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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히브리서 강해 10 –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작성자시간의 숨결|작성시간26.05.17|조회수8 목록 댓글 0

출처

블로그>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원문

http://blog.naver.com/esedae/224288413052

 

 

 

히브리서 6장 16절 – 7장 10절 방월석 목사

 

본문 가운데 6장의 말씀(6:16-20)은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이 이 약속을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고, 이어지는 7장의 말씀(7:1-10)은 5장과 6장에서 대략적으로 설명했던 멜기세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들을 복습해봅니다.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은혜의 단비를 경험하고도 채소가 아닌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악한 땅이 있다는 것인데, 이런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 버림 받을 뿐 아니라 저주와 지옥불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인내함으로 마침내 이 약속을 받아 누린 아브라함처럼, 주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우리들도 이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끝까지 인내함으로 약속하신 것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들을 살펴봅니다.

 

I. 맹세는 다투는 일에 최후확정이니(16-20절)

 

1. 6장 16절,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하십니다.

 

내가 한 말을 상대가 믿으려 하지 않을 때, 맹세를 통해 그 진실성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구약 시대 때는 다투는 일을 확정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습니다(신6:13;10:20). 이때 만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난 뒤 이를 어기면 그것은 십계명 중 제3계명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지은 것”(출20:7;신5:11;슥5:3,4)으로 여겨져 엄격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함부로 맹세했다가 곤경에 빠졌던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사 입다입니다. 사사 입다가 암몬과 모압의 연합군과 싸우러 나가면서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면 제일 먼저 자신을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겠다는 서원을 했는데(삿 10:31), 입다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 그의 딸이 춤추며 영접하자 자신이 했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딸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맹세,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맹세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사례인데, 그래서 본문에서도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하신 것입니다.

 

2. 17절,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하십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도 반드시 지켜야 했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보증한 것을 지키지 않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신 언약은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것처럼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칠 때,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의미하는데,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 22:16,17)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의 언약을 믿음으로 25년 만에 독자 이삭을 얻은 것이고, 그 후로 대략 15년 뒤인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침으로 이삭이 언약의 자손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얻기까지 40년을 인내하며 믿음을 보였다는 겁니다.

 

3. 18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하십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맹세로 보증하셨다”(17)는 사실과 또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18상)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가” “큰 안위”를 얻을 수 있다 하십니다. 여기서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간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소망으로 주신 피난처(refuge)로 간다”는 뜻인데, 하나님이 소망으로 주신 피난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큰 안위”는 ‘큰 용기’ 혹은 ‘큰 위로’라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약속으로 받은 우리이기에 우리가 큰 용기를 가지고 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다 하신 것입니다.

 

4. 19절,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하십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약속하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본절에서는 “영혼의 닻”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근거한) 소망에 영혼의 닻을 내리고 있는 자들만이 흔들림 없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휘장 안에 들어가는” 은혜를 얻을 것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을 의미하는데, 지난 시간에도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실 때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져(마27:51;막15:38),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와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4:16)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붙들고 사는 자들은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뿐만이 아니라, 장차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 은혜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뵙게 되는 특권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살을 설명한 것입니다. 땅에 있는 지성소가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 정육면체인 것처럼, 하나님이 계신 새 예루살렘성도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 정육면체인데(계 21:16) 이는 새예루살렘성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금생에서 내생으로 이어지는 휘장이 걷히게 되면,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인 새예루살렘성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3-27)하십니다.

5. 20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리로 앞서 가셨다”는 말씀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이 자신의 피를 가지고 우리를 위하여 휘장 안 지성소로 먼저 들어가 속죄소(은혜의 보좌)에 그 피를 뿌림으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어 지금은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사명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하십니다.

 

II.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7장 1-10절)

 

7장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이 다른 대제사장보다 뛰어난 이유를 논증한 말씀인데, 오늘과 다음 시간에 걸쳐 이 말씀들을 살펴봅니다.

 

1. 7장 1, 2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하십니다.

 

a. 1, 2절의 말씀은 창세기 14장에 기록된 사건을 언급한 것인데, 잠시 살펴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17-20)하십니다.

 

b. 이 말씀 가운데 먼저,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1)하십니다. '멜기세덱'은 '나의 왕'을 의미하는 '말키'라는 히브리어와 '의'(義)를 의미하는 '체뎌'라는 단어가 결합된 것으로 '나의 왕은 의롭도다'라는 뜻입니다. “멜기세덱”(1)이 “의의 왕”(2)인 것처럼, 예레미야 23장 6절에서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멜기세덱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c.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2)라는 말씀에서 '살렘’은 예루살렘을 의미하는데, 히브리어로 '예루살렘'은 '야라(Yarah)'와 '샬롬(Shalom)'의 합성어로 '평화의 터전' 또는 '평화의 기초'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안녕하세요”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나누는 인사인 “샬롬”은 평화라는 뜻으로 “살렘 왕”이란 곧 “평강의 왕”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의의 왕인 동시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평강의 왕 멜기세덱은 역시 의의 왕인 동시에 평강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멜기세덱을 구약 시대 때 나타났던 성자 하나님(Christophany)로 보기도 합니다.

 

d. 멜기세덱에 대한 두 번째 소개는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1)이었다는 것인데, 구약 시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왕과 제사장의 직분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지만, 멜기세덱은 왕인 동시에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겁니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바로 왕인 동시에 제사장으로 오시어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인데,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시여 1000년 동안 세상을 통치하실 때도 왕인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또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시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1차 2차 성전과는 달리 천년왕국 성전으로 알려진 에스겔 성전의 규모가 훨씬 큰 이유도 천년왕국의 성전은 성전인 동시에 궁전의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인데, 여하튼 예수님은 살렘 왕인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과 마찬가지로 대제사장인 동시에 왕으로서 세상에 다시 오셨고 또 다시 오실 것입니다.

 

e.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1)하십니다. 앞서 살펴본 창세기 14장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연합한 왕들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에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복을 빌어준 사건”(창 14:18)을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빌었다”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누어주시며 복을 빌어주시던 모습이 생각나는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은 예수님의 살(떡)이 찢기시고, 피(포도주)를 흘려 예비하신 구원의 축복인 것입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하십니다.

 

f.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하십니다. 재물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십일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바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인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십일조는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부터 행했던 믿음의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율법이 완성되었기에 신약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더 이상 십일조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지기 수 백년 전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사건으로 인해 깨어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신약 성경에서 십일조를 강조하는 말씀을 보기 힘든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미 십일조 이상의 재물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하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이때 많은 교인들이 십일조가 아니라 전재산을 교회에 바쳐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 2:45)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십조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이 많았기에 굳이 십일조를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십일조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축복, 특별히 물질적인 축복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3:10-12)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로 70년만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나라를 다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들이 성전 제사와 성전에서 섬기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의 생활의 근간이 되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음으로 성전의 창고가 비게 되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험해보라”하시면서까지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하신 것인데, 말라기 선지자뿐 아니라,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헌물을 드리고 헌신을 하는 자들의 삶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모든 헌금들이 그런 것처럼 십일조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고후 9:7)하거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헌금이 될 수 없는 것인데, 초대교회의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고 자랑하기 위해 십의 5조를 드렸다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은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행 5:1,2).

 

2. 3절,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하십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라는 말씀이 멜기세덱을 구약에 등장한 그리스도, Christophany로 보는 근거이기도 한데, 이런 멜기세덱이 “-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하십니다. 여기서 “방불하다”는 말씀이 헬라어 ‘아포모이오메노스’인데, ‘같게 되다’, ‘비슷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창세기에 등장한 멜기세덱에 관한 말씀이 메시아에 관한 예언시인 시편 110편 4절에도 다시 등장하는데,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하십니다.

 

3. 4절,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하십니다.

4절부터 10절까지는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함을 논증한 말씀인데, 그 첫 번째 근거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사실을 일예로 들고 있습니다.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이스라엘의 12 지파가 바친 십일조를 하나님의 사역에 온전히 헌신하기 위해 기업을 분배받지 않은 레위지파의 몫으로 돌렸고(민 18:23,24), 그런 레위지파가 드린 십일조는 또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는데(민 18:28), 이는 제사장이 레위지파를 이끄는 영적인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도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영적인 지도자로 인정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보면 멜기세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4. 5절,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하십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레위 지파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비록 저들도 레위지파에 속한 자들로 같은 형제들이지만, 레위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아 생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5. 6절,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하십니다.

 

멜기세덱이 비록 레위 지파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고 복을 빌어주었으니,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뛰어난 자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6. 7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하십니다.

 

“폐일언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리스 데 파세스 안틸로기아스'는 관용구로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두말할 필요도 없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복빎을 받았으니, 두말할 필요 없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라는 겁니다.

 

7. 8절,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하십니다.

 

6, 7절에서 멜기세덱을 아브라함과 비교하면서 십일조를 받고 복을 빌어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더 큰 자임을 논증한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는(호 데, And here men, KJV)”으로 표현하고 있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십일조를 백성들(레위지파)에게서 받았으나, “저기는(에케이, but there he, KJV)”, 다시 말해 멜기세덱은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로서 십일조를 받았다 하십니다. 여기서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라는 말씀은 3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멜기세덱이)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하신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멜기세덱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살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8. 9절,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하십니다.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은 십일조를 받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12 지파에겐 지파의 수를 따라 분깃이 될 땅을 유업으로 주셨지만, 12 지파의 땅에 흩어져 살게 하신 레위 지파에겐 이들이 낸 십일조로 생활하게 하셨고, 또 레위지파 가운데 제사장들은 레위지파가 낸 십일조로 생활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레위지파와 제사장들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멜기세덱이 훨씬 뛰어난 제자장이라는 겁니다.

 

9. 10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레위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레위지파가 직접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할 수는 없으나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으므로 그것은 곧 레위지파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과 같은 행위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레위지파와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라는 겁니다.

 

III. 결 론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여 주신 약속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구체적으로 장차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휘장 안에 들어갈 천국에 대한 약속인데, 이 약속에 우리가 소망을 닻을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 되신 분인데, 이 멜기세덱은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고 축복을 해준 사람입니다. 이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구약의 레위지파와 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나고 영원하신 제사장이신 것입니다.

https://youtu.be/d-Wsm_eKP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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