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 함께 떠나는 길동무
오 태 숙
문화예술회관에서 「사람을 만나다Ⅷ」 전시가 열렸다. 어떤 사람을 여덟 번이나 만났을까 궁금해하며 들어선 입구에서, 나무 인형으로 꾸며놓은 ‘꼭두’라는 단어와 맞닥뜨렸다. 처음에는 꼭두새벽, 그리고 어릴 적 인형극 ‘꼭두각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꼭두’는 ‘인형’이라는 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쓰이던 순우리말이었다. 옛 장례식에서 상여를 장식하던 작은 나무 조각상, 망자의 길을 인도하고 지켜주는 동반자였다. 나무로 만들어 ‘목우(木偶)’라 불리기도 했다. 죽은 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길동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수호천사 같은 존재다.
전시장 안의 꼭두는 생각보다 밝았다. 붉고 푸른 빛은 사찰 단청처럼 짙고 선명했고, 얼굴들은 하나같이 해학적이었다. 근엄한 얼굴, 재롱을 부리는 얼굴, 평면적인 얼굴…. 나무의 투박한 결을 따라 선과 면이 거칠게 드러났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생명력이 솟아났다. 특히 <꽃을 든 남자>는 은행나무의 결이 주는 울림이 특별하여, 오랫동안 발걸음을 붙잡았다.
꼭두의 역할은 다채롭다. 망자에게 길을 안내하고, 잡귀를 쫓아내며, 묘기와 재롱으로 웃음을 주고, 망자의 시중을 들며 배웅한다. 삶의 끝에서 만나는 이 작은 나무 조각이 이토록 다정하고 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꼭두를 바라보고 있으면, 죽음을 단절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바라보았던 조상들의 시선이 전해진다. 문득 젊은 날 세상을 뜬 오빠가 생각났다.
오빠는 너무 이른 나이, 서른아홉에 생을 마감했다. 나보다 열네살 더 많은 오빠는 연세 드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학부모 역할을 했다. 내가 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 숫자 공부를 시켰다. 조기교육이라는 단어가 낯설 때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가 돌아올 때는 중간 크기의 호박만한 산호를 내게 덥석 안겼다. 우리 태숙이가 좋아할 거라며 바다에 들어가서 직접 땄다고 한다. 행여나 깨질까 봐 화장지를 물에 녹여 정성스럽게 꼼꼼히 붙였다.
빨간 자명종 시계는 자취생활에 필수품이라며 선물로 주었다. 이렇게 다정다감한 오빠를 일찍 떠나보낸 나는 오빠 생각하면 아직도 눈에 눈물이 고인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나는 여전히 오빠를 온전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꼭두를 앞세워, 그 길을 배웅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웰다잉 프로그램에서 ‘관체험’을 한 적이 있다. 관 속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끝내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이 차갑고 선명하게 다가왔다. 꼭두가 망자의 길을 지켜주듯, 그 경험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묻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장례라는 슬픈 자리에서도 꼭두는 웃고 춤추며 길을 안내했다. 해학적인 표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죽음을 웃음으로 승화하려는 조상들의 지혜였다. 엄숙하고 어두움으로만 그려지는 죽음에 해학과 희망을 더해주는 존재. 과거에는 꼭두를 순장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산 자와 망자가 서로를 배웅하는 동반자로서의 꼭두에 더 마음이 갔다.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증표, 그것이 꼭두였다. 죽음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상징이었다. 그 모습은 문득 「성자의 행진」을 떠올리게 했다. 뉴올리언스의 재즈 장례식처럼, 죽음을 슬픔만으로 채우지 않고 삶과 죽음을 함께 존중하는 행렬. 꼭두 역시 저승길을 어둠이 아닌 또 다른 출발로 밝혀주었다.
꼭두는 세계에서도 주목받는다. 미국과 유럽에서 전시가 이어졌고,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깊은 울림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꼭두박물관의 전시 주제,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때 산 자는 깊은 슬픔 속에 잠기지만, 꼭두는 그 곁에서 조용히 말해준다.
“혼자가 아니야. 함께 가는 길이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그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작은 나무 인형. 꼭두는 결국 죽은 자만이 아니라, 남겨진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다시 살아낼 힘을 일깨워주는 또 다른 동반자일 것이다.
이제 나는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성자의 행진」을 소리 높여 부르며 오빠를 그 행렬 속에 함께 세우고 싶다. 그 노래가 오빠의 발걸음을 저 먼 길에서조차 환히 밝혀주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그 행진 속에서 오빠와 다시 마주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