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는 법
할렐루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6월 7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오늘 이곳 김포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뭐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선선합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시골에 있는 비인가 학교에서 올해 100% 대학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수가 미국으로 유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가 인가를 받지 않게 된 것은, 인가를 받게 될 경우, 교육부의 간섭으로 성경을 맘대로 가르칠 수 없기에 일부러 인가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학교 교장실 뒷벽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잠언서 글귀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흔히들 공자가 말했다는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순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해도 좋을 듯합니다. 하나님은 곧 말씀이요, 길(道)이요, 법(法)입니다.
구슬을 하나하나 꿰며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난생처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끄러울 때도, 내가 그 사람한테 왜 그랬을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잘 챙겨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60년을 살아 낸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60대가 되면서 그동안 두려워하던 ‘죽음’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50대까지는 그 단어를 떠올리면 그저 무섭기만 했는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염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니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시신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 또한 나처럼 세상을 살아온 한 사람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입니다. 무엇이든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살아가니 하루하루가 선물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선물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몸을 일으킵니다. 잠들기도 전에도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잘 살았습니다. 내일 눈을 뜨지 못하더라도 후회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다 보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화날 때도 절망적일 때도 있습니다. 바다가 매일 다르듯 우리 삶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풍에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호수처럼 잔잔해지는 날은 반드시 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지나갈 테니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이 2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으로 매 순간 살아가게 됩니다. 그 어떤 감정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너무도 소중합니다.(출처 ; 좋은생각 2026년 6월호에서, 최미애 비즈 아티스트 작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인생을 즐기기에도 너무 짧아요. 즐기세요. 비극적인 생각만 하면 어두운 일만 생기게 됩니다.(타샤 튜더)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잊힌 772명의 어린 영웅들
7번 국도를 따라 대게의 고장 경북 영덕을 지나다 급히 멈춰 섰습니다. 장사해수욕장 한쪽에 정박한 거대한 선박 한 척을 발견하고서입니다. 함정 몸체에 적힌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라는 이름과 ‘작전명 174호. 잊힌 영웅들!’이라는 대형 문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장사상륙작전이 뭐죠?” 근처에서 여유를 즐기는 캠핑족들에게 물었으나 묵묵부답입니다. 함정(문산호) 바로 옆 추모 공원 안에 들어선 16~19세 어린 학도의용군 772명의 추모비와 명패, 전승기념관을 둘러보고 나니 곧바로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전세가 악화가 되자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면서, 적군을 교란할 목적으로 동해안에서 펼친 양동작전의 희생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몰라서 죄송하다”라는 한탄이 입 밖으로 절로 새어 나왔습니다.
전쟁 발발 약 3개월 후인 9월 14일, 이들은 부산을 떠나 이곳에 상륙해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200고지 점령, 적군의 후방 주요 보급로 차단 등의 소임이 수행되었던 격전 속에서 병사들은 전사하고 함정은 좌초됐던 것입니다. 그 희생 덕분에 9월 15일 거행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했고 9월 28일 서울 수복에 이어 10월 1일에는 국군이 38선(線)을 돌파하게 된 것입니다.
대구·밀양 지역에서 자원입대한 학도병들은 애초 작전 수행 3일 후 부산으로 철수할 계획이었지만 육군본부의 철수 명령이나 무기·식량 추가 지원도 없어 모두 탈진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지역 탈환을 위해 북한군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반격하면서 희생자가 속출했습니다. 문산호는 미국에서 2천3백6십6t급으로 건조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통해 한국군에 동원된 군함입니다.
국내 유일의 바다 위 ‘호국전시관’은 2020년에야 건립됐습니다. 전쟁 당시 공식 문서가 없는 군사기밀이라 역사에 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침몰 후 바닷속에 묻혔던 문산호를 1997년 발견, 그 모습을 본떠 324억 원을 들여 5층 규모로 지어 일반에 공개했고 미흡한 점을 보충해 작년 7월 재개관했습니다. 군함 주위 추모 공원 안 학도병들의 교전 모습을 담은 동상들과 그 이름 명판 등을 보면서 잔혹한 총구 앞에서 10대의 어린 자식들을 떠나보낸 부모들의 피눈물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전쟁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보낸 편지가 전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1960년 10월에 보낸 맥아더의 친필 서명 편지에는 “인천상륙작전을 돕기 위해 전사한 영웅들을 추모한다. 그들의 헌신은 젊은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전쟁 당시 군사전문가들조차 ‘성공 확률 5,000분의 1’이라며 만류했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도운 장사상륙작전이 결국 전세를 역전시키는 교두보가 됐음을 시인한 것입니다.
6·25전쟁 당시의 국군 전사자는 모두 13만 7,000여 명이나 됩니다. 76년이 지난 지금, 전몰자들의 소중한 생명을 대가로 얻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후손들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추모해 왔는가, 또 그들의 희생을 유산으로 받은 개개인은 나라를 위해 어떤 이바지를 했나 돌아보게 됩니다. 그들 외에도 조국의 해방과 민족 항쟁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들이 떠오릅니다. 현충일 조기(弔旗)조차 거는 집들이 드문 마당에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국가 추모 행사로 그 과중한 부채를 쉽게 탕감하려 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6월만큼은 시련의 역사를 되새기며 후손들이 어떤 자세를 이어갈지 각 가정에서 진지하게 토의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또 순국선열들을 모신 곳곳의 국립묘지나 기념관 등을 찾는 추모 나들이도 병행하면 어떨까. 감사하며 좀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삶은 개개인에게 자부심을 안겨준다. 거룩한 희생을 기억하는 후손들은 향후 어떤 위기에도 강건한 정신으로 거듭나는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니게 되리라. 전쟁 후의 무참한 폐허와 가난 속에서 오늘의 번영을 일군 이 땅의 모든 역군들과 부모님 세대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출처 ;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에서, 고혜련 칼럼니스트)
(물맷돌)
두통을 앓으며
이틀 동안 두통을 앓았다. 진통제가 통하지 않는, 독한 놈이었다. 지끈지끈하다가 어질어질했다. 머리가 아프니 글을 쓸 수도, 책을 볼 수도 없었다. 개점휴업인 상태로 무위도식했다. 밤도 아닌데 침대에 늘어져 눈을 감았다. 이른 더위를 먹어서인가. 컨디션 조절을 잘못했나. 작업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았나. 원인을 안다고 두통이 낫는 것도 아니니, 물음표는 결국 반성으로 바뀌었다. 힘이 넘치는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조금씩이라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드라마가 지난주에 종영했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만으로도 202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즈ㅇ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진학과 취업에 실패한 청춘들, 남들이 받는 수억여원의 성과급을 흘끗거리는 월급쟁이들, 오랜 질병으로 병상을 떠나지 못하는 환우들…. 나의 가치는 성과가 아닌 존재 자체에서 온다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두 손을 모았다.
정혜덕 작가
편견이 낳은 혐오의 위험성
아돌프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쌓인 독일 국민의 분노를 유대인에게 돌렸습니다. 마치 유대인을 제거해야만 독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릇된 종말론적 세계관을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약 600만명의 유대인이 희생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히틀러는 여성에 대해서도 왜곡된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여성의 역할을 ‘아리아인 출산과 가사노동’으로 제한하고 사회 진출을 박탈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격화되자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여성을 대거 산업 현장으로 동원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유대인 혐오와 여성 편견은 정의가 아닌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획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편견과 신념이 만들어낸 혐오는 매우 위험하고 무섭습니다. 오늘날에도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망국적 편 가르기와 혐오 조장 앞에 성경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고 가르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할 것을 명합니다. 자신과 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품을 때 비로소 연합된 건강한 공동체가 이뤄집니다.
김민철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얼마 전 선교지로 떠나기 직전인 선교사 부부와 예배를 드렸는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남편 선교사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차를 타고 63빌딩 앞을 지날 때 아버지는 “앞으로 63빌딩보다 더 큰 선교센터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하는 순간 아버지가 꿈꿨던 63빌딩보다 큰 선교센터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내 선교사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다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중국의 상황은 어떠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딸이 선교사가 돼 길을 떠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녀에게 남기는 가장 큰 유산은 말이 아니라 삶입니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는지 자녀들은 말없이 보고 배웁니다. 매일의 작은 헌신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쌓여 누군가의 길이 됩니다. 두 선교사의 앞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넌 나처럼 살지 마라
“5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해요.” 자녀를 먼저 보낸 어느 어머니의 말이 가슴에 박힙니다. 누군가에게 가정의 달은 가장 가혹한 달일 수 있습니다.
이맘때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고단한 하루 끝에 귀가해 잠든 자식들을 깨워 꺼칠한 수염을 비비시던 얼굴. 따갑다고 고개를 돌리면 짓궂게 더 비비시다 지갑을 여시곤 했습니다. 사랑 표현은 서툴렀지만 자식들이 당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평생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박노해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휘청이는 몸으로…
울먹이는 밤”.
시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정작 제 삶은 물려주기 싫다던 부모님. 그 아픈 고백은 사실 절절한 사랑이었습니다.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삶을 새겨주고 있는가. “엄마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 당당히 말할 수 있는가. 비록 연약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려 합니다. 자녀에게 줄 가장 큰 유산은 부모가 주님 앞에 바로 서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선한 선거운동
지난 주말 우리 동네 시장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각 정당의 유니폼을 입은 운동원들은 짝지어 다니며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지지를 호소했다. 시장 입구에서는 파란색과 빨간색 운동원들이 서로 마주 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분명 행인을 향한 인사였지만 지나는 사람이 없을 때는 마치 상대에게 인사하는 것 같은 재미있는 모습이 연출됐다. 때론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웃기도 했다. 놀이하듯 경쟁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관심 지역의 날 선 비난이나 갈등과 달리 우리 동네 일꾼을 뽑는 풀뿌리 선거운동에는 절제와 질서가 있었다.
다른 색깔 점퍼를 입고 있지만 같은 시장 골목에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이던 운동원들을 바라보면서 선거는 원래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 다툼으로 서로 배제하고 미워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나에게 이번 선거운동은 정치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선거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누가 더 책임 있게 돌볼 청지기인지 분별하는 과정일 것이다. 후보들이 서로를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대하는 선한 경쟁을 이어가면 좋겠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가장 소중한 것
2003년 4월 미국 유타주의 좁은 협곡에서 27세의 등반가 애런 랠스턴이 사고를 당합니다. 그는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팔이 바위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127시간이 지난 후 썩어 가기 시작한 팔을 바라보며 그는 결단합니다. 남은 힘을 모아 감각을 잃은 오른팔의 두 뼈를 비틀어 부러뜨린 뒤, 무딘 칼날로 한 시간에 걸쳐 스스로 팔을 잘라냅니다. 그리고 20m 절벽을 하강하고 11㎞를 걸어 마침내 구조됩니다. 그의 극적인 생존 이야기는 훗날 영화 ‘127시간’으로도 제작됐습니다.
예수님도 이와 닮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8)
삶에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그다음으로 소중한 것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엄마를 지키자!
할렐루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5월 31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선선합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일본 사람이 쓴 책 중에 ‘물은 답을 알고 있다’가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답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니, 성경 66권 전부는 그만두더라도 오로지 창세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창세기에 인간의 문제가 있고 그 답도 있습니다. 창세기만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저는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요컨대,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이고, 그 죄는 법(하나님, 말씀)을 어김(불순종)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법을 어겨서 그 법망에 걸려든 사람들입니다. 그 외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 밖에서 죄수(죄인)로 살고 있습니다.
몸을 튼튼히 하고 마음을 강하게 한다는 ‘건체강심(建體康心)’의 뒤를 이어 ‘효천애교(孝踐愛橋)’가 따라온다는 이치를 알았습니다. 일단 내 몸이 바로 서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단전호흡에 집중하며 만물과 하나가 된다는 ‘일화창생(一和蒼生)’을 읊조리다가도, 정작 ‘효천애교(孝踐愛橋)라는 네 글자에 이르면 명치끝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하늘에 효도하고 사랑의 다리가 된다는 그 숭고한 문장이, 치매 엄마를 둔 나의 현실 앞에서는 자꾸만 숨을 막아 세웠습니다. 우리네 부모들이 본능적으로 실천해 온 그 지독한 ‘효’에 대하여, 저는 명치의 통증을 느끼며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습니다. 내 틀에 맞춰 엄마를 꺾으려 했던 고집,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썼던 책임감이 호흡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깊은숨을 토해 내며 굳어 있던 명치를 쓸어내립니다. 사랑의 다리가 된다는 것은 엄마를 제 마음대로 끌고 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엄마가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제 몸을 낮게, 그리고 단단하게 눕히는 일임을 알 것 같았습니다.
지하철의 정적 속에서 저는 다시 숨을 들이마십니다. 내 몸의 존엄을 지키는 이 호흡이, 결국 엄마를 향한 정직한 사랑의 다리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출처 ;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김영연 작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십계명 중에서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엡6:2]
●과거를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미래도 멀리 볼 수 있다.(윈스턴 처칠)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 속에서 덜 흔들리는 법
5월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 계절입니다. 결혼식이 이어지고, 모임이 잡히고, 오랜만에 연락이 옵니다. 초록이 짙어지면서 몸과 마음도 더 분주해집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자리가 있었습니다. 과거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청계천을 따라 두 시간 정도 걷는 모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저는 행사 시작 전부터 마음이 바빴을 것입니다.
누구에게 먼저 인사해야 하나. 누가 나를 반갑게 맞아줄까. 혹시 어색해지지는 않을까.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무심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사람들 속에서 왜 우리는 쉽게 지치는가? 사람이 많은 자리에 가면 그런 생각들이 의외로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듭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과속하기 시작합니다.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받으려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나는 굳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인사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웃고,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갔습니다. 억지로 말을 이어가거나 괜히 존재감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천천히 걸었습니다.
사람들 무리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혼자 걷는 느낌으로, 청계천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느끼며, 지금 내 발걸음에만 조금 더 집중하면서 걸었습니다.
신기한 건 오히려 그럴 때였습니다.
예전에는 다소 서먹했던 사람도 먼저 웃으며 말을 걸어왔고, 오래전 함께 일했던 사람도 농담을 건넸습니다. 억지로 관계를 붙잡으려 할 때보다, 담담하게 자기 리듬을 지킬 때 사람들도 나를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일까요?.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 법’만 배우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외면하면 괜히 마음이 흔들리고, 단체 모임을 다녀오면 공연히 피곤해집니다. 집에 돌아와 “괜히 갔나?” 싶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특히 지금 같은 조급함과 번 아웃의 시대에는 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밖에서 하루 종일 비교당하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ㅈ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건 의외로 ‘과잉 존재감’이 아닙니다.
너무 애쓰지 않는 사람. 과시하지 않는 사람. 억지로 친해지려 하지 않는 사람. 오히려 그런 사람 곁에서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저 역시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배우는 것 같습니다. 관계는 억지로 끌어당긴다고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마다 거리와 리듬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사람 많은 자리에 가도 예전처럼 애써 중심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듣고, 웃고, 필요한 말만 하고, 혼자 있는 순간도 견디려고 합니다.
청계천 물은 말 없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걸어갔고, 그 사이를 지나며 나도 걸어갔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내 걸음으로. (출처 ; ‘마음 건강 길’에서, 함영준 마음 건강 길 대표)
(물맷돌)
죽은 척
자는 척은 여러 번 해 봤다. 아이를 키울 때, 새벽에 아이 울음소리에 깼어도, 엄마 일어나라고 나를 흔들어도 끝까지 잠든 척을 했다. 아이가 제풀에 지쳐서 잠들기를 기다렸다. 인생은 연기라는 말을 그때 깨쳤나 보다.
지난주 나는 보신각 앞에 누웠다. 누워서 약 2분 동안 죽은 척을 했다. 다이인(Die-in·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시위 행동) 퍼포먼스였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바닥에 누워본 것도 처음이지만 게다가 예배를 드리던 중에 누워서 죽은 척을 하다니, 정말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강남역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일면식도 모르는 남성에게 한 여성이 살해당한 지 10년이 됐다. 그 죽음을 비롯해 여성 혐오 범죄로 사라진 이들을 추모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예배 중에 사이렌이 울렸고 200여명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맨땅에 드러누웠다.
죽음에 대해 묵상한 적은 종종 있었어도 그 죽음은 자연사 혹은 존엄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죽임당해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살해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평생 드려본 적이 없었구나. 내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이 땅에서 억울하게 살해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죽은 척이 가르쳐줬다.
정혜덕 작가
사랑이 깃든 행복한 가정
‘인간은 어디에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20세기 대표적인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평생 이 질문을 붙들고 살았다. 먼저 학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지만 산처럼 쌓인 지식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싶어 세계를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깊어진 피로뿐이었다. 재산을 모으면 행복할 것이라 믿고 부를 쌓았지만 근심과 갈등만 늘었다. 글쓰기에도 몰두해 보았지만 그 또한 피로만 더할 뿐이었다.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평범한 장면을 마주했다. 한 부인이 잠든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기차가 도착하자 젊은 남자가 내렸다. 부인이 아기를 안고 차에서 내리자 남편이 달려와 아내에게 입을 맞춘 뒤 잠든 아이의 볼에도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세 사람은 함께 차에 올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짧은 장면에서 그는 깨달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사랑이 깃든 가정에 행복이 있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장 큰 행복의 자리는 사랑이 깃든 가정이다.
김민철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신학연구원장)
울타리에 남은 못 자국
화를 잘 내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못을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때마다 뒷마당에 있는 울타리에 그 못을 박으라고 시켰습니다. 화를 낼 때마다 못을 박던 아들은 울타리에 못을 박기보다 화를 참기가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화를 참을 때마다 울타리에 박았던 못을 한 개씩 뽑으라고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못을 다 뽑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울타리에 생긴 구멍을 보려무나. 울타리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단다. 화가 났을 때 하는 말은 이런 상처를 남기지. 나중에 ‘미안하다’고 해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사람의 마음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아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고 생기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악성 댓글로 고통받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잠언은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4)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고 욕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1~22)
상처를 주는 말 대신 생명을 살리는 소망의 말이 우리 입술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조준철 목사(만리현교회)
절망에 저항하는 희망
코로나19 시절, 시각장애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텅 빈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광장에서 홀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기억합니다. 낙심한 인류를 향한 그의 노래는 진정한 희망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눈물로 고백하게 했습니다.
어둠은 인간의 실존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위기 앞에서 이기주의로 숨는 이가 있는 반면 묵묵히 연약한 이들을 섬기며 주변을 밝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철학자 블로흐는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살며, 희망은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기독교의 희망이란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곳에서 피어나는 ‘부활의 희망’이라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절망 앞에서도 우리는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고물가와 불황, 무너진 건강과 남모를 상처 등으로 홀로 아픔의 때를 지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주님을 붙드는 ‘거룩한 의지’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이 곁에 계십니다. 오늘도 절망에 저항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이웃에게 따뜻한 빛을 전하는 우리가 되길 빕니다.
서호석 목사(광현교회)
결혼생활의 비결
딸이 결혼하기 전날 밤. 신랑 신부와 우리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한 덩어리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를 나눠 먹었다. 나는 엄숙하게 선포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주신 것처럼, 남편과 아내가 먼저 서로를 위해 자기를 내어줄 때 행복한 가정이 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함께 손잡고 기도하며 새로 탄생하는 부부를 축복했다. 성찬식은 짧았지만 성스럽고 은혜로웠다. 내가 결혼 준비로 바쁘고 피곤한 아이들과 함께 굳이 성찬식을 가진 것은 여기에 내가 깨달은 결혼생활의 비결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거듭 태어난 부부’다. 우리는 신혼 초부터 신앙 빼고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출신도 성격도 입맛도 습관도 모두 달랐다. 결혼생활은 삐걱거렸다. 그러다 내가 마흔 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 회심하면서 결혼생활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집에서 받으려고만 했는데 주는 것이 더 좋아졌다. 우리는 이제 상대의 필요를 먼저 살피려 한다. 같이 있으면 더 편하다. 주의 성찬에서 배운 신비로운 지혜가 힘들었던 우리 결혼생활을 다시 살려냈다.
이효재 목사(일터신학연구소장)
아름다운 부부
결혼식 때 종종 낭송되는 인디언 축시가 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 서로가 우산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 서로가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외롭지 않으리, 서로가 동행이 될 테니까
두 사람은 비록 두 개의 몸이지만,
이제 이들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오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우리는 배우자가 내 우산과 따뜻함이 되어 주길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가정의 목적이 행복이라 믿기에 그 행복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우리는 너무 약하고 불완전합니다. 행복의 근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더구나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함이며 그 거룩함 위에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온전히 깨달을 때 비로소 배우자의 동행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묻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여쭤봅니다. “주님, 오늘 저는 어떤 남편(아내)입니까.”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어른 되기
할렐루야! 예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이 늘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5월 24일 오늘 남은 시간도 즐겁고 기쁜 시간이 내내 계속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꼭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오늘 이곳 김포는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선선합니다. 오늘 남은 시간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불륜’이라고 하던가요! 아시다시피, 성경의 이름은 바이블 말고도 캐논이 있습니다. 캐논은 길이를 재는 자(尺)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척도(尺度)입니다. 고로, 기독교인이라면 내 생각(지식이나 상식 포함)이 아니라 성경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나와의 관계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진다면 아니 될 겁니다. 요컨대, 어떤 경우에도 신실한 신앙인이라면 그 기준이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족은 30미터 높이의 나무 탑을 만들고 꼭대기에 올라가 발목에 나무 넝쿨을 묶은 뒤 맨땅을 향해 내립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번지 점프와 다르게 머리가 땅에 살짝 닿아야 성인으로 인정받습니다. 넝쿨 길이를 잘못 측정하면 땅에 세게 부딪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포를 이겨내는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가장 의미심장한 성인식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비전 퀘스트입니다. 때가 된 청년은 부족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은 뒤 혼자 깊은 숲으로 들어갑니다. 물이나 음식 없이 며칠 동안 침묵 속에서 지냅니다. 이때 꿈, 환상, 자연과의 일체감을 경험하며 자기 삶의 비전을 깨닫고 독립심을 얻게 됩니다.
성인식에서 이처럼 고통스럽고 위험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스스로 넘어서는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새롭게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인내, 용기, 자기 인식 등 한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핵심 자질을 갖췄는지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응석 부리고 의존하던 아이에서 독립적이고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라는 단어에는 성인보다 훨씬 깊은 뜻이 있습니다. 어른은 ’얼의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출처 ; 좋은생각 2026년 6월호에서, 윤재윤 변호사)
●귀를 기울여,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달아 슬기롭게 사는 이들이 하는 말을 잘들어라. 그들의 깨달음에 마음을 쏟아라[잠22:17]
●인생의 모든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한 단어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소포클레스)
●●아랫부분은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수십 년 지나도 끊기 어려운 父子의 인연
50대 중반인 한 형제가 술기운에 찾아왔습니다. 때때로 노숙을 하면서 자주 술에 취해 지냈던 사나이입니다. 그는 노숙인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시작한 산마루해맞이대학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늘 마음의 고통을 견디느라 힘들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애처로운 마음으로 그를 맞았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찾아가시지요. 집을 모르시나요?” “어디인지 알지만 두렵습니다.” “왜요?” “중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왔습니다. 하도 공부 못 한다고 때려서 도망쳤어요….”
그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빛이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버텼던 세월이 40년입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의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뵈러 가라며 선물 살 돈을 찔러줬습니다. 하지만 그는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워 못 갔다는 것입니다. 나는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때려봐야 얼마나 아프겠느냐고 했습니다. 무서우면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가 실제로 두려워한 건 아버지의 폭행이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에 불쑥 나타난 아들을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고 거절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거절당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깊은 두려움입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30대 초반의 한 형제가 할 말이 있다며 찾아왔습니다. 그는 “목사님의 새벽 기도회 말씀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목사님께 거짓말한 게 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고 했는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안 계시다는 것은 15년 전에 한 말이었습니다. 그는 10대 시절 아버지 때문에 겪었던 험난했던 일들을 몇 마디 이야기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어린 날 얼마나 어려웠을까 느껴졌습니다.
“목사님, 아버지께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일해서 저축한 것에서 200만 원만 주십시오.” 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아버지와 통화해 만날 날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그날 낮에 아버지 집 앞에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서 결국 그날 해 질 녘에 아버지와 상봉했습니다. 눈물로 불효를 사과했습니다. 아버지의 문제로 집을 나오게 됐어도 그는 아버지를 떠났다는 죄책감을 느껴왔습니다. 아버지도 눈물로 사과하며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그는 인생의 막힌 담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영혼의 평안과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간은 부모를 단순한 타인처럼 끊어낼 수 없습니다. 기억되는 부모의 체온과 목소리와 냄새가 영혼 깊은 곳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요? 본래 자신을 낳아준 한 몸으로 이어진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인륜의 첫 번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자식을 먼저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앞서 창조의 질서가 먼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부모의 잘못으로 관계가 깨어졌을지라도 자녀들은 다시 공경하게 되는 순간이 와야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께선 하늘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니,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인류가 천국을 살게 된다고 하십니다. (출처 ; [산모퉁이 돌고 나니]에서,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물맷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