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면 발리(溫陽面 鉢里)
따뜻하다는 것. 말만으로도 홍조가 돈다. 사람과 마을 그리고 산천이 따뜻하다면 선계가 따로 있을까. 자연이 땅이름을 짓게 하고 그 이름은 주위를 물들이는데 그 대표적인 마을이 울주군 온양면(溫陽面)이다.
대체로 따뜻할 온(溫)자가 들어간 고을은 대부분 온천이 있게 마련인데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온양이란 지명이 붙기까지 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 인근에 피부병을 앓던 사람이 살았는데, 이 사람이 하루는 이곳 땅에서 솟아나는 따끈한 물로 몸을 씻고 나니 그 가렵던 온 몸이 꾸덕꾸덕 하였겠다. 하도 신기해 며칠을 계속 하고나니 그 심하던 가려움증이 말끔히 가시므로 이 따끈한 물을 소문내게 되었고 드디어 나라에서 현장을 둘러보니 약효를 가진 온천이므로 이 온천이 솟아나는 지역을 온양이라 부르게 했다〉한다.
이 온천이 있는 마을이 발리(鉢里)다. 발리란 이름은 조선 성종 때의 유명한 고승 일선스님이 났고, 그가 탑골산의 절에 있다가 이곳을 떠날 때 바리가 든 바랑을 앞산에 묻고 출가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마을의 생김새가 바리1)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양지바르고 비옥하며 지하수가 풍부하여 가뭄을 모를 뿐만 아니라 강과 야산이 내는 산물이 풍부하여 원근에서 가장 잘사는 마을이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그래서일까 ‘생자발방 사자고산(生子鉢坊 死者高山)’이란 말 즉, 살 때는 발리에서 살고, 죽어서는 명당자리인 고산리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란다.
□ 마을변천사
일선스님의 행적이 있은 이후부터 발리라는 땅이름이 생겼다고 하지만 그 훨씬 전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2)
이 일대는 온양면으로 신라초기에는 생서량군3)이었다가 뒤 경덕왕때인 서기 757년에는 동안군으로 개칭하였으며, 조선 중기에는 온양, 온산, 서생지방을 남면이라 하여왔지만, 조선 고종 때인 1864년에는 온북, 온남, 온산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가 1887년에 온북과 온산을 합하여 온북면이라 하였으며 뒤에 다시 1914년 온남과 온북의 양면을 합하여 온양면이라 하였다.
‘鉢里’란 땅이름이 최초의 울산읍지인 학성지(鶴城誌)4) 면명(面名)조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일연에 의한 파생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정조(正祖)조까지 단일마을로 기록되지만 고종 31년(1894)에는 발리와 진동(進洞)으로 갈라진다. 다시 1911년에 진동은 장동(張洞)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1914년 이 두 마을을 합하여 법정리 ‘발리’가 된다.
법정리 ‘발리’는 1933년 상발(上鉢), 하발(下鉢), 진동(進洞)의 3개 행정리로 나뉘어 졌지만 상발과 하발은 같은 생활권을 가지고 있다.
□ 상발(上鉢)
대안리에 인접해 있으면서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을 달리 ‘발방(鉢坊)’ ‘바리방(鉢里坊)’이라고 하는데, 坊은 마을을 뜻한다.
야트막한 구릉지대는 일찍이 개간되어 과수원이 되었고, 앞들은 땅이 기름지고 물이 끊어지지 않아 부촌을 일구었다. 이곳에는 조선 초기부터 경주이씨들이 일찍이 입향하여5) 큰 부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규모는 12대문이 있을 정도여서 중앙의 관리들이 내려오면 관아로 착각할 정도로 웅장하였다고 한다.
□ 대문다리
울산온천 앞의 넓은 돈대에는 조선조 경주이씨들이 세거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고래마을 이씨’라고 불렀다. 이들은 세조조 한성판윤직을 버리고 낙향한 이지대(李之帶)의 후손들로 고렴이씨(高廉李氏)라고도 했으며 이들을 고름이씨→고래이씨→고래마을이씨라고 했다. 여덟 집이 한 울타리의 담을 치고 열두 대문을 내고 큰 부를 축적하며 지냈는데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오므로 이를 귀찮게 여겼다. 이때 한 과객이 “저 앞의 고동산 끝을 날려버리면 손님이 줄어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과객의 말에 따라 고동산의 끝을 잘랐더니 손님이 끊어지면서 그 화려했던 집안이 망했다고 한다. 이 일대를 ‘대문다리’라고 한다. 위쪽 높은곳을 ‘뻔드갓’이라고 했다.
□ 영모정표석
황새골에 있었다는 경주이씨의 정자표석인데, 오래전부터 방치되어 오던 것을 수습하여 뻔드갓에 옮겼다. 깨어진 자연석에 [永慕亭 壬辰重陽立]이라 씌여있다.
□ 고동산
하발를 거쳐 진하로 가는 도로변의 야트막한 동산인데, 마치 논고동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동산은 두 번에 걸쳐 수난을 겪는데, 고래마을 이씨들에 의해 머리부분이 깎여 이씨들을 망하게 했고, 도로가 목을 자르고 나므로 두 번 죽었다고 한다.
□ 대문다리새미
아무리 가물어도 맑은 물이 넘쳐나는 이 샘은 바가지로 퍼담을 수 있는 깊이이므로 인근의 주민들이 모두 이 우물을 이용했다.
□ 불매등
지금의 울산온천자리 부근이다. 옛날 여기서 쇠를 녹이는 불매(풀무)가 설치된 대장간이 있었다고 한다. 농기구 등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훗날 이 일대는 복숭아밭이 되었다가 울산온천이 생기면서 옛 모습을 잃었다.
□ 개등정
불매등에서 동쪽 아래로 내려가면 마치 등잔을 닮았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봇통산
발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달집을 짓고 달집살이를 하면서 마을의 단합과 풍년 그리고 안녕을 빌었다.
□ 봇통못
아무리 가물어도 마른적이 없고, 겨울에 얼지 않는다. 대운산의 수맥이 복류하다 여기서 솟아난다고 한다. 한 가뭄에 양수펌프 2대를 설치하고 물을 퍼올려도 좀체 줄지 않는다고 한다. 이 물로 발리들판에 물을 대고 지금도 넓은 미나리꽝에 관수하고 있다.
□ 범대가리산. 개대가리산
봇통못에서 남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왼쪽이 개대가리산이고 마주보고 있는 산이 범대가리산이다. 각각 모양이 흡사해서 붙인 이름이다.
□ 철방산. 철방비알
개대가리산에서 남쪽 진동으로 난 산이다.
□ 경사재(敬思齋)
학성이씨의 재실로 1958년에 건립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절충장군 첨지 중추부사 학성이씨 이곤(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鶴城李氏 李鵾)의 아들 통덕랑 주장(通德郞 注章)의 설단을 모시고 있다.
□ 계중갓비알
하발리 동쪽에 있는 산. 계를 모아서 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돌티미. 매끝등
발리 북쪽에 있는 산으로 돌이 많아 붙인 이름인데, 지금은 택지로 변경되었다. 돌티미 동쪽의 등성이가 매를 닮았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 뚜개비바우
발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두꺼비처럼 생겼음
□ 행상골
마을 초상시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를 보관하던 골짜기
□ 샛골못. 손새골. 새골. 방아등
개대가리산을 지나 더 들어가면 있다. 샛골못에서 남족을 바라보면 오른쪽이 ‘새골’ 왼쪽이 ‘손새골’이다. 새골이란 사이에 난 골짜기란 뜻이며, 손새골은 좁은 공간이란 뜻의 솔다→손+새골이 손새골이 되었다. 그 가운데 우뚝한 등성이가 ‘방아등’인데, 방아공이처럼 생겼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하발(下鉢)
상발의 동쪽에 이어진 마을이다. 일찍이 새마을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질 때 마을안길과 농로를 확장 포장하고 경지정지작업을 하여 면모를 일신했으며, 주위의 논 30ha를 경지정리하고 앞들 가운데로 흐르는 발리천을 직강공사하며 우회시켜 큰물이 질 때마다 재방붕괴가 일어나 농경지가 유실되던 폐해를 없앴다.
□ 고승 일선(一禪)
조선 중기에 이름을 떨친 고승 일선의 호는 휴옹(休翁) 선화자(禪和子) 경성(敬聖) 경성(慶聖)이며, 속성은 장(張)씨로 본관은 울산이다.
조선 성종 19년(1488)에 발리에서 출생하여 13세의 나이에 출가하여 단석산, 지리산, 금강산 등을 순례하며 득도한 뒤 휴정(休靜) 서산대사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내렸으며, 제자로 성준(성준) 일정(일정) 선등(선등) 등이 있다. 묘향산 관음전에서 입적했는데, 나이 81세, 법랍 65세였다.
□ 옥련정(玉蓮井). 성인정(聖人井)
성인정(聖人井)은 하발마을에 있는 오래된 우물이다. 이 우물은 고승 일선이 팟다고 전해오는데, 이 우물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루는 일선스님이 정색을 하고 성인정의 물을 두레박으로 퍼서 서쪽 하늘에 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매우 궁금해 했지만 워낙 진지하게 그같은 행동을 반복하므로 물어볼 수조차 없었는데, 나중에야 스님이 “이제는 되었다”하시며 서쪽 하늘에 물 뿌리기 작업을 그만 두었다.
사실 이 때에 합천 해인사에서는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장판각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갑자기 동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떠 오더니 한바탕 소나기를 퍼부어 불을 껐다고 한다. 뒤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것은 발리의 일선스님이 조화를 부려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이 우물이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구슬 같은 연꽃우물이다 라는 뜻의 옥련정이라고도 불렀는데, 이 일이 있고 난 후 일선스님의 신통력을 우러러 성인정이라고 불렀다.
이 우물에는 연(蓮)과 유사한 수초가 자라고 있었는데, 일선이 이곳을 떠날 때 이 수초가 죽으면 나의 입적(入寂)을 알리는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안타깝게도 20여 년 전 간이상수도에 밀려 펌프가 달린 파이프를 드리운 채 뚜껑이 덮이면서 이 수초도 죽었으며, 지금은 길가에 팽개쳐져 아쉬움이 크다.
□ 탑골(塔谷)
발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온양읍은 옛날 불교가 크게 성하여 4사(寺) 9암(庵)6)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절이 있었고, 이절에 구층석탑이 있었다. 지금 탑은 무너졌으며, 불두가 없는 미륵좌상이 나왔는데, 지금 온양초등학교에 옮겨 보호되고 있다.
□ 탑골재
선양골에서 발리로 넘어가는 탑골에 있는 고개.
□ 이애소(鯉魚沼)
회야강 하류로 잉어가 많이 서식하여 잉어소. 잉어담(鯉魚潭)이라하는데, 울산방언으로 이애소, 이애더미라고 부른다. 이곳은 행정지번이 발리 1번지로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미곡을 비롯한 산물이 배에 실려 해상으로 나가곤 했다. 민물과 해수가 합쳐지므로 어종이 풍부하여 낚시꾼들이 몰릴 뿐만 아니라 풍광이 수려하여 명소로 이름이 높았다.
□ 상보(上堡), 상봇들, 중보(中堡), 중봇들, 하들
발리 동쪽에 있는 들판과 이 들판에 물을 대는 보의 각각 이름.
□ 장구배미
상봇들에 있는 논.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음
□ 회에들
하발 북쪽의 온산공단 철도변으로 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 지샛골
하발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기와를 구웠다고 한다.
□ 새판골
지샛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쇠를 팠다고 한다.
□ 도둑골
새판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도둑이 숨어 살았다 함
□ 황새골. 나부등
새판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황새처럼 생겼다. 이 황새골에 바리를 묻었다고 전해온다. 그 위쪽의 등성이가 마치 나비가 날개를 편 것 같다고하여 ‘나비등→나부등’이라고 한다.
□ 선양골(善良谷)
하발에 속한 자연마을로 탑골산 아래의 골짜기를 말한다. 여기서는 ‘시앙골’이라고 부른다. 옛날 어진 도사가 수도하던 자리라고 붙인 이름인데, 주변이 수려하다.
□ 웃선양골
선양골 위쪽에 있는 마을
□ 쪽재비골
선양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 선양골저수지
선양골에 있는 못
□ 선양골고개
선양골 동쪽에서 서생면 화정리로 넘어가는 고개
□ 선양들. 선양들 보
선양골에 있는 들과 이 들에 물을 대는 보
□ 절탯골
선양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막골고개
선양골에서 서생면 위양리 막골로 넘어가는 고개
□ 대밭골
선양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나무가 있다.
□ 성지골(性智谷)
선량골 아래 오른쪽 골자기를 일컫는다. 조선 광해군조의 실존인물인 승려 성지는 지관(地官)노릇을 하다가 왕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그가 다녀간 지역에는 지기의 이름을 딴 지명을 남겼다. 울산에도 성지란 지명이 23곳7)이나 나타나는데, 큰 인물이 날 곳이라 하여 말뚝을 박아 표시하였다고 한다.
□ 학우남
선양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학이 많았음
□ 서당골
선양골 끝자락 동북쪽으로 난 등성이다. 옛날 서당이 있었고, 발리의 큰 동네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과수원으로 개간되었다.
□ 부엉디미
성지골 동쪽에 있는 산.
□ 깔다구논
솔밋들에 있는 논인데 깔다구(각다귀)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 꼬등산
발리 남쪽에 있는 산
□ 매등산. 매등드리
꼬등산 남쪽에 있는 산. 산형이 매의 등처럼 생겼다 함
□ 바리딧산
발리 뒤쪽에 있는 산
□ 내방골, 내방골뻔디기
발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와 그 위쪽에 있는 버덩
□ 홍골, 홍골고개
발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홈을 댔으며, 이곳에서 선양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홍골고개라 한다.
□ 진동(進洞)
발리의 남쪽 철도 동해남부선을 따라 있는 마을로 골짜기가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한때 장동(長洞)이라고도 했다. ‘進’은 길다는 이지방의 말인 ‘질다’에서 음차 하여 붙인 이름일 것이다. 진동은 웃마실과 아랫마실이 있었으나 웃마실은 쇠락하여 없어지고 아랫마실이 오늘의 진동이 되었다.
동해남부선이 마을 서쪽 뒤로 개설될 때 진동굴이 뚫렸으며, 대부분 농사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법정동인 발리에 속해 있지만 독자적으로 마을을 운영하고 있으며, 향우회도 별도 조직되어 있다.
□ 진동 웃마실터
현 진동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집터가 있다. 전해오기를 이곳에는 천석꾼이 살았으나 산소를 잘못 써 당대에 망했는데, 이와 함께 마을도 쇠락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서당터와 주막터 그리고 물이 좋은 샘이 있다.
□ 부애이골
마을 앞 골짜기에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인데, 부엉이가 울면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기고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하여 좋은 징조라고 믿었다. 그러나 숲이 옅어지고 자동차소리 등 환경이 나빠지자 이제 부엉이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 절텟골
진동마을 남서쪽 철길 건너 난 골짜기다. 여기는 원효대사가 도를 닦았다고 전하는 절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탔다고 한다. 당시 주지스님은 화를 입을 것을 예견하고 귀중한 물건을 땅에 묻었다고 하는데 얼마 전 이곳에서 불상이 발견되어 이웃마을의 절에 맡겼으나 관리소홀로 도난당했다고 한다.
□ 진동굴
진동마을 북쪽에 있는 동해남부선의 터널로 길이는 50m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동해남부선의 4개 터널 가운데 가장 긴 660m의 마근굴이 있는데, 이 굴의 반은 서생면 마근리에, 반은 온양읍 발리에 속해 있다.
□ 마근고개
진동 남쪽에서 서생면 화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 쪽재비고개
진동 남쪽에서 서생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쪽재비가 많았다 함
□ 갈밭골, 갈밭골고개
진동 남족에 있는 골짜기로 갈밭이 있었으며, 이 위에 있는 고개가 갈밭골고개다.
□ 당당바우
바리 남쪽에 있는 바위. 두드리면 둥둥 소리가 난다고 한다.
□ 철마등(鐵馬嶝), 철마고개
진동 서남쪽 철마산에 있는 등성이와 여기에 있는 고개. 진동에서 대안리로 넘어 간다.
□ 제당(祭堂)
발리에는 모두 다섯 곳에 제당이 있는데, 상발리제당. 하발리제당. 윗선양골제당. 선양골제당. 진동제당등이다. 모두 정월 대보름 자시(子時)에 동제를 모시는데, 상발리는 골매기할배신을, 하발리는 골매기할매신을 모신다. 다른 세 곳은 마을 수호신이라고 하지만 흐름으로 미루어 골매기신이며, 성별은 나타나지 않는다.
1) 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그릇. 오목주발과 같으나 아가리가 조금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다.
2) 상발 뒷산에는 와질토기와 환두대도 등이 출토되어 이곳이 우시산국의 세력중심권이었다는 온양면세일반의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3) 생서량군의 치소가 발리였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각주 1)의 출토유물로 인해 나온 말이다.
4) 英祖25년(1749년) 울산부사 權相一 집필.
5) 溫陽邑誌. 2002. 온양읍지편찬위원회. p.178
6) 온양읍지. 2002. 온양읍지편찬위원회. p.445
7) 蔚州硏究. 2002. 이상도. 울산의 地名에 나타난 ‘性智’와 ‘채봉(草墳)의 분석. p.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