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단상

그리스도인의 일상

작성자늘 종|작성시간26.06.20|조회수8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인의 일상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 얻은 유익 가운데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된 후 제 일상은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었습니다. 제 삶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의 이름과 관계 되었고, 제가 한 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칭송을 받거나 무시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목사라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제가 목사가 된 이후에야 그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다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욱”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상대방이 제가 목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그런 경우라도 최소한의 절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그것이 목사가 되 이후 제게 주어진 영적인 유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조롱의 의미가 될 때도 있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당신이 목사가 맞느냐는 지적이나 비아냥거림도 받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제게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목사가 되어 저는 순간적으로 절제하는 법과 온순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의 삶이 신비라는 사실에 대해 점점 더 공감하고, 그 신비에 대해 머 많이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게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도 의미 없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일어난 일을 통해 주님이 제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특히 고난에 대한 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고난은 특히 많은 교훈을 담고 제게 찾아옵니다. 그러다보니 제게 고난이 있을 때마다 더 깊이 생각하고, 그러다보면 제게 닥친 고난이 오히려 유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자랑하던 이유를 제게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저는 먼저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러면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생각과 함께 제게 닥친 고난을 두려워하지도 염려하지도 않게 됩니다. 불안은 인생의 강력한 구성요소이지만 불안이 더 이상 제 인생을 견인하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새삼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영적인 교훈이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단순히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생을 감사로 받을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 획기적인 사실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런 획기적인 일이 날마다 일어나는 신비한 삶인 것입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골 1:24)

 

바울 사도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고난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에게 닥친 고난은 그냥 그분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신에 채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고난의 의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사실에서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의 일치를 보게 됩니다.

 

그런 일치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것이 됩니다. 고난의 목적이 더 분명하게 확정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고난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이제는 제가 쓰는 글마다 오늘날 교회를 지적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맘몬의 신전”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교회가 우상이 되었다는 말을 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선교조차도 우상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글을 읽고 제 글이 어렵다면서 저와의 관계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일들이 제 일상이 되어 제 곁에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를 잘 아는 분들이 제 곁에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라는 지적을 하곤 합니다. 제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면 왜 제 곁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느냐는 질책입니다. 사실 저는 지금도 저와 함께 그리스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 분들을 만나 교회를 이루고 싶습니다. 결국 제가 그렇게 된 이유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기 위한 몸부림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영광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래서 성공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서 성공한 자신의 삶을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반대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세상에서 성공을 하거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은 애초에 그리스도인으로 지원이 불가능했습니다.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는 “비 능력”은 그리스도인들을 낮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비 능력”은 성공한 경우에도 모든 결과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러면 성공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게 됩니다. 성공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간증은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모순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 모순된 그리스도인이 바로 맘몬의 신자가 되었다는 확증임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교가 된 것입니다.

 

저는 가난해진 후 무시와 조롱이 일상이 되었고, 굳이 다른 고난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고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날마다 쓰는 글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신에 채워가는 것이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은 그래서 저의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제게 또 하루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하루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

 

아! 그렇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일상이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