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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명문]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작성자관세사|작성시간07.05.27|조회수1,095 목록 댓글 0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론 (君主論) - 마키아벨리 


다음 글을 읽고 정치 지도자들의 신의에 대해 논술하시오.



Chapter XVIII

CONCERNING THE WAY IN WHICH PRINCES SHOULD KEEP FAITH


Every one admits how praiseworthy it is in a prince to keep faith, and to live with integrity and not with craft. Nevertheless our experience has been that those princes who have done great things have held good faith of little account, and have known how to circumvent the intellect of men by craft, and in the end have overcome those who have relied on their word.

You must know there are two ways of contesting, the one by the law, the other by force; the first method is proper to men, the second to beasts; but because the first is frequently not sufficient, it is necessary to have recourse to the second. Therefore it is necessary for a prince to understand how to avail himself of the beast and the man. This has been figuratively taught to princes by ancient writers, who describe how Achilles and many other princes of old were given to the Centaur Chiron to nurse, who brought them up in his discipline; which means solely that, as they had for a teacher one who was half beast and half man, so it is necessary for a prince to know how to make use of both natures, and that one without the other is not durable.

A prince, therefore, being compelled knowingly to adopt the beast, ought to choose the fox and the lion; because the lion cannot defend himself against snares and the fox cannot defend himself against wolve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be a fox to discover the snares and a lion to terrify the wolves. Those who rely simply on the lion do not understand what they are about. Therefore a wise lord cannot, nor ought he to, keep faith when such observance may be turned against him, and when the reasons that caused him to pledge it exist no longer. If men were entirely good this precept would not hold, but because they are bad, and will not keep faith with you, you too are not bound to observe it with them. Nor will there ever be wanting to a prince legitimate reasons to excuse this non-observance. Of this endless modern examples could be given, showing how many treaties and engagements have been made void and of no effect through the faithlessness of princes; and he who has known best how to employ the fox has succeeded best.

But it is necessary to know well how to disguise this characteristic, and to be a great pretender and dissembler; and men are so simple, and so subject to present necessities, that he who seeks to deceive will always find someone who will allow himself to be deceived. One recent example I cannot pass over in silence. Alexander the Sixth did nothing else but deceive men, nor ever thought of doing otherwise, and he always found victims; for there never was a man who had greater power in asserting, or who with greater oaths would affirm a thing, yet would observe it less; nevertheless his deceits always succeeded according to his wishes, because he well understood this side of mankind.

Therefore it is unnecessary for a prince to have all the good qualities I have enumerated, but it is very necessary to appear to have them. And I shall dare to say this also, that to have them and always to observe them is injurious, and that to appear to have them is useful; to appear merciful, faithful, humane, religious, upright, and to be so, but with a mind so framed that should you require not to be so, you may be able and know how to change to the opposite.

And you have to understand this, that a prince, especially a new one, cannot observe all those things for which men are esteemed, being often forced, in order to maintain the state, to act contrary to fidelity, friendship, humanity, and religion. Therefore it is necessary for him to have a mind ready to turn itself accordingly as the winds and variations of fortune force it.

As I have said above, not to diverge from the good if he can avoid doing so, but, if compelled, then to know how to set about it. For this reason a prince ought to take care that he never lets anything slip from his lips that is not replete with the above-named five qualities, that he may appear to him who sees and hears him altogether merciful, faithful, humane, upright, and religious. There is nothing more necessary to appear to have than this last quality, inasmuch as men judge generally more by the eye than by the hand, because it belongs to everybody to see you, to few to come in touch with you.

Every one sees what you appear to be, few really know what you are, and those few dare not oppose themselves to the opinion of the many, who have the majesty of the state to defend them; and in the actions of all men, and especially of princes, which it is not prudent to challenge, one judges by the result. For that reason, let a prince have the credit of conquering and holding his state, the means will always be considered honest, and he will be praised by everybody; because the vulgar are always taken by what a thing seems to be and by what comes of it; and in the world there are only the vulgar, for the few find a place there only when the many have no ground to rest on.

Nicolo Machiavelli, The Prince (1513)


 

1. 해석

한 군주가 언약을 지키며 간책(奸策)을 쓰지 않고 공명 정대하게 산다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오늘날 신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계략으로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군주가 오히려 더 큰 일을 성취한 사실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특히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군주들이 신의에 행동의 바탕을 두고 있는 군주들을 압도하여 온 것이다.

그런데 싸움에 있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도리에 의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힘에 의한 것이다. 전자는 인간 본연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힘에 의한 것이다. 전자는 인간 본연의 길이며, 후자는 본래가 야수의 짓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첫 번째 방법만으로는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방법을 원용하여야 한다. 즉, 군주는 야수성과 인간성을 교묘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 옛 저술가들은 군주들에게 우의적(寓意的)인 방법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이 저술가들은 아킬레스를 비롯하여 많은 고대의 영웅들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카이론(Chiron)에게 위탁되어 이 수신(獸神)으로부터 양육과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반인반수를 훈육자로 내세운 것은 군주란 반드시 이런 양면의 기질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중 어느 한쪽을 결하더라도 군주의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군주란 야수의 성질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 이런 경우 특히 여우와 사자의 성질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자사는 책략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히머에 있어서 여우는 늑대를 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정을 알아차리는 데는 여우라야 하고, 늑대의 혼을 빼려면 사자라야 한다. 그저 사자의 용맹만을 내세우는 자들은 졸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기 때문에 무릇 명군(名君)이라 할 자는 신의를 지킴으로써 자기에게 해가 돌아갈 경우, 또 약속을 맺던 당시의 동기가 이미 없어졌을 경우에는 신의를 지키려 하지 않을 뿐더러 또 신의를 지켜서도 안 된다.

물론 이런 가르침은 만인이 선하다는 가정 밑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사악한 존재로서 당신에 대한 신의를 충실히 지켜 주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도 그들에게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 게다가 군주에게는 신의의 불이행도 합법적으로 정당화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근래에 있었던 예를 무수히 들 수 있다. 군주의 불성실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평화 협정이 파기되었고 효력을 잃었던가. 또 여우의 기질을 가장 잘 구사한 군주가 가장 큰 번영을 누린 군주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여우의 기술을 교묘하게 분장할 줄 알아야 하며, 이것은 절대로 필요하다. 위장의 기술도 완전히 터득하여야만 한다. 더구나 인간이란 극히 단순하기 때문에 목적의 필요성에 의해서 움직여지기 쉽다. 그래서 속이려 들면 얼마든지 속게 마련이다. 최근의 실례 가운데 묵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사람을 속이는 일만을 생각해 왔는데, 그 기회 포착과 수법은 무궁무진했다. 이 교황만큼 실제로 활약을, 그것도 맹세로서 자기의 언약을 뒷받침하면서도 자기의 약속을 도외시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속임수가 거침없었던 것을 보면 그만큼 이 방면에서 도통한 사람도 드문 것 같다.

요컨대 군주는 이미 말한 바 있는 인간의 여러 가지 장점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좋은 성품들을 갖추고 이 성품들을 행동으로써 지킨다면 그것은 도리어 해로운 일이다. 다만 이런 성품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일이 유익한 것이다. 즉 자비심이 많다든가, 신의가 두텁다든가, 인정이 있다는가 표리부동하지 않다든가, 경건하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이런 성품과는 전혀 반대의 자세도 취할 수 있어야 하며, 또 그럴 수 있다는 자신을 평소부터 갖고 있어야만 한다.

무릇 군주라 함은, 특히 새 군주인 경우 나라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신의도 저버릴 줄 알아야 하며, 자비심을 버리고 인간미를 잃고 반종교적인 행동도 때때로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두어야 하겠다. 즉, 대중에게 선한 인간으로만 통하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군주는 운명의 변화, 사태의 변천에 따라 자유자재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될 수 있으면 선(善)의 길에서도 멀어지지 말아야 하겠지만, 필요할 때는 악의 길에도 서슴지 않고 발을 들여놓을 줄 알아야 하겠다. 그러기 때문에 군주는 바로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기질에 어긋나는 언행은 단연 삼가야 한다. 그래서 군주는 사람들을 인견(引見)하여 대화를 나눌 때 그들이 군주를 어디까지나 성실하고, 신의가 두텁고, 언동이 일치하고, 인정이 많고, 종교심에 가득 찬 인물이라고 생각하도록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에서도 신심이 두터운 것으로 생각케 한다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당신을 속속들이 알기보다는 겉으로 나타난 외관만으로 당신을 판단하는 법이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만, 손으로 만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만 당신을 볼 뿐 실제로 당신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거기에다 이 소수의 사람들도 군주의 권력이 뒷받침하는 다수의 여론을 반대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재판소가 환문(喚問)할 수 없는 사람들의 행위, 특히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는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군주는 어쨌든 전쟁에 이기고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러면 그의 수단은 누구에게나 훌륭한 것으로 칭송받은 것이다. 대중은 언제나 외관만으로, 그리고 결과만으로 평가하게 마련이며 이 세상은 이들 속된 대중으로 가득 차 있다. 소수는 다수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를 때에 한해서 설득력을 가질 뿐이다.


2. 작품 소개


(1) 마키아벨리의 활동과 시대적 배경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운동이 그 최고봉에 도달한 느낌을 주기 시작한 때,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니콜로 베르나르도 마키아벨리(Niccol Bernado Machiavelli)로, 1527년 6월 22일에 58세의 생애를 마치고 타계하였다.

그는 동시대의 천재들, 즉 라파엘로(1483~1520),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 1564)와 함께 인류 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금자탑을 세운 역사적인 존재이다. 마키아벨리의 저작 활동과 내용은 다양하고 광범위하지만 그는 주로 『군주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흔히 약육 강식의 폭군 지상주의자(暴君至上主義者)로 낙인찍혀 일반적으로 오해되고 있다.

이러한 『군주론』에 대한 오해는 "어느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이 이루어진 시대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만 진실되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 랑케의 주장대로, 현시점의 감각에서가 아니고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그 시대의 의식에서 살펴볼 때 스스로 해소되며, 독자가 그 시대로 환원함으로써 『군주론』의 참다운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현시점의 자기 눈으로만 역사적 사실을 아전인수격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데에서 역사적 인지(認知)에 오류가 발생한다.

마키아벨리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시점에서가 아니고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하며, 이것은 그가 『군주론』을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처절하고 각박하던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활동으로 그 당시의 이탈리아는 전 유럽의 꽃밭이며 극히 안정되고 평온한 사회 생활만이 이루어진 것같이 흔히들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꽃핀 라틴 문화의 마지막 절규 시대이며, 정치적·사회적으로도 19세기 후반기까지의 길고도 파괴적인 분열과 혼란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바로 이 혼란기에 처하였던 인물이었다.

마키아벨리가 공직에 취임한 다음해 샤를 왕을 계승한 루이 12세는 또다시 이탈리아로 진격하여 이 반도는 다시 한번 전화(戰禍)에 휩쓸리게 되며, 그는 피렌체 외교관으로 파리에 파견되어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수완을 충분히 발휘하여 능력을 인정받게 되며, 박학한 지식과 더불어 실제 정치를 경험하게 되고, "프랑스 인은 정치를 모른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 놓았다.

바로 이 시기에 『군주론』의 주인공인 체자레 보르지아가 혜성같이 이탈리아 정치에 등장한다.

그는 교황 알렉산더의 아들로서 교황과 프랑스를 업고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목표로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갔는데, 이에 크게 당황한 피렌체 측에서는 마키아벨리를 체자레에게 사신으로 보내 수교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체자레와 접촉을 갖게 된 마키아벨리는 <발렌티노공(체자레의 공식명칭)이 반역 장군들을 살해한 양상에 관한 기술> 이란 글에서 체자레의 인간 됨됨이를 객관적으로 냉철히 분석하는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담성·세심성·행동에 있어서의 기만과 잔인,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단호한 태도 등을 높이 평가하였다.


(2) 마키아벨리가 파악한 군주의 개념


  마키아벨리가 비분의 은둔 생활에서 착상한 『군주론』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외침과 내분에 허덕이며 로마 제국의 영광을 저버린 조국 이탈리아의 구국이었다.

그러기에 이는 일반적인 국가 정치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며, 순수 학문적으로 이탈리아 문제를 다루기엔 너무나도 절박한 느낌이 있다.

이탈리아 구국을 위해선 먼저 국내 통일과 외세 구축이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강력한 국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 실행은 오로지 새로운 폭군적인 전제 군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 새로운 군주와 그가 영도하는 국가는 과연 어떤 정책으로 이탈리아를 구제할 것인가.

이 문제를 그의 다년간의 경험과 학식, 그리고 천재성으로 밝혀나간 것이 바로 『군주론』의 내용이며 그 집필 목적이다.

  마키아벨리가 염두에 둔 일관된 이념은 조국·영광·힘이며, 이 세 개념은 조국이란 한 마디로 집약할 수도 있지만 힘과 영광 없는 조국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이들은 정삼각형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삼위일체의 관계에 있다. 여기서 조국이란 물론 로마의 후광을 업은 이탈리아를 뜻하며, 교황이나 황제(신성 로마 제국의)가 지배하는 한정된 독립과 자유가 아니고 외세로부터 완전 독립하고 자치권이 충분히 행사되는 통일 조국을 그는 꿈꾼 것이다.

조국은 그에게 지상에 있어서 유일한 절대적 존재였다.

여기서 그가 중세기적 국가관을 완전히 탈피하여 국가지상주의의 현대적 국가관을 가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는 신의 섭리에서가 아니고 그 자체의 존엄성에서 존재하며 그러기에 국가의 법은 절대적이며, 개인은 국가 내에서만 그 존재 이유와 목적을 찾을 수 있다.

국가를 떠난 개인은 상상할 수도 없고, 도덕과 종교도 국가의 법과 일치함으로써만 그 생명이 발휘된다.

단 국가의 법과 명령은 국민 모두가 존경하여 받들어지는 것이므로, 그 근원을 국민의 소리(vox populi)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그는 잊지 않았다.

또한 국가는 신의 섭리나 운(運)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며 국민 정신과 자연법이 그 원리이고, 군주는 다만 이 국가를 실현하는 현실적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군주라고 말한 것은 교황· 황제 또는 어느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말한 내용의 국가 관념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영도자를 뜻한다.

그가 군주 한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직결시킴으로써 개인의 역량을 최대시한 것은 당시 개인의 능력·활동의 가치를 중요시한 르네상스 풍조를 따른 것이며, 동시에 국가라고 할 만한 조직 사회를 갖지 못한 이탈리아의 당시 사정으로서는 불가피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마키아벨리가 뜻하는 군주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존재인가.

그에 의하면 군주는 먼저 냉철한 심사숙고형이어야만 되고, 조국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으며, 목적을 향해 지(知)와 용(勇)으로 무자비하게 돌진해야 된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종교도 도덕도 염두에 두지 않는 정·부정을 초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선정을 위해 국민의 마음을 항시 파악하고, 이를 이용 또는 만족시킬 수 있는 총명함을 지녀야 하는데, 그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엔 바로 이 정신력과 군병(軍兵)이 절대 필요한 수단인 것이다.

군병 없이 외침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군주 교육 중에 사냥을 제일 먼저 권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군주의 행동 요강이 바로 이 『군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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