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집멸도의 재해석 ■
고집멸도에서 고란 괴로움이나 고통은
인간이 체감할 수 있는 한 부분일 뿐이며,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제시한 내용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인간은 괴로움이나 고통, 또는 어려운 그 원인을 알아야 하지만,
결국 매 순간 변화되는 내 자신이나 주변 상황 속에
그것을 잘 다루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가는 것이
인간 삶의 바른길이 되며,
각자 성숙, 발전, 진화해 나갈 수 있다.
인간의 괴로움은 원인을 안다고 하여 없앨 수 없으며,
살아있는 이상 끊임없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고 행복하고 마냥 즐겁기만 할 수도 없다. 조화와 균형이 관건이다.
그 속에서 깨달아가야 하며, 거기서 스스로 성숙 진화 발전시킨다.
그게 자연의 이치이며,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상기 그림과 함께 평상심, 즉 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수행의 바른길, 즉 인간 삶의 올바른 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苦) 즉 괴로움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를 찾아야한다.
1. 조화롭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것
2. 이제 막 나타나서 불완전한 어떤 것.
3. 욕심과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가려진 것
4. 성장이 덜 되어 부족한 것을 완성품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
5. 올바른 수행을 통해 고치고, 걷어내어야 하는 것
즉 고집멸도는
나타나서 변화되어 사라지는 우주자연의 이치와 법, 진리가 담긴
거룩하고 성스러운 도(이치)를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생로병사도 고통이 아니라,
거룩하고 성스러운 인간의 네 가지 이치다.
고통이나 괴로움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다.
그 속에서 뒹굴고, 씨름하면서 안타깝게 한 세상 다 보낸다.
그게 일반적인 인간의 삶이다.
수행을 통해 깨달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 중략 -
고통과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어놓고,
인간이 마치 고의 세상에 던져진 것 같이 이야기한다.
하물며, 생로병사가 인간의 사 고라고 한다.
자연의 이치로 보아 맞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탓에서 기인된다.
자연스럽게 사는 삶을 모른다는 것이며,
부처님하느님을 어떻게 따르는지,
어떻게 수행해야 마땅한 것인지 기본 이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더 깊게 들여다보아야 될 사실은
수천 년 전의 케케묵은 구시대의 인간의식과 가치관이 그대로
지금 시대에까지 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등의 시스템은 과거에 따라가지 않는다.
과거의 그것을 학문적으로 필요에 의해 연구할 수는 있으나,
따라가면 우선 내가 뒤처지기 때문이며, 경쟁에 이길 수 없으며,
잘 살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수행은 내가 잘 살기 위해서 한다.
종교는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며,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한다.
믿음과 사랑이 그것을 만들며, 인간 삶에 가장 바탕이 되는 기본이다.
-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3편(제목 : 삶의 바른길과 수행의 실용성) 내용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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