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준비하는 사람만이 이 세상 매순간의 주인공이 된다.
"적선덕(積善德) 천심합일(天心合一)"
"수성(獸性)을 버리고 본성(本性)을 맑고 깨끗이"
30대 초반이었던 91년도 후반에 거금을 들여 진검 한 세트(대도, 소도)를 구입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뭔가 마음 공부를 통해 뜻을 이루어보겠다는 의지를 담아 검의 몸체에 새긴 글귀로 기억한다.
나름 심오하고 오묘한 진리를 갈구하면서
뭔가를 찾아헤매던 시기였지않나 싶다.
그 해 초 부산의 한 신문에 해동검도 수련 첫 오픈 광고에 실린 '단전호흡'과 '촛불끄기', 그리고 '진검'에 매료되어 부산 유단자 1기가 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98년도에는 부산의 각 무술 지도 관장 33명을 모아 해동검도 진검 교육을 거쳐 해동검도 협회를 결성했고. 목검과 진검으로 수련하는 그게 현재 부산의 해동검도가 정식 협회로서 발전한 태동이다.
이 후 10년이 지난 40대 초반에는, 술기나 이론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면에서도, 지금 생각하면 쑥스러울 정도이나, 나름대로 자부심도 가졌던 시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당시 본인이 창안한 쌍검술기와 기무 수련을 해동검도 쌍검교본 1, 2권의 출간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부산문화회관 중강당에서 해동검도 최초 공연을 펼치면서 협회도 결성한다.
그게 2001년도다.
지금의 세계해동검도연합회 (United World Haedong Kumdo Federation)태동이며, 약 20년이 지난 지금 현재, 약50개국에 걸쳐 매년 7~8회 정도 해외 행사를 직접 주관하면서 대한민국의 무술과 문화를 전하고 있다.
2001년 미국 오클라호마 툴사 세미나와 시범을 기점으로 40대에는 해외로 전격 진출하여 각국 지부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해외 행사들을 바탕으로 2009년도에 마침내 세계대회를 부산에서 성황리 마치면서, 지구촌 곳곳에 인간이 건강하고 잘살수 있는 법을 전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선포하기에 이른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가졌던 사고나 무술에대한 개념들이 참으로 미약하기 그지없는 듯하나, 50대로서의 역량을 나름대로 유감없이 십분 발휘했을 것으로 스스로 위안해 본다.
이제 어느 덧 60대를 훌쩍 넘어와 있다.
해동검도와 마주하여 권태기 한번 느껴본 적 없이 지금까지 줄곧 달려온지 벌써 30년이다.
이제 지구촌 곳곳에서 하는
진영쌍검류 수련을 쉽게 찾아진다.
무술에서 술기란 반복된 수련을 통한 육체적 완벽성의 상승 무공에 접근한다는 것으로 볼 때, 세월이 가면서 그것은 인간 삶 전체에서 볼 때 참으로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조금씩 절실히 인식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무술수련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분을
점차적으로 조금씩 인식하고
경험을 해 갈 수 있게 될 때는
세상을 보는 인식이
하늘 땅 차이만큼 달라진다.
그것은 내가 아는 만큼만 철학적, 종교적 등의 여러가지 표현과 설명이 무한대로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게 된 부분을 나타내는 것에
상당히 조심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야 조금은
무술의 수준과 품격을 아는 듯하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니,
아무리 안다고 하나
우물안 개구리일 수도 있으며,
또한 남이 이해 못하니
터무니 없을 수가 있는 것이며,
아무리 잘 나타낼 수 있다해도
인간인 이상 부족할 수밖에 없기때문이다.
현대무술 수련을 통한
인간삶의 궁극적 목표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면,
무술 술기 능력 향상을 위한
육체적 수련만으로 머물지 않아야 하며,
각자의 의식 수준과 올바른 가치관을 향상시키며, 지도자로서의 사회적 역량을 넓히려면 각자 부족한 공부를 해야됨을 자각하게 된다.
모르지만 잘 아는 줄, 그리고 잘 하는 줄 착각했던 많은 세월, 그것도 일련의 과정으로서 합리화해본다.
지금은 전 세계 무술을 한꺼번에 손바닥안에서
크릭 한 번으로 볼 수있는 세대다.
그 수준과 격의 상중하가
바로 가려진다.
무술수련이 무적불패의 강한 파이팅의 승부사나 보여주기식으로 간다면,
물론 그것도 당연히 중요한 부분일 수 있으나,
무술, 무도 즉 무예의 본질과 맛, 그리고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을 자연의 이치를 통해 알기란 불가능이다.
이 세상 올 때도 정신없이 왔지만,
갈 때도 마찬가지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가게 된다.
아프지 않고 가게 된다면
천만다행이다.
인간 삶에서 고행이란
내가 모르니 고행이 되는 게 당연하며,
미리 준비하지 않았기에 또는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기에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 고행길을 자초한다.
수행은 당연히 고행이다, 혹은
인간 삶은 괴로움 혹은 허무 그 자체다라는 말은
완전히 잘못된 말이다.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 공히 모르니 고행이 된다.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룬다는 것과 고행은 별개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아야 하기에 육체적 수련이 고행으로만 되어서는 인간의 제한된 수명 속 건강과 행복, 즉 질적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에 많이 부족할 수있다는 말이다.
특히 지도자는 한 인간을
"육체의 나"와 "마음의 나"를 함께 가도록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생각을 바꾸고 기존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된다.
물론 각자 하고자 하는 바대로,
맘 먹은 대로 각자 역량껏 가면 된다.
왜냐면 자기 인생은 각자 스스로 만들어가며,
각자 스스로 책임을 지어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기가 겪어보아야 알게되며,
아는 만큼, 노력한 만큼만 자기 것이 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면서 인간의 의식과 가치관은 끊임없이 성숙 발전한다.
인간 유사이래 자연의 이치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30대 초반에 검에 새겨 둔 "본성(本性)" 이나 "천심합일(天心合一)"은 어느 시점에 까마득히 잊어먹는다.
60대에 들어선 어느 날 문득 칼에 새겨둔 그 글귀가 검집에서 빼는 순간 눈에 마주쳐 꽂힌다.
그 당시 나름 뜻을 세우고 새긴 글이었겠지만 까마득히 잊어먹고 무려 삼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 그것을 보는 순간, 이제사 그것을 겨우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못한다. 세월 속 인간삶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새롭게 실감하게 만든다.
본인이 집필한 현재 시판 중인 "수행의 바른길"이라는 다섯 편의 시리즈는 그 책 내용의 바탕이 " 본성, 즉 본래마음자리" 이며, 베풀면서 최선을 다해야 기운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무술 속 동작의 움직임에서도 결국에가서는 내 마음의 움직임(에너지)이 자신과 상대와 기운의 조화를 만들며 상승무공에 근접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현대 생활 속 그 상승무공을 상대를 싸움에서 이기는 능력의 정도로만 한정지운다면 많이 부족한 설명이 된다. 싸움은 싸움의 실전 경험을 끊임없이 해보아야 그러한 경험 속에 그 역량이 증가되기때문이다.
무술에서는, 시간이 다소 요할 수도 있지만, 인간 몸이 기무화(氣無化-氣無體), 종교적으로는 불성화(佛性化) 혹은 성령화(聖靈化)가 기본이 되어야 함을 알 수도 있게 한다.
결국 무술, 무도, 즉 무예의 궁극적 목표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동안 인간 삶의 성숙이라는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삶에서 뭔가 하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끝이 없으며, 매순간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인간인 이상 금방 돌아서면 잊고, 또 깨닫기를 반복한다.
"적선덕(積善德) 천심합일(天心合一)"
"수성(獸性)을 버리고 본성(本性)을 맑고 깨끗이" ....
미리 준비하는 사람만이
이 세상 매순간의 주인공이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정진할 뿐이다.
2019. 12. 14
한 해를 보내면서
■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다섯 편
저자 활동 약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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