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差異)를 키운다는 것...... 무엇을 오해하였는지 게에노는 이에 대하여 나를 비난하고 있다. 그 외의 것을 키울 필요는 없다. 언제나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귀한 것, 예외적인 것, 유일한 것 만약 이러한 것이 사라진다면 이는 모든 인간에게 얼마나 큰 손실이겠는가! 물론 특성이 휘장되었거나 인위적으로 얻어진 것이라면 문제가 안된다.
모조품이란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러나 인간의 형상은 항상 풍부히 될만한 가치가 있다. 이를 축소 시키려고 꾀하는 자 있으면 화 있어라! 혹은 단순히 윤곽을 제안코자 하는 자에게도! 한번 존재한 것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모든 훌륭한 변칙은 전체의 공통적인 수준에 삼키워질 위험에서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변칙은 모든 것으로 부터 적대시 당하고 우선 여론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박물학은 이곳에서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채집자들의 조심성있는 작업도, 그들은 동물, 모든 스포츠를, 모든 희귀한 변종을 ㅡ 비록 때로는 결핍 또는 질병으로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 할지라도 ㅡ 얼마나 신중히 취급하고 있는 것을까! 이러한 것에서 때때로 태어나는 이익을 미리 알 수 있겠는가! 부분적인 결함이 그 어떤 의외의 보충을 태어나게 할 것인가를?
게에노여, 당신은 인간성의 가장 일반적인, 가장 공통적인 감정만을 인정하고 채택하려는 의도에서 오히려 이를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보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은 농밀한 대중과 더불어 개성의 가능성을 후광으로 삼고 있는 모습이다. 되풀이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대중을 위한다는 모든 비개성화의 노력은 결국 대중 자신에게 불행한 것이 된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질식되었던 가난한 자의 음성이 이제 들리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음성만을 듣는 것이라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이 비참을 벗어난다 해도 여전히 인간은 내 관심의 대상으로 머물 것이다. 식물에 먼저 물을 주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우선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식물에 물을 주는 것은 꽃을 피우게 하기 위해서요, 이 꽃이야 말로 나의 관심사이다.
발레리의 시니컬한, 무섭게도 희한한, 역설적으로 웅변적인 그 말만큼 나의 생각을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다. 퍽 오랜 옛날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 어느날 우리는 가엾은 마술단의 무리를 에워싼 구경꾼들 틈에 끼어있었다. 분명히 쎙 제르멩대로의 부로끼상(像) 앞이었다고 기억된다.
사람들은 창백하고 수척한 여인, 추위에도 불구하고 분홍 내의를 입었을 뿐인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여인의 상대역이 그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밧줄을 휘휘감아 교묘히 묶는 것이었다. 몇차례 휘감겼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망을 기어 빠져나와야 했다. 민중의 운명을 말해주는 서글픈 이미지, 그러나 구경꾼들은 상징 따위를 생각할 겨를없이 다만 참고 견디는 여인의 노력을 거의 멍청하게 쳐다보고만 있다. 여인은 몸을 비틀고 꼬와 천천히 한 팔을 빼내고 다시 다른 팔을 풀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묶음이 풀리자 발레리는 내 팔을 잡았다.
「자,그만 가지. 이제 그는 괴로워하지 않을테니.」 만약 사람들이 이말의 풍자적이며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이해 못 한다면 이는 별 수 없는 일이다. 괴로움을 벗어날 때 그들이 정녕 인간이 될 수 있다면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위험과 우리의 공감을 받을 권리를 빈곤의 탓으로 누리고 있는 것일까!
하나의 식물이 아직 꽃피우지 않는 동안은, 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희망을 거는 것처럼....... 꽃 피우지 않은 모든 것은 얼마나 많은 꿈에 에워싸여 있는가. 비열를 이제 빈곤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을 때 얼마나 실망에 사로잡힐 것인가!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나를 비판주의자로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훈련과 교육이 수반되는 해방이야 말로 훌륭한 해방임을 가르쳐 준다.
어떤 날에는 권태가 격렬한 정렬에 타올라 증오와 같은 것이 되어 마치 독수리처럼 내 위에 덮쳐온다. 이 때 전 세계는 별안간 불이 꺼진 등의 잿빛 내벽(內璧)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일시적인 이 상태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람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들이야 말로 구원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다. 행복해 질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은 오직 그들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