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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하고 싶은 운동

작성자늘 종|작성시간26.06.05|조회수6 목록 댓글 0

가장 하고 싶은 운동

 

흐발린스카는 롤랑가로스 예선통과자로 본선에 참여했습니다. 가끔씩 예선통과자들이 돌풍을 일으키는 것도 재미입니다. 하지만 예선통과자들은 기껏해야 1·2라운드에서 떨어집니다. 대부분 1라운드에서 랭킹이 높은 시드배정 선수들의 희생양이 됩니다. 그런데 흐발린스카라는 예선통과자가 롤랑가로스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랭킹 백위대인 그는 검색을 해보아도 자료가 별로 없습니다. 해설자조차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해설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준결승 경기에서 이번 대회 준준결승에서 세계 1위 사발렌카를 이긴 슈나이더가 무난히 이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슈나이더는 사발렌카를 3세트에서 6:0으로 이길 만큼 경기력과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흐발린스카는 침착하게 슈나이더를 물리쳤습니다.

 

이름부터 바로잡아야겠습니다. 그는 흐발린스카가 아니라 츠왈린스카입니다. 그가 준결승에서 이기기까지 아무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무명이었고, 그 어떤 가능성을 보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계속 이기자 그에 관한 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가 한때 세계 1위였고 롤랑가로스를 네 번이나 제패했던 같은 국적의 시비옹테크와 함께 선수생활을 하던 동료였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2021년 윔블던 예선 탈락 이후 깊은 우울증에 빠져 한동안 테니스를 치지 않았지만 그 기간의 여러 경험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롤랑가로스 결승에 올랐습니다.

 

그가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을 판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는 겸손했고, 침착했고, 보기와 달리 강력하기까지 했습니다. 새삼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납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시인의 말이 사실은 인생 행복의 비결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역전’이란 츠왈린스키와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는 단번에 인생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이 인생을 시작하는지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인생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실제로 인생역전을 이루어내는 경우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경쟁은 힘든 과정이며 끊임없이 강자가 등장하는 대결의 장입니다.

 

롤랑가로스 직관을 위해 프랑스 파리까지 갔던 작은 아이 부부 때문에 이 대회를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남녀 모두 세계 1위가 탈락한 가운데 한 번도 매이저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챔피언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왜 우리는 한 번도 경쟁에서 이겨보지 못한 사람들의 등장에 열광하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패배에 대한 경험들이 쌓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약자에 대한 연민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연민을 기억하며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거칠고 험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렇게 우리 내면에 이미 새겨져 있는 연민과 긍휼을 삶으로 드러내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부자건 가난하건 사람이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버겁고 힘이 듭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한 순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하고 있던 일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경기에서 진 후 인터뷰에서, 91주 동안이나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사발렌카도 테니스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그의 심정이지 테니스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억오천만 원짜리 목걸이와 명품 가방을 들고 테니스장에 들어오는 그가 테니스를 그만두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서 돈의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돈입니다. 그것은 이번 선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2030들의 국민의힘을 향한 몰표는 부동산과 관련된 그들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돈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돈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 주인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누구도 마다할 수가 없습니다. 경국지색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을 혼절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매력을 가졌습니다. 누구나 그 주인 앞에서는 저절로 “죽어도 좋아”를 외치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 우리 교회에서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본문으로 설교를 할 때 한 집사님이 한 말이 늘 기억납니다. 아무리 돈에 대한 실체를 강력하게 제시해도 그것은 사람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과 하루 종일 일 한 사람에게 똑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포도원 주인은 돈이 주인인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불의한 일입니다. 특히 그 집사님은 시급제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만일 가장 늦게 들어온 일꾼이 집사님 아들이어도 같은 생각이냐는 제 질문에 “아들 아냐 하나님이어도 안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죽어도 좋으니 돈벼락을 한 번 맞아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츠발린스카와 같은 경우는 ‘로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한 방에 일어나는 인생역전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츠발린스카의 경우와 같이 가끔씩 일어납니다. 그것으로 주인인 돈은 세상 사람들을 격려하고 장악합니다. 기회는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경쟁에서 진 경우의 부당한 대우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희생조차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평등이라는 것을 애초에 불의로 알아듣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감히 하나님이 주인이시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 6:24)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예외 없이 하나님이라는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돈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히 여기고 돈을 업신여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자신들이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이미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도 없습니다.

 

츠발린스카의 롤랑가로스는 그의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세상은 이처럼 말없이 경쟁이 세상의 본질임을 주장합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세상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런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잔인하고 냉혹합니다. 그런 세상에 비해 하나님 나라는 무미건조해 보입니다. 재미도 없고, 게다가 불평등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자세히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자세히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테니스를 좋아하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운동은 테니스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운동입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결핍의 세상에서 때론 힘겹기도 하지만 돈을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일이야말로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며, 그것은 세상을 가장 아름답고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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