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단상

사랑은 어리석습니다

작성자늘 종|작성시간26.06.12|조회수6 목록 댓글 0

사랑은 어리석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던 이들이 신이 났습니다. 그들과 결을 달리 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6·3선거가 2030들을 깨어나게 했다며 시위의 의미를 새롭게 찾은 이들도 있고, 그런 모든 이들의 시위를 키워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면으로 이용하려는 기존 윤어게인 세력들도 있습니다.

 

그런 시위대 속에서 찬양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는 개신교 신자들도 있고, 그런 그들의 행동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예배는 교회에 가서 드리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조기를 다는 이들도 있고, 그것을 떼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소란을 이용해 자신의 조회수를 늘리려는 유튜버들 역시 빠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개신교 신자들은 찬양을 부르며 통성기도를 하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이승만 대통령”을 언급하며 자유대한민국의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얼싸안고 서로에게 축복기도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혼란한 집회입니다. 집회의 이유는 한 가지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했습니다. 작금의 한국의 정치적인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정치적인 혼란은 각국의 상황에 맞추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세계를 바라보며 바벨 사건을 떠올립니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창 11:8-9)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하고 그곳에 탑을 높이 쌓아 하늘에 닿게 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마음이 투사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람들의 마음이 낳은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을 뒤섞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하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제국주의”를 출현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국주의의 미래를 아시고 온 세상의 말을 뒤섞어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늘의 세상의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벨을 추구합니다. 제국주의는 폭력으로 온 세상을 하나로 통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한 국가를 위해 다른 모든 나라가 희생하도록 만듭니다. 세상의 역사는 제국주의의 역사로 인해 비극이 되었습니다. 식민지 정복으로 대다수의 남미 대륙의 원주민들이 죽었고, 지금도 그들은 정복자들의 폭력의 역사를 이어받아 치안부재의 나라들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이 오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지만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폭력으로 세상을 하나로 만들려는 사람들의 무대였습니다.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마음의 결과물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가인의 후예”들의 역사입니다. 자기 동생을 돌로 쳐 죽인 가인의 폭력이 바야흐로 관영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들의 출몰은 이러한 시대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개인의 일탈로 보고, 정신이상이라는 처방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의 역사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공통된 현상입니다.

 

혼란한 세상의 역사 속에서 말없는 희생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중세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고, 그들이 죽으면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그 일을 하다 흑사병에 감염되어 죽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사랑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단념한 평화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사나운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폭력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낫을 들고 돌진했던 명성교회의 장로가 바로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위 자체가 폭력입니다. 저도 박근혜 당시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평화적인 시위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것 역시 폭력이었다는 생각에 이후로는 어떤 시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시위에 참여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위로 무엇인가를 관철하려는 시도는 평화를 도모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금의 저의 생각입니다. 작금의 혼란스러움은 이전 촛불시위의 또 다른 결과입니다.

 

본훼퍼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그분 역시 평화를 도모하는 분이었지만 순간적으로 히틀러 암살에 참여하였습니다. 미친 사람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본훼퍼 목사님의 마음을 이해하십니다. 하지만 본훼퍼 목사님도 그 너머를 바라보아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적이 된 것은 평화의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처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롬 8:28)

 

저는 골방에 쳐 박혀 기도나 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폭력을 단념해야 합니다. 평화적 시위는 없습니다. 시위 차제가 폭력입니다.

 

저는 오늘도 쓰기 어려운 주제를 건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랑이라는 모든 것을 이기는 도구가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고전 13:7)

 

사랑으로 세상의 폭력을 이기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랑장”에 ‘사랑은 어리석다’는 말을 더하고 싶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