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울음 소리는
스스로 염려하거나 스스로 호흡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안락한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 스스로 호흡하지 않던 세계에
결별을 알리는 이별과 환희의 전주곡이다.
태어난다는 건 따라서 집을 떠나 제 혼자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홈리스가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태를 떠난 실향의 먹먹함,
버림받음 속에서만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호흡이 작동한다.
제 혼자도 알아서 박자(심장)와 리듬(호흡)을 타게 된다.
그렇다고 어미의 손길이 아주 떠나는 건 아니다.
스스로 호흡하며 스스로 심장박동을 시작했더라도
또 다시 어미의 젖을 먹고 양육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어미의 자궁에서 살던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스스로 사는 삶이 시작되었어도
결코 모든 걸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랑의 관계방식에서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누구도 이를 ‘거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허나 ‘거지’가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까. 물론 거지라는 말을 그런 때 사용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성장이란
자궁의 안락함 대신 사랑의 강보에 쌓여
또 다른 길 떠남과 이별을 준비케 하는 것의 반복이다.
새 노래는 그렇게 시작된다.
심장의 박동 곧 규칙적인 리듬과
폐호흡의 또 다른 길고 짧은 리듬과의 절묘한 합주를 통해서
새로운 노래의 세계가 시작되듯 영혼의 순례 길도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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