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의 역사 속의 대안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s, 이하 재림교회)는 1860년에 교단 명칭을 채택하였으며, 1863년 세계선교를 위한 대 총회(General Conference)를 조직하고 존 바잉턴(John Byington, 1798~1887) 목사를 초대 대총 회장으로 선임하였다.
초기 재림교회의 선교활동은 북미지역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1874년 앤드루스(J. N. Andrews) 목사를 스위스에 첫 해외 선교사로 파견하면서 선교 영역을 전 세계로 확장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은 UN이 집계한 세계 228개 나라/지역 중 203개 나라/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따라서 1863년 진리를 갈망하는 약 3천5백여 명의 신자들로 시작한 재림교회는 불과 한 세기 반 만에 전 세계 1천4백만 명의 신자들과 재림교회를 영적 고향으로 생각하는 수백만의 사람들로 구성된 세계적인 복음주의 개신교회로 성장하였다.
1904년 한국최초의 이응현, 손흥조, 재림기별을 받아드리고 침례를 받음 손홍조씨를 통하여 임기반(독립운동가)가 재림기별을 받아서 진남포에 4곳의 교회를 세움
1907년에 미미샤펜버그 여 선교사를 통하여 남녀공학의 순안 의명학교를 세움 교육선교가 시작
1908 최초의 의료선교사 러셀 의사가 순안 의료 진료소를 세움으로 의료선교가 시작
삼육기술원은 1960년대에 전국의 삼육고등학교 학생들 중 가정형편상 대학 진학을 못하거나, 대학입학예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여 대학진학에 실패하여 방황하거나 재수하거나 또는 어려운 취업 전선에 나가는 학생들이 많아지게 되었지만 인문계밖에 없던 삼육고등학교 들로서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이 같은 절박한 실정을 감안하여 실업교육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셨던 윤옥진 영남대회장은 우선 영남삼육고교 구내에다 소규모지만 비 진학 학생들 중심으로 한 직업교육을 시키므로 젊은이들이 직업기능의 개발로 안정된 생활과 신앙의 자유를 누리면서 자립하게 하자는 목적으로 실업 실습공장을 시설하게 한 후 지도교사로 조성기 장로를 특채하여 근무하게 한 것이 삼육기술원의 태동의 과정이 된 것이다.
1969년4월1일 영남삼육고등학교에 대학에 비 진학 학생을 위한 직업 반을 편성하여 운영하기 시작하고, 1972년8월1일 영남삼육고교직업반을 영남삼육고교부설 직업훈련원으로 개명하고 훈련원책임자를 조성기 선생을 임명함.
1977년 3월17일 직업훈련원을 한국연합회가 직접운영하기로 하며 전문직업 교육기관으로 설립하는 것이 어떨지를 연구하기로 하고 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구위원으로 김이열, 유형환, 전병덕, 김종화, 윤옥진, 연관흠, 임형창, 전병윤, 차승호, 기일수, 남두희, 조성기 이상12명으로 구성, 동년 4월1일 영남삼육부설 훈련원을 삼육기술학원이라 이름하고 초대원장에는 윤옥진목사가 취임하게 됨, 이후 학원건물이 준공되어 개원식을 갖고, 1978년 12월6일 제4기13째 안교 초과헌금 팔천구백달러($8,900)를 배정 받아 실습공장과 기숙사를 준공하였다.
1981년에는 제2대 원장으로 조성기 장로가 취임하였으며 1984년에는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경산 영남삼육구내에서 서울위생병원구내로 옮기고 새로운 발전에 전기를 갖게 되었으며 1997년 조성기 원장의 순직으로, 동년 9월11일 제3대 원장 엄보석 목사가 취임하고, 2000년2월 제4대 원장 김춘섭목사가 취임하였다. 오늘의 삼육기술원이 있기 까지에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심에 있어 꼭 필요로 하는 본 교단의 대안 교육기관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삼육기술원은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지만 전국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에게 기술교육을 통하여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그리스도의 말씀의 복음과 전도의 열정을 가르쳐 지금까지 1000여명을 배출하여 전국 곳곳 최 일선 에서 산업선교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으며, 본 교단 산하에 있는 기관에도 90여명이 열심을 다하여 봉사 사역을 하고 있다.
적은 숫자지만 일부는 개인사업을 통하여 하나님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시간과 물질을 헌신적으로 드리므로, 한 세기 동안 이룬 이 같은 한국재림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하나님의 기관으로 설립이념과 목적에 일치고 원칙가운데서 작지만 명확한 기능적 역할을 했다.
앞으로도 기술원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첨단화되고 실용적인 교육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의 생각과 삶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어, 한국농원에 재림기별을 전파함에 있어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돌릴 것입니다.
재림교회성장의 있어 많은 장애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 에서 직장인들의 안식일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정부에서 주5일제 근무를 실시하면서, 한국재림교회가 선교함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요, 오래 동안 존재하고 고민했던 안식일 준수문제가 해결되므로, 앞으로의 선교에 있어서 장애요소가 제거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재림교회가 안고 고민하여야 할 장애들이 이전보다 더 다양하고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장애들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한발 앞선 연구와 변화시키는 교육을 통하여 인재양성을 위하여 적극적이고 다양하게 투자 해야 할 것이다 3D(Difficult, Dirty, Dangerous)업종을 기피하는 추세에 기술원은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맞게 기존프로그램을 보완하고 실용적인 직업교육을 위하여 다양한 직업교육들을 개발하여, 특히 청소년들에게 직업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지 않도록 희망을 주고 안정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하여, 미래 재림 가족 100만 명이 되도록 함에 일조를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 어떤 어려움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고 세상에서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까지도 하나님 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곳입니다 삼육기술원은 하나님에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동방신기의 시하준수와 함께 약 2년 동안 일요일 아침이면 축구 하던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정 사정이 너무나 연약하여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모습이 였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를 깨워서 함께 축구 하면서 2년을 보내다가 그 곳을 떠나온 지 10여 년 어느 날 우리대학 신학생으로 그것도 여러 학생들에게 존중 받는 듬직한 모습으로 서 있는 도선욱 학생을 삼육대학에서 만났습니다. 그러한 그의 고교 시절이 삼육 기술원이 였음에 감사 드립니다
결손가정으로 아버지의 연약함과 더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형마저 알 수 없는 죽음으로 부검을 마친 고1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시간 생각나는 곳은 삼육기술원이였습니다. 기술원에서 다시 고1를 시작한 그가 올해 인천의 전문 기술대학 졸업반으로 기술장교로 나아갈 사관학교를 준비하고 나아가고 있음은 그에게 있어 분명히 전혀 다른 삶의 모습입니다. 그를 새롭게 도운 삼육 기술원에 감사 드립니다.
피아노를 전공하려던 조카가 2008년 삼육기술원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 잘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빠가 기술원 9기로 자신에게 참 신앙을 안겨준 학교에 아들을 보낸 것을 이 아침 들으면서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술과 신앙으로 이 시대 필요한 인물을 만드는 것 좋지요 하지만 기술원에서 내 아들이 영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내 아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인물이 되리라고 믿고 아들을 기술원에 보냈다는 전화의 음성 앞에 다시 한번 삼육기술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외박으로 2주전 저희 사택에 와서 안식일을 지내고 간 조카의 모습은 분명히 전혀 다른 모습이 였습니다. 매사 긍정적이었으며 여느 자리에 앉자마자 기도하는 모습이 였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조카 재근이를 멋있게 양육해가는 삼육기술원의 교육에 감사 드립니다.
사회인이 되어 치과 병원에 근무하는 자매, 중학교 시절 친척 집에서 홀로 연약해 보이던 어쩐지 자신감 없어 보이던 여학생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가고 늘 마음속으로 꼭 안아 주었던 여학생 기술원 기숙사에 간혹 찾아가면 그는 변해있었습니다. 웃음 가득하고 새로운 꿈을 가진 소녀로 그가 보고 싶습니다. 목회자인 나에게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도움으로만 다가와 있는 특별한 학교, 열악한 아이들을 만나면 그래 그곳에 보내면 되지 하고 떠오르는 고마운 고교입니다.
현재 교회에서도 열악한 가정으로 올해 중 3의 한 아들을 내년에는 그 곳에 보내고자 준비 중입니다. 수년 후에 멋진 모습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할아버지 장로님과 대화하면서 준비하고 있는 삼육기술원 이 특별한 학교는 자꾸만 어려워가는 이 시대 연약한 그릇들을 세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특수학교인 것을 감사 드립니다. 벅찬 감사로 이 아침도 기술원의 모든 일꾼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 기도 드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여호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지혜와 생명이 풍성 하소서 아멘 !
서울삼육중학교를 다녔고, 중 3때 우리 아이 적성에 맞추어 공고 쪽으로 진학을 할까 고민 했습니다. 아이가 비록 공부는 잘 못하지만 손재주는 있거든요. 그래서 당시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셨다면 본인은 삼육기술원을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회의를 다녀봐서 아는데 일반 공고에 우리 아이는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현재는 공부만 좀 뒤떨어질 뿐인데, 마음 착하고 신앙 안에 있고 여리디 여린 우리 아이가 일반 공고에 갔다가 사람까지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금은 공부는 하지 않지만 나중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진심 어린 권고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선배들의 졸업 후 진로를 보니 많은 학생이 대학을 가거나, 취직을 했더군요. 업체에서는 보내 달라고 하는데 보낼 학생이 없어서 못 보내는 형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품고 삼육기술원으로 진학을 했습니다. 전원 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아침 형 인간으로 바뀌고, 방학이면 봉사대 떠날 계획을 세우고, 아무튼 공부하고, 기술 익히고, 병원 이런저런 일 하면서 바쁘게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보다도 훨씬 많이 커버린 것 같습니다. 가끔 안부전화를 할 줄도 알고, 키 뿐 아니라 마음까지 훌쩍 커버린 것 같아, 삼육기술원에 고맙고, 뿌듯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술원에 온 우리의 청소년들... 내년에도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부탁 합니다.
저는 14년간 삼육 기술원에서 학생들에게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지내며 참 행복했고 지금도 보람을 느낍니다. 제도권 안에 있는 교육이 아니라서 저는 같이 사는 것을 가르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우리 학생 한 명 한 명이 제 앞에 찾아온 예수님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초등학생 아들이 머리는 되는 것 같은데 공부는 영 관심이 없어서 성적은 늘 상 중상 급 언저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반면에 무얼 만지고 만드는 데 빠지면 끝장을 볼 정도로 집중력과 재주를 보여준답니다. 중학교까지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동네 학교를 다니게 하고 고등학교 과정은 삼육기술원도 고려의 대상으로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신앙과 미래를 열어주는데 상당히 긍정적인 소식을 들려주는 기술원의 어떻게 보면 기술원은 교회안팎의 음지를 보듬고 쓰다듬는 교회의 손길로 표현해도 좋을 듯싶은데 사업의 숫자적인 우선순위에 밀려 나지 않으며 존귀한 가치가 날로 성장하는 기술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삼육기술원이 우리 기관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 중에 가장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화잇선지의 교육방법을 따라 교육시킬 수 있는 이유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하기 때문인 것으로 압니다. 풍요로움과 대형화의 바람이 우리 교단에도 어김없이 휘 몰아쳐 좋은 건물과 많은 학생들, 또 정부에서 주는 많은 지원들을 뿌리치지 못한 연고로 우리교육의 순수성이 빛 바래고 우리 자녀들이 차츰 우리 교육기관에서 밀려나기 시작한지가 수년이 지나면서 점점 사회화 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지시를 받지 않는 우리의 교육기관을 만들어 화잇선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기관에서 운영하는 멋진 삼육 선지자 학교를 만들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