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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우리가 수행을 하는 목적은, - 수행시리즈 1편 내용 중에서

작성자진영|작성시간18.01.27|조회수92 목록 댓글 0



우리가 수행을 하는 목적은,


인간 삶 그 자체가 수행이고 공부다.

사는 동안 양 손과 두 발이 움직이는 한

사람의 무리 속에서 부딪치면서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을

알아차리고 고치면서 사는 것이다.

그게 전부이며, 그것을 수행이라하며, 도라고 한다.


아무리 크고 유명한 절이나 교회에서

아침,저녁, 새벽, 철야로 한 평생 기도나 절을 해 봐도

드러내는 한 자락 마음이 올바르게 서지 못하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인간은 착각과 허상 속에서 산다고 한다.

 모든 게 다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나온다.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스스로 뒹굴고, 애가 타서 발을 동동 굴리기도 하고,

스스로 화를 내고 시기 질투하면서 서로 편을 가르기도 하고

이리로 저리로 왔다 갔다하다보면 인생 마감에 직면한다.

그래서 인간은 조금이라도 일찍 깨달아가면서 살면 좋은 것이다.


그게 인간이 수행하고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전부 다 내가 잘 살기 위해서다.


뭘 잘 본다거나,

뭘 잘 느낀다거나,

뭘 잘 듣는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머무르는

현실 속에서

잘 살기 위한 것이다. 

 

깨달음이 믿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과의 무리 속에서 항상 공평하며,

객관적이고 올바른 시선으로 보아야 생기는 것이며,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 즉 보여 지는 모습과 사람의 됨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표정관리도 사람과의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 즉 신은 인간이 믿는 만큼 사랑한다.

믿음이 곧 사랑이며, 사랑이 곧 자연의 에너지다.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사람들은 종종 믿는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의미가 인식이 되어있지 않다.

그냥 일반적으로 사람관계에서 신뢰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며, 공부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닦이지 않게 되어 첫 단추가 잘 못 끼어지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이렇게 인식이 되어 버리게 되면 공부 과정 중에,

 ‘내 목숨을 내어 놓을 만큼 믿습니다.’혹은 ‘저는 죽어도 부처님 믿습니다.’

또는‘죽어서라도 부처님 따라가겠습니다.’라는 소리를 하게 되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신의 수준과 정도를 과감하게 표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공부 과정 중 무엇을 하던지 이치에 따른 참뜻이해를 할 수 없게 되면

현실적으로 올바른 사고를 가진 올바른 실천을 할 수 없게 된다.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샛길에 서서 최선을 다하는 꼴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며,

자신의 우둔한 생각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신은 인간이 믿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인간이 깨달음을 가질 수 있는 만큼,

혹은 키워진 마음만큼 자연의 사랑, 파장, 빛,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주자연은 원으로도 표현하며,

절대자 혹은 신으로 표현해도 되는 것이며,

부처님 혹은 하느님으로 인식해도 된다.


이것역시 우리 인간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단어이기에 절대로 충분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는 그렇게 인식되어져 있으며, 그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


신은 인간이 신을 믿던 안 믿던, 믿으라고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신, 즉 우주자연은 있는 그 자체 그대로이다.

기운을 이렇게 돌리던, 저렇게 돌리던 내 마음 먹기 달려 있는 것이다.

큰 하나의 이치 속에 모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과 악도 없는 것이며,

좋고 나쁨도 전체 속에서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각자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마음을 키우고 넓히게 됨에 따라

사랑을 많이 품고 베풀 수 있게 되고 진실한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곧 우주자연의 기운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며,

우주자연이 주는 좋은 파장 속에 머물 수 있기에

자기생활을 위한 자연의 기운, 즉 일상생활을 위한 원동력을 더 많이 가지고,

더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자연이 주는 사랑이나

신이 주는 축복 또는 은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주자연의 에너지는 의식이 있으며, 살아있는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인식하고 체득하지 못하면 불교의 불성화와 기독교의 성령화를 모르는 것이 된다.


그것은 깨우침 공부의 가장 기본적이며,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반드시 체득해야 될 가장 원초적인 것이며, 이것이 공부를 앞으로 해 나가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역시 체험을 통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에,

알면 종이 한 장 차이이지만 모르면 하늘 땅차이다. 

 

자연의 기운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되어 남이 행하지 못하는,

또는 자신이 과거에 해 보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었던 어떤 남다른 것을 가질 수 있다거나,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된다하더라도

그것은 남보다 더 우월감이나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자기 생각을 바꾸고 기존 잘못된 의식의 틀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자기 실생활에서 현실적으로 합당하게 실용적으로 되어야 하며,

그리고 지혜롭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자연에서 주는 큰 선물로서 인식하고 항상 감사하고

자신을 잘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주자연은 인간이 각자가 한 만큼, 최선을 다한 만큼 거둘 수 있도록 되어있다.

즉 우주자연은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가지기도 하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고 냉혹하다는 것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 역시 인간의식 수준에서 나온,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매우 피상적인 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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