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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오직 유일한 의미

작성자늘 종|작성시간26.06.06|조회수7 목록 댓글 0

오직 유일한 의미

 

요양원에서 만났지만 25년을 알며 지낸 분이 지난 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설교하는 예배에 25년 간 참석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임종기도를 해드렸습니다. 저는 본인이 꼭 원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도 안수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임종기도라고 특별히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제게는 어떤 특별한 권위도 없습니다. 주님께 영혼을 부탁하는 내용과 임종 전의 힘든 과정을 잘 이기게 해주십사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다음 날 임종하셨습니다. 미국에 사는 딸과 며느리가 와서 장례절차에 참여했지만 장례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남자가 90세를 넘어 사는 것은 장수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전에 장수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잘 사는 것과 장수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무의도식 하는 삶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래 사는 것은 여전히 축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수를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신 34:7)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예로 들며 장수에 더해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을 복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세가 죽은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을 완수하고 주께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오래 살고 짧게 살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나밥티스트가 간직하고 있는 “순교자의 거울”에 나오는 사람들은 요절한 경우가 많지만 저는 그들의 인생이 짧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자신들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완성되었습니다. 그런 인생에 길고 짧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도 눈이 빛을 잃지 않고, 기력이 정정한 상태에서 죽기를 원하지만 아무런 사명 없이 단순히 건강하게 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기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든 인생을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그런 의미와 합리화를 통한 장수가 아니라 모세처럼 분명한 사명입니다.

 

사람들은 모세가 느보 산 비스가 봉우리에 올라 약속한 땅을 바라보는 순간을 모세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라고 해석합니다. 저는 그것은 잘못된 해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구해내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는 모든 일들을 완수하였습니다. 그것이 그가 받은 사명이었고, 그는 그것을 완수했습니다. “약속의 땅을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을 떠올리는 것은 모세가 아니라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욕망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빌 1:21-24)

 

이 말씀은 장수에 대한 명확한 복음적인 이해입니다. 사람들은 장수에 대한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며 무조건 장수가 축복이라는 사고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말씀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위해서는 살아있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장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신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에게 음식을 가려먹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참외에 칼슘이 많이 들어있어 신장에 좋지 않으니 참외를 많이 드시지 말하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상관을 안 합니다. 제 몸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의 것인 제 몸을 잘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제게 있지만 제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감사로 받아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저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몸의 건강을 주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중요한 것은 사명입니다. 요한이 생각납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다른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돌보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이 복음을 위해 순교할 때 그는 살아서 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느꼈을 회의를 저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도 다른 제자들처럼 복음을 위해 장렬하게 산화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사명은 달랐습니다. 그는 그 일에 충실하였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사랑의 사도’라는 다른 의미를 성취함으로써 다른 제자들과 다른 인생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사촌누나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그 누나에게는 열렬한 신앙을 가졌던 딸이 있습니다. 제게는 조카인 그는 고3때도 새벽예배에 나가 반주를 하였습니다. 그때 사촌누나는 제게 전화를 해서 딸이 대학을 들어간 후에 새벽예배 반주를 하도록 딸을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에게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그 조카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전화는 그 조카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였습니다. 교대를 졸업한 그 조카는 발령을 받지 않고 선교단체 간사로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을 말려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조카가 대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결혼 후 이혼을 했고, 지금은 야구광이 되어 야구장을 드나들고, 주말이면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방학 중에는 해외여행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는 조건으로 남자친구도 만나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조카가 잘 사는 것에 아무런 이의도 없습니다.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조카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좋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조카 안에 그토록 생생하게 사시던 그리스도께서 도대체 어디로 가셨는가가 저는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 조카가 여전히 교회를 나가고 있느냐 아니냐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궁금증 따위는 애초에 가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사심입니다. 여하히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사는가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의미여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오래도록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지내면서 저는 제 사명에 대해 회의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날마다 글을 쓰는 일도 제 사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제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 다시 말해 제 생명이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는 전적으로 주님의 몫임을 믿기에 저는 제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감사로 받아 그것에 충실한 것이 제 소임이자 사명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골 3:23)

 

이 말씀은 노예들에게 한 권면입니다. 노예의 삶도 주님께 하듯 진심으로 하면 그 사람의 사명이 됩니다. 가장 비참한 삶조차도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된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의 완수입니다. 그 삶은 위대한 사명을 받았던 모세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크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욕망입니다.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무리 종교적(복음이나 선교와 같이 분명한 경우에도)인 것이라도 무의미합니다. 그것을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라 주장할지라도 불꽃같은 주님의 시선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수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죽어도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기만 한다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께 하듯 진심으로 오늘 하루를 사는 것, 그것이 제 삶의 오직 유일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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