 화장실, 교환대의 황량함을,
대야와 물병의 변함없는 애수를,
식자인쇄기, 종이집게, 구두점의 의례를.
생명체와 사물들의 끊임없는 동질화를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공공건물의 벽에서 밀가루보다 곱고,
살아있어, 규토보다 더 무시무시한 먼지가 거의 보이지 않게,
지루한 오후의 권태 속으로 흘러내려 손톱과 섬세한 눈썹위에
고운 막을 떨어뜨리며, 창백한 머리와
똑같은 창백한 표준형 얼굴들들 번들번들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시에서 뢰트키는 거대화되고 인간미가 사라진 도시문명이 가져다주는 병폐를 지적한다. 이 시를 생태학적 관점으로 감상하면.... 뢰트키가 묘사하고 있는 문명세계의 상징인 사무실이란 공간은 슬픔, 빈곤함, 애수, 황량함 등이 만연해 있는 비생명적인 장소이다. 그는 현대 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규격화, 동질화, 표준화로 대표되는 생태학적 종말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시인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먼지"가 현대인들의 창백한 머리와 얼굴을 번들거리게 하며 점점 더 생태의식에서 멀어져 가게 만들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것은 거대화, 동질화를 지향하는 현대 물질문명이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 되며 나아가 인간성 파멸을 가져온다는 뢰트키의 심오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뢰트키는 대학원에 와서 처음 접한 시인인데, 그의 시를 읽으면 읽을 수록 묘한 여운을 가져다 주는.... 훌륭한 시인인것 같습니다.
I have known the inexorable sadness of pencils,
Neat in their boxes, dolor of pad and paper-weight,
All the misery of manilla folders and mucilage,
Desolation in immaculate public places,
Lonely reception room, lavatory, switchboard,
The unalterable pathos of basin and pitcher,
Ritual of multigraph, paper-clip, comma,
Endless duplication of lives and objects.
And I have seen dust from the walls of institutions,
Finer than flour, alive, more dangerous than silica,
Sift, almost invisible, through long afternoons of tedium,
Dropping a fine film on nails and delicate eyebrows,
Glazing the pale hair, the duplicate grey standard faces.
곽 속에 깨끗하게 들어있는 연필들의 가혹한 슬픔을,
압지와 문진의 슬픔을, 서류철과
마닐라 폴더와 고무풀의 온갖 빈곤함을,
먼지하나 없는 공공장소,
인적 없는 접대실, 화장실, 교환대의 황량함을,
대야와 물병의 변함없는 애수를,
식자인쇄기, 종이집게, 구두점의 의례를.
생명체와 사물들의 끊임없는 동질화를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공공건물의 벽에서 밀가루보다 곱고,
살아있어, 규토보다 더 무시무시한 먼지가 거의 보이지 않게,
지루한 오후의 권태 속으로 흘러내려 손톱과 섬세한 눈썹위에
고운 막을 떨어뜨리며, 창백한 머리와
똑같은 창백한 표준형 얼굴들들 번들번들하게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시에서 뢰트키는 거대화되고 인간미가 사라진 도시문명이 가져다주는 병폐를 지적한다. 이 시를 생태학적 관점으로 감상하면.... 뢰트키가 묘사하고 있는 문명세계의 상징인 사무실이란 공간은 슬픔, 빈곤함, 애수, 황량함 등이 만연해 있는 비생명적인 장소이다. 그는 현대 물질문명이 가져다 준 규격화, 동질화, 표준화로 대표되는 생태학적 종말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시인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먼지"가 현대인들의 창백한 머리와 얼굴을 번들거리게 하며 점점 더 생태의식에서 멀어져 가게 만들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것은 거대화, 동질화를 지향하는 현대 물질문명이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 되며 나아가 인간성 파멸을 가져온다는 뢰트키의 심오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뢰트키는 대학원에 와서 처음 접한 시인인데, 그의 시를 읽으면 읽을 수록 묘한 여운을 가져다 주는.... 훌륭한 시인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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