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시민종교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하여 제가 '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믿는 공존과 관용의 정치질서를 위한 종교'라고 하였는데, 시민종교의 일반개념과 루소가 생각하는 합당한 시민종교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서 좀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말미에 나오는 시민종교의 부분은 이렇습니다. 루소는 어떤 국가든 종교적 기반이 없이 건설된 경우는 없다고 하면서, 종교를 정치적/사회적 관점에서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1.인간의 종교 : 사원도 없고, 제단도 없으며, 의식도 없이 오직 최고의 신에 대한 순수한 내적 숭배와 도덕에 대한 영원한 의무를 추구하는 단순하고 순수한 복음의 종교, 참된 유신론
2.시민의 종교 : 국가적 차원의 종교로서, 국가에 고유한 신이 부여되고, 다시 그 신이 국가의 수호자 역할을 함, 법률로 정해진 교리와 의식이 있으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 야만인으로 취급하게 됨.
3.성직자의 종교 : (예컨대 중세의 교회와 국가의 분리 체제와 같은 것으로서) '인간에게 두 가지의 입법과 두 사람의 통치자 그리고 두 개의 조국을 주고 서로 모순된 의무에 복종하게 하며, (결국) 충실한 신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종교'.
여기서 루소는 정치공동체에서 위 세 가지 종교가 모두 온당치 않다고 합니다. 인간의 종교, 즉 순수한 기독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종교이긴 하지만, 그러한 신도들이 모인 공동체는 더 이상 '인간의 공동체'는 아닐 것이라고 합니다. 이 종교는 지상의 것에 아무런 가치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민의 종교는 신에 대한 진실한 신앙을 공허한 의식으로 빠지게 하고, 배타적이고 포학한 종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세번째에 대하여는 '끊임없는 관할권 투쟁'을 초래하고, '인간을 자기와 모순되게 만드는 제도'로서 '사회적 통일성'을 깨뜨리는 종교라서 정치적 관점에서는 그 해악이 명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논의 이후에 루소는 다시 그 자신의 고유한 '시민종교'를 제안합니다. 앞서 일반적으로 설명한 시민종교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개념상 좀 당황스럽습니다. (어쩌면 시민종교의 진화, 즉 고대 시민종교에서 근대 시민종교로의 진화라는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루소의 시민종교는 신의 존재 긍정, 내세의 긍정, 권선징악, 사회계약과 법률의 신성함, 불관용의 배척 등을 기본 요소로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는 종교 교의로서보다 '선량한 시민' 혹은 '충실한 신민'이 되기 위해 불가결한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말합니다.
국내의 어떤 학자는 이와 같은 루소의 시민종교를 '메타종교'라고 칭하기도 합니다.즉 어쩌면 루소의 시민종교는 모든 개개인의 신앙의 상호 공존을 가능케 하는 기본종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가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말하는 바와 같은 '중첩적 합의'의 기본신념과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이와 같은 루소의 '시민종교'의 개념은 이후 서양정신사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그렇게 전개된 시민 종교의 개념은 마침내 '신'이나 '영혼불멸'과 같은 부분은 더 이상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고, 일종의 정치윤리적 습속, 공유된 정신적 가치와 같은 차원으로 '세속화'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쩌면 앞서 루소가 '불가결한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한 데에서 이미 시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어떤 공동체든 '전통적인 공동체적 감수성'이 없이 그 사회의 발전과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베버의 프로테스탄스 윤리와 일본 신도와의 유사성(각자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 것이 곧 신의 뜻이자 신의 경지라는)을 얘기하기도 하였는데요, 저와 똑 같은 관점은 아니지만,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Robert Bellah가 일찍이 그런 점에 착안하여 일본의 경제적 발전을 분석한 바도 있습니다....
'신성'을 구하는 것은 현대 합리적인 과학의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 얼마나 합리적인 존재일까요? 프로이트, 마르크스, 다아윈 이들이 말한 것은 모두 인간 무의식의 저편의 압도적인 위력이 아니었나요? 아우구스티누스가 결국 자유의지의 왜소함을 고백하고 신의 은총에 호소한 것도 같은 차원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신'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우리 내면을 충만케 하는 공통의 가치,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되뇌이게 되는 언어들, 그리하여 우리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신적 끈 같은 것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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