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에 대한 오해 푸세요
“샤넬 No.5(넘버 파이브)만.”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질문에 50년대의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가 한 대답.여전히 인구에 회자되는 이 에피소드는 샤넬 No.5라는 특정 상표의 신화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샤넬 No.5는 화학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성분의 대부분이 천연물질이긴 하지만 최초로 허용된 합성물질을 이용했기 때문이다.휘발성이 높아 사람들이 향수에서 처음 맡게 되는 ‘시향'(top note)으로 2-메틸언데카날(2-methylundecanal)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했다.
낭만과 매력의 상징인 향수도 알고 보면 향기를 가지는 개개의 물질들이 잘 용해된 상태로 알코올에 희석돼 있는 화학물질.향수의 종류 중 ‘퍼퓸'은 보통 15% 정도의 정유(알코올로 희석되기 전의 물질)를 포함하고 있으며,알코올은 95%가 가장 높은 등급이다.증류를 해도 없어지지 않는 소량의 물 때문에 알코올 100%는 만들기 힘들다.향수 중 ‘오 드 토일렛' ‘오드 코롱'의 ‘오'는 물을 뜻하며 이런 제품은 물 함유량이 ‘퍼퓸'에 비해 높다.
영국 화학자 존 엠슬리 박사의 ‘화학의 변명'(전 3권·허훈 옮김·사이언스북스)은 이처럼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화학에 대한 안내서.향수뿐 아니라 감미료 알코올 콜레스테롤 진통제 등 화학물질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자가 역점을 둔 것은 화학물질이라고 하면 무조건 백해무익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오해를 해소시키는 것.“질병은 특정 화학물질 때문이 아니라 영양부족,잘못된 생활습관,운동부족,흡연 등이 원인이 되어 걸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안전하다고 증명된 화학물질에 대해 설명한다.
감미료의 경우를 보자.무조건 단 것을 먹으면 충치가 생기고 비만이 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자일리톨이라는 인공 감미료는 충치를 예방해 주고,아세설팜은 식욕을 약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또 설탕을 꺼리는 사람들이 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나,꿀 역시 근본적으로 설탕의 집합임을 지적한다.꿀은 포도당과 과당 약 70%,설탕과 맥아당 약 10%,물과 나머지 20%가 섞인,당과 물의 집합이다.단백질이나 무기질은 미량이라 탄수화물 이외에는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 몸 안의 화학물질에 대한 오해도 마찬가지다.중년 이후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기름기 있는 음식을 피하고,잡곡식을 하는 등.그러나 혈중 콜레스테롤은 대부분 직접 음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서 만들어진다.따라서 적절한 운동 없이 음식 조절만으로 안심할 일이 아니다.
저자의 주장대로,화학물질을 모두 부정하고 세상의 재난을 화학자의 탓으로만 돌리는 분위기는 지나친 감이 있다.현대인들이 다이옥신 PVC 질소비료 등 환경 속의 화학물질에 비난의 화살을 보내기 이전에 자신의 생활습관부터 돌아보아야 함은 물론이다.하지만 책에 실리지 않은 납 라돈 CFC처럼 여지없이 위험한 화학물질들도 존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스포츠투데이 이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