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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히브리서 강해 11 -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

작성자시간의 숨결|작성시간26.05.24|조회수7 목록 댓글 0

출처

블로그>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원문

http://blog.naver.com/esedae/224295211801

 

 

 

히브리서 7장 11-28절 방월석 목사

 

본문은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바뀌어졌고, 왜 바뀌어져야 했는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씀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들을 복습해봅니다.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여 주신 약속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구체적으로 장차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휘장 안에 들어갈 천국에 대한 약속인데, 이 약속에 우리가 소망을 닻을 내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 되신 분인데, 이 멜기세덱은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고 축복을 해준 사람입니다. 이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구약의 레위지파와 제사장들보다 더 뛰어나고 영원하신 제사장이신 것입니다. 이제는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들을 살펴봅니다.

I. 별다른 한 제사장 (11-17절)

 

1. 11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하십니다.

여기서 “온전함”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텔레이오시스'인데 이 단어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혹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온전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뿐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에도 온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제사장으로서 온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대표적인 일례가 아론의 두 아들로 제사장이 된 나답과 아비후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인데,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분향의 제사를 드리다가 그 앞에서 불이 나와 불타 죽는 심판을 받았고(레 10:1,2), 홉니와 비느하스는 평소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삼상 2:17)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죄를 범하다가(삼상 2:22), 역시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법궤를 메고 나갔다가 빼앗기고 죽는 심판을 받았습니다(삼상 4:11). 이렇듯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을 맡은 자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이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별다른(another)” 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다.

 

2. 12절,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하십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율법에서 규정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불완전하여 백성을 온전케 할 수 없었기에 제사장직과 관련된 율법도 변역되어야(change)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변역되다”는 단어가 헬라어 ‘메타티데미’인데, ‘옮기다’, ‘이전하다’, ‘바꾸다’라는 뜻입니다. 불완전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온전한 제사 직분으로 변역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후로 주신 말씀들은 구체적으로 이 직분이 어떻게 변역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봅니다.

 

3. 13, 14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하십니다.

 

13절 14절은 12절에서 언급한 “율법의 변역”에 관해 설명하는 말씀인데, 율법은 오직 레위 지파만 제사장직을 감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제 율법에서 규정하지 않은 다른 지파인 유다 지파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셨다는 겁니다. 유다 지파는 제사장 지파가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족 지파인데, “유다로 좇아 나신”(14)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구약시대에는 왕으로 택한 받은 사람이 레위 지파가 아니면 될 수 없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려 할 경우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졌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제사장들의 만류에도 분향단에서 제사를 드리려다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 웃시야 왕인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의 율법은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레위지파가 아니면 제사장이 될 수 없는 것인데, 예수님은 이런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 왕인 동시에 제사장인(2,3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지파를 초월하여 제사장이 되었다는 겁니다.

 

4. 15절,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하십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 제도가 온전한 것이었으면,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제사장이 일어날 필요가 없었을 것인데,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율법이 온전하지 못하여 (이후로) 변역된 것이 “더욱 분명하다”는 겁니다.

 

5. 16절,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하십니다.

 

a.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11절에서 말씀한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라는 말씀에 대한 보충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은 넓은 의미에서 모세의 율법을 의미하는데, 이 율법에서는 제사장이 되기 위해선 레위지파 아론의 반차에 속하여야 하고, 육체에 흠이 있어서도 안되고, 제사 직분을 감당하는 동안에는 부모의 시신이라도 만지면 안되고, 대제사장은 처녀하고만 결혼해야 한다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나열하고 있는데, 잠시 이에 관한 레위기 11장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자기 형제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찌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찌니, 과부나 이혼 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찌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레 21:10-17)하십니다.

 

b.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라는 말씀은 11절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았다”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대조시켜서 육체를 따라 된 레위지파의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된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3절) 멜기세덱처럼 예수님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영원한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6. 17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하십니다.

 

이 말씀은 시편 110편 4절을 인용한 것인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린 창세기 14장 18절에서 20절의 말씀과 함께 바로 이 말씀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에 관한 유일한 기록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는 멜기세덱에 관한 말씀이 4구절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신약인 히브리서에서는 이 멜기세덱에 관한 말씀을 5장, 6장에 이어 7장에서까지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는 예수님이 바로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II.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18-25절)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설명한 앞의 말씀에 이어 18절부터 25절까지는 이런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이 레위 지파의 제사장의 사역보다 뛰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씩 살펴봅니다.

 

1. 18, 19절,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하십니다.

 

a.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18)라는 말씀에서 “연약하며”라는 단어가 헬라어 '아스데네스'인데, ‘병든’, ‘연약한’, ‘힘없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연약함은 율법자체가 연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연약하여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무익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펠레스'는 ‘쓸모없는’, ‘무익한’이라는 뜻인데, 이는 율법이 단지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만을 정결케할 뿐 그 내적인 양심(良心)과 심령을 깨끗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기에 무익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b. 이처럼 율법은 연약하고 무익하여 아무것도 온전케 못하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더 좋은 소망을 주셨다”(19절)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더 좋은 소망”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소망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로 주신 소망, 다시 말해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4:16)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소망을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20, 21절,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하십니다.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은 율법에서 규정하는 족보(육체)를 따라 자동 승계되는 제사장으로서 맹세 없이 된 것이지만, 예수님은 맹세로 대제사장이 되셨다 하십니다. 여기서 “맹세없이 된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은 성경에 명시된 것이 아니라 시편 110편 4절의 말씀에서 추론한 것인데, 이 말씀을 보면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시 110:4)를 “주께서”(21) 다시 말해, 성자 하나님이 맹세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된 것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해석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슨 맹세를 하고 대제사장이 되셨을까요? 모르긴 해도 하나님이 주신 대제사장의 사명에 죽기까지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하고 사명을 맡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제사장의 사명에 충성하심으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하십니다.

 

3. 22절,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하십니다.

 

여기서 “언약”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디아데케스(testament)’인데, 이는 히브리서에 17번이나 사용된 단어로, '유언', '서약', '의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약(testament)은 하나님이 주권적인 의지를 가지고 주신 약속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는 특별히 모세를 통해 주신 제사장 제도와 제사에 관한 언약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 옛 언약이 백성들의 죄를 정결케 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하는 일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기에(18절),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사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보증”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엥귀오스’인데, 이 단어는 ‘자신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행한 말에 대해 책임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모세를 통해 주신 제사장과 제사에 관한 옛 언약이 불완전한 것이기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으로 보증하신 더 좋은 언약을 주셨다는 겁니다.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19,20)하십니다.

 

4. 23, 24절,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하십니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오시어서 주신 새 언약이 왜 더 좋은 언약인지에 대해서 23, 24절에서는 옛 언약의 제사장은 죽음으로 인해 항상 있지 못하고 매번 새로운 제사장이 세워져야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않으니 더 좋은 언약이 하십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론부터 시작해서 A.D. 70년 예루살렘멸망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땅에는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까지 포함시키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렇듯 제사장의 숫자가 많은 것은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그들이 드리는 제사가 불완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영원히 계신 분이시기에 그 제사장의 직분도 갈리지 않고, 또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사역도 반복할 필요가 없는 온전한 제사였기에, 예수님을 통해 주신 언약이 “더 좋은 언약”이라는 겁니다.

 

5.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하십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는 헬라어 '호덴'(therefore)인데, 이는 25절의 말씀이 23절 24절 말씀의 논리적 귀결임을 나타내는 접속부사입니다. 예수님이 옛 언약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자기 피로 온전한 제사를 드리시고 또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않고 영원히 계신 제사장이니,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고” 또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하십니다. 1) 레위지파에서 택한 대제사장이 드리는 구약의 제사는 죄를 온전히 씻을 수 없기에 매년 대속죄일마다 반복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온전 이루셨기에(“다 이루었다”, 요 19:30)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신” 겁니다. 2) 그런가 하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지금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중보의 사명을 감당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하십니다.

 

III. 온전하신 제사장 (26-28절)

 

26절부터 28절 말씀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과 그 사역의 탁월성을 설명한 7장 말씀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데, 한 절씩 살펴봅니다.

 

1. 26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시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하십니다.

 

a.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앞에서 언급한 대로 1) 영원하시며(24절), 2)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25절), 3) 항상 살아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중보하시는 예수님(25하)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대제사장에 합당한 5가지 완벽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씩 살펴봅니다.

 

1) 그 첫 번째가 “거룩하고”인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시오스'는 ‘의로운’, ‘경건한’, ‘거룩한’이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의 직분은 거룩한 직분인데, 예수님은 이 직분에 합당하신 거룩하신(호시오스) 분이라는 겁니다. 2) 두 번째, “악이 없고(harmless)”는 헬라어 '아카코스'인데, ‘무죄한’, ‘흠없는’, ‘순수한’, ‘교활하지 않는’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도 육체적으로 흠이 있거나(레 21:7), 명백한 죄가 있는 자들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는데(레 21:4), 예수님은 흠이 없고, 악이 없는 무죄한 분으로 제사장 되시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겁니다. 3) 세 번째, “더러움이 없고(undefiled)” 헬라어 '아마안토스'인데, 이는 제의적인 순결성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림으로 제의적으로 순결함을 유지해야 했는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이런 제의적인 순결이 필요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4) 네 번째,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하십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예수님의 세 가지 성품과 연결된 말씀인데, 예수님은 죄인으로서 제사장이 된 구약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이런 “죄인에게서 떠나 계신”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5)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가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는 말씀인데, 여기서 “하늘보다 높이”에 해당되는 헬라어 '휩셀로테로스 톤 우라논'은 하나님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그 사역이 마쳐지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뒤, 부활 승천하시어 지금은 “하늘보다 높이” 있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2. 27절,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하십니다.

 

a.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해 대속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먼저 드려야 했습니다(5:3;레 4;3-12;16:6-10). 이는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속죄일이 올 때마다 먼저 자신을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렸던 대제사장과는 달리 예수님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신”(26) 분이시기에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사를 드리시기 전에 자신을 위한 제사를 먼저 드리실 필요가 없으셨다는 겁니다.

 

b. “저가 단번(once for all)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대속의 사역이 매년 대속죄일마다 반복해야 하는 구약의 제사와는 달리 한 번에 모든 것을 완성하신 제사라는 겁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하십니다.

 

3. 28절,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7장 전체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이 레위 지파 제사장보다 뛰어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 먼저, 구약의 제사장은 약점을 가진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지만, 예수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2) 두 번째로, 레위지파의 제사장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맹세로 제사장이 되었다 하십니다. 3) 세 번째로 구약의 제사장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지만, 새 언약의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온전한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IV. 결 론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22, 25, 27, 28절)하십니다.

 

https://youtu.be/tn_XS0iTzZg?si=dPHXgshvh2XBE-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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