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일예배

[주일예배] 히브리서 강해 14 – 새 언약의 중보

작성자시간의 숨결|작성시간26.06.14|조회수3 목록 댓글 0

출처

블로그>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원문

http://blog.naver.com/esedae/224315670903

 

 

히브리서 9장 11-26절 방월석 목사

 

지난 시간엔 첫 언약의 장막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새 언약의 중보가 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들을 복습해봅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지만, 여기서 드려지는 제사와 예법이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이를 개혁하시기 위해 참 장막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 하십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9,10)하십니다. 이제는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들을 살펴봅니다.

I. 새 언약의 중보(11-22절)

 

1. 11, 12절,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하십니다.

 

a. 원문에는 11절 말씀이 ‘그러나’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데'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1절부터 10절까지가 불완전하고 제한된 능력만 가지고 있던 첫 언약에 관해 소개한 말씀이라면, 11절부터는 이런 첫 언약과 비교되는 온전하고 영원한 새 언약에 관해 설명하는 말씀이기에 이야기의 주제가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데(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새 언약의 온전함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새 언약을 주셨다 하십니다. “장래 좋은 일”은 옛 언약이 제공해주지 못했던 온전한 속죄와 온전한 중보를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는 “더 좋은 대제사장”(11)과 “더 좋은 장막”(11하)과 “더 좋은 제물(피)”를 의미합니다. 레위지파의 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더 좋은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이 땅에 있는 장막이 아닌 하늘에 있는 “더 좋은 장막”에서 염소와 송아지 피가 아닌 “더 좋은 제물(피)”인 자신의 피로 대속의 제사를 완성하셨다는 겁니다.

 

b. 12절의 말씀에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옛 언약의 장막에선 매년 대속죄일에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이 자신을 위한 송아지 피와 이스라엘을 위한 염소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속죄를 이루었는데(레 16:3, 5-11,15,16), 예수님은 짐승의 피가 아닌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 단번에(once for all)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일지 궁금해지는데, 이에 대해 추측해볼 수 있는 말씀이 요한복음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만지지 말라 하시면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요 20:17)하셨습니다. 공식적인 승천일은 이후로 40일 뒤에나 일어났는데, 왜 부활하신 직후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걸까요?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와 율법에 능통한 랍비 출신의 한 목사(Dr. Baruch Korman)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의 성소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올라가신 것이라 설명합니다.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어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직후 이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으로서 자신 피를 가지고 “더 크고 온전한 장막”(11)이 있는 “하늘 성소”(12)에 들어가시어 그곳에 있는 언약궤(계 11:19) 위(속죄소)에 피를 뿌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하늘)로 올라가야”하니,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말라”하셨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이 무덤 앞에서 만난 막달라 마리아에겐 “나를 만지지 말라”하셨지만,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뒤엔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시어 자신을 만져보라 하셨다는 겁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19:27)하십니다. 부활하신 직후 예수님이 하늘 성소로 올라가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피를 가지고 속죄의 사역을 마치고 내려오셨기에, 이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의 몸을 만져보라 하신 것입니다.

 

c. “염소와 송아지의 피”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일시적으로 속죄할 수는 있었지만, 매년 속죄일마다 이 제사를 반복해야 할 만큼 그 효력이 불완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이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로 들어가 “단번에(에파 팍스, once for all)” “영원한 속죄(eternal redemption)”를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테 텔레스다이)”라고 외치셨는데, 이는 대속의 제물로서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뜻이고,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12절의 말씀은 대속의 제물이 아닌 대제사장으로서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셨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하늘 성소에서 이루신(완성하신) 속죄는 “영원한 속죄(eternal redemption)”이기에 구약의 제사처럼 반복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13절,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하십니다.

 

13절은 옛 언약하에서 드려진 동물의 피의 효력에 대한 설명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는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과 대제사장과 그의 가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뿌린 피였고(12절), “암송아지의 재”, 구체적으로는 “붉은 암송아지 재”(민 19:2)는 부정한 것을 깨끗게 하는 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민19:1-10). 최근 종말론 학자들 사이에 붉은 암소의 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 땅에 제 3 성전이 세워진다해도 이 성전과 그 곳에서 사용되는 기명들을 붉은 암송아지 재를 탄 물로 정결케 하는 의식을 치루지 않으면 성전의 기능을 할 수 없기에, 여기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러한 희생 제물의 피와 재는 부정한 것을 정결케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3. 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하십니다.

 

a.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13)도 부정한 것을 정결케 하는데, 하물며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를 정결케 못하겠는가? 라고 물은 것입니다. 14절에서는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보혈)가 짐승의 피와 비교되는 2가지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하십니다. 짐승의 피가 우리의 육체만 깨끗게 할 수 있는 것에 반해(13)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양심”과 함께 “죽은 행실”을 깨끗게 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양심(conscience)을 깨끗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겉 모습(육체)뿐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인 것이고, “죽은 행실을 깨끗게 한다”는 것은 삶의 모습을 변화시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양심과 죽은 행실도 깨끗게 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겁니다.

 

b. 예수님의 보혈이 가진 두 번째 능력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14하)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피흘려 죽으시고, 또 그 핏값으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은 뒤에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달았다면 이후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4. 15절,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십니다.

a. “이를 인하여(as for the cause)”는 앞에서 살펴 본 “11절부터 14절 말씀의 결과로”라는 뜻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새 언약의 중보(the mediator of the new testament)”가 되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중보”라는 단어가 헬라어 '메시테스'인데, 중보자(mediator)라는 뜻입니다. 옛 언약에서는 아론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중보자의 역할을 했다면, 새 언약에선 예수님이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는 겁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1,12)하십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기에 우리가 마리아나 교황과 신부와 같은 또 다른 중보자를 찾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b. 두 번째,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란 정확히는 ‘첫 언약 아래서 범한 죄(the transgressions that were committed under the first covenant, NASB)라는 뜻인데, 이 말씀처럼 첫 언약의 율법과 제사는 죄를 생각나게 할 뿐 온전히 속할 수 없기에 예수님이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이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기업”이라는 표현을 보면 12절의 “영원한 속죄”와 14절의 “영원하신 성령”에 이어 다시 한번 “영원한(기업, eternal inheritance)”이라는 단어가 쓰여지고 있는데,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이 주시는 (속죄, 성령, 기업) 은혜는 옛 언약의 중보자(대제사장)가 주었던 것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eternal)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5. 16, 17절,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하십니다.

 

유언이 법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유언한 자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전날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며 떡과 포도주로 맺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기 위해선(눅 22:20) 반드시 죽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유월절 전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예수님은 그 날 밤에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시고 새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신 뒤, 아침 9시에 십자가를 지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심으로 예수님이 제자들과 맺으신 새 언약의 유언이 유효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6. 18-21절,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하십니다.

 

a. 이 말씀은 “첫 언약” 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처음으로 언약을 맺을 때 피로 언약을 세웠던 것을 상기 시키기 위해 주신 말씀인데, 19절에서는 먼저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하십니다. 이는 출애굽기 24장에서 십계명의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출 23장), 이 말씀에 순종(준행)하겠다는 다짐(출 24:7)과 함께 단에서 취한 피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리면서 언약을 맺은 사건을 설명한 것입니다. 잠시 살펴봅니다.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6-8)하십니다.

 

b.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21)는 말씀은 매년 대속죄일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한 이후에 그 피를 가지고 장막과 제단에 피를 뿌려 정결케 했던 일을 설명한 것인데, 레위기 16장에 이에 관한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찌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 권속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그는 여호와 앞 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찌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리되”(레 16:15-20)하십니다.

 

7. 22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하십니다.

a.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옛 언약인 율법에서는 거의 모든 물건과 사람이 피로써 정결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거의”라고 표현한 것은 예외적으로 피가 아닌 다른 것으로 정결케 되는 규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 먼저, 전쟁터에서 노략한 전리품은 피가 아닌 '물'로 정결케 하였고(민 31:23), 2) 속죄제를 드릴 때 비둘기조차도 드릴 수 없었던 가난한 자들은 소제, 다시 말해 ‘곡물가루’로 정결케(속죄) 하는 것이 허락되었고(레 5;11-13). (3) 갑작스런 재앙이 시작될 때 동물의 피가 아닌 '향'으로 죄를 속한(정결케 한) 경우가 있었기(민16:46) 때문입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물건과 사람이 피로써 정결케 되었다는 겁니다.

 

b.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9장 전체의 요절과 같은 말씀인데,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신 12:23).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범죄한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인데, 이 범죄한 자를 대신해서 무죄한 희생 제물이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 우리가 그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remission)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에 그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지만(창 3:7), 이것이 죄를 가리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마련하신 가죽옷을 저들에게 입히심으로(창 3:21) 죄의 수치를 가려주신 것입니다. 아담의 때에도, 모세의 때에도, 그리고 은혜의 시대에도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는”것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얻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하십니다.

 

II. 더 좋은 제물(23-26절)

 

1. 23절,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성막과 성전은 일년에 한 번씩 짐승의 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는데(레 16장), “하늘에 있는 성전”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24절부터 26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씩 살펴봅니다.

 

2. 24절,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씩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들어가는 지성소를 의미하는데,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이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계신 참 하늘의 성소(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겁니다.

 

3. 25절,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하십니다.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24)에서 봉사하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대속죄일이 되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성소(지성소)에 들어가 대속의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레 16장), 예수님은 자주 자기를 드리실 필요가 없으셨다는 겁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자신의 피를 가지고 드리신 속죄의 제사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매년 반복해야 하는 구약의 제사와는 달리 반복할 필요가 없는 온전한 제사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4. 26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하십니다.

a. 예수님의 제사가 짐승의 피를 가지고 매년 반복해야 하는 불완전한 제사라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다시 말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순간부터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했겠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서 드리신 제사는 온전한 제사였기에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b.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는 말씀에서 “단번에(once for all, ESV)”라는 단어 자체가 ‘한번으로 모든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뜻입니다. 이 제사는 단번에 드린 제사이기에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do this in remembrance of Me)”(눅 22:19)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려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십자가의 사건을 ‘기념(remember)’하기 위해 성찬식을 행하고 있습니다(기념설). 이에 반해 로마 카톨릭은 성찬식은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rember)하는 예식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성찬식을 집행할 때 신부가 기도하면 이것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를 화체설(化體說)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런 화체설이 맞다면 예수님은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성찬식을 할 때마다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고난을 반복하시는 것이 됩니다. 이 때문에 로마 카톨릭의 성찬식을 성경적인 예식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셨다”는 말씀을 대적하는 이교적이고 주술적인 행사라 하는 것입니다.

 

c. 한편 26절에서 말하는 “세상 끝”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초림의 때를 가리키는데, 이처럼 예수님이 초림하심으로 “세상 끝” 다시 말해 종말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종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초림과 재림의 사이가 바로 누구든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시대”인 것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하십니다.

 

III. 결 론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그 피를 가지고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 “단번에”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하십니다. 이처럼 “새 언약의 중보”(15) 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떠한 죄든지 사함을 받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22절)하십니다.

https://youtu.be/x95DRtQuZ5M?si=30OFOLqEZ_QUdmaN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