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국고전수필

부끄러워해야 부끄러움이 없어지니 / 권 근

작성자小珍|작성시간26.06.12|조회수23 목록 댓글 0

부끄러워해야 부끄러움이 없어지니

 

                                                                                                                               권 근

 

   신미년(1391) 여름, 내가 양촌에 있을 때 ‘혜진’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글 배우기를 청했다. 나는 기뻐하면서 그 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물었더니 ‘지금 비서감으로 일하는 김공’이라고 했다.

김공은 몸가짐이 바르고 부지런하며 박식하여 훌륭한 군자인데 혜진 스님이 일찍이 그와 함께 공부했다고 하니 그 사람됨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고 받아 들였다.

 

   혜진스님은 겉치레가 없고 행동이 조심스러웠으며 말수는 적었지만 진실되었다. 또한 공부에 힘써 학문이 나날이 발전하였으며, 오직 의리를 쫓을 뿐 개인적인 이익을 모르니 과연 김공과 함께 배운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하루는 혜진스님이 자기가 거처하는 집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기에 졸재(拙齊)라고 지어 주었다. 혜진 스님이 그 이름의 뜻을 묻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졸(拙)하다는 것은 교(巧)하다는 말과 반대됩니다. 그때그때 태도를 바꾸면서 겉모습을 꾸미는 사람은 부끄러워할 줄 모릅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면 큰 병이지요. 그래서 맹자께서 이것을 크게 경계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익을 탐내어 좇을 때도 나는 그런 처신을 부끄러워하며 올바름을 지키는 것을 ‘졸’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남을 교묘하게 속이더라도 나는 부끄러워하며 참됨을 지키려고 하는 것 또한 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졸함을 다른 사람들은 버리지만 나는 얻으려고 합니다.

   이익을 쫓는다고 하여 반드시 얻는 것은 아니며, 교묘하게 꾸민다고 해서 반드시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겉모습을 꾸미는 사람은 정신이 날로 지쳐 병이 될 뿐이지요. 그러니 어찌 참된 나를 버리고 이익만 쫓아 겉치레에 힘쓰겠습니까? 만약 외로움을 생각하며 나아가고 참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스스로 만족하게 되어 자신을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바라는 것이 없어 펴안해지고 부끄러울 것이 없어서 태연하게 될 것입니다. 졸한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결국에는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사람 됨됨이가 넓고 크며 모자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졸함을 기르는 것을 덕을 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혜진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고마워 했다.

   “그 말씀을 밤낮으로 생각하며 잊지 않겠습니다.”

 

   * 원제는 拙齊記이다.

   * 記란 건물이나 서화, 여행 등에 대한 기록과 자기 생각을 담은 산문 형식의 글이다.

---------------------------------------------------------------

   * 양촌 권근

권근(權近, 1352년~1409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문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淑), 호는 양촌(陽村),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색, 정몽주의 문인이다.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