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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여담(餘談) 1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진주 칵테일

작성자정태욱|작성시간12.03.08|조회수392 목록 댓글 0

그림 하나 올립니다.


서양법제사 수업 시간에 얘기했던 그림인데요,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내기'하는 장면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환영하면서 "억대"의 만찬을 베풀어 주겠다고 합니다. 안토니우스는 그것을 믿지 않고, 내기가 이루어지는데, 탁자에 차려진 것이란 단지 한 잔의 식초밖에 없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코웃음을 쳤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자기 귀에 걸고 있던 커다란 진주를 떼어 내어 그 잔에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진주는 서서히 녹아 들어갔고, 참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칵테일'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나머지 귀걸이의 진주를 떼어 내려고 하자, 안토니우스는 그만 자기가 내기에 졌음을 순순히(기쁘게?) 자인하였다고 합니다.^^


로마의 학자 플로니우스의 <박물지>에 나오는 얘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을 얻었지만, 그녀가 목적하였던 파라오 왕조의 유지 혹은 로마 제국으로의 확대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완벽하게 사로잡은 결과, 안토니우스는 로마를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고, 그리하여 도리어 로마의 시민들, 즉 로마의 군대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클레오파트라의 안토니우스에 대한 사랑의 궁극적 뜻이 로마에 있었다면, 바로 그 사랑이 너무 '완벽하였던' 탓에 도리어 그 뜻에는 이르지 못한 셈이 되어 버렸으니 아이러니라 할 것입니다....


옥타비아누스와의 대회전인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의 군대는 안토니우스를 배반하였고, 사태를 직감한 클레오파트라는 뱃머리를 이집트로 돌렸고, 안토니우스의 배도 곧 클레오파트라를 따라가게 됩니다. 로마 내전을 종결짓는 최후의 전쟁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게 됩니다....


3두 정치 그리고 케사르의 독재 시대, 로마 공화정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였지만, 공화정의 명예와 영광에 대한 로마인들의 자부심은 여전한 것이었습니다. 케사르도 그점을 소홀히 하여 결국 암살을 당하였고, 안토니우스도 그 점을 가벼이 여겨 민심의 이반을 불러왔습니다. 그리하여 장군으로서는 가장 '약체'이자 '애숭이'로 평가되었던 옥타비아누스가 장군들의 전쟁에서 최후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유일 패권자가 된 옥타비아누스, 그는 케사르처럼 새로운 체제가 아니라 '공화정의 회복'을 외치며, 자신은 '첫 번 째 시민(프린켑스)'에 불과하다고 하였지만,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때부터 로마 제정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장군으로서 능하였던 케사르와 안토니우스가 실패한 곳에서 장군으로서는 약체였던 옥타비아누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헌정질서'를 보는 그의 안목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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