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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히브리서 강해 15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작성자시간의 숨결|작성시간26.06.21|조회수8 목록 댓글 0

출처

블로그>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원문

http://blog.naver.com/esedae/224322581465

 

 

 

히브리서 9장 27절 – 10장 7절 방월석 목사

 

히브리서 10장은 9장에 이어 그리스도 희생의 영원(완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둘을 연결시키는 결론과 같은 말씀이 바로 9장 27절과 28절입니다. 이 말씀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지난 시간 배운 말씀들을 복습해봅니다.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그 피를 가지고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 “단번에”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하십니다. 이처럼 “새 언약의 중보”(15) 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어떠한 죄든지 사함을 받고,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22절)하십니다. 이제는 본문을 통해 주시는 교훈들을 살펴봅니다.

 

I.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9장 27, 28절)

 

1.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하십니다.

앞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9장 27절과 28절은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과 대제사장이 되어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셨다는 9장의 말씀과 이를 보충 설명한 10장의 말씀에 대한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시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을 살펴보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제물로서 속죄의 사역을 완성(테텔레스다이)하시고, 이후로 부활 직후에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짐승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 대속의 사역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 지를 설명한 말씀이 바로 27절과 28절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a. 27절에서는 먼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하십니다. 일생일사(一生一死), 한번 태어났으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겁니다. 사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죽지 않는 불사(immortal)의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지음으로 “정녕 죽으리라”(창 2:17)하신 말씀대로 죽음이라는 저주와 심판이 찾아온 것인데(창 3:19), 이 때문인지 사람들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죽음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낯설게 느껴지고 두렵게 느껴지는 죽음이지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기에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 7장 4절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 날을 예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겁니다.

 

지금은 은퇴한 원로목사님이 서울대 총장 출신의 성도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다고 합니다. 문제는 의사와 가족들은 모두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데, 당사자만 이를 인정하지 않더랍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유언도 남기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목사님을 불러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권면해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마지막 임종 예배라고 생각하며 말씀을 읽고 죽을 준비를 하셔야 한다라고 권면했는데 이 분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내가 왜 죽어”하더니 죽더랍니다. 서울대 총장까지 한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는 겁니다. 사람이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는 겁니다. 주의 오심이 임박한 지금은 내가 죽어서 주님 앞에 가기 전에, 주님이 먼저 오실 가능성이 높은 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b. 두 번째, “-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하십니다. 죽음 뒤에는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심판이 있다는 말씀인데, 이 심판은 크게 둘로 나뉘어집니다. 이 땅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들이 받게 될 상급의 심판, 일명 베마의 심판(고후 5:10)이 있고, 불신자들이 받게 될 백보좌 심판(계 20:11-15)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은 죽음과 동시에 그 공력에 따라 상급과 면류관을 얻는 베마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먼저, 1) 육체의 소욕을 제어한 자에게 주시는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 9:24-27)이 있고, 2)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한 자에게 주시는 ‘기쁨의 면류관’(살전 2:19,20)이 있습니다. 3)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계 2:10)이 있고, 4) 목자의 사명에 충성한 자에게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2-4)이 있습니다. 5) 마지막 다섯 번째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딤후 4:8)인데 이 면류관은 흥미롭게도 “주의 오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딤후 4:8하) 주시는 면류관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믿음만 보여도 의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반해 불신자들은 죽는 순간 심판을 받고 스올이라는 고통스러운 장소에 갇혀 있다가, 마지막 날 백보좌 심판대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저주받은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1-15)하십니다.

 

2.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하십니다.

 

a.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을 받게 될 인생들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다는 겁니다. 매년 반복되어야 하는 구약의 제사와는 달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once for all)” 드리심으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b. “-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하십니다. 여기서 “두 번째 나타난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뒤에, 하늘 성소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좀 무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는 말씀은 하늘 성소에 올라갔다 내려왔다는 의미보다는 예수님의 재림사건을 설명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예수님의 재림에 때에 있을 일들을 설명한 것이라면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1) 먼저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얻게 될 최종적인 구원인 부활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얻는 구원은 엄밀히 따지면 구원의 약속이지 실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인간들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구원의 실체는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는 부활의 사건 때 완성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2) 두 번째는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겁니다. “죄와 상관 없이” 나타나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첫 번째 나타나실(초림) 때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오셨지만, 두 번째 재림하실 때는 “죄와 상관없이” 다시 말해 대속의 사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 구체적으로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실체인 부활(휴거)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오신다는 겁니다. 3) 마지막으로 이 구원의 대상으로 “자기를 바라는 자들”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구원을 받는 대상은 예수를 믿고 주의 다시 오심을 바라는 자들로 한정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II. 참된 제사(10장 1-7절)

 

1.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하십니다.

a. 10장은 9장에 이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제사가 왜 온전하고 참된 제사인지를 설명한 말씀인데, 먼저,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하십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는 “율법”과 “장차 오는 좋은 일”을 대조함으로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제사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율법은)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다”하십니다. 1) 여기서 “그림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키안'은 ‘불완전하다’는 뜻인데, 그렇게 보면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사는 장차 오는 좋은 일과 비교해보면 불완전 한(스키티안)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하신 것입니다.

 

2) 그런가 하면 “참 형상이 아니므로”라는 말씀에서 '참 형상'의 헬라어 '에이코나 톤 프라그마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실체들의 형상’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참 형상”이란 그림자와 같이 비슷하거나 닮은 존재가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실체를 의미하는 용어인데,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사는 이런 참 형상(실체)이 아니라 참 형상을 본떠 만든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b. 율법은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기에 “-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하십니다. 이것이 그림자로 주신 율법의 한계인데, 이 한계를 아시기에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온전히 대속하기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2. 2절,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하십니다.

 

구약의 제사가 우리의 죄를 온전히 속죄할 수 있었다면, 이 제사를 통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었을 터인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매해마다 제사하는 일을 그치지 않고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여름철 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나면 며칠 뒤엔 또 다시 잡초가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김매기가 잡초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김매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구약의 제사가 바로 이 김매기처럼 죄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3. 3절,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하십니다.

 

구약의 제사가 우리의 죄를 온전히 대속할 수 없는 불완전한 제사이지만, 이 제사를 해마다 반복케 하신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생각하게 한다”는 단어가 헬라어 ‘아남네시스’인데 ‘기억하다(rember)’뜻입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나누면서 “기념하라”(눅 22:19)하셨는데, 이 기념하라는 단어가 바로 ‘아남네시스’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나눈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게(아남네시스, remember) 하는 것처럼, 구약 시대 당시 매년 대속죄일마다 반복해서 드리는 제사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생각나게(기억하게)함으로 결국 우리의 죄를 온전히 대속할 메시아를 바라보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4. 4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하십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대 속죄일에 드리는 황소와 염소의 피는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 하십니다. 여기서 “능히 못한다”라는 단어가 헬라어 ‘아뒤나토스’인데, ‘무력한(powerless, impotent)’, ‘불가능한(impossible)’이라는 뜻입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온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impossible)하기에 하나님이 또 다른 온전한 제사를 예비하셨다는 겁니다.

 

5. 5절,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하십니다.

5절부터 7절의 말씀은 시편 40편 6-8절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은 5절에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5하)라는 말씀이 첨가된 것입니다. 여기서 “예비하신 한 몸”은 하나님이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해 보내신 아들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해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하십니다.

 

6. 6절,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하십니다.

 

이 말씀은 번제와 속죄제로 대표되는 구약의 제사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못하였다는 뜻인데, 이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이신 예수님이 오시어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모든 제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간엔 잠깐 구약의 5대 제사와 4가지 제사법을 살펴봅니다.

 

a. 구약의 5대 제사

1) 구약의 5대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말하는데 이 가운데 먼저 번제(레1:1〜17/6:8〜13)는 동물의 가죽을 제외하고 모든 부위를 하나님께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헌신과 봉사를 다짐할 때 드렸는데, 이 번제 자체가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제는 생활 형편에 따라 수송아지, 숫양, 숫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드렸습니다.

 

2) 소제(레2:1〜16/6:14〜23)는 곡물을 이용하여 드리는 피 없는 제사인데, 고운가루와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있는 그대로 드리거나 혹은 빵을 구워 드렸습니다. 소제는 항상 번제 혹은 화목제와 더불어 드렸는데, 이런 소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드린 제사입니다. 누룩 없는 가루(떡)를 드린 소제는 예수님의 흠 없으신 몸을 상징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3) 화목제(레3:1〜17/7:11〜36)는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경우나 서원하는 경우에도 화목제(감사제, 서원제, 낙헌제)를 드렸는데, 제물은 소, 양, 염소 등을 사용하되 암수 모두 가능했습니다. 이런 화목제는 예수님이 죄인 된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음을 보여주는 제사인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하십니다.

 

4) 속죄제(레4:1〜5:13/6:24〜30)는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인데, 드리는 제물은 신분에 따라 제사장이나 온 백성은 수송아지, 족장은 수염소, 평민은 암염소 혹은 어린 암양을 드렸습니다. 만일 제물을 드릴 수 없는 가난한 자의 경우 비둘기 두 마리를 드렸는데, 이마저도 드릴 형편이 안되면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드렸습니다. 죄인이라면 빈부귀천을 떠나 모두 드려야 했던 속죄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하십니다.

 

5) 마지막으로 속건제(레5:14〜6:17/7:1〜10)는 하나님의 성물을 범하거나, 이웃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드리는 제사인데, 제물은 오직 숫양으로만 드렸습니다. 속건제를 드릴 때 제사자는 자신이 범하거나 손해를 끼친 재물에다 5분의 1을 더하여 갚아야 했는데, 이런 속건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값을 치러주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하십니다.

 

b. 4가지 제사 방법

1) 이제는 제사 드리는 방법에 따라 구분되는 4가지 제사법을 살펴볼터인데, 화제·거제·요제·전제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화제는 제물을 번제단 위에서 불로 완전히 태워 드리는 제사법으로 온전한 헌신을 상징합니다(출 29:18; 30:20; 레 1:9, 13; 2:2, 3, 10, 16; 4:35; 민 15:3; 29:6). 이때 하나님이 번제단에서 제물이 불타 올라가는 연기(향기)를 흠향(창 8:21)하시고 사죄의 은총을 내리셨습니다.

 

2) 거제는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리며 드리는 제사입니다(출 29:27-28; 레 7:14, 32). 이때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은 제사장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런 거제는 생명의 양식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3) 요제는 제물을 들어 올린 뒤 좌우로 흔들어 드리는 제사인데(출 29:26), 이때 하나님께 드려졌다가 물려낸 제물은 거제와 마찬가지로 제사장들과 그 가족의 몫으로 사용하였습니다(레 7:31). 위아래로 들어 올렸다 내리는 거제와 좌우로 흔들어 드리는 요제는 그 자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하십니다.

 

4) 마지막으로 포도주나 독주를 하나님의 제단에(제사 제물 위에) 부어 드리는 제사인 전제(출 29:40-41; 민 15:5; 겔 20:28)는 단독으로 드려질 수 없고 항상 다른 제사에 곁들여 드려진 제사입니다. 이런 전제에서 부어드리는 포도주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피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옥중서신인 디모데후서 4장 6절에서 “관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하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피흘려 순교하는 것을 관제(전제)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7. 7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하십니다.

 

“두루마리 책”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팔리디 비블리우'는 문자적으로는 ‘두루마리의 봉’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는 토라 즉 모세 오경을 포함한 모든 구약성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두루마리 책(구약성경)에서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 구약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테텔레스다이) 행하셨다는 겁니다.

 

구약은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된 책이고, 신약은 이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에 보면 “기록된 바”(막 9:13; 눅 7:27; 요 12:5; 마 11:10)라는 말씀과 “이루려 하심(함)”(마 2:23; 막 14:49; 눅 21:7; 요 12:38)이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구약에 기록된 구세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첫 번째 예언은 proto-gospel로 알려진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인데, 여기서 하나님은 뱀의 죄를 심판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뱀의 머리를 밟아 상하게 한 것입니다. 이후로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 주시기 위해 준비하신 가죽옷과, 아벨의 제단으로부터 제단에서 드려졌던 모든 희생 제물들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 바로 메시아를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 것인데,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시어 십자가에서 이런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겁니다.

 

III. 결 론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9:27,28)하십니다. 참 형상의 그림자인 구약의 모든 제사와 말씀들은 구세주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대속의 제사를 완성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https://youtu.be/SWIhwQSre4k?si=SgpGQRifyJnXWx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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