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시, 우리에게 생명의 심장을 느끼게 하는 놀라운 시 한 수 소개합니다. 인하대학교에 같이 근무하시다 한국외국어대학교로 옮기신 정은귀 교수님이 알려주신 시입니다. 정은귀 교수님의 글과 해설도 같이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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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잡지 7월호 <시와 함께 눈뜨는 삶>
아직도 뛰고 있는 심장을 찾는 일
글_ 정은귀
“Pawn Shop” - Sherman Alexie
I walk into the bar, after being gone for a while and it’s empty. The
Bartender tells me all the Indians are gone, do I know where they went?
I tell him I don’t know, so he gives me a beer just for
Being Indian, small favors, and I wonder where all the Skins disappeared
To, and after a while, I leave, searching the streets, the storefronts,
Until I walk into a pawn shop, find a single heart beating under glass, and
I know who it used to belong to, I know all of them.
「전당포」 - 셔먼 알렉시
나는 그 술집으로 걸어 들어가네, 내 잠시 떠나 있던 곳, 이젠 텅 비어 있는 곳.
바텐더가 내게 말하네, 인디언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고, 이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혹 아느냐고.
나는 바텐더에게 말하지. 모른다고. 그러자 바텐더는 맥주 한 잔을 주는군,
내가 인디언이라서, 작은 호의로,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해, 인디언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잠시 후 나도 떠나지, 거리를 샅샅이 헤매고, 가게들 앞을 서성거리다가
마침내 전당포로 걸어 들어가네, 거기 유리 아래 쿵쿵 뛰고 있는 심장 하나를 발견한다네.
나는 알아. 한 때 그것이 누구의 심장이었는지, 나는 그 모두를 알고 있다네.
‘한여름의 달’ 7월입니다. 7월은 ‘산딸기가 익는 달’(수우족) ‘나뭇가지가 열매 때문에 부러지는 달’(주니족) ‘사슴이 뿔을 가는 달’(키오와족)이라고 하는데요.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아파치족)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변화와 직접 연결하여 읽어낸 인디언들의 환하고 지혜로운 눈이 실감나는 이즈음입니다.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이라니, 땅과 바람과 햇살이 길러낸 열매를 별 생각 없이 돈 주고 사서 먹는 일에만 몰두해온 그간의 무신경이 부끄러워집니다. 열매를 먹을 때마다 빛을 먹는 마음으로 기쁘고 감사하고 겸허해져야겠다 싶습니다.
인디언들의 12달 이름 덕분에 매달 글을 예쁜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정말 인디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앞에 소개한 시는 셔먼 알렉시(Sherman Alexie, 1966~ )라는 아메리카 인디언 시인의 시입니다. 시인은 스포캐인 인디언 보호구역(Spokane Indian Reservation)에서 태어났다지요. 병약했던 시인은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인디언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자기 종족의 언어 대신 영어로 교육을 받았기에 영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합니다. 자기 종족을 말살한 백인들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영어로 시와 소설을 쓰고 영화도 만들면서 이즈음 가장 주목받는 젊은 인디언 시인이 되었다니, 삶이 선사하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디언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영화에서나 보는 사람들, 머리에 깃털을 꽂고 초원을 누비는 그 옛날의 전사를 떠올립니다. 한때 미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은 하지만 이제는 미국 사회의 패자로 전락하여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부랑아가 되었습니다. 종족 대말살의 역사를 겪어내고 이젠 드문드문 보호구역에 갇히거나 도시의 파편으로 남은 슬픈 역사, 이것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어제와 오늘입니다. 미국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신대륙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대륙은 오래전부터 자연과 하나 되어 살던 인디언들의 땅이었지요. 그동안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은 패자의 역사로 철저히 잊혀져왔는데, 이렇게 ‘적의 언어’로 시를 쓰는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우리에게까지 와 닿게 되었습니다. 그 점에서 이 시에서 우리가 만나는 전당포 안의 팔딱이는 심장은 억압과 폭력, 멸절의 역사를 딛고 버티어 살아남은 존재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퇴락해버린 마을을 다시 찾는 시의 화자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갔다가 다시 고향을 찾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고향은 이미 버려진 땅이 되었고 쓸쓸히 돌아온 그에게 바텐더는 술을 건넵니다. 대문자 S로 시작하는 Skins는 아메리카 인디언을 지칭하는 말인데요. 그 인디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쇠락한 거리를 서성이던 시의 화자는 전당포 안에서 팔딱거리는 심장을 만납니다. 가진 걸 다 팔아치운 누군가 마침내는 심장을 맡기고 돈을 빌려 하루치 삶을 간신히 이어갔겠지요. 그 절망이 아직도 팔딱이며 주인을 기다리는 외로운 심장 속에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 상상 속에서 시인은 쓸쓸한 낙오자로 떠나간 모든 인디언들의 가파른 삶을 호출합니다. 팔딱이는 심장을 통해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절망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선에서 우리는 지금도 낯선 거리를 헤매며 생의 출구를 찾고 있을 이들을 함께 만납니다. 이미 죽어서 사라진 이들의 슬픔과 절망에 그 팔딱이는 심장이 말을 건네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시는 소외된 자들의 힘겨운 현실에 대한 단순한 한탄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게 한 때 누구의 심장이었는지” 알고 있다며 “나는 그 모두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시인은 앎/기억이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이들의 아픈 삶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합니다. “알고 있다”는 확언은 그러므로 실패하고 돌아온 자의 쓸쓸한 외침이라기보다는 팔딱팔딱 외로이 숨 쉬는 주인 잃은 심장을 우리 모두에게 돌려주는 그런 적극적이고 윤리적인 실천의 외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외침 속에서 전당포 유리 속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심장은 독자들의 가슴 속에서 함께 뛰는 우리의 심장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가장 소중한 것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초라한 삶은 비단 인디언들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땅과 바람, 햇살을 사랑하면서 문명의 경쟁 논리를 거부했던 인디언들, 자신들의 땅과 종족의 목숨을 유린당하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그 ‘입이 없는 자들’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심장을 전당포에 맡기고 사라진 사람들, 이들을 향한 찬찬한 응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의 선을 회복하는 첫 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당포 안에서 아직도 뛰고 있는 심장을 만나는 일은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우리가 빚진 힘없는 생명의 자리들을 하나씩 어루만지는 일이 되겠지요. 그 손길 안에서 이 세계는 승자들만의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작고 힘없는 존재들이 함께 더불어 나아가는 평화와 공존의 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빛을 저장한 열매’처럼 소중하게 다시 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