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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가리게 하는 나무에 대한 단상

작성자늘 종|작성시간26.06.09|조회수6 목록 댓글 0

선과 악을 가리게 하는 나무에 대한 단상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던 사람들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질 줄 알았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먼저 나섰고, 결과가 뒤바뀌자 “재선거”를 요구하는 청년들의 집회가 올림픽공원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전한길이나 극우 유튜버들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집회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개신교 신자들은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면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 3:4-5)

 

뱀의 말은 사실입니다.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으며,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홍수 이전 사람들의 수명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지구를 감싸고 있던 물 층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들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성서의 기사를 신화로 여기는 것이 옳을지 혹은 어떤 상징으로 보아야 옳을지 알 수 없지만 저는 가능한 있는 그대로의 말씀과 거기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읽기 위해 성령의 조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옳음에 확신을 갖고 있는 그 모습이 “하나님처럼” 된 인간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청년들의 경우는 양육과정에서 자기중심적이 되고 모든 세상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 젊은이들의 특징이 드러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절대성을 부여함은 물론 폭력의 사용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이런 비극의 시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나무가 동산 한 가운데 있는 이유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떠올리게 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도록 창조된 피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피조물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했고, 뱀은 그런 인간을 유혹하기에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된 인간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뱀이 되었습니다. 그 뱀의 정체가 바로 맘몬입니다.

 

이런 제 이야기가 제 상상에 지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제 이야기가 상상이 아니라 적확한 현실 인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전인수요 자화자찬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꿈꾸는 세상은 오늘날과 같이 불평등을 정의로 주장하는 곳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평등한 나라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작은 자들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작은 자들의 나라라는 사실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는 선과 악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습니다. 어떠한 선에도 악이 섞여 있고, 그것은 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선과 악은 절대성을 주장함으로써 스스로 모순이 되어 모두를 공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어도 인간은 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할 수 없습니다. 권력과 돈이 그것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전지전능이 아니라 유사전지전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선과 악은 결과적으로 결핍을 유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핍이 없는 샬롬은 하나님의 통치 하에서만 이루어지는 결핍이 없는 평화의 상태입니다. 과거 로마가 통치하던 시대의 평화와 작금의 미국이 통치하는 시대의 평화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평화는 로마를 위한 것이었으며 미국을 위한 것일 뿐 로마의 지배를 받는 나라들이나 미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들의 평화는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개인주의를 통해 제국주의의 사고가 마침내 개인들에게도 미쳤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면서 광장으로 나와 자신들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힘을 규합하여 폭력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올림픽공원에 모인 시위대의 정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또 다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근본적으로 폭력을 단념해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리는 것처럼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반드시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렇게 기꺼이 누룩처럼 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폭력을 단념한 평화의 사람들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인간 때문에 스스로 약점을 감내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약점은 사랑의 속성입니다. 엄마가 아이가 운다고 때리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도 인간의 잘못을 보고 불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리십니다. 물론 인간이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 깨달음은 언제나 인간의 몫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분별입니다.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을 통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선에 참여하는 것이 인간이 선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아킬레스건”은 그런 인간들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가한 제약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하나님의 콜라보를 통해 온 세상을 완성(구원)하는 것입니다.

 

수만 명이 모였다는 시위대를 보며 세상의 어둠이 관영했다는 성서의 표현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지금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누룩의 활약이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시대에 덜떨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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