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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100세 시대, 21세기 현대인의 무술 수련은 - 3부

작성자진영|작성시간22.02.20|조회수497 목록 댓글 0
글쓴이 : 김정성

 
■ 100세 시대, 21세기 현대인의 무술 수련은 - 2부
https://cafe.daum.net/enlightenment-k/dcM5/187?svc=cafeapi

 
 
C. 100세 시대의 21세기 무술 수련과 올바른 인성

프랑스 몽플리에에서 촬영

1. 인간이 마지막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
 
 
1)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
 
무술 수련 (일상생활)은 반드시 인간 삶의 목적에 부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올바른 것이 되지 않고, 허황되거나 엉뚱한 길을 걷게 되어 한평생 힘들고 고달프거나 아프게 살다가 각자가 뿌린 만큼 거두고 돌아가게 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며,
반드시 내가 한만큼만 거둘 수 있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사람의 수행법으로 예로부터 각 시대의 다양한 명상과 호흡 방법이 전해져 오고 있다.
명상이나 기도의 지향하는 바가 기본 이치에 벗어난다면, 할 이유가 없다.
 
그 기본 이치란,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신비적이거나 엉뚱하고 허황된 것일 수가 없으며,
현대인의 의식과 가치관에 맞추어진 기준을 잣대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본인 스스로가 샛길로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명상을 통해 순간순간
나를 뒤돌아보면서 끊임없이 잘잘못을 알아채고
반성하고 고치는 과정을 통해,
 
구해지는 혹은 주어지는 깨달음은
하고자 하는 바를 위한 지혜 (의 기운)을 주어지도록 한다.
그게 나의 의식을 바꾸고, 성숙, 발전하게 하는데,
 
그걸 기본이라 하며,
자연의 이치이며, 법이고 진리가 된다.
 
명상이나 기도란, 필요에 의해 뭔가를 한다는 것이지,
무작정 습관적으로 한다는 것은 꽤나 허황되거나 엉뚱하여 알고 나면,
꽤나 허탈할 수도 있다.
 
용무가 있다면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리 없다.
짧게는 1분 이내, 아무리 늦어도 30분 이분 충분하다.
웬 종일 혹은 밤새껏 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그게 자랑이라는 말인가.
 
게다가 호흡 수련한다면서
가족끼리 누가 오래 한 호흡 길게 하는지 경쟁하듯이 하기도 한다.
그럼 그렇게 해서 결과는, 즉 뭐가 좋아지느냐이다.
 
몸통이 쑤시고, 다리가 저린 고통과 고군분투 하면서
인내 하는 게 전부가 아닐까. 때때로 한 다리로 서 있는 다든지,
잠 안자고 앉아서 버틴다든지, 서서 죽는다는 둥
몸기계의 기능을 완전 상실 혹은 마비되게 만들어 놓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한다.
 
명상이나 기도를 통해 어떤 용무를 본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실체의 인식이 몸 기계에 각인이 되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여기저기로,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가보기도 하나
이 세상 떠나 갈 때는 다 똑같이 간다.
자칫, 멍 때리는 명상이 되고,
기복적이거나 미신적인 기도가 될 수도 있기에
기본의 실체가 무엇인지 항상 염두에 두라는 것이며,
줄곧 그 기본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다.
 
백세 시대 반드시 필수적인 것으로서
가까운 주변과의 사회적 관계와 소통,
가능하다면 최소한의 경제적 활동이나 취미 활동,
혹은 봉사 활동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것,
상대와의 관계 속 이해와 배려를 우선하면서,
탐, 진, 치를 줄이고 없애는 것,
평상심과 고른 호흡을 통한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은,
 
마지막 생까지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가지면서,
이 땅에 태어난 한 영혼이 육체를 통한 영혼 성숙이라는
그 수확의 열매를 맛보게 한다.
 
그게 아니라면, 힘들게 아프다 가면서,
어디로 가는 건지 안개 속 몽롱하게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2) 우물 안 개구리
 
심신을 수련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나를 아프지 않게 하며,
여유롭고 풍요한 삶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무술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면
거기에 부합되는 무수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무술을 통해 성공했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피나는 노력과 땀의 결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물질적이나 정신적으로
가난과 궁핍을 면치 못하고,
매 순간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기존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현실과 맞지 않은 과거 속 알게 모르게 습득된 생각이나 사고방식으로
기존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술만 했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수준과 정도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의식의 개혁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즉 김치가 시듯이 자신을 바꾸지 못했다는 말이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말이다.
 
그래서 책을 보고 공부도 하여
남이 생각하는 것을 쫒아갈 수 있어야 한다.
즉, 머리가 빨리 움직여야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하는 게 공부다.
 
그게 인간이며,
인간이 마지막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며,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지구상에 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세상에 공짜는 없다. -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다.
 
삼라만상을 통한 무언가 하고자 함이
인간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나,
 
그 마음이란
그냥 선하고 어질게 남에게
마냥 베푸는 것을 행하는 것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마음 기계가 가진 상반되는 속성,
선과 악, 사랑과 미움 등을 각각의 현실에서
잘 이해하고 분별하여 화평지기를 만들어야 된다.
 
그것은 균형과 조화, 즉 깨달음이며,
그게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이며,
믿음과 사랑으로 설명되며, 인간 삶의 알파요 오메가가 그것이다.
 
이 세상에 하느님은 사랑만 주신 게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 하듯이,
미움도 같이 던져놓으신 것이다.
 
결국 세상은 공평한 것이며, 공짜란 없는 것이며,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반드시 한 만큼이란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느님은 누구 편을 들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해야 되며,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없는 세상은 없어지는 것이다.
 
즉 내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은 정해진 법이 되겠지만,
가족이라도 나는 나의 일로 바쁘며,
부모 자식 할 것이 각자 다 자신의 일들이 실재하기에,
이 세상에는 정해진 법이 없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결국 알고 나면,
즉 무술이나 종교나 철학의 본질이 확연히 들어날 때,
의식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게 인간 유사 이래 지금까지 행하고 있는 수행의 본질이다.
 
그냥 다리 꼬고 앉아서 뭔가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상대와 관계 속에서 뭔가를 행해야,
잘잘못을 가려 고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 이치를 인식하는 것 없이
호흡이나 명상이다 여러 명제 아래 뭔가 이루기 위해 한평생 해본들,
아프지 않으면 천만 다행이다.
 
몸 기계 자체 시스템이 평생 동안의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뭘 해서 그 기계를 인위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기계의 과부하나 고장 나기 쉽게 노출된다.
즉 자연스럽게 하지 못한 만큼 힘들거나 아프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호흡이나 명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이 되는 실체를 알아야 바른길로 갈 수 있다는 말이며, 아니라면,
추상적이나 비현실적이나, 고차원적 혹은 신비적으로 빠지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주야장창 기도를 해본들,
내가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뭔가를 아무리 암송 하거나 돌려봐도,
아픈 병이 사라지거나 기적이 나타나는 그런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근데, 가끔은 공교롭게도 나타나는 경우도 더러 있기에, 사람들은 더욱 더 매달리기도 한다.
기존 의식 속에서 과거에 이렇게 하니까 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기복적, 미신적, 때로는 신비적 신앙에서 탈피하지 못한다.
 
이 세상은 내가 뭔가를 한 만큼만, 내가 가지고 사용하게 된다.
아니면 불공평한 세상이 된다.
태어나서 부터 부모나 사회, 학교로 부터 대물림되는
기존 의식들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나의 의식과 가치관은 거기서 거기다.
 
인간은 사회관계 속에서 경제적 활동을 영위해야 한다는 말이지,
봉이 김 선달 대동강 물 팔아먹은 것처럼, 부자 만들어 준다,
시험에 합격하게 해준다, 건강하고 복 받게 해준다,
빛을 보게 해준다, 하느님, 부처님께 데려다 준다거나 혹은 가도록 해준다는 등으로
돈을 그저 먹으려 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정치와 권력을 쥘수록, 각 개인별, 집단별,
네 편, 내 편 챙기면서, 그저 먹는 것에 길들여져
시간이 감에 따라 당연시해진다.
 
21세기인 지금도 과거 왕권시대에나 볼 수 있는 수탈정치, 도둑정치를 행하는 국가들을 보고 있다. 결국 특권층, 즉 독재자 개인이나 그 주변의 집단 이익만 추구하게 되고, 서민들은 그들의 착취 대상이 되고 심화되는 포퓰리즘 정책은 서민을 그들의 종이 되도록 더욱 더 옭아맨다.
 
세월이 감에 따라 국민의 안위는 더욱 더 파괴되고 짓밟히고 피폐하게 되면서 국가 경제와 국방은 악순환이 연속되고 쇠약해지니, 다른 나라로 도피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 주된 예가 베네수엘라이며, 최근의 우크라이나도 좋은 예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활동으로 얻게 된 가치를 앉아서 그저 먹지 말라는 것이며,
엉뚱한 짓이나 허황된 짓, 혹은 안 해도 되는 짓들로
사람들을 속이고 눈을 가리는 우리 사회 속 만연되고 대물림되는 것들에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올바른 세상이 보이는 것이며,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소시오 패스나 사이코 패스들이 없어진다.
 
정치도 국민들의 혈세로 유지되며, 일하는 그들은 영어로 Civil (Public) Servant, 즉 국민의 종이라는 말이다. 부여된 직위와 권력으로 부를 취하며, 후진국으로 갈수록, 각 개인과 그룹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그 방법은 심화되고, 점차적으로 공무원의 수도 늘이게 되며, 재벌기업들에 대한 핍박과 체제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절이나 교회 등의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법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그저 먹는 것에 길들여지고,
국가의 돈은 못 먹는 자가 멍청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상황으로 몰아가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도 그러한 상황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중남미의 국가들에서 그들의 낙후된 정치, 경제, 교육, 법 등에서 보면,
왜 그렇게 가난함을 면치 못하는 지, 선진 자유 민주사회의 정치, 교육, 법 등의
사회 시스템과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도 있다.
 
 
2. 백세 시대의 건강과 장수의 키포인트
 
 
1) 탐, 진, 치로 부터 여유 - 의식의 변화
 
육체를 통제하는 마음의 오르고 내림에 있어서 그게 어디로 튀는 지,
마음 기운의 흐름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매순간의 마음을 챙겨가는
일상생활 속 실천을 통해 깨달아 고치면서,
 
나의 마음이 올바르게 육체를 통제하며 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사는 동안 과제가 되며, 그게 삶, 즉 수행이라는 말이며,
산다는 그 자체가 공부라는 이야기다.
 
거기에는 그 어떤 미신적, 신비적, 기복적인 것은 있을 수가 없으며,
있다면 어리석음과 욕심만 나타낼 뿐이다.
그것조차 인식이 안 된다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모르는 무지한 인간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튼, 평상심과 고른 호흡이 나를 보는 거울에 도움이 되며,
알아차림과 마음 챙김이 변화를 위한 도구가 된다.
자신을 변화시켜 새로운 환경 조성,
새로운 마음의 조건과 상황을 만들지 못하면
삶의 의미는 지루하며, 아프지 않으면 천만 다행이다.
 
왜냐면, 무지와 욕심으로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니 배가 아프게 되고,
부족하거나 잘못되면 남의 탓을 하니 항상 피곤하며,
그러한 피해의식의 누적으로 결국에는 아프게 된다는 것이다.
 
평상심을 바탕으로 한 고른 호흡은 화평지기를 가져오며,
기운의 나감과 들어옴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주변에 스스로 동화시켜 나도 좋고 남도 좋게 된다.
 
그러한 수련은 결국 각자의 가정,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지구촌 세상의
나와 관계되는 모든 현실을 잘 직시하고 변화하는 추세에
잘 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 추세 부응
 
몸 기계가 원만하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음 작동의 기능을 잘 이루도록 해야 하며
그것의 기본은 나와 연결되어 관계되고 있는 상대와
주변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와 배려”로 부터 시작된다.
 
즉, 화를 내거나 욕심을 부릴 타이밍이 없어지며,
지혜로움과 깨달음을 가져오기에
그게 탐, 진, 치를 줄이고 없애는 기본 요건이며,
의식 변화를 가져오는 기본이 되고,
백세 시대 건강과 심신의 여유로움을 지속시키는 필수요건이다.
 
2) 끊임없는 노력과 다양한 생각 - 이해와 배려
 
많은 생각과 고민과 함께 하는 진실하고 꾸준한 노력이
나를 늙지 않고, 항상 생동감 있게, 인체 기능을 좋은 환경에 놓이게 한다.
 
즉 몸 기계는 노화되어 둔탁해지고 무거워지더라도,
기운이 끊임없이 돌기에,
정신은 맑고 지향하는 바가 있으니,
늙지 않는다는 말이다.
 
60세가 넘어 퇴직을 한 후, 자신을 사회와 격리 혹은 단절로 만드는 것은,
바로 노화의 원인으로 직결되며, 삶의 의미를 조급하게 만들며,
여러 가지 병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나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끊임없이 많고 적은 관계와 소통의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활동들이 다량의 엔돌핀과 소통의 동기부여를 유발시켜,
신진대사기능에 활기를 불러오는 것에 도움을 주게 된다.
 
100세 시대의 무술 수련이란
각자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동일 선상에서 찾아야 되는 것이며,
육체(의 기운)는 마음(의 기운)을 따라가기에
내 마음이 주체가 되어 주체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내 마음의 기운이 자연의 기운에 동화되고 부응되어야
우선 내 몸이 편해지며, 여유를 가지며 좀 덜 아프게 된다.
 
나의 몸이 아픈 정도는 자연스러움 (자연의 이치)에서
잘못 행해진 마음의 기운(말과 생각과 행동)을 뺀 만큼으로 보면 된다.
 
21세기 가속되는 주변의 발전과 시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남과의 관계 속 무엇인가 행해야,
몸 기계가 녹슬지 않기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며,
 
무술 수련 속 수많은 공방의 동작들과 기운의 흐름을 알게 하는 기본 동작들은
고른 호흡을 통한 몸 기계의 활성화와 원활한 작동을 촉진시키는
흥미 유발과 신체 활동의 발달에 지대한 도움을 주게 된다.
 
3) "내 생각을 바꿔라, 그래야 내가 산다." - 깨달음
 
사회 유기체와 소통을 통한 연결고리가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술 수련의 배움과 가르침은 나를 통해 남과 소통되는
각자 나름의 개인 생활, 즉 육체적, 정신적, 활동 혹은 취미로서
사람과 사람의 교감과 소통을 만들며 사회적 연결을 만들어,
다양한 생각과 고민으로 상대의 이해와 배려를 통한 조화와 균형이 어우러지게 한다.
 
그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소통의 장은
스스로 변화하도록 노력하며
늙지 않게 만든다.
 
그게 나를 젊게 만들고,
새로운 나를 찾게 되며,
매일 매일의 새로운 나를 접하게 한다.
 
나의 올바르고 건전한 마음이 육체를 잘 이끌고 나갈 때,
새로운 생활의 국면에 접하게 된다.
따라서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새로운 포대에 새로운 것을 담듯이, 새로운 나를 접하게 만든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야, 내가 산다고 하는 것이다.
 
즉 생각을 바꾸니 깨달음이 주어지며,
그 속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 지혜가 나를 잘 살도록 만드니,
내가 살게 된다고 한 것이다.
 
깨닫는 다는 것은,
 
냉수 먹고 속 차려라,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
회개하라,
낮추어라,
가난한 마음을 가져라 등 수많은 표현이 있으나,
함축된 의미는 다 마찬가지다.
 
4) 의식 개혁 - 영적 성장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베풂은 남을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 되지만,
사실은 모두 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게 내 생각을 키우고,
나의 의식을 넓고 깊게 만들며,
마지막까지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게 된다.
그게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이다.
 
사는 동안 좋은 스펙을 만드는 것도 능력이지만
밥 먹고 살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뿌린 씨의 수확이란,
좋은 스펙을 통한 충족과 만족의 한정된 삶이 아니라,
한 영혼의 끝없는 영적 성장에 있다는 말이다.
 
 
3. 본래마음자리를 찾아라. 그게 살 길이다.
 
1) 마음의 나와 육체의 나가 하나로 간다는 것은
 
간단하게 하는 운동 중, 푸시업을 예로 들어보자.
횟수나 세트수를 반복하면서 체력 한계점을 넘기는 버티기를 통해
정신 집중하고 인내심도 기르면서, 육체를 단련한다.
그게 나를 건강하고 집중력도 키우면서 허약한 심신을 강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운동을 통해 얻게 되는 기본이다.
 
즉 하고자 하는 마음의 나와 육체의 나를 하나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와
"정신집중"이란 말과 동일하게 설명할 수도 있다.
참 간단하지 않나,
그게 기본 이치를 다지는 근본이다.
 
자석을 만들려면 바늘에 자석을 여러 번 문지르면 된다.
즉 몸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해야 되니
말과 생각과 행동을 올바르게 해라는 것이며
탐, 진, 치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그게 자석화다.
 
육체의 자석화라는 말은 마음의 나와 육체의 나가 하나로 갈 때,
몸이 자연의 기운에 놓인다는 말이며
그게 기본 상태다.
 
무술 수련에서 설명할 적합한 단어가 없기에, 종교에서 단어를 찾아보면
보살화 혹은 불성화, 또는 성령화 (Forming the Trinity)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몸 기계를 자석화 (Body-Magnetization)하는 것이다.
쉽게 이해 할 수 있으며, 사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그 기본을 체득할 수 있는지 묻는다. 본인의 답은 항상 동일하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혹은 당신의 몸은 이미 인식하고 있다" 고 한다.
 
때때로 많은 세월 속 열심히 노력한 지도자들에게는
"당신은 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으니, 어서 찾아보라고 한다."
또는 누구든 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면, 너무 간단, 명료하기 때문이다. 
 
그게 인간 맘에 달렸다는 것이며,
인간 유사 이래 수많은 선각자와 경전에도
나와 있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진리다.
 
“일체유심조”를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다.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말도 불교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다.
“너의 믿음이 너의 병을 고쳤다”는 말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
 
모두 다 "사랑과 빛"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본인은 여기서 종교를 이야기 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현실에서 살고 있는 당연한 이치를 반복하여 강조할 뿐이다.
하지만 이해를 돕고자, 종교를 잠깐 인용한다는 것이다.
 
평생 수행해도, 그 기본을 모르니, 이 나라, 저 나라 돌아 다녀 봐도
머리에 남는 것은 쌓여지는 지식이고, 암기하는 게 다일 수 있다.
그건 깨달음 수행이 아니며, 또한 돈오돈수라는 잘못된 말이다.
기본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기운의 흐름으로서
마음 한 자락 바르게 내세울 때 나타나는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경전하고 상관이 없으며, 학문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
 
남방불교나 북방불교의 가르침은 세월에 따른 (혹은 시대에 따라 의식 수준에 맞춘)
똑같은 부처님 가르침이거늘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왈가왈부한다.
 
본인이 여기서 이러한 말을 끄집어낼 수 있는 건,
경전을 공부해서도, 종교를 공부해서가 아니라,
인간 삶의 기본 이치를 안다는 것이며,
일반적인 학문으로서 혹은 신앙으로서, 학자나 전문가로서의
종교나 철학의 전문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다.
 
그것은 학문이거나 직업으로서의 연구할 수 있는 것이지,
일상생활 속 올바른 실천을 위한 깨달음과 별개다.
 
왜냐면, 아래 내용에서만 보아도,
깨달음이 뭔지 너무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입문자 (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결국 그 기본 이치의 깨달음을 통해서
종교란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튼 앞서서 언급했지만,
본 내용들은 본인의 생각이니, 각자 생각은 스스로 가져보면 된다.
 
2) 세상사 모든 일들은 내 마음 한 자락에 달려있다.
 
새로운 나를 접하는 것의 기본은 순간순간 내비치는 “마음씀씀이”에 달려있다.
우선은 일어나는 상황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최선,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도전하는 열정과 에너지가 있어야, 스스로 바꾸어진다.
 
그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양파껍질 벗기듯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매 상황마다
그렇게 갈 수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반드시 스스로의 경험이 중요하며,
머리가 빨리 돌아가야 손발이 고생하지 않고
순간순간 잘 알아차려 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의 나와 육체의 나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제 기본이 뭔지 알고 시작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삶의 본질을 각자가 아는 만큼만, 공부한 만큼만 이해하게 된다.
 
그 말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는 마음이며,
나를 세상에 그대로 던져놓고 가게 되는 마음이고,
시시비비와 불협화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며,
종교적으로는 불성이나 성령을 가지는 마음이며,
삼위일체나 불법승의 하나가 되는 의미의 기운을 체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래마음자리를 찾는다는 말이 그것이며,
그게 나를 바른 길로 이끈다는 말이기에,
"살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은 쉬우나 인간인 이상, 뭘 알았다 한들,
아무리 성인군자라 하여도 지금 이 순간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에서,
그르치면 잘못된 것이 되니,
이 지구상에 인간 몸의 옷을 빌려 입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순간순간, 즉시즉시, 그때그때" 공부하도록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수시로 깨닫게 된다면 많이 공부가 된 것이다.
 
3) 본래 마음자리의 근원과 신명나게 산다는 것은
 
본래 마음자리의 근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인간 몸을 영과 혼, 육체로 나누어보자.
 
육체의 나와 마음의 나가 하나가 될 때 본래 마음자리의 근원에 머문다.
여기서 혼은 육체가 가지는 오감을 비롯한 모든 생각과 행동을 말하며,
영은 본래 이 땅에 올 때 가져온 것이기에 본래마음자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며,
그 자리의 근원은 우주자연이며, 사랑, 혹은 빛 그 자체를 말한다.
 
전체를 이끄는 바탕은 “마음”이며,
나의 마음 심뽀, 혹은 마음씀씀이에 따라 몸기계의 작동이 매순간 변한다.
그게 사는 동안 나를 이렇게 저렇게 이끌어간다.
오르고 내리는 마음의 파장을 고른 호흡과 명상 (기도)을 통해 “본래마음자리”를
순간순간 즉시즉시 그때그때 찾아간다.
 
그 근원이 삶의 동력인 “사랑의 자리”이고,
나의 이기적 에고 없어진 “무아의 자리”가 된다.
 
여기서 명상이나 기도의 본질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그 속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미사여구나 감언이설에 휘둘리지 않게 되어
헛되어 보낼지도 모를 시간이나 기운을 훨씬 줄여 준다.
 
본래마음자리의 근원과 하나가 되는 깨달음
본래마음자리를 찾는 다는 것은 고른 호흡과 고른 마음이 도울 수 있게 된다.
마음의 기준점을 설정한다는 것이며, 나를 버리고, 빛의 자리에 머문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정기신으로 설명해 보자.
 
정을 다루어 기운을 만들고 - 육체
기를 잘 다스리어 몸 기계 전체에 운기가 잘 되도록 하면서 - 혼
신에 가까워지니 - 영
자연이 곧 나이며, 내가 곧 자연임을 알게 된다.
 
그 자체, 그 상황이 신명난다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나,
실제로 "기본의 체득"과는 구분되게 설명된다.
 
앞서서 언급된, “육체의 나와 마음의 나”가 하나로 가는 것이 "정신 집중"인 것으로
일반적 해석이 가능하지만, 기본의 체득을 위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구분되게 설명해야 하는 데,
그게 아니라면, 올바른 심신 수련의 수행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게 된다.
 
양자 공히 차이점을 한 단어로 해 본다면,
기운의 실체를 알고 행하느냐 모르고 행하느냐 차이다.
 
아무튼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게 "인연"이 되어
한 순간 기운을 좀 알게 되니 천지가 자기 것인 양 착각한다.
반드시 착각하게 되어 있다. 인간이니까,
그래서 지질이도 못난 게 인간이라고 한다.
 
왜냐면,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확신을 가지기 때문이다.
 
가령, 무술의 경우에도 가끔 그러한 유사한 기운을 가지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는데, 세상 전부 내 것 같아 상식 밖의 행동과 분별심을 잃고 반드시 자기 최고라는 착각에 빠진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 의해 마침내 추락하게 된다. 종교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하지 않아도 될 곳에 주어진 그 기운으로 사람을 홀리고 돈을 번다.
 
철학에서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사 속에서 유명 철학자나 천재 음악가나 화가 등에서도, 물론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간 훌륭한 사람들도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정신병이나 중병에 시달려 힘들어 하는 사람, 당뇨나 고혈압 등 지병으로 고생하다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각자의 올바른 생활 실천에서 벗어난 만큼 힘들어지고 아프다는 말이며,
폼 재다 순간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사실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여기서 하고자 한다. 
 
기본, 즉 기운의 흐름을 체득했다함은
자연의 비밀을 아주 조금, 이제 막 알아차렸다는 말로서
자연에서 주어지는 공부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며, 그것은
나름의 책임을 가지고, 매사 이쁘게 낮추어 가야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된다.
땅 집고 헤엄치는 듯하나, 그 과정과 여정은 무한히 가는 것이기에 결코 쉽지 않다.
 
아무튼, 그 기운의 흐름이란 곧 "인연"이며,
그것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잘 챙기는 사람이 순간 주인공이 된다.
그것은 지극히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것이며,
 
미신적이거나 기복적, 신비적인 것은, 결코 바른 길을 갈 수 없게 되어
이 세상 마지막 가기 전 다 정리하고 간다. 즉 힘들거나 아프게 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다 간혹 그들의 수준과 정도에서
마음의 위안이나 위로는 될지언정,
 
사는 동안
 
엉뚱하고 허황된 것에 보낸 시간과 기운의 낭비이며
삶의 마지막 결산의 손익분기점에서 별 볼 일이 없는 것들이 된다.
 
■참조 : “죽을 때까지조차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깨달음이란 꿈같은 것이 되고 만다.”
https://cafe.daum.net/enlightenment-k/dcM5/99?svc=cafeapi
 

맺음말
 
혹자는 본 내용들이 무술 수련 (삶, 즉 수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면, 본 내용을 읽을 준비가 아직 안 된 것이다. 왜냐면, 무술 수련의 이치도 인간 삶의 한 부분이며, 인간 삶은 자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에, 하나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치를 알아챈다면, 각자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어, 자신만의 새로운 영역 구축,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조, 혹은 자신만의 철학 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이치와 방법을 시종일관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서 언급한 기본 이치의 본질을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다면, 해동검도의 기본 동작인 정면 베기 한 동작만 가지고도, 어느 무술이던지 주먹 찌르기 하나만 가지고도, 기마자세만 가지고도 무술의 철학을 논하기는 아주 충분하고도 넘친다.
 
무술 수련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사들은 각 시대에 맞게,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 수준과 정도에 맞추어져 있기에, 과거의 전통의식과 사고 방식이 아닌, 자연으로 부터 배우고 공부한 지금 세대 의식을 바탕으로 한 본인의 관점으로 백세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을 위한 심신 수련의 지향점을 간단하고 쉬운 말들로 제시해 보았다.
 
특히 요즘 들어 백세 혹은 백 이십 세, 백오십 세 까지의 인간 수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무술의 수련이 육체적인 것에만 한정된다면, 세월이 흐름에 몸 기계는 낙후될 수밖에 없으니, 무술의 육체적 수련에 점차적으로 제한을 받게 되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 기본을 체득할 수 있다면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한 백세 시대의 무술 수련은 좀 더 정신적 수련의 진실한 이치를 알아 올바른 수련을 통해 21세기에 걸맞은 현대인의 무술 수련 (혹은 각자의 일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무술과 스포츠, 혹은 격투기를 다르게 설명한다. 즉 무술은 정신 수양, 스포츠는 경기 위주, 격투기는 싸움기술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야기 하지만, 여기서 줄곧 이야기 하고 있는 기본 이치를 인식할 수 있다면, 모두 다 인간 몸 기계를 이용한 운동이기에 전부 다 육체적 수련과 정신 수양이 되는 것이다. 내가 모르기에 구분하는 것이지, 그 이치를 안다면,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아무튼,
모든 수련은 하나의 동작 속에 모든 철학이 들어있다.
모든 철학이라 함은
모든 것들의 기본 이치가 하나의 동작 속에서
그 함축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기운의 흐름에 따른 그 하나의 동작 과정에 대한 사유와,
나의 한 호흡과 마음 한 자락이 어디로 튀는지,
어떻게 얼마나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면서,
 
나의 마음을 즉시즉시 잘 챙김으로서 주어지는 깨달음의 기운, 즉 지혜로
조화롭고 균형 있는 마음의 기운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다져나가는 것이
올바른 심신 수련이다.
 
즉 기본 이치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가치관을 추구하며 올바른 인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게 선진 사회로 가는 길이며,
선진 국민의식을 가지고 올바른 가치관을 추구하면서
잘 사는 길을 스스로 닦아 나가면서,
올바른 가정관, 사회관, 국가관, 세계관이
나름의 수준대로 노력한 만큼 능력대로 갖추게 된다.
 
마음은 하나의 마음뿐이기에,
순간 나타내는 엉뚱하거나 잘못된 나의 말과 행동의 기운은,
과거에 아무리 선하고 진실하게 올바른 실천을 행했다 한들,
그 순간 마음의 관은 막힌다.
 
왜냐면 오직 하나의 길 (혹은 관)만 있기 때문이다.
 
그게 신체 기능을 마비시키며, 아픈 병의 원인이 되며,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이유는
마음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했더라도,
지은 죄가 상쇄될 수 없음을 여기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을 행하는 것으로 차감되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업”이란 “현재 내가 지금 이 순간 짓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본 내용은 인생 마지막 사는 날까지
21세기 백세 시대 무술 수련 (일상생활의 실천)에 대한
기본 이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인간 삶의 마지막 종착역까지 기본 이치가 바탕이 된
무술 수련 (인간 삶, 즉 수행)이라면,
 
사는 동안,
좀 덜 어렵게, 좀 덜 힘들게, 좀 덜 아프게,
하고 싶은 것, 필요로 하는 것, 얻고자 하는 것들을 최소 이상 영위하면서,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인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위 설명해 놓은 모든 말들은 본인의 생각에서 나온 글들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성향이나 기질에 꼭 맞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인의 글은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시각에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졌다면,
본인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원하는 분들은 기 출간된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다섯 편 (저자 : 김 정성, 맑은 샘 출판)을 보면 된다.
현재 시중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입된다. 특히, 지난 달 출간된 영문판 (저자 : 김 정성, 맑은 샘 출판), "Searching For The Forgotten Half in Martial Arts" 은 가장 업그레이드 된 최신 출간물이다.
 
 
■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저자 : 김 정성, 맑은 샘 출판) 총 5편 소개 및 미리보기
https://cafe.daum.net/enlightenment-k/hApa/25?svc=cafeapi
 

2020 Bulgarian Workshop
2019 Greek Workshop

 

2019 Dutch Workshop
2019 Finnish Workshop

 

2019 Russian Workshop

 

2018 Mexican Worshop

 

2019 Czech Republic Workshop

 

2016 Moldovan Wor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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