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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esedae/224308653560
히브리서 9장 1-10절 방월석 목사
지난 시간에 땅에 지어진 옛 언약의 장막과 이 장면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하늘에 있는 장막에 관해 사실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하늘에 있는 장막의 모형(copy)인 첫 언약의 장막에 대해 살펴봅니다. 그 전에 먼저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들을 복습해봅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첫 언약은 흠이 있는 것이기에(7) 하나님이 이를 낡아지게 하시고(7) 예수님을 통해 새 언약을 주셨다 하십니다. 돌판에 새겨진 옛 언약과는 달리 새 언약은 성령의 불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새겨진 언약(10)인데, 이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고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는 은혜(12)를 얻을 것이라 하십니다. 더 좋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6)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본문의 말씀들을 살펴봅니다.
I. 첫 언약의 장막
1. 1절,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하십니다.
a. 첫 언약은 모세와 세운 언약을 말하는데, 여기에도 “섬기는 예법”이 있다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섬기는 예법”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제사의 제도와 이를 집행할 제사장들에 관한 규례를 의미합니다. 구약의 레위기가 바로 여기에 관해 기록한 말씀인데, 레위기는 모든 성경 가운데 이해하기 가장 힘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렵고 힘든 말씀이지만 이 말씀들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이 제사의 제도와 제사장에 관한 규례가 바로 예수님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사역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b. 두 번째로 “첫 언약에도 –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다 하십니다. 하늘의 성소를 본떠(copy) 만든(8:5) 이 성소는 구체적으로 성막을 의미하는데, 전에 성막을 공부할 때 살펴본 것처럼, 이 성막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예표하고 있는 성소인 것입니다. 이에 관해선 이어지는 말씀들을 통해 살펴봅니다.
2. 2절,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하십니다.
“예비한 첫 장막”인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는데, 2절에서는 먼저 성소 안에 있는 기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a. 먼저, 메노라로 알려진 “등대”가 있다 하십니다. 등대는 성소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그 모양은 가운데에 있는 중심 줄기를 기준으로 양편에 세 개의 가지가 나와 있는 모양입니다. 이 줄기와 가지의 끝에는 7개의 등잔이 있고, 또 이 줄기와 가지에 22개의 꽃모양의 받침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출25:31-39;27:20,21). 등대 끝에 있는 등잔에 감람유 기름을 붓고 심지를 꽂아 불을 붙임으로 성소를 밝힌 것입니다.
창문이 없는 성소 안에서 유일한 빛을 발했던 등대는 일차적으로는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성물이고, 다음으론 교회를 상징하는 성물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7개의 등대를 7 교회로 묘사하고 있는데(계 2:1), 금 한 덩어리를 쳐서 일곱 가지가 되게 만든(출 25:31) 등대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운데 있는 줄기에서 6개의 가지가 뻗어 나온 등대의 모양은 이스라엘의 전승에서는 포도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하셨습니다. 포도나무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영적인 삶을 유지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겁니다.
b. 두 번째 “상과 진설병”이 있다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은 조각목에 금을 입혀 만든 떡상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12 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진설병을 놓아 두었습니다. 누룩 없는 떡으로 만든 진설병(레 24:8)은 예수님의 살과 말씀을 상징하는데, 레위기에 보면 이렇게 진설된 12개의 떡들은 안식일마다 새로운 떡으로 교체하게 되어 있는데(레위기 24:8), 이렇게 교체된 묵은 떡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그 자리에서 나눠 먹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묵은 떡처럼 먹기도, 소화시키기도 힘들 때가 많지만, 이 떡을 먹어야 우리가 믿음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12 제자들과 함께 새 언약을 맺으면서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하셨습니다. 옛 언약 당시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12 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진설병을 통해 저들과 언약을 맺으셨다면, 예수님은 12 제자에게 12 조각의 떡을 나눠주심으로 새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이 진설병을 먹음으로 사명을 감당할 힘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인 말씀을 먹어야 세상에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 6:48-51)하십니다.
3. 3절,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하십니다.
여기서 “둘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을 가리키는데(출 26:31-33;36:35,36;레 24:3), 둘째 휘장의 뒷편 즉 안쪽에 있는 방이 지성소인 것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로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가 속죄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갈라놓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것인데(마 27:51), 이로 인해 히브리서 기자도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하신 것입니다.
가로 10 규빗(4.5미터), 세로 10 규빗, 높이 10 규빗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는 지성소는(출 26:15-30) 역시, 가로, 세로, 높이가 12,000 스다디온(2,200km)으로 정방형으로 되어 있는(계 21:16) 새 예루살렘성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인데, 장차 믿는 성도들이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새 예루살렘성)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떠나지 않는 지성소라는 겁니다.
4. 4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하십니다.
a. “금향로...있고”라는 말씀에서 “향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미아테리온'을 70인역에서는 지성소 휘장 앞에 놓인 ‘분향단(the altar of incense)’과 구분된 또 다른 “금 향로(the golden censer)로 소개합니다. 대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금 향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그곳에서 짙은 향을 피움으로 속죄소를 가려 죽음을 면했는데, 이에 관한 말씀이 레위기 16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찌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레 16:11-13)하십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려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그 다음엔 금향로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신 속죄소가 가려지도록 향을 사름으로 죽음을 면하였다는 겁니다. 휘장 앞에 있는 분향단에서 드리는 분향의 제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상징한다면(시 141:2),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로 금향로를 가지고 들어가 드리는 분향은 하나님의 진노와 죄를 감추는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b. 두 번째로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하십니다. 언약궤는 가로가 2.5규빗(112.5cm), 세로가 1.5규빗(67.5cm), 높이가 1.5규빗(67.5cm)로 만들어진 상자인데, 조각목으로 틀을 만들고 이 위에 정금으로 싸서 만든 것입니다. 이 상자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들어있었는데, 이 성물들이 상징하는 의미들을 살펴봅니다.
1) 먼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하나님께서 40년 광야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실히 먹이셨던 일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간직하게 하신 성물입니다(출 16:32-34).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걷는 동안, 심지어 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했을 때도 하나님은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주셨는데,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한 가족이 하루 동안 먹을 일용할 양식인 만나 한 오멜을 정금 항아리에 담아 언약궤 안에 두어 간수하라 하신 것입니다(출 16:33,34). 문제는 이처럼 하나님이 아침마다 성실함으로 만나를 먹여주셨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만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는 불평을 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한 달 동안이나 메추라기를 먹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지만, 이후로 큰 재앙으로 내리심으로 그들이 머물던 자리가 ‘탐욕의 무덤(기브롯 핫다아와, 민 11:33,34)’이 되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법궤 안에 있는 만나는 바로 이 죄를 생각나게 하는 성물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다 하십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아론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에서 제사장으로 선택 받은 자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기적의 증거입니다(민17:1-11). 민수기 16장에 기록된 ‘고라당의 반역 사건’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인 모세와 제사장인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사건인데, 이때 고라당이 모세와 아론에게 “-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 16:3) 하며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자 하나님이 고라의 무리에게 향로에 불을 가져오라 명하신 뒤(민 16:17), 분향하는 250인을 불로 태워 죽이셨습니다(민 16:35).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자 전염병으로 저들을 심판하사고(민 16:49,50), 각 지파의 족장에게 지팡이를 가져와 회막의 증거궤 앞에 두라 명하셨는데, 다음 날 가보니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렸다(민 17:8)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론을 제사장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을 이적을 통해 보여주신 것인데, 이 사건 이후에 하나님이 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증거궤 안에 간직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에 도전하는 자들이 받게 될 심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인 모세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인 아론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들이고, 이들의 권위에 도전하여 그 직분을 강탈하려 했던 고라당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그 직분을 강탈하려는 자들을 상징하는데, 초림의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그런 자들이었다면, 마지막 때에는 가짜 그리스도인 적그리스도를 세상의 왕으로 옹립하려는 자들이 바로 현대판 고라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때와 초림의 때에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왕과 제사장(그리스도)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세 번째 “언약의 비석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돌판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이 직접 이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습니다(출 25:16;31:18;신 9:9;10:3,4). 문제는 모세가 첫 번째 돌판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 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자 십계명의 일 계명과 이 계명을 어긴 저들에게 돌판을 던져 부숴 버린 것인데(출 32:19), 언약궤 안에 간직한 돌판은 이 사건 이후에 모세가 시내산에 다시 올라가 두 번째로 받아온 돌판들인 것입니다(출 34장). 이처럼 언약궤 안에 간직한 두 번째 돌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백성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무섭고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성물이었다는 겁니다.
5. 5절,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하십니다.
“속죄소”는 언약궤를 덮는 뚜껑인데(출25:17), 여기에 한 쌍의 그룹(cherubim)이 새겨져 있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 기둥, 불기둥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속죄소를 ‘시은좌 (施恩座)’ 다시 말해 ‘은혜의 보좌’(히 4:16)라고 부른 것인데,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속죄의 피를 가지고 이곳에 뿌림으로(레 16:14,15) 이스라엘을 대속하는 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언약궤 안에 들어있던 세 가지 성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는 역할을 했는데, 십계명이 쓰여진 돌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죄를 지적하였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종들을 대적한 죄를 지적하였고, 만나가 든 항아리는 탐욕의 죄를 지적하였다는 겁니다. 이 죄가 밖으로 드러나면 비록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세 가지 성물들이 담긴 언약궤를 ‘속죄소’ 뚜껑으로 덮어놓게 하시고, 매년 대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이 속죄소 위에 대속의 피를 뿌림으로 언약궤의 성물들이 가리키는 죄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것입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하십니다.
6. 6절,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 장막”은 '성소'를 가리킵니다. 이 성소 안에선 제사장들이 섬겨야 할 세 가지 예(禮, the service of God)가 있었습니다. 1) 먼저, 아침마다 금향단에서 분향을 드려야 했습니다(출30:7-8). 이 분향은 성도들이 날마다 드려야 할 기도를 상징하는데,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하셨습니다. 2) 두 번째는 저녁마다 등대에 불을 밝혔습니다(출 27:20, 21). 성소의 유일한 빛인 등대에 불을 밝히는 일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성도의 사명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마 5:14). 3) 세 번째는 매 안식일마다 떡상에 열 두개의 진설병을 교체하였는데(레 24:8, 9),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때 교체한 떡은 버리지 않고 제사장들이 모두 나누어 먹었습니다(레 24:5-9). 일주일 동안 진설된 단단한 묶은 떡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먹고 소화하기 힘들 때가 많지만, 우리가 이 말씀을 먹어야 믿음이 성장하고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7절,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하십니다.
a.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라는 말씀에서 “둘째 장막”은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이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레 16:11-16).
b.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하신 말씀처럼 대제사장이 일년의 한차례 대속죄일에 둘째 장막(지성소)에 들어갈 땐 자기와 또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을 속죄하기 위한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1) 이에관한 규례가 기록된 레위기 16장을 보면 먼저 대제사장이 자기와 권속의 허물을 속하기 위해 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림으로”(레 16:14) 죄를 대속하였고, 2) 이후에 “백성을 위해 잡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림으로”(레 16:15)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한 것입니다.
II. 첫 장막의 한계(8-10절)
1. 8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하십니다.
8절부터 10절까지는 옛 언약의 성소인 성막(성전)과 그 안에서 드려지는 제사의 한계를 설명한 것인데, 먼저, 8절에서는 “-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지성소를 의미하는데, 첫 장막의 지성소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지성소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으로(막 15:38), 우리가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가 있는 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2. 9절,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하십니다.
a.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라는 말씀은 모세를 통해 주신 첫 장막이 참된 성전 되신 예수님(요 2:21)을 예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첫 장막이 있을 동안에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8), 지금은 참된 성전 되신 예수님을 통해 그 길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b.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라는 말씀은 구약 시대 당시 성막과 성전에서 드려지던 예물과 제사의 불완전함을 설명한 것인데, 이런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의 외적인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 양심을 온전케 변화시킬 수 없다.”하십니다. 여기서 “양심”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쉬네이데신'은 ‘마음의 생각(conscience)’을 의미하고, “온전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이오사이'는 ‘죄의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깨끗해진다’는 뜻입니다. 첫 장막에서 일년에 한번 씩 드리는 대속의 제사는 우리의 죄를 온전히 깨끗게 하실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온전히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시키시기 위해 참 장막이신(8:2)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참장막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겁니다.
3. 10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하십니다.
첫 장막에 관련된 규례들은 대부분 '먹는 것'(레 11장)과 '마시는 것'(레 10:8,9;11:33-38;민 6:2,3)과 '씻는 것'(출 30:20;레 15:4-27;17:15,16;민 19:7-13)과 같은 육체의 정결에 필요한 예법들입니다. 육체의 정결과 관련된 이런 예법들은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깨끗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에 하나님이 이 온전하지 못한 ‘첫 장막’과 ‘육체의 예법’을 개혁하기로 작정하셨다는 겁니다. “-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는 말씀에서 “개혁(reform)”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디올도시스’인데, ‘바로 잡다(making straight)’, ‘교정하다( rectification)’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첫 장막과 육체의 예법이 불완전하고 형식적인 것이었기에 이를 바로잡고, 교정하기 위해 참 장막이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온전하지 못한 첫 장막과 육체의 예법을 어떻게 교정하시고 바로 잡으셨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봅니다.
III. 결 론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지만, 여기서 드려지는 제사와 예법이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이를 개혁하시기 위해 참 장막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 하십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9,10)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